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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00:23:35

박노해

파일:_박노해시인.jpg
성명 박노해(朴勞解)[1]
출생 1957년 ([age(1957-11-20)]세)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종교 가톨릭( 세례명 : 가스파르)
학력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
2.1. 1980년대 <노동의 새벽>2.2. 1990년대 사형 구형, 무기징역 선고2.3. 2000년대 사진작가이자 평화활동가
3. 작품
3.1. 시집
3.1.1. 노동의 새벽(1984)3.1.2.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3.1.3. 너의 하늘을 보아(2022)3.1.4. 그 외
3.2. 에세이
3.2.1. 눈물꽃 소년(2024)
3.3. 사진집3.4. 그 외
4. 전시
4.1. 20104.2. 20124.3. 20134.4. 20144.5. 20154.6. 20164.7. 20174.8. 20184.9. 20194.10. 20204.11. 20214.12. 20224.13. 2023
5. 기타
5.1.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공연5.2. NHK 다큐 <한국의 새로운 희망, 박노해 - 사람만이 희망이다->
6. 논란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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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시인, 노동운동가, 사진작가.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2]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인 2022년 5월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가 출간됐다.
2024년 처음으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담은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이 출간됐다.

2. 생애

1957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보성군 벌교읍 농가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독립 운동과 진보 운동에 참여했으며, 판소리 가수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16세에 서울특별시로 올라가 낮에는 일을 하고 선린상고에서 야간 수업을 들었다. 건설, 섬유, 화학, 금속, 물류 분야에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2.1. 1980년대 <노동의 새벽>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1980년대는 노동시 창작도 가장 활발했다.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가 이 시대를 대표한다. # 박노해는 졸업 후 여러 업종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한편으로 시도 쓰기 시작했는데 1983년, <시와 경제>지에 '시다의 꿈'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4년에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시집으로서는 거의 최초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한국 시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미쳤다. 당연히 당시 5공 군사독재 정권은 이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서 탄압했지만, 이 시집은 널리 읽혔고 약 1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이란 문구에서 앞글자를 따서 필명을 지었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시를 발표하고 운동하는 7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그동안 그의 신원을 알아내려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언론에 추측 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 그는 누구인가 1988년 중앙일보 기사[3]

2.2. 1990년대 사형 구형, 무기징역 선고

이후로 박노해는 시인이자 노동자라는 이름에 투쟁가를 더하게 되는데 1985년 김문수, 심상정과 함께 공개적인 노동자 정치조직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4]을 창립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했고 서노련이 정권의 탄압으로 와해되자 백태웅 前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1989년 비공개 지하조직인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을 결성하였다. <노동의 새벽> 출간 이후 무려 7년여의 수배 생활 끝에 1991년 안기부에 체포됐다. 24일간의 고문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으로 선고되었다. 박노해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사형장에서 사라지더라도 더 많은 박노해가 나타나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해주길 바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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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7년 6개월 만에 출소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부터 출소 이후 박노해가 보인 행보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 전반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다. 일부에선 변절이라고 공격하고, 또 일부에선 진화이자 성장이라고 옹호하였다. 그는 <노동의 새벽> 출간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2.3. 2000년대 사진작가이자 평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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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ddaf1a11aa8cc7ef4ccb1ccf066465d.jpg
2007년 전쟁의 레바논에서 2006년 쿠르디스탄 설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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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aos.jpg
2011년 파키스탄의 파슈툰 아이들 학교에서 2011년 라오스 농부와 함께

2000년, 박노해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반전평화운동에 전념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 곁에 있어주기 위해" 이라크로 향했다. # # 2006년 한국군의 중동 파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 팔레스타인, 쿠르디스탄, 파키스탄, 아체(인도네시아), 버마, 인도, 에티오피아, 수단, 페루, 볼리비아와 같이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나라들로 떠나 평화활동을 계속했다. 2010년 중동평화활동을 모은 첫 사진전인 <라 광야>와 중동, 아프리카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같은 해, 저항, 영성, 교육, 삶, 혁명, 사랑 등의 주제로 한 10년만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4년에는 27일간 3만 5천 여 관람객이 다녀가 '박노해 현상'을 다시 일으킨 <다른 길>사진전-세종문화회관-을 개최하였다.

'라 카페 갤러리'(나눔문화 운영, 부암동에서 통의동으로 이전)에서 박노해 상설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참조. 현재 22번째 전시 <올리브나무 아래>전이 열리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38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시집”이 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인 2022년 5월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가 출간됐다. 3천여 편의 육필 원고 가운데 301편을 묶어 펴낸 이 시집에는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낭송되고 사랑받은 시들, 그러나 책으로는 처음 출간되는 「너의 하늘을 보아」, 「별은 너에게로」, 「살아서 돌아온 자」, 「경계」, 「이별은 차마 못했네」, 「동그란 길로 가다」 등의 시도 수록되어 있다.

