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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3:46:15

보충대

보충대대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Main_gate_of_ROKA_102nd_Replacement_Battalion_02.jpg 파일:삼공육보.jpg
舊 제102보충대대 정문( 출처) 舊 제306보충대대 정문( 출처)

1. 개요2. 일정3. 입영장정으로서 보충병 생활
3.1. 첫날3.2. 금지 사항3.3. 식사3.4. 자대배치
4. 목록
4.1. 과거의 보충대4.2. 특수한 보충대
5. 대기병으로6. 외국의 보충대
6.1. 일본6.2. 미국
7. 같이보기

1. 개요

補充隊 / Replacement Depot

전입해 오는 입영 장정(보충병력)을 접수 관리하고, 충원을 필요로 하는 편성부대에 분배/배치하는 부대.

대한민국 국군에는 육군 2곳 이상( (구)제102보충대대(2016년 11월 1일 해체), (구)제306보충대대(2014년 12월 31일 해체), 1,2,3보충대[1])[2], 해군 1곳( 창원시 진해구 해군기초군사교육단), 공군 1곳( 진주시 제27예비단( 공군기본군사훈련단)), 해병대 1곳( 포항시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있다.

2014년부터 모든 육군 들이 육군훈련소에 입영, 신병 훈련을 진행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제306보충대대, 제102보충대대를 폐지한다는 계획이 있으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졌다가 제306보충대대가 2014년 12월 23일에 마지막 입영식을 마치고 잔존부대로 있다가 2014년 12월 31일에 해체되었다. 이들은 306보충대 해체 이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12월 26일에 나갔다. 춘천의 102보충대대는 강원도 지역의 교통 사정으로 인해 더 미뤄지는 듯 했다가 국방부에서 2016년 9월 27일 마지막 입영식을 끝으로 잔존부대로 있다가 2016년 11월 1일 제102보충대대가 해체되었다. 이후로는 논산과 각 사단 신병교육대로 직접 입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 일정

대한민국 육군의 경우 이곳에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박 4일 간 머물며 각종 보급품을 수령하고, 사이즈를 조절하며 신체검사, 지능검사, 인성검사 등을 실시했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입대한 사람들은 장정이라고 불리며, 그리고 입대 4일째 되는 날 진짜 신병교육대로 이동하게 된다.[3] 특이하게 월요일 대신 화요일에 입영행사를 했었다.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 대한민국 해병대의 경우는 월요일에 들어가 금요일까지 머물게 되며 육군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의 일주일을 임시입영 기간이라 하며, 단순변심에 의해서도 귀가할 수 있다. 2019년~2020년 기준으로 이제는 육군도 본인이 귀가 의사를 임시입영 기간 안에 명확하게 밝힌다면 귀가가 가능하다.[4] 물론 당연히 재입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군대를 두번 들어갈때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이후 발생하는 개인적인 불이익은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5] 하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아직 준비가 덜 되었거나 아픈 곳이 있다면 다시 준비해서 들어오는것도 한 방법.

보충역( 사회복무요원 등)은 보충대를 거쳐가지 않는다. 수도권은 논산, 지방은 지역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하며,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소하는 보충역들도 입영심사대에서 곧바로 훈련병 신병교육연대로 이동한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모든 과정을 입소 2일차에 압축시켜 진행하고, 3일차부터 바로 훈련이 시작된다.

3. 입영장정으로서 보충병 생활

이 어정쩡한 3박 4일의 생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지루한 멍때리기의 연속이다. 워낙에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다 보니 "차라리 그냥 훈련이나 작업이라도 했음 좋겠다." 따위의 망언을 일삼는 녀석들이 있기도 하지만, 며칠 후 훈련소로 이동하게 되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난다. 아무 공장 생산직에 취직해 보면 알겠지만 일이 없는 게 더 좋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신체검사나 보급품 수령, 식사 등을 제외하면 입대장정들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없는 생활관( 내무반)에 가둬 놓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교도소나 다름없다. 게다가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을 맘대로 보내 주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소변 참기. 특히 신경인성 방광을 앓고 있을 경우 그 괴로움은 배가될 것이다. 가뜩이나 소변 욕구가 자주 발생하는데 입영 스트레스까지 추가된다. 거기에다가 맛 없는 밥과 곳곳의 노후된 시설들까지 더해진다.

