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유봉전 : 계한의 부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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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회귀 |
작가 | 은수랑 |
출판사 | KW북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18. 07. 27. ~ 2019. 10.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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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삼국지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 삼국지 : 조조의 아들을 죽이다》를 집필한 은수랑.2. 줄거리
상용을 지키던 유비의 양자 유봉.
북형주 공략에 나선 관우가 오나라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자
유비는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죄로 양자 유봉을 처형한다.
'아버지, 부디 대업을 이루십시오.'
유비가 대업을 달성하길 빌며 처형당한 유봉.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유봉은 과거의 자신으로 깨어나게 되고
색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전한과 후한의 뒤를 이은 마지막 한(漢), 계한(季漢).
비극적인 역사를 막고 계한을 지키고자 하는 유봉의 분투기.
북형주 공략에 나선 관우가 오나라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자
유비는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죄로 양자 유봉을 처형한다.
'아버지, 부디 대업을 이루십시오.'
유비가 대업을 달성하길 빌며 처형당한 유봉.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유봉은 과거의 자신으로 깨어나게 되고
색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전한과 후한의 뒤를 이은 마지막 한(漢), 계한(季漢).
비극적인 역사를 막고 계한을 지키고자 하는 유봉의 분투기.
상용을 잃고 관우를 구원하지 못한 죄로 사사된 유비의 양자 유봉이, 과거로 회귀하여 자신의 운명과 계한의 비극적인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회귀물, 대체역사물 속성.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18년 7월 27일부터 연재되었다.조아라, 리디,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19년 10월 23일 총 362화로 완결됐다.
4. 특징
삼국지 대역물도 세부적으로 나누면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은수랑 작가는 전략과 전술에 치중하는 스타일이다.[1] 즉, 삼국의 주요 인물들이 어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판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 어떻게든 내 판을 지키고 적의 판을 뒤엎기 위해 지략과 임기응변을 짜내 싸우는 장면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다만, 서두가 유비의 입촉이라 삼국의 네임드 인기 캐릭터들이 대부분 살아 있고, 주인공 유봉은 한계가 명확한 인물이라 어쩔 수 없이 치트키를 줬는데, 이게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이다. 치트키를 남발한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통 대역물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시각에는 '대역물을 가장한 무협/무쌍류 게임빙의물' 같게도 느껴져 껄끄러운 느낌이 있는 것. 이 때문에 초반부 진입 장벽이 좀 있으나, 그 부분만 넘어가면 탄탄한 전쟁 소설이다.5. 등장인물
5.1. 계한/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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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3]
유비의 양자. 관우를 구원하지 못한 죄로 유비의 진노를 사서 사사되었는데, 어째서인지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211년으로 회귀하였다. 회귀 직후 '신우'라는 이름의 도우미를 만나 미래에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듣고, 타인의 눈을 보면 상대가 얼마나 유능한 인물인지를 별 개수로 확인할 수 있는 능력과 본인의 재능을 통솔, 무력, 지력, 정치의 4개 분야로 세분화하여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하는 능력을 받았다. 별 갯수에 따라, 상대의 기감을 느낄 수 있는 '선봉장', 군대 전체의 기를 감지하는 '사령관' 등의 이능력도 추가된다.
회귀 이후 성격도 사고방식도 많이 차분하고 성숙해져서[4], 더 이상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데 대해 공공연히 불만을 드러낸다거나 하는 일 없이[5] 오로지 유비 세력의 인재를 최대한 많이 구해서 미래를 바꾸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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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
회귀한 유봉의 앞에 나타난 도우미. 유봉은 그를 처음 보고 귀신인 줄 알고 기겁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며 오직 유봉만이 그와 소통할 수 있다. 유봉에게 그의 사후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려주고 그가 얻은 이능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본인도 삼국시대 사람이 아닌데 과거로 소환됐으며, 유봉을 돕는 조건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스포일러]
