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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3:44:39

보얀 크르키치

최소 메시에서 넘어옴
보얀 크르키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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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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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테크니컬 크리에이터
Entrenador de Fútbol Club Barcelona
파일:Bojan Krkić.jpg
<colbgcolor=#064E9C><colcolor=#E4BB74> 이름 보얀 크르키치
Bojan Krkić
본명 보얀 크르키치 페레스
Bojan Krkić i Pérez
Бојан Кркић Перез
출생 1990년 8월 28일 ([age(1990-08-28)]세)
카탈루냐 지방 예이다 주 리뇰라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
[[세르비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 체중 65kg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윙어 / 은퇴)
축구 코치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064E9C><colcolor=#E4BB74> 유스 FC 바르셀로나 (1999~2006)
선수 FC 바르셀로나 B (2006~2008)
FC 바르셀로나 (2007~2008 / 콜업)
FC 바르셀로나 (2008~2011)
AS 로마 (2011~2013)
AC 밀란 (2012~2013 / 임대)
FC 바르셀로나 (2013~2014)
AFC 아약스 (2013~2014 / 임대)
스토크 시티 FC (2014~2019)
1. FSV 마인츠 05 (2017 / 임대)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2017~2018 / 임대)
앵팍트 드 몽레알 (2019~2020)
비셀 고베 (2021~2022)
스태프 FC 바르셀로나 (2023~ / 테크니컬 크리에이터)
국가대표 1경기 ( 스페인 / 2008)
8경기 7골 ( 카탈루냐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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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6.1. 최소 메시?

[clearfix]

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선수. FC 바르셀로나가 배출한 희대의 재능으로, 소위 '최소 메시'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무도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던 세계 최고의 축구 유망주였던 선수다. 그 이후의 행보는 최소 메시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기대치에는 근접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용두사미의 적절한 예시가 되었다.

여러 소속팀을 거치며, 마지막으로는 J리그 비셀 고베에서 뛰었다. 이후 2023년 3월 23일에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2023년 10월, 본인의 친정팀인 FC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타 클럽으로 임대 간 유스 출신들의 육성에 관여하는 역할인 테크니컬 크리에이터 직함으로 라 마시아 소속이다.

2. 클럽 경력

2.1. FC 바르셀로나

파일:보얀 키르키치 - FC Barcelona.jpg
리뇰라 출신의 보얀은 1999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였다. 각 연령별 라 마시아의 득점 기록을 일제히 경신하며 바르셀로나의 대형 유망주로 기대되었다. 특히 2006년 FC 바르셀로나 B로 승격하여 중앙공격수로 주전자리를 잡으며 22경기에서 10골과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등과 함께 공격의 중심을 담당하여 활약을 하는 등 라 마시아에서 7년간 (1999년~2006년) 통산 900 득점 이상을 올리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대활약으로 2007-08 시즌 불과 16세의 나이로 도스 산토스와 함께 1군팀 선수로 승격하며 프리 시즌 하츠 전에서 득점에 관련되는 활약을 보였다. 그가 프리메라 리가에 데뷔 한 것은 2007년 9월 16일 CA 오사수나 전이며, 이 당시 나이는 17세 18일이었다. 또한 9월 19일에 열린 올랭피크 리옹 전에서 17세 21일의 나이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1개월 후 10월 20일, 비야레알 CF 전에서 리가 데뷔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최연소 득점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 데뷔골의 어시스트는 이전 기록 보유자인 리오넬 메시였다. 이 2007-08 시즌 꾸준히 경기에 출전해 31경기 10골을 올리는 등 1군팀에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17세에 데뷔한 라울 곤잘레스의 9골을 경신한 프리메라 리가의 최연소 신인 최다골 기록이었다.