훈련소 조교와 매우 흡사한 매무새를 한 '구대장'이라는 병사들이 통제하지만, 뭐 그냥 식사 이동이나 신체검사 시 이동, 각종 이동 시의 인솔 말고는 딱히 서로 볼 일이 없다. 어쨌든 빈 몸으로 들어온 혈기 넘치는 사내들이 수십 명씩 모여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까 다들 금방 친해진다.신병교육대로 흩어질 때 연락처를 주고받아도 신병교육대로 가면 다 까먹는다 덕분에 끼리끼리 수다에 꽃을 피우고, 입대 직후의 무개념 상태인지라 우당탕탕 낄낄낄 요란하게 놀기도 한다. 그러면 곧 구대장이 달려와 으름장과 얼차려로 진압하다.

보충대도 엄연히 군대인지라 불침번 근무가 있다. 여기에서 졸더라도 대충 혼나지만 사단 신병교육대나 자대에서 그랬다가는...

3.1. 첫날

일생 동안 생각없던 사람도 여기서 보내는 첫날에는 죽을 때까지 해볼 생각 다 해보게 될 정도이며 그리움이 막 사무친다. 특히 휴대폰 거둬들이고 박스 하나 딱 던져주면서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옷들과 소지품들을 모두 이 박스에 담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때 그리움과 참담함은 아주 절정에 다다른다. 그야말로 박스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사단 신교대대 가면 이곳 생활에 대한 느낌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

더 괴로운 것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인데, 그때 느끼는 감정은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다. 아마 그 이유는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는데, 잠자리에 드니 군인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끼리 입영 첫날 밤의 괴로움을 말할 때 이 소리가 꼭 나온다. 그리고 결정타로 다음 날 새벽 6시(동계에는 6시 반)에 울려퍼지는 웬 듣도 보도 못한 나팔소리가...... 전원 기상! 여기가 아직도 사회인 줄 아냐!

3.2. 금지 사항

입영 첫날 부터 자대배치나 후반기교육[6] 전까지 TV 시청[7], 전화 통화, PX 이용이 금지이며[8][9], 때때로 숨겨둔 담배[10]로 숨어서 흡연하거나, 식사시간의 타이밍을 이용하여 전화사용하는 용자들도 있긴 하다. 물론 걸리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모 보충대에서는 생활관 복도 한복판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는 힘들고 개망신을 당하는 벌을 받게 했다.

3.3. 식사

육군 보충대의 공통된 특징은 나오는 밥이 심각하게 맛이 없다. 1960~1970년대에 지은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매우 지저분하고 낡았다. 하지만 예외로 제306보충대대는 1989년에 지금의 위치로 주둔하여 자리잡았는데, 시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서 1970년대스럽다 연식대비 낡아보인다. 이유는 식수인원(식당에서 식사하는 인원)이 매주 1,000~2,000명 정도 되고 3박 4일 내지 일주일 내에 배출될 병력들이라 별로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듯. 문제는 자대가 이곳인 기간병들인데, 이들은 복무기간 내내 이 열악한 시설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서 기간병 생활관만큼은 신막사에 가까운 시설로 부분 보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밥은 정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입영장정들이 신병교육대로 배치된 날(금요일) 저녁식사부터 다음 기수 입영장정들이 입영하는 날(화요일) 점심식사까지 일시적으로 식사의 질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입영주 금요일 오후에 입영장정들이 모두 신병교육대로 배치되고 다음 기수 입영장정들은 화요일 오후 2시에 입영식을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식수인원이 대폭 줄어서 그런 것이다.

3.4. 자대배치

마지막은 결국 자대배치로 마무리된다.