천기누설을 꺼려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지는 않고, 유봉이 알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 위주로 알려준다.[8] 그래도 전술/전략적으로 필요하다면, 본래 역사에서 일어났어야 했을 사건들(회귀한 유봉의 개입으로 인해 본래 역사와 다르게 전개된 일들이 본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했을지), 고대 로마나 근현대 유럽의 전쟁사에 대한 것들을 알차게 알려주어서 유봉이 도움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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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회귀한 유봉이 성장을 꾀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9] 유봉이 전령을 보내기도 전에 관우를 구원하러 와서 여러 안배를 해둔 덕에 양번을 차지하고 형주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형주 공방전이 완전히 끝난 이후 유봉이 직언을 하자 능력을 넘어서는 행동은 오만이라면서 질책을 하나,[10] 비등하게 무예를 겨루며 유봉 본인이 강자라는 것을 입증하여 관우에게 인정받는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관우는 유봉을 인정하고 있었고 이후 1차 북벌에서 수도를 지키던 유선의 실태를 듣자 장비와 함께 유선을 탄핵하고 유봉을 태자로 세울 것을 유비에게 요청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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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관우와는 다르게 유봉에게 호의적인 면모를 보인다. 유봉이 입촉에 참가할 것을 요청하자 무예 대결을 통해 모두에게 인정받도록 도움을 주었고, 한중 전투에서 유봉이 보여준 역량을 통해 유봉을 인정했는지, 이후 유봉이 상용에서 무단으로 출진을 했어도 장비 자신은 유봉을 벌하는 것이 마뜩찮은 듯 미리 유봉에게 언질을 주기도 한다. 방통이 유봉 세력의 결집을 위해 마초와의 사돈관계를 꾸몄을 때 제갈량의 안배에 따라 유선에게 딸을 시집보낸다. 이후 유선의 실태를 보고 관우와 함께 유봉을 태자로 세울 것을 유비에게 요청한다. 유봉이 장소에게 장비 컨트롤하는 법을 전수해서 억제기로 붙여놓은 탓인지 본작에서는 정사 상에 나타나는 병졸들에게 가혹한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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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유비가 작품 최후반부까지 생존해있고, 유봉이 후계자가 된 뒤에는 원정의 주체가 됨으로써 원 역사와는 다르게 대군을 이끄는 역할은 없으나, 오히려 내정이나 외교 등 전반부에서 계한을 이상적으로 끌어간다. 역사와는 달라진 형주 공방전에서 조위와 손오를 물러가게 하면서 이후 분란의 씨앗을 미리 심어두고, 유비와 조비가 모두 칭제를 한 상황에서 정확한 방책으로 조위와 손오의 분쟁을 유도하여 북벌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등 작 중 정략으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보였다.[12]
작품 초반부 내내 유봉을 견제하고 유선을 후계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13] 이는 유비가 내심 유선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함을 알고 있었으며 이런 구도를 뒤집으려면 유비를 설득해야 하는데, 조정의 중신들이 아무리 힘을 합쳐도 유비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분란을 막기 위해 유선의 후계자 옹립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법정이 유봉을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해 남긴 안배를 알아차리고도 묻어둔 점에서도 알 수 있는데, 유선을 지지한 것이 제갈량의 자의였더라면 이런 내막을 공론화시켜서 유봉 탄핵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14] 그러나 이미 관우와 장비가 유선을 탄핵하고 유봉을 지지할 의사를 드러냈고, 이 둘의 설득이라면 유비가 유봉을 후계자로 옹립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란의 소지가 될 법정의 안배를 묻어두는 것이 당연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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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
낙성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죽을 뻔했지만 미리 알고 있던 유봉이 구해주면서 역사가 바뀐다. 와룡과 봉추 두 사람은 엇비슷한 재능을 가졌지만, 제갈량이 행정가의 면모가 강하다면 방통은 군정가의 면모가 강하다.[16] 때문에 회귀한 유봉의 활약상을 보면서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서는 유비의 후계자는 적장자가 아니라 재능을 따져야 된다고 믿고 유봉을 강력하게 밀어준다. 형주 공방전 이후 제갈량이 성도에서 촉한의 기틀을 다지는 동안 관우, 장비와 함께 형주 방위를 맡았고, 조조군이 형주에서 완전히 밀려나자 태위로 임명되어 제갈량과 함께 계한의 전략을 담당하게 된다. 물론, 정략에 어두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봉의 세력을 굳건하게 해주기 위해 마초의 딸과 정략 결혼을 유도하는 등, 여러모로 유봉의 태자 등극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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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유비와 유장이 틀어지면서 익주를 침공할 때 가맹관에 곽준을 남기는 일을 두고 유봉과 의견이 갈렸고 유비는 유봉의 의견을 채택한다. 이후 자신을 욕하는 장임을 유봉이 살려두자 이 일을 두고 법정은 유봉에게 원망을 품었고, 매의 눈으로 보복할 기회만 노렸다. 유비군에선 신참에 속했기 때문에 이전까지 유봉의 면모를 전혀 몰랐고, 누구보다 유봉을 예의주시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바뀐 유봉의 장점을 편견 없이 접할 수 있었다.[17] 유비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관료들의 의견이 갈렸을 때 유봉이 전공을 욕심내서 무단으로 출정한 것이 아님을 공인하며 적자 유선에게 기울 뻔했던 정국을 원점으로 되돌린다.[18] 이후 유봉에게 "후계자가 되어 제갈량의 권력을 견제하는 대항마가 되라"고 떠보나 유봉은 제갈량의 충심을 믿는다며 이를 거부, 비로소 그에게 사심이 일절 없음을 확인하고는 만족하며 조언을 건네는데, 후계자 자리를 목표로 하되 이를 내색하지는 말라, 기회는 저절로 올 것이다라는 것. 끝내 이 기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지는 못한 채 숨을 거뒀으나, 1차 북벌 중에 발생한 남중의 반란이 유봉에게 힘을 실어주기 법정의 안배였음이 드러난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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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유봉의 책략으로 본 역사보다 더 일찍 유비에게 귀순하여 성도를 점령하는 데 공헌했으며, 역시 유봉 덕분에 한중에 남아있던 방덕 및 처자식[20]과도 재회하였다. 유봉은 그가 본 역사에서 귀순 이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마지막 남은 가족마저 잃고 상심이 깊었기 때문[21]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을 잃지 않은 대체역사에서는 그 무예와 명성으로 관우와 장비에 버금가는 활약상을 선보인다.