또한, 데뷔 당시에는 스페인 노동법에 의해 18세 미만과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와 프로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첼시 등 잉글랜드 클럽이 보얀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본인은 바르셀로나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천명하고 결국 18세가 된 직후 바르셀로나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2008-09 시즌부터 등번호를 이적한 잔루카 잠브로타의 번호인 11번으로 변경하였고, 23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2009-10 시즌 23경기 8골을 기록하였다. 2010-11 시즌부터 등번호를 이적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번호인 9번으로 변경하였고, 27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2010년 12월 FC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을 2015년까지 연장하였다. 바이아웃을 1억 유로로 설정하였다. 2011년 3월 헤타페 전에서 클럽 사상 최연소 리가 100경기 출전을 이루었다.

2007/08 시즌: 48경기 12골 5도움
대회 선발 득점 도움
프리메라리가 31 10 3
FA컵 8 1 1
챔피언스 리그 9 1[1] 1
합계 48 12 5


2008/09 시즌: 42경기 10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메라리가 23 2
FA컵 9 5
챔피언스 리그 10 3[2]
합계 42 10


2009/10 시즌: 32경기 15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메라리가 23 8
FA컵 4 2
챔피언스 리그 5 1[3]
합계 32 15


2010/11 시즌: 35경기 7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메라리가 27 6
FA컵 5 1
챔피언스 리그 3 0
합계 35 7

FC 바르셀로나 157경기 44골 5도움

2.2. 이적과 몰락

라리가 규정상 A팀과 B팀에서 로스터에 같이 등록될 수 없기 때문에 U20에 출전할 나이규정을 넘어서 백업 요원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성장하지 못하게 되자 2011년 7월 루이스 엔리케가 이끄는 AS 로마에 1,20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또한 이 계약은 2012-13 시즌 종료 후 FC 바르셀로나가 1,300만 유로를 내고 의무적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옵션은 AS 로마에 의해 거절이 가능하나 그 경우 이적료 총액이 4,000만 유로로 증액된다. 일명 '바이백' 조항.

로마 이적 후 2011년 10월 1일, 아탈란타 BC 경기에서 다니엘레 데 로시의 어시스트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11-12 시즌 로마에서 33경기 7골을 기록하였다. 별다른 활약이 없이 2012년 8월 29일 AC 밀란으로 1시즌 임대[4]되어 19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어째선지 한국 인터넷에 이런 내용이 퍼져있다.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보얀 크르키치를 FC 바르셀로나에 사기 시도. 이건 봉이 김선달 저리가라할 재간이었다. 과거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최소 메시' 소리를 듣던 보얀은 바르셀로나의 두터운 공격진 뎁스를 뚫지 못하고, AS 로마로 이적했다. 그리고 젊은 선수에게 항상 그러듯이, 바르셀로나는 보얀에게 13M의 바이백 조항을 달아놓았다. 하지만 보얀은 부상이나 전술 문제, 생각보다 더딘 성장 등으로 AS로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AC 밀란으로 임대 이적했다. 갈리아니는 보얀을 꽤 쏠쏠한 서브로 써먹었지만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쌌다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AS로마가 18M으로 팔려고 하는데 만일 바르셀로나가 바이백으로 보얀을 영입하면, AC밀란이 바르셀로나에서 15M에 구매하겠다'라는 운을 띄웠다. 그 과정에서 '바르셀로나는 수수료 2M을 얻고 AC 밀란은 그래도 3M 싸게 산다'는 서로서로 좋은 제안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그대로 낚였다. 일단 바이백으로 보얀을 구매한 바르셀로나는 어차피 다비드 비야도 자리 못잡는 상황에서 약속대로 보얀을 AC밀란에 팔려고 했으나, 웬걸. 갈리아니가 말을 싹 바꿔서 15M이 아니라 5M에 사겠다라는 역제안을 한 것이다. 순간 빡친 바르셀로나는 15M에서 다시 13M 그리고 다시 10M으로 바꿨으나 갈리아니는 5M만 고집했고 결국 바르셀로나 보드진은 판을 접었다. 결국 없는 돈에 필요도 없는 보얀을 13M에 사온 바르셀로나는 다시 아약스로 임대보내야 했다. 그리고 갈리아니는 보얀을 5M에 영입할 수도 있었던 희대의 기회를 아쉽게 접어야 했는데, 5M에서 한 푼도 안 올린 것을 봐서는 아님 말고 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간에 있던 AS로마만 다소 이득을 보았다.
하지만, 당연히 이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애초에 갈리아니가 사기꾼도 협잡꾼도 아니고, 바르셀로나도 저런 허술한 수법에 당할만큼 멍청하지도 않다. 만약 정말로 저런 식이였다면 바르셀로나는 밀란과 문서로 제대로 된 사전 계약을 맺고 바이백 조항을 이행했을 것이다. 원래 바르셀로나와 로마와의 계약은 이렇다.
바르셀로나는 로마에 12M 유로의 이적료를 받고 보얀 키르크치의 이적시킨다. 여기에는, 2012-2013년 시즌이 끝나고 바르셀로나는 의무적으로 13M 유로를 주고 바이백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로마가 이를 막고 싶다면 28M 유로를 바르셀로나에 더 지불해야 한다.
(Barcelona have confirmed they have agreed to sell forward Bojan Krkic to Roma for €12 million. The deal includes an obligatory buy-back clause that would see Barca re-sign the player at the end of the 2012-13 season for €13 million, but Roma can nullify the clause if they pay a further €28 million.) 참고
한편 보얀이 밀란으로 임대가면서 새로 맺은 계약은 이렇다.
밀란은 25만 유로를 주고 로마로부터 보얀을 임대한다. 만약 밀란이 보얀을 영구적으로 영입하고 싶으면 15M 유로를 바르셀로나에 지불하면 된다.
AC Milan have in fact paid 250.000 euros to obtain the Catalonia international on loan from AS Roma, and should pay 15 million euros to Barcelona to sign the player on permanent deal at the end of the season 참고
때문에 15M을 주고 살지 안 살지는 애초에 밀란 맘이였다. 물론 보얀을 써 본 결과 밀란은 주전도 못차는 선수를 15M이나 주고 영입할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위에 언급된 5M 유로도 보얀을 어떻게든 팔아치우고 싶었던 바르셀로나가 제안한 거지 갈리아니가 제안한게 아니다. 물론 5M마저도 거절됐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

