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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14:01

덕만공주(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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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D89E6E> 덕만공주
德曼公主
파일:덕만_프로필.jpg
[ 공주시절 펼치기 · 접기 ]
파일:덕만공주_프로필.jpg
본명 김덕만 (金德曼) / 김인명 (金人明)[1]
출생 602년 3월[2][3]
신라 서라벌
사망 647년
가족 증조부 진흥왕
조부모 동륜태자, 만호태후
아버지 진평왕, 어머니 마야부인,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
조카 김춘추
배우 이요원 | 남지현(아역)
카이다 유코(일본판 더빙) | 미무라 유우나(일본판 더빙 아역)
신라 27대 임금 선덕여왕. 진평왕의 둘째 딸.

미실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정세 속에,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여자 쌍둥이가 태어난다. 쌍둥이는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임금에게서 쌍둥이가 나오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를 것이다)'이라는 황실예언이 있을 정도로 대흉조였다. 아버지 진평왕은 여자 쌍둥이 중 둘째인 덕만을 빼돌리지만, 미실에 의해 각축이 벌어지며 죽을 위기에 놓이나 전설의 화랑 국선문노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난 덕만은 진평왕의 시녀인 소화를 어머니로 안 채,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 여각에서 자라난다. 이후, 덕만은 미실과의 힘겨운 싸움 속에서도 유신과의 의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적의 세력들을 하나씩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결국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1. 개요2. 작중 행적3. 능력
3.1. 통솔력과 친화력3.2. 총명함과 지력3.3. 생존력과 체력 그리고 저평가된 무예
4. 평가
4.1. 비운의 주인공?4.2. 비담의 난 발생에 관한 책임론?

[clearfix]

1. 개요

파일:28화_덕만.gif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2. 작중 행적

작중 진평왕의 차녀. 쌍둥이로 태어난 탓에, 태어나자마자 "왕에게서 쌍둥이 딸이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대가 끊길 것"이라는 골품제 붕괴예언[4]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신라 왕실의 극소수에게만 알려진 채 시녀 소화의 손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도피했다. 이때,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인명(人明)이었다. 아마 자매인 천명(天明)과 맞추어 작가들이 지어낸 이름인 듯.

자신이 신라 공주라는 사실을 모른 채 덕만이라는 이름으로 소화와 함께 타클라마칸에서 상단을 운영하며 평이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15년이나 떠돌며 덕만의 행보를 찾은 칠숙에 의해 친모로 알고 있던 소화가 자신의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직후 사구에 빠져 죽은 걸로 파악한 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문노를 찾으러[5] 머나먼 모국인 신라로 간다.

신라에 도착한 뒤, 쌍둥이 언니인 천명공주와 운명적으로 만나[6] 가야 유민촌에 잡혀가거나 미실 일당에게 쫓겨 다니는 등 귀국하자마자 고된 일을 당하다, 그 와중에 만나서 졸지에 코 꿰인 죽방, 고도와 함께 신분보호 차원에서 김유신이 있는 용화향도에 들어간다.

남장을 히고 지냈지만 여성이라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오합지졸인 용화향도 내에서도 만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화랑과 낭도를 포함해서 용모가 가장 뛰어나다는 소문에 석품을 비롯한 다른 화랑들에게 희롱을 당한다. 심하다는 느낌이 있으나 이는 용화향도를 낙하산으로 끌어들인 천명공주의 행위에 대한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미실파는 물론 드라마 내내 중립만 걸었던 알천도 이들을 싫어했다.[7][8]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박을 한 채 몸을 더듬으려 하는 등의 성희롱은 단순히 반발심으로 변호하기에는 말이 안 되는 나쁜 짓인 건 변함이 없다.

백제와의 전쟁에 참여해 온갖 개고생과 적군 및 아군이 죽어나가는 전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9][10] 포위된 상황에서 즉흥적인 원진 지휘를 펼쳐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김유신과 힘을 합쳐, 부상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지휘관 알천을 구슬려서 부상병을 재활용하여 승기를 타는 데 조력한다.

전쟁이 끝난 뒤 김서현을 암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결국 추국장으로 끌려가 허벅지를 몽둥이로 맞는 고문을 당하는데 이로 인해 덕만의 안색과 몸 상태는 만신창이가 되고 그녀의 맨발은 온통 생채기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11] 한편 이 과정에서 덕만은 평소 알고 지냈던 비구니 지운 스님이 천명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고, 김유신은 덕만의 출신 성분과 과거, 성별을 어느 정도 눈치채게 된다.

천명공주, 김유신과 의형제를 맺으며 '타도! 미실'을 외치며 자신이 미실에게 투항한 것처럼 계책을 꾸미다 바로 월식 계책 때 간파되어 미실에게 낚였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미실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고 곧 김유신에 의해서 극복하는 힘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천명공주가 친언니고 자신은 성골남진 예언에 의거해서 왕실에 해가 되는 출신 성분이 밝혀지자 바로 정줄을 놓아버리고 왕실파와 미실파의 추격 속에서 김유신에게 끌려가듯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 과정에서 비담을 만나는데, 전염병을 치료할 약재를 대가로 미실파에게 넘기게 되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이에 응한다. 이후 압송되면서 소엽도로 목을 찔러서 자살을 하려다가 보종이 손을 다치면서 저지하고 다시 시도를 하다가 석품에 의해 제압당한다. 다시 손이 밧줄에 묶인 후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재갈이 물리면서 서라벌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가 뒤쫓아온 비담과 비담에 의해 갇혀있던 김유신에 의해 구출된다. 탈출한 직후 김유신에게 고백을 받고 을제를 필두로 덕만을 죽이려던 왕실파와는 별개로 친동생을 구해서 멀리 탈출시키려는 천명공주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그 동안의 일로 인해 김유신과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마야부인이 만든 공주복[12]을 입으며 처음으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13] 그러나 떠나는 과정에서 천명공주가 사망하게 되자, 놓은 정줄을 되찾고 지구 끝까지 함께 가겠다던 김유신과 관계를 정리하고 왕이 되겠다고 선포하며 알천과 김유신이 쇼부친 복야회를 중심으로, 미실파의 계책을 역이용하고, 문제의 박혁거세 예언을 이용한 일식 계책을 성공리에 펼쳐 미실을 관광 보냄과 동시에 민중을 선동, 결국 공주로 인정받아 궁에 입성한다.
입궁 후 첨성대의 건설[14]과 매점매석, 철제 농기구의 제작, 반란군의 처리, 화백회의 이의제기 등의 일을 강행하며 위정자로서의 능력을 입증받는다. 이후 미실과 이런저런 충돌 및 가르침[15] 성장해 여성으로서 왕이 될 것이란 선언을 하였다. 이를 통해 조카인 김춘추도 왕이 될 것이란 말과 함께 골품제를 비난했고, 이 속에서 자극받은 미실이 왕이 되겠다고 각성하게 만드는데 한 몫 했다.