기마술은 작중 제일인자라 유봉의 기마술 스승이 되기도 하고, 딸 마영이 유봉의 부인이 되어 촉한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입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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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덕
마초의 의제. 유봉의 책략으로 조조가 아닌 유비에게 귀순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운다. 한중 공방전에서 유봉과 함께 하후연을 구하러 오는 곽회의 구원군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해냈고, 이후 형주 공방전 때는 방통과 마초가 남군에서 적을 막는 사이 공안에서 손교에게 피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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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
입촉 과정에서 유봉이수련 대상으로가장 먼저 친해진 인물. 원 역사와는 달리 자오곡 계책도 실행[22]해보고, 유비가 내내 살아있는데다 유봉이 자신을 신뢰해주고 있어이릉대전이 벌어지지 않아 인재들이 많이 살아있으니 양의와 마주칠 일도 없으니[23] 전공을 욕심내는 성향이 유비와 유봉에게 인정받는 장수가 되고 싶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된다. 부곡에서 장수가 된 터라 정봉이 위연을 은근히 동경하는 묘사가 있으며, 과감한 성향 상 신중함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장억과는 의견이 다소 엇갈릴 때가 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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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부인,
마추, 마희(마영)[25]
마초의 첩과 서자녀. 본래 역사에서 동 부인은 염포에게 주어지고, 마추는 어린 나이에 살해당하는 운명을 맞았으며, 마희는 아예 기록이 없다. (즉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 가상 캐릭터) 그러나 대체역사에서는 보다 일찍 마초를 귀순시킴과 동시에 전생의 마초의 모습을 기억하던 유봉이 입촉 과정에서 얻은 전공으로 받은 재물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방덕과 가솔들을 장로에게서 데려온 덕분에 목숨을 보전하여 마초와 재회하였다. 후일 마영은 유봉의 아내가 된다.[26] 마추는 이후 큰 비중이 없고[27] 동 부인은 마초가 부인이라 칭하거나, 유봉과 마영의 혼인 때 마초와 나란히 앉아 사위의 인사를 받는 등의 묘사를 보아 마초의 정실로 승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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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충
파서 태수 장비 밑에서 행정 업무를 맡아 갈려나가던 젊은 관리 중 한 명. 유봉이 파서의 대성들을 정리할 때 등용했다. 내정 능력도 있지만 나름 장재가 있고 친화력이 뛰어난 덕장이라 유봉의 수족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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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평
유봉이 파서를 정리하며 소탕한 도적떼의 일원. 파족이라 중용되지 않아 도적 신세가 되었지만 유봉이 그를 등용한다. 무용도 뛰어나지만 전장의 맥을 짚는 능력이 뛰어난 장군으로 유봉 밑에서 일군을 이끌며 활약한다. 가정에서는 곽준의 부장이 되어 단순히 장합의 진격을 막아내는 것을 뛰어넘어 고지와 길목의 기각지세를 이용해 장합군을 묶어버려 유봉의 진창-오장원 점거를 도운 일등 공신[29]이 되고, 이후에도 중요한 군을 이끄는 역할을 도맡는다. 북벌 이후로는 유봉 휘하에서 기병대를 이끌었고, 최후반부에는 유봉을 대신해 서량에서 저항하던 조홍을 토벌하는 대장이 되어 서량 정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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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억
유봉이 파서를 정리한 뒤 공록과 요주에게 추천을 받아 등용한 인물. 진작 유비에게 익주 종사 직을 받아서 함부로 빼내올 수가 없었지만, 유봉을 만난 장억이 유봉의 수하를 자처하여 법정이 허락해줬다. 이후 법정이 병들어 죽기 직전 장억을 곁에 데려다 놓고 여러 가지 가르침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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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
관우를 구원하러 온 유봉이 오나라와 싸울 때 얻은 인재. 당시 16살의 소년이었으나 어린 동생[30]을 부양하기 위해 반장의 부곡[31]에 들어 참전했다. 반장이 감녕의 부곡을 박대하였기에[32] 그에 대한 감정이 나빴는데, 반장과 달리 유봉군에 맞서던 자신을 포로로 잡고서도 후대해 주는 유봉에게 감복해서 그의 설득에 넘어가 등용된다. 유봉 입장에선 마침 용맹스러운 선봉대장이 필요했는데 딱 맞는 인재가 영입된 셈.[33][34] 유봉이 등용한 인재들 가운데 무용이 가장 빼어나서 유봉의 곁에 머물며 호위병 노릇을 했고, 이후 전장을 누비며 경험을 쌓으면서 돌격대장으로 활약한다. 일기토에서는 무패행진을 달리다가 장안 공성전에서 장료에게 한 번 패배를 겪었는데, 이후 장비에게 가르침을 받고[35] 더욱 무용이 발전하였다. 이후로도 유봉의 선봉장으로써 활약하였고, 무평대전에서 조창을 상대로 일기토를 이기는 등 전공을 기록하여 유봉 즉위 후에는 친위군의 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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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
도강언 수리에서 인연이 있었던 정기의 추천으로 유봉에게 등용되었다. 대체적으로는 일군을 이끄는 왕평의 역할과 병법에 견식이 있는 장억을 절충한 듯한 장수. 유봉에게 등용된 인재들 중 가장 비중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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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
유비 입촉 이후 유장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가맹관 수비를 맡는다. 원 역사에서는 2백 명의 병사만으로 수비를 맡기에 유비가 촉을 흡수한 직후 전장의 상처가 누적되어 사망하나, 유봉 덕분에 1천 명의 병사가 증원되어 여유가 생긴 덕에 입촉 이후에도 사망하지 않았다. 조조 사후 북벌에서 유봉의 추천으로 가정 수비의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덕분에 마속의 삽질을 막으면서 왕평의 의견을 수용해 가정 전투에서 장합을 붙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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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제갈량이 일찌감치 그 재능을 눈여겨보고 중용한 인재지만 역시나 유비한테 좋은 평가는 못 들었다. 회귀한 유봉도 신우를 통해 마속의 실책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꺼리는 티를 냈고, 유봉이 역사를 뒤트는 바람에 중견 장수가 풍부해진 촉한은 1차 북벌 때 가정을 마속과 왕평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곽준이 왕평과 마속을 부관과 참모로 거느리고 지킨다. 마속은 산에 진을 칠 것을 건의했지만 곽준에게 병법 헛배웠다고 깨졌고, 왕평이 이 계책을 살짝 비틀어서 군을 둘로 나눠서 일군은 길목을 막고 일군은 산에 진을 치는 바람에 장합은 가불기에 걸린 꼴이 되었고 그 틈에 북벌이 성공한다. 하지만 지모가 없는 인물은 아니라 장합이 후퇴하자 위나라 대촉 전선에 이상이 생겼음을 짐작하고 장합을 끝까지 추격하도록 건의하여 유미현 매복작전이 성공하는데 간접적으로 일조한다. 이후 제갈량에게 가르침을 받고, 동오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뒤 관우의 뒤를 이어 형주도독이 된 관평의 참모로서 활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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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
관서 정벌 이후 제갈량에게 발탁되어 등용된 인재. 약관의 나이로 마속과 함께 제갈량에게 이것저것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36] 이후 제갈량이 유봉에게 강유를 일군을 이끌 장수로 기용할 것을 권유하였고, 유봉의 전투에 따라나서며 경험을 쌓고 많은 활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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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축
간손미 중 유일하게 유봉전에 등장한 인물.[37] 동생 미방이 남군태수로서 적과 내통한 것을 유봉이 덮어주었기에 원 역사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38] 유봉의 포용력과 안목을 보고 유비의 후계자로 유선보다 유봉이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도강언을 수리하는 유봉에게 조언을 한다. 또한 유봉을 후계자로 밀어주기 위해 법정과 협력해 남중의 반란을 유도하며, 남중이 평정된 이후 제갈량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사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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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방
군량을 태운 일로 관우에게 호된 질책을 듣고 앙심을 품어 동오와 내통했으나, 유봉의 개입으로 동오와 합작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뒤 "진상을 모두 알고 있고 당신을 죽일 생각까지도 했으나 조용히 묻어주겠다"는 질책 섞인 말을 듣는다.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계한에서 지내다가, 법정의 남중 반란 유도 계획에 형과 함께 협력함으로써 유봉에게 보은한다. 이후에는 미축과 함께 사직했을 듯하다.