이렇게 밀란과의 임대 계약이 끝나자 보얀은 당연히 로마로 되돌아 갔고 바르셀로나는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13M을 로마에 내주고 보얀을 다시 데려왔던 것 뿐.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일 뿐이지 갈리아니가 사기 친 건 아니다.

이렇게 2013년 7월 바르셀로나가 바이백을 통해서 재영입하였고, 복귀하자마자 7월 3일 AFC 아약스로 1시즌 임대되었다. 그러나 아약스에서도 24경기 4골에 그치면서 그의 실력이 수준 이하까지 떨어졌음이 명백해졌고, 이 시점에 보얀의 빅리그 커리어는 사실상 끝났다.

2.3. 스토크 시티 FC

파일:보얀 키르키치 - 스토크 시티 FC.jpg
2014년 7월 22일 스토크 시티 FC로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종전의 바이아웃 금액 1억 유로와는 비교조차 민망한 180만 유로이며, 계약기간은 4년간이다.

7월 29일 샬케 04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8월 16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헌데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 후에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20일 스완지전에는 아예 후보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에 보얀은 충격받아서 라커룸에서 축구화를 던지는 초조한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11라운드 토트넘 원정에서 왕년의 향취가 느껴지는 30m 돌파 후 중거리슛을 작렬시키며 EPL 데뷔골을 신고했고, 팀은 1-2로 승리하였다. 15라운드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였는데, 한 골이 다소 억울한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취소되었다.

그래도 경기 내내 종횡무진 맹활약하며 팀의 3-2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12월 29일 웨스트 브롬과의 홈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당분간 결장하게 되었다.

1월 복귀하여 레스터 시티전 결승골을 기록했고, FA컵 로치데일과의 32강전에서도 골을 넣어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며 그만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점차 폼을 끌어올리고 있던 본인에게도, 보얀이 골을 넣은 경기는 모두 승리했던 팀으로서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15-16 시즌이 되어 9월 19일 레스터 시티와의 6라운드 경기에 9개월만에 선발 출장해 복귀골을 넣었다.

