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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2 16:59:50

벨라베자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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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벨라베자조약.jpg
1991년 12월 8일에 열린 벨로베즈스카야 조약 서명식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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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Союз ССР как субъект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и геополитическая реальность прекращает своё существование
국제법적 및 지정학적 실체로서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 벨라루스 벨로베즈스카야 숲에서 이루어진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의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 중
1991년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대거 참여해 강대국 소련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박히도록 만들었다.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 2022 알라딘 미리보기p.33

1991년 소련의 일부 구성국간에 체결한 조약. 벨라루스 벨라베자 숲의 명칭에서 유래하며 영어식으로는 벨로베자 조약(Belovezha Accords)이라 한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SFSR 대통령 보리스 옐친, 벨라루스 SSR 최고회의 의장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우크라이나 SSR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것에 합의한 조약이다. 이 조약을 끝으로 소련은 완전히 해체됐다.

2. 역사

8월 쿠데타 실패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 이후 12월 8일 벨라루스에 위치한 벨라베자 숲의 별장에 모여서 서명한 조약이다.

이 당시 옐친은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라베자의 사냥 휴양숲에서 크라우츠크를 만났을 때 한 번 더 새로운 연방 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크라우추크는 크림 반도와 동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모든 주의 국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을 끝내 거부하자 옐친도 우크라이나 없이 서명할 수는 없다면서 연방안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1]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행위가 소련 정부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으나 다른 공화국들이 이를 동의하자 고르바초프도 결국 승인하게 되었다.

이 조약과 함께 같은 해 12월 21일에 체결된 '알마아타 조약(Alma-Ata Protocol)\'[2]으로 인해 독립국가연합이 수립되면서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12월 26일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1991년 소련 국민투표 결과에서 보듯이 소련 해체 반대 여론이 훨씬 더 높았던 과거가 있지만 소련의 핵심국가인 우크라이나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표로 독립을 찬성하자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007년에 보리스 옐친이 사망하고, 2022년 5월 4일에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2022년 5월 10일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사망함으로써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의 3인방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 [2] 러시아어: Алма-Атинская деклараци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