2024년 2월 생애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이 출간됐다. 직접 그린 연필 그림과 함께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3.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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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

[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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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집 ]


[ 그 외 ]}}} ||

3.1. 시집

3.1.1. 노동의 새벽(1984)

박노해의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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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참여했을 적에는 노동자를 옹호하고 이들의 삶과 고통을 다루는 시를 많이 적었다. 또한 정부 자본가를 비판하는 내용의 시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노동의 새벽, 시다의 꿈 등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은 당시 운동권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비롯해 문단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가 일반 노동자 출신의 시인이라는 것도 적잖은 충격이었다.[5]
한국 현대시사에서 노동시가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박노해의 1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과 더불어 가능해진 일이다. 그 이전에 쓰여진 신동엽의 '종로 5가', 신경림의 '농무', '장마'와 같은 시들 역시 노동의 문제를 소재로 했으나, 그것은 비노동자인 주체가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었다. 이와 비교할 때 박노해의 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현실을 직접 써냄으로써 구체적인 현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노동의 새벽> 이전의 문학이 민중을 향한 민중문학이었다면, 그 이후의 문학은 민중에 의한 민중 문학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집은 리얼리즘 시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
박노해의 시는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사상적 변화와 그에 따른 내용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라는 주제를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삶이 그에게 준 가장 큰 보상이자 자원이다. '범수아제'(시 '올 줄'), '김점두 아저씨'(시 '몸속에 남은 총알') 등은 어린 그에게 삶의 삶의 깨우침을 준 사람들이고, 감옥에서 독방에 있는 그를 위해 새를 보내준 사람들(시 '새')나 눈속에서 길을 잃은 그를 며칠 동안 돌봐준 오지의 할머니(시 '너와집 한 채')는 절망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과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 준 사람들이다. 특히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위하고 자신을 단정하게 갈무리했던 할머니(시 '그 겨울의 시',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와 평생 고된 노동을 하고 살면서도 자식들한테는 바르고 옳은 길을 가르쳤던 어머니(시 '어머니의 새해 강령', '숟가락이 한주먹이면')는 박노해의 삶의 평생의 모델이 된다. 덕분에 그의 시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달라졌을 뿐이다.
출처: 국학자료원 <1980년대 한국 시인론> 중 '노동시의 탄생과 성장, 소멸, 그 후의 생명과 나눔의 철학-박노해론'

3.1.2.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

6만 부 넘게 판매되었다. 알라딘 독자 선정 2010년대 최고 시집 3위
10년 만에 시집을 낸 이유
사람은,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침묵이 차오를 때 진정한 말이 되지요. 침묵의 크기만큼 시는 깊은 울림을 낳고, 침묵의 깊이만큼 시는 멀리 가는 거겠지요. 너무 쉬운 사랑고백은 믿음이 가지 않잖아요. 그런데 민주화와 자유가 이뤄지면서 누구나 옳은 말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바른 말을 잘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떼처럼 말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말은 모든 것입니다. 말의 힘은 삶의 힘입니다.
긴 수배길과 지하밀실 고문장과 사형과 무기감옥… 석방돼서 나와보니 제가 너무 유명해져 있더라고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혁명가로서 책임을 지고 싶었죠. 그렇게 12년 동안 유명해진 이름이 잊혀지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혁명의 길을 찾아 긴 침묵과 정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왜 지금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이제 말할 때가 된 거겠지요. 가장 훌륭한 계획자는 하늘이시죠. 저는 모든 것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안에 자기를 던져서 사랑 안에서 길을 잃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랑이 저를 어딘가로 데려다 주지 않을까요?
2010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와의 대화에서

3.1.3. 너의 하늘을 보아(2022)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
3천여 편의 육필 원고 가운데 301편을 묶어 펴낸 시집으로, 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언제나 나의 길을 밝혀줄 시편들을 건네며 박노해 시인은 말한다. 자신의 삶이 빚어낸 이 시들은 이제 그대의 시이자 우리의 시라고.
나의 시는 어둠과 눈물 속에서 암시暗示받은 암시暗詩일 뿐, 이 시는 그대의 것이다. 그대가 말하라.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싸워낸 진실로.

3.1.4. 그 외

3.2. 에세이

3.2.1. 눈물꽃 소년(2024)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수필 '내 어린 날의 이야기' 33편
"이 책은 나의 소년시대 이야기다. 인간성의 순수와 흙가슴의 사람들이 살아있던 시절, 그 속에서 자라난 '눈물꽃 소년'의 이야기다." 할머니와 어머니, 마을 어른들과 공소의 신부님, 선생님과 동무들, 연필 깎아주는 첫사랑 소녀까지. 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소년 평이'의 날들.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고 가슴 시린 이야기를 기다려왔다
곱고 맛깔지고 정감 어린 사투리와 박노해 시인의 연필 그림이 더해진 이야기를 따라, 맑은 눈물과 웃음으로 우리 영혼을 밝혀줄 책. "길 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를 만나기를.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그날, 그 눈빛이 길이 되고 그 눈물이 꽃이 되리니."