15R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제르단 샤치리,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와 함께 스리톱으로 나서 니콜라스 오타멘디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센터백 듀오를 농락하며 맹활약했다. 보얀은 멋진 힐 패스 등을 구사하며 많은 기회를 창출했으며 바르샤 시절 테크닉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팀은 아르나우토비치의 멀티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17R 크리스탈 팰리스 와의 홈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75분 동점골을 넣었지만 팀은 88분 이청용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그만 패하고 말았다.

18R 3무 3패로 경질설이 꾸준한 루이 판 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맞아 멤피스 데파이가 다이빙 헤딩으로 골키퍼에 패스한 걸 가로챈 동료선수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고 경기는 2:0 승리를 거두었다.

위의 활약 등 스토크에서 기량을 펼치는 모습을 보이며 스토크 시티와 2020년 여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5] 보얀 본인도 기량을 펼치게 해 준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인터뷰로 남겼다. 스토크를 패싱 위주의 매력축구로 만들어준 핵심 전력이였고, 보얀에게도 부활의 기미를 마련해준 곳이라 팀이나 선수에게나 좋은 재계약일 듯 하다.

16-17 시즌 팀이 끝도없이 삽질을 하고 있을때 본인 자체도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조 앨런과 둘만 축구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원래 패싱센스도 좋고, 현재 팀상황에서 앨런과 둘이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패스를 주는 모양새라 그런 평가를 받는다.

쓸 놈만 쓰는 성향이 강한 마크 휴즈 감독이 다른 전술로 재미를 보자 제로톱을 점점 쓰지 않고, 중원이 포화되어가면서 스토크에서도 서브로 밀렸다.


2014/15 시즌: 16경기 4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미어리그 16 4


2015/16 시즌: 27경기 7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미어리그 27 7


2016/17 시즌: 9경기 3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미어리그 5 3

스토크 시티 52경기 14골[6]

2.3.1. 1.FSV 마인츠05 (임대)

2017년 1월 29일 마인츠로 임대 이적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22일, 9경기만에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경기 시작 3분 만에 득점에 성공해 팀의 2-2 무승부에 일조했다. 이 득점으로 보얀은 라리가, 프리미어리그, 세리에 A, 분데스리가로 대표되는 유럽 4대 리그에서 득점한 일곱 번째 선수가 됐다. 나름 진귀한 기록을 세운 셈이다.


2016/17 시즌: 11경기 1골
대회 선발 득점
분데스리가 11 1

2.3.2.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임대)

2017년 8월 31일 알라베스로 임대 이적하며 오랜만에 라리가로 복귀했다.


2017/18 시즌: 13경기 0골
대회 선발 득점
프리메라리가 13 0

2.3.3. 스토크 시티 FC 복귀

팀이 강등되었기 때문에 이적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잔류했다.

팀 동료 제르단 샤키리 리버풀 FC로 이적한 상황이다.

2018-19 시즌 33경기에 출전하였으나 4골에 그쳤고, 2019년 8월 6일 스토크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2.4. 앵팍트 드 몽레알

파일:Bojan_Montreal.jpg
2019년 8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 앵팍트 드 몽레알 팀과 계약하였다.

이적한지 2달도 채 안돼서 9월 26일 토론토와 캐나다컵 결승에서 승리하여 우승컵을 따냈다.

18경기 4골 4도움으로 이전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였으나 2020년 12월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 뒤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새로운 팀을 알아보는 중인데 일단 빅리그 경력은 충분하고 이적료가 없으며 시즌중 몇골은 뽑아주는 만큼 시즌이 끝난 뒤 그를 백업선수로 영입하려는 빅리그 팀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를 찾는 구단이 없었는지 20-21 시즌이 끝났는데도 무직신세이다. 무직상태가 길어질수록 실전감각에 문제가 생겨 기량이 쇠퇴하기 마련인지라 더 이상 주요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보인다.

2021년 3월 FC 바르셀로나의 회장선거에서 소시오로서 투표에 참여하였다.