일반적인 현역의 경우 컴퓨터 랜덤 추첨을 통해 결정되는데, 몇 몇 보충대의 경우 이 과정을 모두 장정들에게 공개한다. 이 추첨 결과는 추첨 종료 후 각자 대기하는 생활관에서 통보되는데, 여기서 모두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제306보충대대는 재미있게도 추첨 직후 예시로 몇 몇 장정의 배치를 보여준다. "누구누구는 몇 사단으로 배치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앞에 불러주는 사단은 그 인원이 5주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사단 신병교육대, 뒤에 불러주는 사단은 그 인원이 최종적으로 복무하게 될 자대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배속된 사단의 숫자가 3, 8과 같이 익숙한 경우에는 너나 할 것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 장정의 미래를 축복해 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된다. " 백골! 백골!" " 오뚜기! 오뚜기!" 이렇게 외쳐대면서. 102보충대는 역시 컴퓨터 추첨이며, 각 생활관마다 배치된 TV로 장정들이 어디로 갈지를 말해준다. (구)제2보병사단[11] 이나 (구)제27보병사단[12] 같은 메이커 부대로 가는 애들한테 묵념. 단 상근예비역은 당연히 주소지가 위수지역에 포함되는 사단으로 가게 된다. 운전병 지원자는 사전에 면허증만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자대로 배치가 되면 각자 버스를 타게 된다. 민간의 전세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도착지 신병교육대가 속한 사단의 보급수송대대에서 "XX 육 XXXX" 번호판이 달린 군 소속 버스들이 온다. 이들은 각 사단 예하 신병교육대로 보내진다.[13]

제306보충대대에서 제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치받을 경우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로 이동한 적도 있는데, 의정부역에서 대광리역행 기차를 타게 되며, 한탄강을 건너기 전 38선이라는 안내석이 차창 밖으로 보이면 그제서야 자신이 전방부대에 배치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차 이동 시 중간에 홍익회 판매원이 지나갈 때 음식 사먹는 것이 가능한데 보충대 간부가 인솔하기는 하지만 보충대대 입장에서는 이미 보충대를 떠났고 곧 신병교육대에서 고생할 병사들이라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꽃마차로 바뀐 이후로 홍익회 판매원이 사라졌고 꽃마차로 바뀐 시점에서는 제5보병사단으로 배치되는 장정들도 민간의 전세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형태로 바뀌었다.[14]

4. 목록

4.1. 과거의 보충대

4.2. 특수한 보충대

5. 대기병으로

육군에선 입대하는 장정들 이외에 대기병들도 보충대로 왔다. 대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거나 후반기교육을 수료하고 전방 지역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대기병들이 이곳에서 며칠 동안 대기한다.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는 제102보충대대로,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는 제306보충대대로 간다. 날짜가 맞으면 대기할 것도 없이 도착 5분 만에 이동하기도 한다. 대기병 입장에서 아직 군복( 전투복)으로 환복도 못하고 을 먹고 그대로 취침도 해야 하는 장정들의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다. 한편 장정 입장에서는 훈련소에서 구르고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쫄게 된다.

대기병들은 대기하는 동안에 별다른 임무는 없으나 주변 청소나 취침시간에 장정들이 잠자는 생활관 근처에서 불침번 근무 정도만 서는 수준. 장정과는 다르게 흡연, 전화 및 PX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제1야전수송교육단, 제3야전수송교육단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은 교육생들도 수료한 날 버스를 타고 보충대로 와서 대기를 한다. [18]

6. 외국의 보충대

6.1. 일본

일본이 일본 제국 시대였을 때 일본 육군이 보충대를 운영했다. 대부분이 사관구 예하의 보충대였는데, 보병, 포병, 공병, 치중병( 보급병+ 수송병), 통신병 보충대로 나눠졌다.

일본 육군은 선박사령부도 운영했는데 선박사령부에서도 예하의 보충대를 운영했다.

6.2. 미국

파일:external/i179.photobucket.com/90th-Replacement-Battalion8-1.gif
미군 90보충대대 정문(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있던 미군 보충대)

미군 90보충대대 영상

미국 본토뿐만 아니라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미국 외의 다른나라에도 보충대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전선, 한국 전쟁 당시의 한국, 베트남 전쟁 당시의 베트남처럼 미군이 참전한 전쟁터와 가까운 곳에서도 보충대를 운영했다. 이들 보충대는 미국에서 오는 병력들이 전입했다.