김유신이 덕만이 보는 앞에서 미실에게 '새주의 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드립을 쳐 쇼크를 먹고, 미실이 덕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있나, 내가 좀 젊었으면 직접 품었을 것을' 연타를 날리자 라이벌 미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김유신이 하종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도피상황에서 '왕이 될 거니까 니랑 연애 못함'이라며 차버렸던 김유신에 대한 미련이 살아나 옆에 있던 비담을 상대로 "좋아한다, 연모한다 말도 못했는데..."라며 울었다.

언니인 천명공주의 아들인 김춘추의 행적들을 용서하고, 성장을 인정한 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여 결국 김춘추를 아군으로 만든다.

이후, 미실 쿠데타를 벌여 신변을 위협받는 속에 김유신의 희생 속에 가까스로 김춘추, 비담과 함께 왕궁을 빠져나가고 왕위를 놓고 마지막 정면승부를 다짐한다. 각 중소귀족 및 대신등에게 공주의 이름으로 미실을 체포하라는 편지를 쏘아 보내고 미실과 함께 반란을 획책한 필탄의 아버지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 등 미실의 입지를 자꾸자꾸 흐려 놓았다.

결국 칠숙의 복야회 건물 뒤치기 하는 동안 교란전술을 벌인 친엄마나 다름없는 소화가 결국 죽음을 맞자 '더 이상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궁에 들어가서 또 다시 미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16]

이후 미실이 자신을 공개추국을 하도록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하여서 철저한 준비[17]를 통하여 미실에게 역습을 가하는데 성공, 진평왕도 구출하면서 그야말로 화려하게 미실을 관광보낸다. 직후 분노한 미실이 직접 활을 들고 겨냥하자 여유있게 웃으면서 팔을 벌리고 "쏴, 당신이 졌어... 미실." 이라고 속으로 말한다. 결국 미실도 그래. 덕만... 네가 이겼다."라고 속으로 답하면서 화살을 날리는데... 덕만에겐 궁극의 무적 아이템 소엽도가 있어서 살아남는다.[18]'신라'사방의 신라의 국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진흥왕의 유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후에 미실의 화살로부터 덕만을 구했다. 물론 이 소엽도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덕만을 구해내는 진흥왕의 가호가 있는 상징물이다.][19]

미실이 대야성으로 도망가서 내전을 준비할 찰나에 입장이 바뀌어서 미실을 빠르게 처리하고 황실을 장악하려 하는데, 애당초 왕실파가 처음으로 내정을 하는데다 미실의 공백이 너무나 크고 미실의 후폭풍이 잔재한 상황에 할 말을 잃으면서도 이겨내려고 한다. 허나 비담에게 소화가 남긴 유품이기도 한 빨간 서찰을 가지고 오라 시켰는데, 거짓말까지 하는데다 미실에게 가는 등의 의심쩍은 행동을 하는 비담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비담의 제안을 활용해서 실행하지 않는 대신 루머로 활용해서 대야성의 사기를 떨어뜨려 탈영병을 속출하게 만들고, 어쨌든 미실의 완전 숙청이 손실만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에 미실에게 연합을 제의하고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얘기했다가 미실에게 "나와 진흥대제가 피땀으로 만든 신라를 네가 어떻게 아냐"는 큰 소리만 듣고 결렬된다. 문제는 이 와중에도 미실에게 왕을 잠시 보았다고 드립치는 덕만이었다.

경계성주 중 미실의 편이 지원군을 이끌고 찾아오는 가운데서도 백제군의 동향부터 먼저 파악하라고 했고 미실의 모습을 보며 왠지 회군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국 회군에 대야성 백기 선언에 이래저래 유리한 고지에서 결국 승리했고, 끝까지 이래 저래 괴롭혔던 미실이 자살한 모습을 보며 살짝 눈물을 흘리고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춰준다.
미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미실, 미실의 시대. 안녕히.

이 과정에서 비담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비담을 책망하기보단 안타까워했고, 오히려 비담으로 하여금 미실이 최후에 마음을 돌렸다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미실의 난을 끝까지 발악하며 들이댔던 칠숙 석품의 난으로 공표하도록 하는 역사왜곡드립까지 이용해 남은 미실파 사람들을 척결하지 않고 그들을 이용하기로 한다.[20][21][22]
51회에서 드디어 여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을 좋아하고 믿고 때로는 의지했던 자신을 버려야 하고 혼자서 유유자적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자결한 미실보다 비극적이고 고독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대관식 전, 마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서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덕만아, 이제 곁에서 널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이젠 너 홀로 신국을,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아무도 네 대신 싸워줄 사람도, 아파해줄 사람도 없다.
모두를 믿어서도 모두를 믿지 않아서도 아니된다. 할 수 있겠느냐? 고독을 두려워않고 맞설 수가 있겠어?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면 측근이라도 죽여 버리는 미실과는 달리 적을 포함한 대중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취합해 나가며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그리고 왕이 되면서, 왠지 상당히 예전과 다른 듯한 느낌이 강하다.' 비담의 사령부를 엄청나게 큰 세력으로 만들고 비담과 함께 위로부터의 개혁을 펼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오히려 예전 동료들이 견제당하는 상황.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비담과 김유신의 세력을 견제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명령과는 달리 해산하지 않고 점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복야회의 조사를 비담에게 명했고, 이후 따지러 온 유신이 "가야의 백성"이라 운운한 것에 바로 분노하여 오로지 자신과 신라의 백성뿐이라고 말한다.[23][24]

그 후, 월야 설지가 사량부 복야회 일원에 의해 도망가게 되자, 김유신을 연행하라고 하는데, 자기 안위나 선덕여왕은 생각 안 하고 가야 유민들 걱정이나 해 대는 김유신을 보며 상당히 깝깝해 한다. 김유신이 비담의 금강계에 따라 복야회를 쫓아가서 뼈도 박도 못한 상황에서 김춘추가 말한 김유신의 진심밖에 답이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복야회와 김유신을 적으로 돌리려다 때 마침 자진출두한 김유신을 보며 '속으로 고마워' 라고 한다.