2019 시즌: 8경기 3골
대회 선발 득점
메이저 리그 사커 8 3


2020 시즌: 19경기 4골
대회 선발 득점
메이저 리그 사커 19 4

2.5. 비셀 고베

무적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얀은 북미를 떠나 아시아 리그에도 눈을 돌렸다. 2021년 초에는 K리그1의 상위권 구단과 접촉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보얀이 무려 먼저 프로필을 돌렸다는 충격적인 루머가 전해지며 많은 축구 팬들이 격세지감을 느꼈다. 또한 이 소식이 실제 축구 기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인 볼만찬 기자들에서도 언급되며 루머가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컨디션이 영 별로였는지 K리그 이적은 성사되지 못하면서[8] 보얀은 또 2021년 전반기를 무적 신세로 지내다가, 2021년 8월 9일 J1리그 비셀 고베에서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보얀의 완전이적 소식을 전했다. 이로서 보얀은 FA로 풀린지 8개월만에 드디어 새 소속팀을 찾았다.

그러나 시즌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21시즌의 최종 성적은 6경기 1골.

이후 3월 20일에는 인도네시아 1부 리그의 랭스 칠레곤 유나이티드가 보얀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다. 변방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영입을 고려할 정도면 보얀의 선수로서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2022년에도 고베에 잔류했다.

2022년 12월 27일, 비셀 고베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계약 만료로 풀리면서 FA 신분이 되었다. # 그리고 2022년 12월 29일 스페인 매체 피차헤스를 통해 RCD 에스파뇰 지로나 FC 등 라리가 여러 팀에서 영입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2.6. 은퇴

2022년 12월 일본 J1리그 비셀 고베에서 방출된 후, 2023년 3월 23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그의 나이 32살. 부상 때문도 아니고 실력 저하로 인해 은퇴했다고 한다. 은퇴식은 본인의 전성기를 보낸 FC 바르셀로나에서 열어주었고 보얀의 은퇴는 스포티파이 캄 노우의 리모델링 전 마지막 행사가 되었다.

은퇴 이후 2023년 10월, 본인의 친정팀인 FC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타 클럽으로 임대간 유스 출신들의 육성에 관여하는 역할인 테크니컬 크리에이터 직함으로 라 마시아 소속이다. #

3. 국가대표 경력

파일:Bojan-Krkic.jpg
한국에서 열린 2007년 FIFA U-17 월드컵 때 스페인 U-17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다. 당시 스페인은 준우승했다.

아버지가 세르비아 출신으로 세르비아 대표도 가능하지만 그는 태어난 나라 스페인을 선택하였다. 2008년 9월 10일 남아공 월드컵 예선 아르메니아와의 경기에서 A대표로 데뷔하였고 25분 출전했다.

2016년 세르비아 축구 협회는 보얀의 세르비아 대표팀 발탁 가능 여부를 FIFA에 타진했다. FIFA는 성인 A대표팀 공식 경기 출전 선수의 국적 변경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있으나, 보얀의 경우 A 대표팀 공식 경기 출전이 8년전에 단 1경기, 그것도 25분에 불과해서 예외를 적용시킬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결국 불허했다. 이유는 원칙을 적용시켜서 보얀의 A 대표팀 출전 경기가 공식 경기(월드컵 예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침투로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득점을 하는 스타일이다. 스토크 시티에서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윙 포워드로 활약했었다. 바르셀로나 출신답게 가끔 창의적인 패스를 보여주기도 하며 드리블을 짧게 잘 치는 편으로 스토크시티에서는 이러한 보얀의 장점을 바탕으로 보얀이나 샤키리를 이용하여 수비진을 흔든 뒤 아르나우토비치 등 다른 팀원들이 득점을 하거나 본인들이 득점을 하는 식의 전술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결정력도 준수한 편이지만 훌륭하다고 할 순 없다. 그냥 넣어줄건 넣어주는 정도고 중거리 슛이나 감아차기 이런 건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MLS 진출 후에는 중거리 슛으로 몇번 골맛을 보았지만 커리어를 통틀어서 봤을 때 MLS 리그를 제외하고는 슛에 큰 장점이 있는 선수라고 볼 수 없다.