5.2.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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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하후연이 죽자 대군을 이끌고 한중 전투에 참여. 원 역사와는 달리 유봉의 활약이 조조의 귀에도 들어가 조창을 오환으로 파견하는 대신 같이 데리고 간다. 그러나 한중 전투는 역사대로 조조가 물러나게 되는데, 이후 번성 공방전의 패배에 영향을 받았는지 조식에게 임지에서 나오지 말 것을, 조창에게는 조비를 따를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조비에게도 자신에게 조인이 있었듯이 조비는 조창을 믿어야 한다고 당부한 뒤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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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
원 역사와는 달리 우금이나 하후상에 저질렀던 패악질을 보여주지 않기는 했으나[39] 손권에게 장남 손등을 볼모로 보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거절당해 무리하게 침공을 했고,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관서지방 수비[40]가 (원 역사와 달리 이릉대전이 생략된) 계한의 이중 성동격서 전략에 관서지방 대부분과 진창-오장원까지 빼앗겼다. 오나라를 침공했던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2차 양번전쟁 때는 오나라가 한-위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손권이 황제를 참칭하고 방통의 모략에 움직임이 묶이는 동안 역병 때문에 오히려 위나라가 점유하고 있던 남양을 비롯한 형주 지방을 털렸으며, 이후에는 장안을 포함해 하동까지 계한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오나라에 괜히 전쟁을 걸어 계한이 어부지리를 취하게 만들고, 끝내 위나라의 멸망에 일조한 최악의 암군이 되었다.[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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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
원 역사와는 달리 한중 전투 시기에 오환으로 간 대신 조조와 함께 종군한다.[43] 한중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후 양번 전투에서도 물러나게 된 조조는 원 역사와는 다르게 조비에게 조창을 품으라고 조언하였고, 조창에게도 왕위에 욕심내지 말고 조비를 따르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이후 조비의 명령에 따라 신비, 조진과 함께 선비족을 토벌하다가 계한이 1차 북벌을 일으키자 만약을 대비하여 기병만을 이끌고 먼저 장안으로 향한다. 이때 위연이 수정/보완된 자오곡 계책의 성공으로 장안에 막 입성했는데, 조창의 원군으로 변수가 발생하자 제갈량이 준 서찰의 내용대로 식량고를 불태우고 퇴각한다. 계한의 2차 북벌에서 흉노족을 이끌고 유봉과 직접 싸웠으나 패배하였고, 이후 조비 재위기 내내 수도에서 자중하고 있다가 조예 즉위 후에는 조인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황궁 호위대에서 예전으로 돌아간 호표기를 이끄는 수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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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
정군산 전투 때 법정의 계책에 휘말려 도주하던 중 퇴로를 막던 유봉과 격전을 벌였으나 끝내 유봉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고 자신을 추격해 온 황충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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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합
정군산 전투에서 잠시 등장하다 첫 북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유비군과 공방을 펼쳤다. 그러나 가정에서 발목을 붙잡히고 장안까지 공격당할 뻔하자 퇴각하였으나 유미현에서 유봉군의 매복에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다. 이후 조비의 인선으로 장료와 임지를 바꾸는데, 장료에게 유봉을 경계하라고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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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
위나라의 명장이자 황실의 웃어른으로서, 특히 조비 사후에 진군과 함께 고명대신이 되어 위태로워지는 위나라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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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번성 공방전에서 뜻밖의 홍수로 전군이 물에 잠기면서 관우에게 항복한다. 그런데 유봉이 명령불복종까지 저지르며 원군으로 참전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 장수. 번성 공방전에서 조인까지 포로로 잡혔고, 전투가 끝난 뒤 조인과 함께 위나라에 반환되었기 때문에 비록 조조가 저평가를 하긴 했으나 조비가 모욕을 주는 일은 피할 수 있었으므로[44] 원 역사처럼 분사하지 않고 전투에 참여하며 일군을 이끌 수는 있게 된다. 그러나 조조나 조비가 서황과 비교하여 우금을 탐탁찮게 여겼기 때문에 예전처럼 우금의 군대가 위용을 발휘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방통은 이를 두고 엄격한 군율로 군을 휘어잡던 장수였기에 수장이었던 우금에게는 주군의 신뢰가 중요한 요소였는데, 이를 잃었으니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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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황