결국 돌아오기만 하고 복야회 관련 정보들은 전혀 불지 않고 가야유민 보호 크리를 날리는 김유신을 우산국으로 보낸다고 하고, 그에 항의하는 만명부인과 김유신 부하에게 "내가 김유신을 배신했냐. 저 쪽은 아무것도 양보 안 하잖아"로 단호한 뜻을 밝힌다. 그러면서 여전히 대세를 얘기하는 김춘추에게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견제가 필요하다."며 복야회 처단과 김유신 처리에 단호한 뜻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면서 김유신에겐 백제 첩자 활동을 하라고 미션을 내린다.

그 직후 비담에게 손 치우라고 차갑게 대하더니 비담이 올린 입맛대로 인사개편안을 비담의 세력을 파악하는 동태로 낚은 다음 사량부를 왕실직속에서 김춘추 휘하로 강등시켜서 비담이 완전 새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항의하러 온 비담에겐 나도 심장이 안 설레는 줄 알아?로 감정을 말하다가 이에 흥분해 잠시 비담이 포옹하자 나는 여왕이지 이제 여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가질 수 없다고 삼한일통 전에 내 삶은 없다고 발언함으로써 비담은 제대로 상처받는다.

결국 계백장군에게 대야성이 함락당했다. 김유신을 첩자로 썼다 들통나고 정보 추적도 제대로 못 하고 정보가 거짓이라며 김유신을 죽이란 조치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대야성 조치도 김서현 군대를 보낸 것이 전부다.

결국 설원공은 백제군에 크게 패하여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고, 백제군이 서라벌 코앞까지 진군함에 따라 김유신을 재기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는 동안, 복야회에 목숨을 내걸고 담판을 지으려 하고, 늦게까지 우왕좌왕하자 분노해서 죽방의 정보로 하여금 알게 된 복야회 은거지로 처들어가 월야가 보는 앞에서 가야인 명부를 태우면서 "이래도 못 믿겠냐?"며 김춘추를 두고 간다면서 정한 시기까지 합의 못 보면 모두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마침내 김춘추 휘하로 복야회 멤버들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한다.

그 후 비담에게 여인의 모습을 보이면서[25] 비담을 받아들인다. 다음 날, 바로 비담을 상대등의 자리에 앉히고, 이에 감격한 비담이 "폐하가 떠나시면 저도 정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라는 밀약서를 바치자 비담에 대한 신뢰를 더 키우게 된다. 밀약서를 보고도 김춘추가 비담의 세력은 비담 개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염려하는 "이 밀약서를 지키지 않으면 비담을 척살하라."고 한다. 그러나 곧이어 "이렇게라도 비담을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걸 보면 비담을 이용하고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춘추를 안심시키려는 방편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소 신료들 앞에서 비담과 국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또, 국혼 직후 둘만의 달달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비담이 밀약서를 바친 걸 알게 된 비담 일파가 당 사신과 비담이 서로 내통하고 여왕을 몰아내려 한다는 거짓 밀서를 만들어 비담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려한다.

자신의 진심통으로 인해 시한부임을 직감하고 알천에게 "짐이 벌인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공뿐이니,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공께서 판단하여 알릴 자들에게 알리세요."라고 말한다.

김춘추가 비담을 견제하는 와중에도 비담을 믿으려 하나, 비담이 너무나 커진 자기 휘하의 귀족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급기야 그들에 의해 김춘추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결국 비담에게 반지를 주며 후에 서신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비담을 피신시키려 한다. 그러나 비담은 그 직후 염종에게 속아 여왕의 진심을 오해, 난의 주동자가 되고, 이 모든 것이 오해란 것을 알아챈 후 비담에게 섭섭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26] 그리고 바로 지병이 도져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은퇴해서 비담과 말년을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그녀의 마지막 바람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이 때, 별이 월성으로 떨어져서 덕만의 운명에 대한 암시를 줌과 동시에 사기가 저하되기도 했으나, 바로 김유신이 연을 날림으로써 신호와 함께 사기증진까지 하게 된다.

비담의 난이 제압되고 비담이 자기 눈앞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난이 제압됐으니 이젠 삼한일통으로 나가자"고 선언하지만, 곧바로 악화된 병세로 인해 쓰러진다. 이때 죽은 비담에 시선을 맞춘다.

사흘 가량을 누워 있다가[27] 깨어 나는데, 이때 김유신에게 비담의 유언[28]을 듣고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크게 상심한다.
"내가 죽더라도 삼한일통을 이으실 수 있겠다."와 같은 말을 김유신에게 남기고, 어렸을 때 꿈속에서 나를 안고 울었던 여인에 대해 알았다고 하며, "지금이라도 예전 그 때처럼 도망갈까요?"란 농담을 남기고 그대로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난다.[29][30]
덕만아, 지금부터 많이 힘들 거야. 그리고 많이 아플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거고, 너무너무 외로울 거야. 사막보다 훨씬 메마르고 삭막할 거야. 모든 걸 다 가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할 거야. 그래도 견뎌야 해, 알았지? 견뎌.
그리고 덕만의 어릴 적 꿈이 나오는데, 그 꿈 속에서 어린 덕만을 껴안은 인물은 바로 장성한 현재의 덕만. 그녀가 어린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뎌."라고 말하며, 이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3. 능력

3.1. 통솔력과 친화력

통솔력, 지력, 담대함, 총명함, 친화력이 비범하기 짝이 없다. 이게 과연 이 드라마 무능함의 끝판왕인 진평왕의 자식이 맞을까 할 정도로.[31] 덕만의 능력치는 대체적으로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물려받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먼치킨에 가까운 수준이다.