보얀이라는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리해봤을 때 커리어 초반 (바르셀로나 시절) 에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침투를 하는 선수였고 그 후 (스토크시티 시절 ) 에는 팀의 크랙으로써 훌륭한 드리블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며 빅클럽과 링크도 많이 나기도 하였으나 폼이 올라오던 중에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서 자신의 장점인 드리블도 많이 꺾였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파일:MessiBojan.jpg

6.1. 최소 메시?

파일:보얀 키르키치 - 최소 메시.jpg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제일 유명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최소 메시라는 유망주 시절 그의 별명이다. 실제로 8살 때 바르셀로나에 처음 들어온 후 비공식 경기에서 통합 900골에 달하는 골을 기록했다는 말들이 전해진다.

최소 메시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계기는 그의 데뷔골과 데뷔 시기가 당시 이례적일 정도로 빠른 데뷔와 성공을 거둔 유망주 리오넬 메시보다도 더 빨랐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 2007년 10월 20일 그 메시 본인의 어시스트를 받아 메시가 보유했던 최연소 데뷔골의 기록을 경신하며 보얀은 최고의 유망주로 우뚝 서게 된다.[11]

그러나 프로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메시의 기록을 경신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어느정도 과장되었단 말이 많다. 경기력과 잠재력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으며, 바르샤의 지원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유망주 시절 메시의 위상과 비교했을 때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어쨌거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데뷔한 프로 무대였지만 보얀은 고질적 약점이던 약한 피지컬로 고전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향한 클럽과 팬들의 기대치에 따라온 무게감도 버텨내질 못했다. 즉 실력도 충분치 못한데 피지컬에서 밀리는데다 멘탈까지 무너졌으니 애초에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보얀의 고향은 리뇰라인데, 이 곳은 FC 바르셀로나의 연고지인 카탈루냐의 행정구다. 즉 보얀은 FC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성골 유스였고, 이는 보얀에 대한 언론의 압박과 팬들의 기대치를 더욱 증폭시키게 만들었다.[12]

보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유리 멘탈이다. 유로 2008 당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에서 소집을 거부한 일이 있었는데, 후일 보얀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그가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고 거리를 걸을 수도, 극장에 갈 수도 없을 정도의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2016년 6월 인터뷰를 통해 당시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밝혔다.

이런 부담감이 원체 내성적이었던 보얀의 성격을 더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후일 로마로 이적했을 당시 기가 쎈 성격의 이탈리아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던 보얀의 성격은 팀에 적응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더더욱 눈총을 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기대가 역효과를 낳아 보얀은 빅리그 정착에 실패했고, 유망주 시절의 위상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물론 프로무대에 걸맞은 성장세와 멘탈을 갖추지 못한 것은 보얀 본인의 실력 문제라 할 수 있으나, "최소 메시"라는 과장된 기대와 중압감이 어린 꿈나무였을 뿐이던 그에게 악영향을 끼친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 보얀은 유망주에게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선수를 망칠 수 있다의 표본으로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스포츠 기사에서 "한국에 잘나가는 유망주가 있다더라"라는 기사가 뜨기만 하면 미디어의 너무 과한 관심이 독이 된 예시로는 보얀, 잘한다고 어릴 때부터 혹사 시키면 안된다는 것의 대표 예시는 이동국이 거론될 정도다.

보얀이 이런 기대와 설레발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은 명확하다. 보얀은 자신이 메시 급의 선수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 때문에 공황 장애까지 왔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경기에 나서기 몇 분전에 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시절, 국대 소집 공문이 내려와서 사정을 설명한 뒤 정중히 거절했는 데 연맹에선 마치 보얀이 아무 이유 없이 국대 소집을 거부한 것처럼 보도해 욕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 역시 보얀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전 포지션 월드 클래스의 위엄을 휘날리던 황금기 세대의 FC 바르셀로나 동료들 사이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압박감,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렇게나 비교당하는 대상인 리오넬 메시가 같은 스쿼드,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으며 그가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하나로 성장해 나가는 걸 직접 옆에서 보며 느끼는 부담감 역시 한 몫했을 것이다. 최근 인터뷰 번역본 # #