전생에서는 유봉의 최후를 결정짓는 상용을 점령하러 온 장수. 원 역사처럼 한중 전투에서 초전인 하변 전투에서 장비와 마초가 퇴각하자 보급로인 마명각도를 노리고 공격해 왔다. 그러나 원 역사에선 보급로를 털려 시일이 지체됨을 알고 있던 유봉이 자원해서 나선 덕분에 비록 우세를 점했기는 하나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고 있던 차에, 하변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고 몰래 유봉의 진중에 합류한 마초, 방덕, 방통과 후방에 원군으로 자리잡은 장임의 군대가 합류하자 역격에 나선 유봉군에게 대패하고 만다. 이 후 양번 전투에서 구원군의 지휘관으로 나서나 이 역시 유봉의 안배로 인해 10중 녹각 대신 2줄의 목책을 둘러싸 서황을 막아낸다는 전술로 인해 구원이 지지부진해져가고 있었고, 서황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 조바심을 내던 차[45]에 유봉이 호수와 부방을 내통시켜 항복시키자는 제안을 관우가 조인을 배제하고 서황을 잡아낸다는 대담한 계책으로 완성시켰고, 이에 넘어간 서황은 끝내 퇴로가 끊겨 관우와의 일기토 끝에 사망한다. 우금과는 달리 병사의 생환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조조나 조비 역시 우금보다는 서황을 고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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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료
대오 전선에서 활약한 맹장으로 조비의 인선으로 합비에서 관서 전선으로 이동, 장안 공방전에서 유봉에게 맞서 장안을 수성한다. 결국 계한군이 장안 성벽 일부를 점령하자 직접 등판하여 정봉에게 중상을 입히고 유봉의 목숨마저 위협하지만,[46] 결국 부상을 감수하고 허를 찌르는 유봉의 전략에 당해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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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
장합 휘하의 장수로 등장하여 진창 공방전에서 유봉이 이끄는 계한군을 훌륭히 막아냈지만, 자오도 계책을 수정/보완한 위연의 장안 기습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진창을 막을 수 없어 내주고 만다. 이후 장안 공방전에도 참전하여 수성에 큰 역할을 맡았고, 장료가 죽고 장안이 함락된 이후에도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한다.
5.3.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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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
작중에서 유봉과 대적하는 오의 사령관 역할을 형주 공방전에서는 여몽, 그 외에는 육손이 전담하면서 비중은 매우 낮다. 그나마 본인의 군재를 알아서인지 여몽이나 육손 등에게 일임하는 등 조비와는 다르게 신하들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후의 전투에서 항복한 위나라와 달리 오나라는 작품 내내 멸망당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오멸망전의 구도 이상으로 최악이 된 터라[47] 멸망을 앞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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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
원 역사와 동일하게 형주를 점령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에 실제 지병을 소문까지 퍼뜨려가며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려 했으나 형주 침공에서 펼쳤던 계책을 알고 있는 유봉에 의해 대부분 막혀버려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사마의가 찾아왔을 때 내심을 숨기려고 했으나 결국 형주를 침공할 것임을 드러냈고, 본 역사보다 대규모로 공격을 나섰다. 하지만 유봉이 진작에 상용 점령을 핑계로 같이 동행한 마초와 방덕, 방통을 형주 수비에 안배해두었고[48] 이들의 활약으로 공안과 남군은 유봉의 구원이 올 때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 손권의 본군까지 도착했지만 끝내 점령에 실패했고, 제갈량의 계략에 넘어가 결국 휴전에 동의하였고, 이후 수명이 다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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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손
여몽 사후 오나라의 유일한 희망. 형주 지역을 둘러싼 계한과의 전쟁에서 각종 계책을 내지만 역사상에서 벌어진 일에 행보를 알고 있는 유봉에게 죄다 분쇄당하는 탓에 유봉을 많이 의식하기도 한다. 유봉 역시 회귀 전 자신의 사후 벌어졌던 이릉대전에서 유비에게 대패를 안겼던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육손을 원수로 여기며 경계한다. 감정이 꽤나 강했는지 유비가 위나라의 항복을 받은 뒤 편안하게 눈을 감은 뒤에야 육손에 대한 감정이 옅어졌다고 회상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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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
형주 공방전 즈음 병들어 누운 감녕의 후임으로 여몽이 선택한 장수. 하지만 감녕의 부곡을 박대한 탓에 하필 부곡의 핵심 인재였던 정봉이 유봉에게 넘어가 버렸다. 유봉과의 전투에서 사로잡힌 뒤에 미방의 내통을 반박하는 증거로 내세워져 수모를 당했고,[49] 이 때문에 유봉에게 원한을 품는다. 하지만 작중 오나라는 매우 처지가 기구하며 반장의 원한은 끝내 풀리지 못한다. 유봉 역시 반장이 국지전에서는 용맹으로 활약을 할 수 있지만 전장을 뒤흔들 정도의 용맹은 아니라고 딱 잘라 평가했다.
6. 기타
- 정사와 연의를 분명히 구분하고 정사 중심으로 진행하는 편이지만[50] 관우의 언월도나 장비의 사모 등은 워낙에 상징적인 요소들인지라 연의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반영되어 나온다.
[1]
정치적인 내용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이는 유봉이 태자가 되기 전까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유비는 내심 유선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하는데 유선이 나이가 어려 공을 세우기 어려운 반면 장성한 유봉이 보여준 능력과 공적은 세력 내 수위를 다투다보니 유봉 본인이 후계자 욕심이 없다고 해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유봉이 태자로 즉위한 이후에는 정치적인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고 삼국 간의 외교와 전쟁에 치중이 된다.