통솔력과 사람을 끄는 능력에 관련해서는 기질 자체가 타고 났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친화력을 가져 한때 그 칠숙과도 편하게 지냈으며, 초반에 덕만을 싫어하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가히 그 방면 끝판왕인 미실과 맞먹을 정도. 초반에 자기와 불편하게 시작했던 모든 사람을 결국 다 자기의 편으로 만들었다.[32][33]

백제와의 전투에서 그렇게 죽이기 못해 안달이었던 비천지도의 낭도들까지 덕만을 지지하고, 심지어 위기에 몰렸을 때 원진을 외치며 사실상 지휘관 역할을 했을 때는 진짜 지휘관인 알천마저 따를 정도. 그 이후부터는 그 알천마저 덕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후에 자신을 잡으려는 왕실파와 미실파로부터 도망칠 때는 항상 자기 멋대로 살던 바람같은 비담에게 측은지심도 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34] 덕만의 또한 자신이 복귀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닫았던 월천대사를 설득하는데 덕만의 이 능력이 큰 몫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의 통솔력, 지력, 담대함, 총명함, 친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덕만의 가장 큰 적인 미실마저 덕만에게 흥미가 끌려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하고 자기가 키웠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게 된다. 결국 미실이 죽을 때까지 덕만과는 서로 존중하는 애증관계가 될 정도. 미담모자도 홀리는 마성의 여인

덕만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덕만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3.2. 총명함과 지력

총명함과 관련해서도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자질을 보여왔는데, 타클라마칸에서 주민들이 살지 안 살지를 패를 선택할 결정권을 덕만에게 주자 바둑돌 하나를 먹어버려서 무력화시키는 장면도 있고, 죽어가는 신라 병사에게 받은 퇴각로의 위치를 알천에게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그걸 또 먹어버려서 알천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퇴각로를 먹어버리고 제대로 퇴각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덕만이 또 그걸 기억했다는 소리이니 기억력도 남다르다.

이후에 미실을 대적하는데 덕만의 총명함과 지력이 큰 도움이 되는데, 일식을 사용해서 공주로 돌아오는 데는 사실상 덕만이 모든 설계를 하고 계략을 짬으로 가능해졌다. 자연현상을 이용해서 미실파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너무 올곧아 거짓말을 못하는 유신을 이용해 미실을 속였고, 심지어 비담이 미실에게 간파당할 것을 통찰하고 비담까지 속여가며 미실을 속여서 한방 먹이는 모든 과정이 다 덕만에게서 나왔다.

이후에 미실의 반란 전까지 수 차례 몇십년 간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미실을 여러 방향으로 먹이며 결국 미실이 모반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었다.

흥미롭게도 미실은 천명의 계략을 다 받아냈지만 덕만에게 유일하게 고전했는데, 이는 덕만의 지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덕만의 성장과정이 그간 미실이 상대하던 적들과 너무 달라서 미실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한 몫했다. 아무리 미실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 미실은 신라 내에서만 큰 사람이고, 그렇기에 그녀의 통찰력과 지략은 신라인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덕만은 신라 밖에서 구김살없이 사실상 평민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정관념 없이 생각이 자유분방하며 그 생각하는 길이 한 방향으로 얽매이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신라 내의 적을 상대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던 미실에게도 덕만은 만나보지 못했던 적이었던 것이다.[35]

이후 왕이 되어서도 덕만은 비담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척하면서도 비담을 꿰뚫고 있었고, 그를 이용하는 세력 역시 전부 꿰뚫고 그들을 제어하기도 했다. 또, 유신과 유신의 세력인 복야회도 꿰뚫고 충성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랬던 그녀 역시 결국 연모 때문에 후반에 일이 잘 안 됐지만 전체적으로 복야회를 끝장내거나 세력들을 견제하는 등의 일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것은 그녀의 자질을 보여주는 셈이 된다.

게다가 덕만은 제대로 된 왕도의 길을 걸어본 적도 없는데[36] 공주-왕의 길을 걸어가면서 정치력을 뽐낸다는 것은 그녀의 뛰어난 두뇌와 적응력을 보여주는 예시일지도. 상천관 서리가 덕만의 왕의로서의 타고난 자질을 알아봤으니 말 다했다.

3.3. 생존력과 체력 그리고 저평가된 무예

드라마의 주인공이니 그녀가 죽으면 안 되긴 하지만 그녀의 생애를 보면 생존능력조차 끝판왕이라 볼 만하다.

칠숙을 피해 도망가다가 만난 모래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아 무사히 신라로 돌아왔고[37] 신라에 돌아와서도 만노군에서의 하종의 부대의 습격에도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천명과 도망치다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끝내 살아남았다.[38]

그리고 유신군에 편입되어 전쟁에 참여했는데 용화향도가 저질체력이라고 말한 게 무색하게 용화향도의 에이스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잘 싸웠다. 훈련 때 제대로 연습했는지 활과 칼도 어느 정도 쓸 정도로 꽤나 쓸만한 병사의 모습을 보여준다.[39] 덕만을 찾으러 온 유신이 급습을 당해 죽을 뻔했는데 시체 상태에서 일어나 그 병사를 활로 쏴 죽이기도 했다.[40] 여러 방면으로 덕만의 전투능력은 여자라는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용화향도+비천지도 내에서는 제 몫은 챙길 수준은 되었다.

후에 미실과 설원에게 김서현을 암살한 배후라는 지목을 받으며 고문을 당할 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41][42]

덕만의 무력의 최고점(?)은 몰래 비천지도에 잠입해서 을제의 목적을 알아내려고 하다가 알천에게 발각되었을 때인데, 도망갈 생각도 안 하고 무려 10화랑 중 한 명인 알천에게 덤비는 담대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한두 합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10-15합 정도를 받아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알천이 전쟁에서 보여준 능력을 생각해 보면 꽤나 선방한 것.[43]

이후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도중에 폭포에 점프하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하는 과정에서도 모두 살아남았고, 미실이 쿠테타를 일으키자 도망가는 과정에서 붙잡혔을 때도 어느 정도 각잡힌 병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춘추가 포로로 잡히기 전까지는 자기 앞가림은 했고, 비담이 등장하자 비담의 흑명단들과 함께 탈출하는데 병사들을 제압하는 낭도 시절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젊은 남자인 춘추가 무력에 약하다.