어쨌거나 유망주때 대성했다가 성인이 되면서 거품이 빠진 선수의 대명사 격이라[13] 그런지 본인도 유망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압박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하고 있으며 최근엔 같은 팀 후배인 안수 파티나 펠릭스, 비니시우스 등에게 공개적으로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힘든 시간을 보낸 만큼 당시 감독들과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원망이 쌓여있는지 이들에 대한 앙금을 공개적으로 표시한 적도 많다. 펩 과르디올라, 루이스 엔리케와는 커피 한잔도 하기 싫다며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고 특히 엔리케는 선수와 소통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16살에 데뷔했을 당시 1군 선배 선수들에게서 질투하는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14] 다만 본인이 공황장애에 걸렸고 부담감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단 것을 생각하면 다른 선수들이 진짜로 질투한게 아니라 본인이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선 감독과 선수들의 태도에 대한 보얀의 주장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나돈다.[15]


[1] vs 샬케04 1골 [2] vs FC 바젤 2골, vs 스포르팅 리스본 1골 [3] vs VfB 슈투트가르트 1골 [4] 이건 바르셀로나가 임대를 해줬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가 AC 밀란에게 임대를 해준 것이다. [5] 당시 보얀의 에이전트는 카를레스 푸욜이었고, 푸욜이 맺은 첫 번째 대형 계약이라고 한다. [6] 리그컵 기록과 도움은 산출하지 못했으므로 프리미어리그 골 갯수만 기록 [7] MLS컵 기록과 도움은 산출 못했으므로 메이저 리그 사커 골 갯수만 기록 [8] 애초에 예상할만한 결말이었던 것이, MLS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보얀을 클래스 차이가 거의 없는 K리그에서 환영할리 없다.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고 온 맥스웰 아코스티조차 2부리그인 K리그2에서 용병으로 뛰는 신세다. [9] 돈 발롱 어워드 [10] 부계로 가정해서 따져도 10촌 관계인데 조선시대에서도 상복을 입게 되는 친척은 8촌 이내였다.더구나 실제로는 메시의 외할머니, 보얀의 엄마에서 부계가 아닌 모계로 이어지므로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이런 관계까지 친척으로 보지는 않았다. [11] 이 기록은 12년 뒤인 2019년 8월 31일 16세 304일의 안수 파티에 의해 깨지게 된다. [12] 물론 카탈루냐 내에서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많이 발굴 되지만, 대표적인 얼굴마담 유망주인 "공격수"는 요원했다. [13] 사실 멘탈 문제가 결정적이어서 그렇지 돌아보면 피지컬이 성인 무대에서 적응하기에 꽤나 부족했고 그 외의 단점도 많은 선수였다. 단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 몇골씩은 뽑아준 걸 보면 메시만큼은 아니라도 빅리그 레벨로 성장이 가능한 잠재력을 가지긴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14] 이는 보얀의 비교 대상인 리오넬 메시가 16살 때 1군에 막내로 들어갔을 당시 호나우지뉴 뿐만이 아니라 모든 1군 선배 선수들이 자신을 매우 귀여워했으며 1군에 빨리 합류할 수 있도록 푸쉬도 해주고 적응을 도와줬다고 주장한 것과 대비된다. [15] 보얀과 똑같은 라 마시아 출신에 비슷하게 어린 나이에 데뷔했지만 실력은 훨씬 뛰어났던 메시는 선수단의 총애를 받았는데 실력이 메시에 못 미친 보얀이 질투와 견제를 받았다는 것은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시는 16살 당시 참여한 첫 훈련때부터 1군 선수들을 모조리 개발살내고 다녀 선배 선수들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거나 질투를 할 만한 일화들을 수시로 만들던 선수였고 성격 역시 선수 생활 초기에는 보얀보다 더 소심해서 동료인 피케가 메시를 벙어리로 오해했다거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팀에서 버릇없는 후배라고 오해를 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