[2]
본 세력 소속 사람들은 계한 혹은 한나라로 칭하고 적대 세력 사람들은 촉이라고 칭한다. 일단 본작의 주인공이 유봉이고, 부제도 '계한의 부흥'이므로 계한이라는 명칭을 우선한다.
[3]
작가가 설정한 그의 자는 공중(公仲). 공(公)은 자를 지을 때 흔히 들어가는 글자이며 유봉의 세 의붓아우들, 즉 유비의 세 친자들 중에서도 2명이 자에 이 글자를 쓴다(
유선 자 공사(公嗣),
유영 자 공수(公壽)). 중(仲)은
백중숙계(伯仲叔季)의 중이다. 즉 이 자는 유봉이 유비의 적장자가 아님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지라(심지어 후계자란 뜻의 사(嗣)가 들어간 유선의 자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회귀 이전의 유봉은 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회귀 이후 후계 구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서부터, 자로 불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느끼지 않게 됐다.
[4]
이는 자신이 맹달과 불화하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불만을 표출하는 등 경솔하게 행동한 것이 제때 관우를 구원하지 못한 원인이 됐고, 그로 인한 관우의 죽음은 또 종국에 계한이 멸망에 이르는 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 유봉이 스스로 능력을 갈고 닦고, 공적을 세우고, 인재들을 등용하는 것은 모두 형주 공방전에서 패하여 형주를 잃고 관우가 죽는 본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든 비틀어 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5]
상술하였듯, 유봉의 자 공중(公仲)은 그가 유비의 적장자가 아님을 드러내기 때문에, 회귀 이전의 유봉은 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회귀 이후, 자신이 공중이란 자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관평이 일부러 이름으로 부르자 "공중이라 불러도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후계 구도에 대한 집착을 버렸음을 보여준다.
[6]
마충, 왕평, 장억, 정봉, 구부 등을 등용한 것이 그 예시. 이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이들이나, 회귀한 유봉이 그들에게 접촉한 시점에서는 유비의 막하가 아예 아니었거나, 등용은 하였으나 말단직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유봉은 그들을 미리 발굴, 육성하여 그들이 더욱 일찍 능력을 꽃피우고 활약하게 하려는 것이다.
[스포일러]
마지막 화에서 밝혀진 정체는 유선의 5남이자, 유선의 항복을 반대하며 자결한 북지왕
유심. 정확하게는 유심 사후의 역사 흐름과 미래 지식을 알게 된 유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줄곧 현대적인 말투, 사단장/여단장 비유, 해외여행 가이드에게서 들었다는 썰 풀기, 삼국지에 관심은 있으되 연의와 정사를 혼동하는 면모 등으로 인해 '현대 한국의 군필자 삼덕 남성'인 듯한 암시를 계속 주었는데 마지막 화에 뜬금없이 사실 유심이었다고 급 드리프트를 시전했기에, 마지막 화에서 조진 설정 취급을 받으며 본작의 유일한 옥의 티, 무리수라고 까인다(...)
[8]
전쟁사나 세계사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제약 없이 말할 수 있으나 뭔가를 발명하는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고.
[9]
회귀 전 관우를 구원하지 않음과 더불어 본인의 후계자를 위협하는 위치 때문에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회귀 후에는 최소한 관우를 살리고 형주를 보존함으로써 이릉대전이 발발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0]
양번 전쟁에서 관우가 유봉의 능력을 믿고 중요한 역할을 맡기긴 하였으나, 유봉이 유비나 관우의 허락 없이 원군을 이끌고 온 데다 오와 내통을 한 정황이 명백한 미방을 관우의 결정과 무관하게 사면한 것은 유봉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관우 입장에서는 능력과는 별개로 월권을 저지르고서는 되려 관우 자신의 잘못을 논하는 상황이다.
[11]
작중에서는 이후 유봉이 이를 수습함은 물론 남만 정벌까지 성공함으로써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나, 군주가 친정을 할 때 후계자가 수도를 지키는 것이 제 역할임을 감안하면 후계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드러나버린 셈이다.
[12]
형주 공방전에서 조위와 손오를 각각 분리시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뒤 이미 동맹은 퇴각했는데 너희는 어쩔거냐는 식으로 위압하면서 서로가 연락할 여지를 차단한 뒤 퇴각을 이끌어내어 조위와 손오는 각자의 입장에서 밀약을 맺어놓고 먼저 신의를 깬 모양새를 만들어 분란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이후 유비와 조비가 서로 칭제를 한 상황에서 조비가 손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이에 대해 굳이 사신을 보낼 필요 없이 놔둠으로써 서로가 긴밀하게 손을 잡는 상황을 방지해 손권이 언제라도 동맹을 갈아탈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갈량의 예상대로 조비는 볼모를 보낼 것을 거절할 손권을 공격함으로써 북벌의 기회가 생긴다.
[13]
제갈량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장완마저도 유봉이 도강언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모습을 보고 어째서 제갈량이 혈통만 보고 유선을 지지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정도.
[14]
유봉은 남만 원정 도중 법정의 안배를 알아차렸는데, 이를 유비가 알게 된다면 내심 유선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하던 터에 이를 묵과할 리 없다고 생각하여 미리 자수할 생각이었다.
[15]
그 동안 파벌이 갈려왔던 건 유봉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유선을 밀어주고 싶어했던 내심을 알아차린 신하들이 이에 영합한 것이었는데, 유비의 마음만 바뀐다면 유선을 지지하는 파벌의 명분이 삭제되어 내분의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16]
유봉이 형주 공방전에서 벌어질 손오의 빈집털이와 미방의 내응을 막아낼 안배를 위해 방통과 마초, 방덕을 형주로 인도했는데, 방통이 형주의 정세를 제갈량에게 서신으로 보내자 제갈량은 자신의 친구가 군사적인 문제가 아닌 정략적인 문제를 서신으로 보낼 정도였던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17]
형주의 관우만 해도 (관우 기준으로는)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게을리하고 군공에 욕심을 드러내왔던 유봉이 전공을 조금 세우더니 다시 교만해져서 자신에게 기어오른다고 오해했다.