결론적으로는 여성이라는 신체적인 한계가 존재했음에도 분명히 자기 최선을 다해서 자기 몫을 할 정도의 전투력으로 끌어올린 대단한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덕만이 사실 그 정도 전투력도 없었으면 낭도 생활을 아예 접었거나 첫번째 전쟁인 속함성 탈환전에서 전사했을 확률이 거의 99%다.

그 외에도 낭도 시절, 덕만을 석품, 덕충, 박의가 욕보이려 습격했다가 석품이 역으로 덕만(물론 덕만도 같이 두들겨 맞았지만)에게 두들겨 맞은 전적이 있다(...). 무려 낭도 주제에 10화랑 중 하나를 두들겨 팬 셈.

4. 평가

4.1. 비운의 주인공?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작중내내, 종영 이후에도 페이크 주인공으로 캐릭터와 배우 둘 다 여러 가지 마음 고생을 한다. 당시 아역배우 남지현은 라이징 아역으로 불리던 연기력으로 드라마 시청률을 끌어올렸으나, 성인 역으로 바뀐 후 스토리때문에 연기력 논란이 조금 불거졌다. 고현정과 1:1로 마주치는 씬에서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또 회차가 진행될수록 고현정 푸쉬 때문에 더 그렇게 평가받았지만 시청률이 가장 높을 때 그런 얘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연기력이 한참 선배인 고현정에 비해 부족하기도 했지만 캐릭터 특성상 시청률을 견인에 어려움이 있었고, 제작진도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미실 쪽 스토리에 좀더 비중을 두고 극을 전개해 나갔다. 일단 초반부터 너무 강력한 미실이라는 거대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중반에 여러가지 기지를 보이며 미실에게 역공을 강하고 미실과의 정치적 논쟁을 벌일 때 매력있게 연기를 잘 했지만 미실이 죽을 시점부터는 미실을 너무 크게 부각시키는 바람에 (덕만이 스스로 미실을 계속 띄워주는 식으로) 결국 50회 종영때는 페이크 주인공으로 등극. 이후에는 비담이 멜로 캐릭터로 더 멋있게 그려지고 덕만은 미실의 재림을 겪으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44]

다만 연기력만을 논하기에는 미실과 덕만의 캐릭터가 특히나 미실의 난 이후부터는 이전과 다르게 변하면서 급작스럽게 변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45]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도, 부족한 배우들도 각본과 연출에 의해 연기력이 천지차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미실의 난 이전에는 미실이 덕만에게 거듭거듭 당하기도 하고, 덕만 역시 총명함이 넘쳤고 매력이 있었으나, 미실의 난이 일어난 이후 소화가 죽기전까지는 주변에만 의존하는 캐릭터로 전락하다가 소화가 죽고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 그려진 반면에 미실은 분명히 역적이자 간신임에도 불구하고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그려냈으며 미실의 패배 역시 덕만과의 지략 싸움에서 패했다기 보다는 미실이 신라를 사랑해서 전쟁을 포기 한것처럼 충신 코스프레로 그려졌다. 즉, 심각하게 미화시킨 것이다. 덕만의 지략과 담대함으로 미실을 압박하고 승리를 거두는 장면에서 이런 의도적인 미실 미화덕분에 덕만의 재능을 빛이 바랬고 미실의 위대함만 높아졌다.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연기력이 한참 후배인 덕만을 연기한 이요원의 연기보다 훨씬 앞서는건 부정할수 없지만, 각본 자체가 미실을 의도적으로 띄워주는 방향으로 쓰여졌다는 것 역시 의심해볼 수 밖에 없다.[46]

이것과는 별개로 출생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고달펐던 인물. 신라의 공주로 태어났으나 정적에 의해 한참 고국에서 떨어진 중국 무역로의 사막지역으로 도망가면서 살게 되었다. 거기서 그래도 그냥 평범하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가 싶었더니 갑작스레 찾아온 암살자 칠숙때문에 유모를 잃고, 신라에 돌아왔더니 이상한 가야유민들과 엮이고 낭도된 이후 난데없이 신라 왕정과 엮이며 전쟁터까지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왔더니 자신이 공주라는 걸 알게되고, 그 과정에서 절친이자 친언니였던 천명공주마저 죽고 말았다. 이를 복수하기로 결심해 공주가 되고자 하니 그 과정에서 첫사랑이었던 남자로서의 유신을 잃었다.

그럼에도 미실에게 대항하며 서서히 그녀를 조여가지만 미실은 반란을 일으키고, 그 반란 중에 다시 찾았던 유모를 영원히 잃는다.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나마 혈육이었던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어머니는 불가로 들어가며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되바라진 조카 춘추 녀석 가르치랴, 비담 세력 견제하랴, 유신을 완전히 춘추의 사람으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중히 여겼던 모두가 다 떠나고 비담과 서로 마음을 확인하며 마음을 다 비우고 온전히 사랑하려는 결심도 정적들이 방해해서, 결국 비담이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키는 걸 봐야했고, 급기야 사랑하는 비담을 자신의 눈앞에서 단죄하고 죽이는 등, 문자 그대로 온갖 꿈이 산산히 부서지며 인생 내내 고역만 겪었다.

정말 덕만의 말처럼 그냥 사막에서 즐겁게 살았으면 온갖 마음 고생도 안 했을 것이지만, 신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인생이 완전히 꼬여버린 역대 사극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서 자신이 삼한일통의 초석을 닦은 덕에 훗날 신라가 삼국통일에 성공했으니 해피엔딩을 맞은 거라지만 덕만 개인과 여자로서의 인생은 잘 된 거 하나 없고, 살아생전 내내 본인의 행복은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잃어야만 했던 왕. 왕이라는 자리의 고충을 아주 잘 알려주는 캐릭터이다.