7. 같이보기



[1] 다만 이곳은 여기서 말하는 '보충대'와는 다른 곳이다. 맨 아래에 자세히 서술. [2] 육군훈련소 입소대대는 2012년 2월에 폐지되었고 입영심사대에 신병교육연대 소속 기간병들이 임시로 옮겨 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3] 육군훈련소 역시 과거에는 입대 4일째까지 입영심사대에 입영장정들을 머무르게 했다. 지금은 바로 훈련소로 들어간다. [4] 단순히 어깨나 허리 등이 아파서 귀가 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불안증세나 적응문제, 걱정 등의 사유로도 얼마든지 귀가 가능하며, 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 꼭 가고 싶다고 해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5] 재입대 전까지 발생하는 시간적 손해,재입대 까지 기간이 많이 남을 경우 대학의 군 휴학을 일반 휴학으로 전환 해야하는 점 등등 [6] 운전병 등 특기병 한정 [7] 간혹 보충대 생활관에 TV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인 TV시청은 불가능하고 신병교육부대와 자대배치 분류시 사용한다. [8] 이 모든 것은 자대배치나 후반기교육 후 일과시간이 끝나면 이용이 가능하다. [9] 다만 흡연의 경우는 기수마다 케바케였던 모양. 306보충대의 일부 기수는 식사 시간을 마친 뒤에만 흡연을 희망해서 손을 든 인원을 한정으로 연병장 한가운데에서 단체로 담배피우는걸 허락해주기도 했는데, 대신 이 때도 구대장이 소지품 검사시에 담배를 전부 다 걷어갔다가 희망하는 인원에 한해 한 개비씩 주고 그걸 피우게 하던 방식이였다. [10] 소지품 검사 때 안 내거나, 집으로 보낼 옷 넣은 박스에 안 넣었거나 [11] 2021년 초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창설되었으며 예하 부대와 병력, 작전계획지를 제12보병사단과 제21보병사단으로 넘기고 2019년 12월에 해체되었다. [12] 제7보병사단과 제15보병사단에 병력과 예하부대, 작전계획지를 넘기고 2022년 11월 30일에 해체되었다. [13] 신병교육대가 있는 사단 소속이더라도 수송부 소속 운전병과 선임탑승자 외에 보충대대 소속 인솔장교와 호송병도 타다가 장정들을 넘겨준 후 보충대 소속 기간장병들을 먼저 복귀시킨 후 그 다음에 사단 수송부 소속 운전병과 선임탑승자가 복귀한다. [14] 경원선 열차를 제5보병사단 병사들 사이에서는 꽃마차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유는 당시 이 통근열차 도장을 꽃 문양으로 가득 채운 것에 착안해서 휴가나 전역시 집으로 보내준다는 의미로 그렇게 불렸었다. [15] 사실 수도권에는 이런 부대가 많다. [16] 입영장정 입장에서는 꽤 오래 걷는 걸로 느껴지지만 2주일만 지나도 매일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군장 뜀걸음에 이건 걷는 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흔히 알려진 고속도로 위에 있는 그 육교와는 다른 물건이다. 그건 신병교육연대와 훈련장을 잇는 다리다. [17] 해군의 경우에는 훈육교관( 훈련교관). 해군 기초군사교육단의 훈육요원은 야전교육훈련대의 유격조교를 제외하고는 전원 간부로 구성되어있다. 그 외엔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수병이 몇 몇 있을뿐인데 그마저도 훈병의 훈육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18] 제1야전수송교육단, 제3야전수송교육단은 각각 상급부대였던 제1야전군사령부와 제3야전군사령부가 2019년에 폐지되고 지상작전사령부의 신설로 수송교육 부문이 육군종합행정학교로 이관됨에 따라 제1야전수송교육단, 제3야전수송교육단은 폐지되고 제1수송교육연대, 제3수송교육연대로 신설되었다. [19] 부산 범전동과 연지동 일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선경마협회 소유의 경마장이었다가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했다. 1945년 9월 17일 미군이 부지를 인수해 사용하다가 1946년 말에 미 영사관과 UN기구에 사용하도록 넘겼고 6.25 당시에 병참기지로 활용되었다. 물자와 인력이 몰리는 특성 탓에 이곳에 미군이 보충대를 설치한 것이다. 캠프 하이얼리어(Camp Hialeah)라고 불렸다. 한국 사람들은 하이얼리어를 하야리아라고 불렀다. 전후 통신부대가 운용되다가 2006년까지 미군 기지가 있다가 부산시와 협약 끝에 폐쇄했다. 2010년 1월에 부산시 반환. 부산시는 공원을 조성했다. 출처 부산시민공원 자리가 바로 8609보충대가 주둔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