[18]
법정의 등장 이전까지 유봉을 변호했던 사람들은 모두 유봉과 크건 작건 교류가 있었던 반면, 유봉에게 앙심을 품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데다 제갈량 다음으로 실권과 권위를 지닌 법정이 유봉을 변호한 것은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19]
당연히 법정이 계한에 반심을 품고 획책한 음모는 결코 아니다. 그는 계한이 끝내 천하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봉이 유비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남중 반란에서 유봉과 유선의 행보를 보면 유비도 끝내 후계자를 유봉으로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치밀하게 남중 반란을 계획했다. 혹시나 일이 자신의 계획보다 더 크게 터져서 정말로 성도가 위험해질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생각 이상으로 무능했던 유선 때문에 성도는 상당히 위험했다.
[20]
원 역사에서 염포에게 재가를 간 동씨 부인과 장로에게 주살된 기록이 남아있는 아들 마추, 그리고 본작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인물인 딸 마영이다.
[21]
한수와의 대립에서 가족들이 몰살당한 게 첫 번째, 관서의 제장들과 거병하여 업도로 이전했던 마씨 일족이 몰살당한 게 두 번째, 조조와의 일전에서 패배한 후 강족과 연합하여 한번 더 거병했으나 패배하는 과정에서 기성에 있던 가솔들이 몰살당한 게 세 번째. 유봉의 회귀 전에는 마초의 영입 후 한중에 있던 아들 마추가 살해당하고, 마추의 모친이자 마초 본인의 소실인 동 부인은 염포의 첩이 되면서 또다시 처자식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연이은 비극으로 인한 충격인지, 마초가 유장을 항복시킨 것 외에는 내내 무기력한 모습이었다고 서술되었다.
[22]
다른 대체역사물 등에서도 나오지만, 자오곡을 통한 장안 공략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상용이 조위의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보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진령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주요 통로인 야곡도는 막혀있고, 다른 통로는 소규모 부대로 급습 정도만이 가능한 상태에서 자오곡이 갖는 문제점은 (상용이 적의 영역일 때) 보급과 퇴로가 막힐 위험성이 컸다는 것. 작중에서는 자오곡 진입을 보호해 줄 상용과, 상용을 보호해 줄 양번이 모두 계한의 영역이었고 오와의 양면 전쟁과 성동격서 계책으로 인해 장안에 남은 병력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성이 올라간 것으로 서술되었다.
[23]
양의가 작중에서 오나라와 휴전 협상을 하러 오는 제갈량을 따라 출연한 뒤로는, 내정에만 전념하느라 전방에 파견되어 있는 위연과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24]
물론 원 역사의 양의와의 갈등처럼 대놓고 싸우는 수준은 아니고,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태도 정도만 보인다.
[25]
아버지와의 재회 당시에는 마초가 희라고 불렀는데, 차후 재등장해서는 마영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나이는 유봉보다 10여 세 정도 아래로, 유봉과의 혼담이 나왔을 때 18살이란 언급이 나오는데 당시 유봉은 20대 후반이었다. 마초가 유비에게 귀순한 시점이 대략 213~214년, 혼인하는 시점이 형주공방전 이후인 220년 무렵임을 감안하면 아명이었다고 간주해도 되기는 한다.
[26]
실제 역사에서도 마초의 딸이 유비의 아들과 결혼하기는 했으나, 이 딸은 마초가 유비군에 귀순한 뒤 새장가를 들어서 얻은 자식이고 그와 혼인한 유비의 아들은 막내아들
유리였다.
[27]
어머니를 닮아 몸이 약하다는 언급과, 마초가 이를 아쉬워하는 묘사가 있다. 아마 허약 체질 탓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만한 무인으로 성장하지는 못한 듯.
[28]
마초의 정실 양씨는 기성에서 죽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마초가 첩을 정실로 올리거나 아예 새장가를 들지 않는 한 그의 정실 자리는 비어 있다. 마침 동 부인이 황자비의 생모가 되는 셈이라 정실로 올려 예우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29]
그나마 장합도 관중에 거점을 마련하려는 유비와 제갈량의 계획을 눈치채고 유봉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학소를 파견하기는 했으나, 위연의 자오곡 계책 때문에 학소도 끝내 진창에서 후퇴해야 했다.
[30]
역시 이름이 정봉이나 한자가 다르다. 공교롭게도 동생 정봉의 이름자는 유봉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쓴다.
[31]
본래는 감녕의 부곡이었는데, 감녕은 이미 노쇠하고 병들어 명이 다해가고 있었고 그의 아들은 무능하고 용렬하여 진작에 눈 밖에 났다고 한다. 그래서 감녕이 여몽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반장에게 부곡을 넘겨주었다.
[32]
원체 성정이 잔인하고 난폭해서 부하들을 혹독하게 다루기도 했거니와, 감녕이 맡긴 부곡은 본래 자신의 부곡이 아니라는 이유로 험한 일에 몰아넣어 화살받이로나 썼고 보상도 별로 해 주지 않았다.
[33]
이미 신우에게 자신이 죽은 뒤 무용을 뽐냈던 장수 중 한명이라고 들었기에 정봉의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등용할 생각부터 했다.
[34]
정봉을 만나기 전에 염행을 적으로 마주쳤으나, 염행은 가족을 매우 아끼는 성향인데다 가족들이 모조리 업도에 있어 항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참살했으나 상당히 아쉬워했다.