제작진에게도 사랑을 그닥 받지 못했는데, 미실이 죽은 마지막 50회에는 엔딩장면으로 미실의 인생을 담은 미니 드라마가 나온 반면에 덕만이 죽은 마지막 회의 엔딩장면에는 후속작인 파스타의 예고편이 나왔다.

게다가 같은 세계관의 주인공으로 나온 다른 왕들과 비교해도 굉장히 암울하다. 육룡이 나르샤 태종 이방원 뿌리깊은 나무 세종 이도도 결국 자신의 업보이든 타인의 의도이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잃었지만, 이방원은 이도가 자신을 안 닮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정도전 분이를 닮은 것에 안심하며 왕위를 물려준 뒤 눈을 감을 수 있었고, 이도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백성들과의 소통을 기어코 이뤄내 이방원이 하고 싶었고 정도전이 이상으로 삼았던 민본을 이루게 되었다. 허나 덕만의 경우 본인의 후계자인 진덕여왕과 어떤 관계인지 나오기는커녕 진덕여왕 자체가 드라마에서 안나온 것도 모자라,[47] 신라의 삼국통일마저 본인의 대에 이뤄지지 못해 대업의 완성은 보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담당 배우 이요원은 이런 덕만에게 애정이 있었는지 드라마가 끝난 뒤 열린 쫑파티에 의리로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4.2. 비담의 난 발생에 관한 책임론?

극 종반부인 비담의 난이 은근 덕만의 실책으로 일어난 듯한 묘사가 진하게 풍긴다. 일단 칠숙의 난 이후 미실파 거물 5인방을 살려줘서 이들이 비담을 이용하여 다시 난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줬던 게 첫 번째다. 사실 이 묘사는 덕만의 책임보다는 덕만을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던 제작진의 잘못이다. 아무리 어진 군주라고 해도 자신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들을 살려두는 경우는 없다. 간혹 여러 상황을 고려해 주모자들만 처벌하고 가족들을 노비화시켜서 목숨을 구해주는 경우는 있지만,[48] 주모자들을 살려주고 거기에 힘을 키우라고 벼슬까지 쥐어준 건 군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자살행위다.[49] 이 지적은 미실 항목에도 잘 나온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중도파 귀족들 몇 명을 비담파로 전향시키게 만들었던 게 두 번째. 이 두 번째의 경우 개연성 부족으로 욕을 많이 먹었지만, 아주 자세히 잘 들여다 보면 가까스로 그들이 왜 비담의 세력이 되었고 덕만에게 반기를 들었는지가 어렴풋이 나온다.[50] 비담의 세력으로 들어간 것은 비담과 함께 덕만의 양팔로써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던 유신이 복야회 건으로 인해 나가리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에 명분으로나, 당시 상황을 고려한 계산으로나 비담파가 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51] 여기서 덕만에 반하는 입장이 된 건 비담이 덕만에게 올린 밀서 때문으로, 바로 자신들의 사병을 폐지하겠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덕만의 폐위, 비담의 즉위를 얘기한 건 이 사건이 발단이다. 주진의 말을 빌리자면 "나와 수을부는 덕만의 즉위에 도움을 줬는데, 이제는 자기들이 사병을 다 뺏기게 생겼다"는 것. 어떻게 보면 토사구팽으로 비춰질 여지도 충분하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비담의 난이 발발하게 된 김춘추 암살 미수 사건 조사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이미 범인이 누구들인지 뻔히 다 아는 마당에 강경하게 처벌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를 하는 건 대놓고 반란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염종이 귀족들을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켰던 것도 염종의 말이 다 사실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진짜 처벌을 하고 싶었으면 일단 넘기는 척 하면서 몰래 조사해 기습적으로 체포해 처형시키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고 그래도 정보의 신 염종이 반란군 주축으로 있는지라 쉽지 않은 상황이였다.특히 비담의 난 발발 당시의 모습에도 허술한 점이 많은데, 모든 반란은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데 염종의 정보력에 의해 움직임이 전부 읽혀서 체포에 실패했다. 초기에 진압하고 싶었으면 일단 정보의 왕인 염종부터 잡아넣고 나머지를 체포하는게 옳았다.

단, 여기에서 사실 또 하나의 모순이 발생하는데 애초에 주진은 자신의 사병을 삼한일통에 쓰겠다는 덕만의 생각을 알고 있었고,[52] 그것에 동의까지 해 놓고 어떻게든 구색을 맞추려 갑작스레 전환하는 것 역시 개연성 부족이다.[53] 다만, 비담도 밀서를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54] 결론은 비현실적인 군주를 그리려고 설정 무리수를 한 제작진의 잘못이다.

사실 애초에 비담이 남주로 정해진 이상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명백한 반역자를 여왕의 정인으로 만들어놨으니 어떻게든 비담을 나쁜 놈으로 만들기는 해야하는데 또 로맨스의 남주이기 때문에 성격파탄자나 갑자기 미친놈으로 만들기가 어려웠기에 주변을 타락시켜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덕만의 인용술이나 실책도 어느정도 포함되어야 했기에 캐릭터가 망가져 버린것이다. 덕만 뿐만 아니라 비담 역시 사실상 미실 사망 이후로 캐릭터가 이상해져 버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덕만 역시 당연한 거다.


