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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2:38:49

발타자르(당나귀 발타자르)

<colbgcolor=#522214><colcolor=#ffffff> 발타자르
Balthazar
파일:발타자르 프로필.jpg
출생 불명
가족 불명
배우 불명

1. 개요2. 작중 행적3. 당나귀 EO EO와의 차이점4. 결말에 대한 해석5. 연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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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베르 브레송 감독 및 각본의 1966년작 프랑스 영화인 당나귀 발타자르의 주인공. 이름은 당연하게도 동방박사 중 한 명에서 따왔다. 참고로 발타자르는 예수가 겪을 미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상징하는 중년 모습의 현자이다. 영화의 당나귀가 겪을 운명을 암시하는 이름인 셈.

영화사상 유명한 당나귀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대중적으로는 동키(슈렉)이 가장 유명하지만, 시네필들에게 당나귀하면 동키만큼이나 이 캐릭터가 자주 언급된다. 심지어 틸다 스윈튼이 최고의 연기 모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며 이 외에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배우 롤모델로 꼽는 사람도 있을 정도.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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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나귀 발타자르의 라스트 씬
이 영화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은 바로 마지막 장면에 있다. 발타자르는 동네 패거리에 의해서 밀수품을 운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동네 패거리는 누군가가 쏜 총소리에 놀라서 도망간다. 하지만 이때 발타자르는 총소리 덕분에 동네 패거리와 헤어지는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쏜 총알을 맞게 된다. 그렇게 어렵사리 넒은 초원에 도착한 발타자르는 우연히 양떼를 보게 된다. 그렇게 양떼들 사이에서 쉬다가 결국 발타자르는 쓰러져버린다. 그렇게 양떼가 마치 문상에 온 사람처럼 눈을 뜬 채로 죽음을 맞이한 발타자르를 잠시 바라본 다음 이동한다. 그렇게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발타자르의 시체를 보여주며 영화가 끝난다.

3. 당나귀 EO EO와의 차이점

참고로 당나귀 발타자르와 당나귀 EO의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죽은 이후의 표정이다. 발타자르의 경우 양떼 주변에서 주저앉고 쓰러진 끝에 죽는다. 그때의 표정을 잘 보면 희미하지만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자신은 좋은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EO의 경우 죽음을 맞이한 이후의 얼굴 표정이 전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EO가 곧 닥치는 죽음 앞에서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발타자르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도 영화상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이건 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앞에서는 동물의 생명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당나귀 EO에서는 캡티브 볼트 권총 소리만 EO의 죽음을 암시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당나귀 발타자르와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당나귀 EO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생긴다.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발타자르의 사인은 누군가가 쏜 총으로 인해 생긴 총상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 혹은 폐혈증이다. 하지만 당나귀 EO에서 EO의 사인은 인간이 하는 도축에 의해 생기는 고의적인 총상이다. 하지만 더 차이가 나는 것은 두 당나귀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발타자르는 양떼를 보고 나서 그냥 양떼들 사이에서 있다가 쓰러지며 죽는다. 하지만 EO는 아예 도살장에 자발적으로 들어간다. 사실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EO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서 도살장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즉, 발타자르는 조금은 수동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당나귀라면 EO는 들어가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을 자발적으로 하며 아예 스스로의 죽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4. 결말에 대한 해석

우선 동네 패거리는 동물을 괴롭히고도 반성하지 못하는 동물 학대를 하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동네 패거리는 이 작품에서 여러 번 발타자르를 괴롭힌 인물이라는 점에서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치게끔 만든 누군가가 쏜 총은 이런 인간의 악행을 보다 못한 신적인 존재가 경고의 차원에서 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쏜 총이 발타자르를 맞췄다는 건 발타자르의 일생이 끝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넒은 초원은 인간 때문에 평생 고생만 당하고 불행만 찾아온 발타자르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자 마지막 안식처에 해당한다. 당나귀는 초식동물이므로 풀을 먹고 살기 때문에 초원이 당나귀에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양떼는 문상처럼 고생한 발타자르에게 마지막 위로와 추모를 하는 존재이다. 양치기 개는 양떼와는 다르게 발타자르를 경계하며 짖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일에만 열중인 생명체다.

그 외에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오는 종소리는 발타자르를 위한 일종의 레퀴엠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잔잔한 선율의 피아노 곡도 종소리와 같은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발타자르의 시체를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데 자세히 보면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발타자르에게는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일생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일생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5. 연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