1. 개요
세 황제의 해(Dreikaiserjahr)는 한 해에 황제가 3명이나 거쳐간 해를 부르는 말이다. 중간에 끼어있는 황제의 신변에 무언가 엄청난 일이 해를 넘기지 못하고 터지면 이런 사례가 발생한다. 한자문화권의 경우 연호 때문에 애매한 사람들 머리까지 아파진다.[1]그리고 그보다 먼 옛날 로마 제국에서는 네 황제의 해, 다섯 황제의 해, 여섯 황제의 해도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쪽은 아예 생판 남인 사람들이 황제 자리를 두고 내전이 일어난 것[2]이고, 세 황제의 해는 황위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군주제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근대에선 나름 흔했지만[3] 근현대에는 굳이 황제로 한정짓지 않아도 이런 사례는 흔하지 않아서 왕이나 교황도 포함했다.
2. 명나라: 1620년
황제가 한 해에 두 번 이상 바뀌는 일이야 방대한 중국사에 간간이 있었지[4]만 가장 유명한 건 이쪽.무려 48년 30일을 황제로 있으면서 거의 30년간 태업을 하면서 국운을 기울게 만든 만력제가 1620년 7월에 죽자 많은 신료들의 기대를 받으면서 태창제가 즉위하였다. 그리고 태창제는 기대대로 즉위 직후 은자 백만 냥을 변경지방으로 보내 군사들을 위로했다. 또 만력 연간에 온갖 폐해를 야기했던 광업세 등을 철폐하라고 지시하고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는 등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듯 했지만, 과도한 여색에 홍환안까지 겹치면서 즉위 29일만에 사망하고 만다.
결국 이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준비가 전혀 안 된 채로 천계제가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명나라는 만력제가 싼 똥을 제대로 못 치우고 고생하다 그 다음 대에 멸망하고 만다.
3. 독일 제국: 1888년
원문이 독일어[5]인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 표현의 원조이다.
독일 제국의 제2대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는 심각한 애연가였으며 즉위 당시 나이도 아버지가 빌헬름 1세가 90세까지 장수한 탓에 57세로 꽤 고령인 상태였다. 사실 빌헬름 1세가 워낙 장수한 것일 뿐 당시 기준으로 57세면 장수한 건 아니지만 요절했다고 볼 나이도 아니며 손주들도 봤다.
1888년 3월 아버지 빌헬름 1세가 사망하고 프리드리히 3세가 황제로 즉위했지만 그 해 6월, 겨우 재위 99일 만에 후두암으로 사망하고 만다. 사실 이미 제위에 오르기 전인 1887년 독일 의사 카를 게르하르트(Karl Gerhardt)로부터 후두암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기에 조기에 수술을 받았다면 조금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수술을 위해 방문한 영국 의사 모렐 매킨지(Morell Mackenzie)[6]가 루돌프 피르호의 생검 견해를 바탕으로 후두암이 아니라는 오진을 하고 수술을 취소한 탓에 때를 놓치고 암은 더 심해졌고,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것.
그 해 6월에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 빌헬름 2세가 제3대 황제로 즉위한다. 그리고 역대 독일 황제가 3명뿐이어서 이 해는 모든 독일 황제가 재위한 해가 되었다.
4. 영국: 1936년
왼쪽부터 조지 5세, 조지 6세, 에드워드 8세 |
조지 6세의 왕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남편이 즉위한 뒤 고생만 실컷 하다 일찍 죽자 에드워드 8세 부부를 평생 증오하게 된다. 조지 6세는 미처 후계자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즉위한데다, 하필 즉위한 때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 등 영국 역사상 가장 급박한 시대였다. 이 때문에 조지 6세는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폭연을 하다가 결국 폐암에 걸려 56세란 한창 나이에 사망한 것이다. 그의 뒤를 이은 장녀가 다름 아닌 역사상 최장기 재위 군주(70년 재위)가 되는 엘리자베스 2세이다. 단명한 아버지와는 반대로 엘리자베스 2세는 96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외손자인 찰스 3세도 일흔이 넘었다.
5. 바티칸 교황: 1978년
천주교에서도 교황이 한 해에 3명을 거쳐간 사례가 여럿 있었는데, 가장 최근의 사례는 1978년이다. 바오로 6세가 사망한 후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는데 겨우 33일 만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해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한 해에 2번이나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요한 바오로 1세 부고를 듣자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응? 어느 교황님이 돌아가셨다고?" 라고 반문했다고. 다행히 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상당히 장수하여 2005년까지 장기 재위했다. 그 후임인 베네딕토 16세 역시 오래 생존했으나, 교황이 된 지 8년 만에 물러나 천주교 역사상 600년 만에 생전 퇴위 사례를 기록하였으며 2022년 12월 31일까지 생존하여 금황보다 명예교황(Pope Emeritus)으로서 지낸 기간이 훨씬 긴 진귀한 사례를 남겼다.
[1]
연호는 즉위 다음 해에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즉 한 해에 세 황제가 있으면 중간 연호는 제정되었어도 사용한 적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입헌군주국 중 유일하게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에서도 천황제는 계속 유지하되 연호는 폐지하거나 공문서에서만 상징적으로만 쓰자는 의견도 많다. 1989년 1월 7일
쇼와 덴노가 죽자
쇼와 64년을
헤에세이 원년으로 바꾸려고 꽤나 고생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가 정부에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이례적으로 생전에 퇴위를 하고 새 연호
레이와를 한 달 전에 미리 발표한 이유도 국상 기간 엄숙주의로 인한 국가적 분위기의 침체와 갑작스러운 연호 교체가 초래한 부작용이 매우 컸던 것을 이 당시 신임 천황으로서 직접 지켜보고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2]
내전으로 인해 한 해에 여러 군주가 옹립되는 일이야 로마 제국 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꽤 일어나는 일인데, 가장 유명한 사례가
로마 제국이다.
[3]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고려 시대인
1083년 9월(음 7월)
12대 문종이 승하하면서 즉위한
13대 순종이 해를 넘기지 못 하고 12월(음 10월)에 사망하여
14대 선종이 즉위하였다.
원 간섭기에는 아버지를 폐위하고 아들이 즉위했다가
원나라의 압력으로 그 해를 넘기지 못 하고 다시 아버지가 복위한 사례도 있다. 엄밀히 말해 세 임금이 즉위한 건 아니지만, 두 번 바뀐 건 마찬가지이다.
[4]
가령
오호십육국시대의
서연은 여섯 황제의 해가 있었다. 2대 황제인
모용충이 죽고 3, 4, 5, 6대 황제를 지나 마지막 황제인
모용영이 즉위한 것이 모두 386년에 벌어졌다.
[5]
Drei(세) + Kaiser(황제) + Jahr(해)
[6]
당시에는 후두학의 선두주자로 불리던 내과의였다.
[7]
빌헬름 2세의 외사촌 동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