[1] 부모인 진평왕 마야부인에게서 받은 이름이다. [2] 임술년 신묘월 정축일 해시 [3] 실제 덕만공주와 천명공주의 출생년도로는 너무 늦다. 천명공주의 아들인 김춘추가 603년생이다. 579년에 즉위하는 진평왕이 즉위할 때랑 덕만, 천명을 낳았을 때 둘 다 작중 청년의 모습임을 감안하면 더. 특히 비담이랑은 부녀간 수준으로 나이차이가 나는 것이다. [4] 드라마상의 내용으로 보아 대가 끊겼을 뿐 아예 태어나진 않은 건 아니다. 덕만 출생 이후에 세 명의 남동생이 더 태어났으나 모두 단명했다. [5] 이 당시엔 문노를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한다. [6] 물론 서로 평범한 비구니, 그냥 소년인 줄 알았지만. [7] 실제로 이들은 용화향도가 전쟁에서 당당히 살아오자 그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거짓말처럼 대놓고 괴롭히는 행위는 중단한다. [8] 같은 화랑이라도 지방 화랑과 서라벌 화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듯하다. 서라벌 화랑이라면 풍류황권에도 이름을 높이고 화랑을 상징하는 깃발도 화랑 연무장에 꽂히는 등 확실히 대우가 다르다. 그런데 천명공주가 그냥 자기 세력이라고 그런 대단한 자리에 뭣도 아닌 촌놈들을 박아놨으니 빡칠 만한 것. 소위 낙하산 인사였던 것이다. 특히나 알천처럼 배경도 없이 순수하게 실력으로 올라온 화랑이라면 더더욱 빡칠 만하다. [9] 미실이 예전 원화 때 전쟁에서 성장했던 것처럼 덕만도 전쟁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전쟁 속에서 김유신과 덕만을 궁지로 몰았던 미실도 언급한 바 있다. [10] 여자라는 신체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 무색하게 전쟁에서는 용화향도 내에서도 잘만 싸웠다. 도망만 다니던 죽방-고도, 겁만 먹던 시열보다는 확실히 잘 싸웠고 덕만이 벤 병사의 수도 꽤나 많고 중간급 장수도 화살로 저격했으며 시열을 구해주기도 했다. [11] 참고로 덕만이 맨발인 상태에서 고문을 당한 건 혹여나 모를 도주 방지를 위해서이다. [12] 예전부터 혹 나머지 쌍둥이 딸이 돌아올까 만들어 두었던 것. [13] 이때 마음 속으로 유신과 도망친 후 유신을 천명에게 돌려주려 했다. [14] 첨성대 개공고사에 미실쪽 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용춘 김서현마저 불참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15] 매점매석처럼 아예 미실을 찾아가서 질문하는 것도 있다. [16] 미실은 빠른 시일 내에 덕만을 죽여서 잡아와야 한다고 했다. [17] 자신이 궁에 들어가서 미실의 계획을 틀어놓고 더 무리수를 강행하도록 미실을 낚은 다음, 남은 춘추, 비담, 유신은 그간 뒷작업했던 중소 귀족, 화랑들을 자신 편으로 돌리게 하는 전략. [18] 작중 저 소엽도는 못하는 게 없는 궁극 아이템이다. 진흥왕이 호랑이에게 물렸을 때 구출해 내고, 바다에 빠진 마야부인을 구출했고, 후에 덕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소화를 구하느라 끌려가는 줄을 끊어서 덕만을 구했고, 나중에 덕만이 설원에게 끌려갔다 또 저걸로 살아남았다.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기 위히 치른 비재의 두 번째 문제인 "덕업 [19] 덕만이 소엽도를 꺼내자 미실과 마야는 바로 알아봤는데 미실은 진흥왕이 저걸로 목숨을 건진 일화를 알고 있었고, 마야는 본인 역시 저 소엽도로 살아남았기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마야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그 소엽도가 자신의 딸 역시 구하게 된 진흥왕의 가호를 다시 느꼈을듯. [20] 여기서 반민특위 해체 사건을 떠올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 당시 제기된 논리가 이들을 다 숙청하면 나라를 운영할 인재가 없어진다는 논리였기 때문. 단, 미실파의 경우 제대로 재산을 몰수하고 다시 반역할 기반을 흐트러트렸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21] 거의 대부분이 이 처사에 대해 반대했지만 덕만이 ''나보다 더 미실에게 원한이 많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일갈하자 모두들 데꿀멍했다. 사실 부모님이 죄다 미실 때문에 비명횡사한 춘추도 미실의 욕심으로 인해, 아예 태어나자마자 인생 자체가 꼬인 덕만에겐 할 말이 없었을 듯. 하지만 나중엔 미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면서 그녀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렸으니, 어찌 보면 역적으로 남기는 것보다 더 잔인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이로써 마야부인의 "네년의 이름은 역사에 단 한 글자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는 저주가 드라마상에서 실현되었다. [22] 사실 이건 실책에 가깝다. 한국 사극에선 흔히 주인공(리더)의 화합, 포용하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도 용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렇게 하면 군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왕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마지막에 미실 잔류 세력들과 원래 덕만의 편에 섰던 일부 중립 귀족들이 비담을 추동해 난을 일으켰으니.. 물론 다 실패한 것은 아니고 설원 등 미실파 일부와 대부분의 중립 귀족같은 경우는 신라의 충신으로써 잘 활용했고, 난을 진압할 때 도움이 됐다. [23]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긴말 필요없이 가야와 신라를 각각 조선과 일본에 대입해 보자. 근래에 피지배민의 역사가 있는 한국인 시청자들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 [24] 단, 신라의 국왕인 선덕여왕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발언이기도 하며 덕만의 입장에서는 가야계를 중용하였고 가야인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국령을 내리면서 가야인을 모두 안으려고 했고, 실제 공주 시절부터 유신을 통해 가야인들을 보호해 왔는데 끝까지 복야회라는 가야를 되살린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위의 조선과 일본을 언급했긴 했지만 고대사에 여러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민족을 그냥 두고 보는 왕은 당연히 없었다. [25] 비담에게 상처주는 말을 할 때부터 이 장면까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속사정에 의하면 공주 시절 비담이 문노의 죽음 이후 한동안 안 보일 때나 비담이 손을 잡아주며 '그래야 설레요' 라고 말할 때, 신종플루와 배우들의 낙마로 인해 편집됐고, 즉위 후 젊은 여왕과 사량부령 시절, 그 이후도 덕만의 여인으로서의 감정선이 편집됐다. 