[35]
장비는 2차 형주 공방전에서도 정봉을 보았으나, 당시에는 정봉이 승승장구하는 중이라 자기발전에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장비 입장에서는 장남 장포는 이미 요절했고, 차남 장소는 무예와는 거리가 멀고, 장포가 죽기 전에 남긴 아들인 장준은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아서 자신의 전진을 이어받을 이가 없다는 점 때문에 자신의 무를 전수해 줄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장료에게 패배한 정봉은 자신이 가르침을 내리기에 매우 적절한 상태가 되었다. 무예를 전수받느라 반장에게 복수하러 가지 못했다.
[36]
마속이 가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안 제갈량이 아예 작심하고 둘 모두를 교육한 것으로 보인다.
[37]
손건은 아예 등장하지 못했고, 간옹은 입촉 시기에 항복을 권할때 잠깐 등장하고 퇴장하였다.
[38]
본래는 미방의 내통과 배신으로 관우가 죽자 이를 몹시 수치스럽게 여겨 스스로 벌을 청했고, 유비는 그를 벌하지 않았으나 미축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화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유봉전에서는 유봉의 시의적절한 개입으로 형주 공방전이 계한의 승리로 끝나고, 관우도 죽지 않고, 유봉이 미방의 일을 덮어주기까지 했으므로 미축도 동생의 일을 송구스럽게 여기긴 했으나 화병으로 죽는 지경까진 가지 않았다.
[39]
둘 모두 조인이 원 역사와 다른 행보를 보이며 장수한 것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우금은 조인 역시 포로로 붙잡혔다 풀려났기 때문에 조비의 조롱을 받지 않았다. 조비 입장에서도 우금을 조롱했다가 조인 역시 입지와 권위가 실추될 위험이 있어 황족 중심으로 군권을 장악하려는 정책에 제동이 걸릴 여지가 컸다. 하후상은 애첩을 죽이려는 걸 조인이 만류했기 때문에 패악질을 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
[40]
조비도 주변의 조언에 조홍을 관서로 부임시키기는 했으나 감정적으로 지방에 보낸 것에 가까웠고 수비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계륵에 가까웠던 관서 지방에 경력이 풍부한 지휘관인 조홍이 고립된 격이 되어 인재 하나하나가 시급해지는 위나라에게는 적잖은 타격이 되었다.
[41]
형주 공방전에서 손권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퇴각한 터라 권위가 실추되었는데 오왕 임명을 해주어 권위를 회복시켜주었으니 오와 연계하여 양번을 회복한다는 선택지가 있었고, 정복전쟁 구도가 아니라 현 세력에서 수세로 들어가 세력비를 유지하기만 했어도 점차 국력 차이가 벌어져 계한과 손오가 연합한들 조위에 비해 국력이 뒤쳐질 것이 명약관화했다. 즉, 손권에게 지나치게 족쇄를 채우려다가 실패한 것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단 한번의 행동 때문에 계한에게 영토를 내주고 조위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42]
작중에서 유봉이 워낙에 먼치킨이라 어쩔 수 없는 시각도 있을지 모르나, 조창이 북지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어떻게든 죽였을 거라거나 하후상의 애첩을 죽이려는 걸 조인이 말리느라 고생했다는 묘사 등으로 볼 때, 패배를 거듭하다보니 암군의 면모가 덜 드러났을 뿐이지, 작중에서 위나라가 좀 더 잘 풀렸더라도 조비 때문에 그 상승세가 금방 틀어막혔을 게 뻔하다.
[43]
오환 정벌은 사마의가 대신하여 출정하였다.
[44]
조비가 항복을 한 우금을 모욕하게 되면 간접적으로나마 포로로 사로잡힌 조인까지 모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45]
조위의 군은 조씨와 하후씨가 최고의 위치에서 각 장수들을 통솔하는 방식이고, 서황 역시 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마명각도에서 대패를 겪어 기존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 양번 전투에서는 자신이 이끄는 군으로 관우군의 포위를 풀어내고 조인을 구원해야 했다.
[46]
작중에서 유봉의 목숨이 물리적으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장료와의 일기토 때였다.
[47]
오 멸망전에서는 그래도 형주의 완충지대가 그나마 남아있던 반면, 작중에서는 형주마저도 계한이 점유한 상황이라 더 불리하다.
[48]
마초가 형주 내의 영지를 분봉받았던데다 방덕은 마초의 수하나 다름이 없었고, 방통 역시 형주에 일족이 있었기 때문에 동행한다는 핑계가 통했다.
[49]
유봉이 반장과 주연을 포로로 잡아 두었는데, 아버지의 성품을 본받아 다른 이의 모범이 되며 수명이 긴 주연 대신 성격이 나쁘고 손권을 제외하면 그리 영향력이 크지 않은 반장을 포박시켜 오군 앞에 내보이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미방은 오군과 내통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편에서 이중첩자 노릇을 하며 오군의 정보를 빼내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반장과 주연을 격파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았다. 만일 오군의 주장대로 미방이 정말로 내통자이고 그가 나에게 오군의 정보를 전해준 일이 없다면, 반장과 주연은 자기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도리어 내게 패하고 포로로 사로잡힐 만큼 무능한 자들이라는 뜻인가?" 당연히 오군은 손권이 총애하고 신임하는 두 장군이 그 정도로 무능한 자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으므로(...) 유봉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고, 아군이 보는 앞에서 적장에게 끌려나와 구경거리 취급을 당한 반장은 길길이 날뛰었다.
[50]
초반부터 신우가 '이 시대는 후대에 역사와 소설이 섞인 채로 알려졌다'고 발언하기도 하고, 연의와 정사를 혼동하는 발언을 해서 유봉이 실제로는 어떻다고 바로잡는 대목도 여러 차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