그것을 아는 팬들은 감독을 박볼트라고 칭하고 무척 속상해했다는 후문이.. [26] 왜 끝까지 자신처럼 믿어 주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이렇게까지 될 정도로 어두운 일만 수행시켰고, 자신도 결국 비담을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 [27] 과거에 비담이 "소인의 목숨은 이 신국의 폐하보다 사흘이 모자란 목숨이옵니다."라고 한걸 생각해보면... [28] "덕만아, 나의 덕만아." [29] 이 때 힘없이 떨구어진 손에 비담과 나누었던 반지를 계속 차고 있었다. 비담에 대한 덕만의 연모를 알 수 있는 장치인 셈. [30] 미실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있다 손을 툭 떨구며 죽은 탓에, 이 장면을 두고 '신라 상류층 여자들은 앉아서 죽는 게 유행'이라는 말도 나왔다. [31] 마야부인도 딱히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32] 죽방, 고도, 천명공주, 김유신, 알천 그리고 수많은 신라의 사람들. [33] 대표적으로 초반에 덕만을 멸시하던 알천은 덕만의 최측근이 되었으며 그 이상으로 심하게 괴롭히던 박의와 덕충은 마지막회에서는 덕만을 지키기 위해 비담과 전력전을 하는 충신이 되었다. [34] 미실파에 약재를 받고 덕만을 팔아 넘길 때 고맙다는 덕만의 말에 끌렸고, 천명이 죽을 때 서럽게 울던 덕만에 생전 처음으로 측은지심이 생겼다. 이후 미실을 속이고 화형당할 뻔한 일식 계책 때 자기까지 속인 덕만의 지력과 총명함에 놀라 반해버렸다. 즉, 그 자신만만하고 제멋대로인 비담이 문노에게 공주가 그 아이라서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답했으니 말 다했다. [35] 대놓고 미실이 진평왕과 천명공주와는 다르며 덕만의 수에 당황했다라고 자신의 세력에게 고백했다. [36] 보통 후계자는 아주 어려서부터 왕도의 길을 교육받는데, 덕만은 사실상 20여년 이상을 제대로 궁에서 살아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공주가 된 것이다. 언니인 천명공주 수하에서 일하면서 지켜본 것이 전부. [37] 칠숙과 같이 모래폭풍을 맞았는데 칠숙보다 먼저 그곳에서 벗어났다. [38] 물론 이 때는 천명이 도와주긴 했다. [39] 오히려 그렇게 덕만을 놀리고 갈구던 시열은 민폐 오프 민폐급의 병크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혈압만 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열의 무력이 덕만보다 밑은 아닌 것이, 훈련 시에는 엄연히 시열의 압도적 우위였다는 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력이 아니라 정신력의 차이로 보는 것이 맞다. 사막에서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온 생존왕 덕만과 신라에서 평범하게 자라다가 최초로 전쟁이라는 큰 고비를 겪은 시열의 정신력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맺은 것. 시열도 제대로 정신차리고 싸울 때는 백제군 장수를 죽일 정도의 활약을 했다. 애시당초 낭도들은 일반 병사들보다 무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정예병들이라는 설정이다. [40] 이 사건은 이후 미실의 난, 선덕여왕 재임기 중 복야회 스캔들과 함께 작중 묘사 상 김유신 인생의 역대급 위기였다. 덕만이 이 병사를 사살하지 않았다면 거의 확정적으로 전사했을 것이다. [41] 이때 낭도들과 김유신의 말에 따르면 설원의 고문은 악독하기 짝이 없어서 살아남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인데 그걸 다 버틴 것. 다만 제대로 된 국문을 시작하지는 않았고 예열 정도로 조질 때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본격적으로 진짜 국문을 시작하려고 할 시점에 김유신이 타이밍을 맞춰서 진범을 잡아와서 풀려났다. 덕만이 본격적인 국문을 겪었다면 김유신 또한 그가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두른 것이다. 단, 예열 장면만 봐도 주리틀기와 곤장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주리를 틀면서 덕만의 다리를 내려치는 병사들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예열만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악독한 고문이다. [42] 여담으로 고문관 중 한 명은 김서현의 직속 심복인 천광이었다... 훗날 공주가 된 이후에도 천광을 문책하거나 탓하지 않은 대인배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43] 물론 알천도 죽이려 하기보다는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일부러 더 강약조절을 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단한 것이다. [44] 애초에 작가들이 전작을 같이 했던 배우를 띄워주려는 의도가 있었어서 이미 미실이란 캐릭터 설정이 매력적이라 성장형인 캐릭터 덕만 역을 다른 배우가 맡아도 페이크 주인공 취급 받을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연기 경력도 한참 위인 선배 연기자가 맡았으니. 반면 비담 캐릭터는 미실과 반대로 몇 번 등장하고 인기를 끌어서 더 멋있게 그려줘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푸쉬한 건 아니다. [45] 애초에 미실은 42화 정도에 퇴장하게 되어있었는데 인기에 힘입어 연장을 하게 됐고, 이에 맞게 수정됐을 것이다. [46] 후반부에 대사만 봐도 미실을 지적하던 덕만이 어느 순간부터 "미실은 대단합니다", "미실에게서 왕을 보았습니다.", "미실, 당신이 없었으면 저는 없었습니다." 등등 한결같이 덕만을 통해 제작진의 미실 찬양이다(...). [47] 대신 김춘추가 조카이자 후계자로 나오기는 했다. [48] 실제 역사에서 이런 사례가 있는데 바로 고려의 최고 군주라 여겨지는 현종이다. 현종 시대에 무신정변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김훈-최질의 난이 일어났는데 현종은 훗날 이들은 제압한 후에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했지만, 그 가족들은 살려주었다. 최소한 주모자라도 처벌은 해야했던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49] 특히나 모두가 강등된 상황에서 미생은 대등자리도 유지하고 화백회의까지 참여한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일. [50] 원래는 더 디테일한 묘사가 있었으나 편집으로 잘렸을 가능성도 있다. 선덕여왕은 편집으로 비판을 많이 받은 드라마이다. [51] 실제로 호재와 주진이 일찍이 비담의 편에 서는 동안도 필탄, 선열 등은 유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등 완전히 비담에게로 기운 것은 아니었다. [52] 춘추가 주진을 설득할 때 주진을 중용할 이유를 그렇게 언급했다. [53] 물론 그 사이에 권력에 취해 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긴 하다. [54] 사실 이 장면에서 덕만이 밀서를 태워 버리고 "우리 관계는 증서 없이도 굳건하다" 식으로 나갔으면 비담의 충성심도 확고해지고 들키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