3.3. 사진집

3.4. 그 외

4. 전시

박노해는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흑백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게 된 이유
오로지 사진만을 찍기 위해 현장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 분들이 절실하게 저의 카메라를 원하실 때, 그 삶의 진실을 알릴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카메라를 듭니다. (...) 저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집단이나 미워하는 집단만 찍는 것 같습니다. 약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카메라이고,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도 카메라입니다. 카메라를 든 이상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시인이 책상 앞에서 죽을 일은 없지만, 분쟁현장에서 카메라를 들 때는 여기서 한걸음을 더 갈건지, 말건지 늘 결단의 순간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2010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와의 대화에서
흑백사진을 찍는 이유
모든 사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색깔은 현실을 잘 재현하고 있지만, 또 너무나 쉽게 조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진실 속으로, 영혼 속으로, 삶 속으로 들어가는데 방해가 됩니다. 흑백사진은 사물 속의 영혼만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 영혼과 대화를 하며 색깔을 넘어선 것을 찍고 싶었습니다.
2010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와의 대화에서

{{{+3 전시 포스터
파일:통의동01 하루.jpg
파일:통의동02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jpg
파일:통의동03 길.jpg
파일:통의동03(2) 걷는 독서.jpg
파일:(웹용)_박노해_사진전_포스터_내_작은_방.jpg
파일:웹용-포스터아이들은놀라워라2.jpg
파일:박노해사진전_올리브나무아래_포스터.jpg

4.1. 2010

4.2. 2012

4.3. 2013

4.4. 2014

4.5. 2015

4.6. 2016

4.7. 2017

4.8. 2018

4.9. 2019

4.10. 2020

4.11. 2021

4.12. 2022

4.13. 2023

5. 기타

5.1.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공연

2004년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을 맞이하여 공연이 열렸다. KBS # 신해철[6][7]이 헌정음반 및 공연 전체를 프로듀싱했으며, 싸이, 윤도현, 한대수, 언니네 이발관 등의 뮤지션이 참여했다. 한 권의 시집에 음반과 공연이 헌정되는 것은 한국음악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하늘'이라는 노래는 너무 훌륭한 곡이다. 시도 워낙 훌륭하지만 그 원시의 훼손없이 정말 음악적으로 그 시가 갖고 있는 진정한 마음을, 본질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창비라디오> '진중권의 문화다방' 중에서

5.2. NHK 다큐 <한국의 새로운 희망, 박노해 -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9년 5월 3일, 일본 NHK 서울지국장 기시 도시로가 제작한 다큐 <한국의 새로운 희망, 박노해 -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일본에서 방영됐다. 7개월 동안 박노해 시인을 취재하여 50여 시간을 찍었고, 1시간으로 압축했다. 기시 도시로는 박노해가 특사로 가석방된 1998년 8월 15일 시인의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급진적 노동운동가, 그리고 7년 동안 투옥된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밝을 수 있을까'하는 놀라움과 의문이 들어 취재에 들어갔다고 한다.
박노해는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릅니다. 고도성장 경제만 알았지 그 속에 담긴 그늘과 희망을 보지 못했어요. 박노해를 통해 과거 한국의 아픔을 알게 됐고, 앞으로의 활력도 느낄 수 있었어요. 박노해가 단지 저항에 그쳤다면 그는 순교자 시인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변신을 했어요. 사회주의 몰락이란 국제 정세 변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사회나 이념에 함몰된 개인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한국의 오늘을 드러낸다고 할까요. 박노해는 나누는 삶의 소중함을 역설합니다. 개인을 중심에 놓되 사회 전체가 무엇인가 공유하는 공동체 정신이지요. 남북관계든, 정치대립이든, 노사관계든 그의 생각은 한국의 내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99년, NHK 서울지국장 기시 도시로 *

6. 논란

6.1. 윤상원 평전 논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의 일대기를 그린 윤상원 평전을 연재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이 작품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6.2. 새천년 NHK 사건

2000년 5월 17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때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초청으로 광주에 갔다가 우상호, 송영길 등과 돌아가신 김태홍 전 의원의 지인이 운영하는 NHK라는 주점에 있었다는 사실이 임수경 전의원의 언론보도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으나, 사실이 아닌 과장보도로 알려졌다. 당시 임수경씨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기도 하였다.

6.2.1. 임수경의 정정 기자회견

논란이 시작된 글을 '제3의 힘'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임수경은 2000년 5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이 '변질 각색 됐다'고 정정했다. 연합뉴스
현재 인터넷상에 유포되는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악의적이고 과장된 글이 유포되고, 변질 각색되고 있다. 누가 여자를 옆에 끼고 있고, 춤을 추고 있었다는 부분은 내 글에 포함돼 있지 않다. 사태가 확산되고 각 당의 성명이 나오고 하는 현실을 보면서 젊은 세대의 몰락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7. 여담

8. 관련 문서



[1] 본명은 박기평(朴基平)이나, 필명으로 활동한다.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해방"을 줄인 말이다. [2] 1991년 8월 20일자 한겨레 신문 15면. 기사 제목, "박노해씨 사형 구형/ 법정 최고형-검찰 폭력혁명 선동 논고/ 박씨 "신념 불변" 최후 진술" [3] 이 기사는 기자 출신 시인인 기형도가 썼다 [4] 여담으로 이곳에는 유시민과 만화가 이은홍 화백도 있었다. [5] 당시 박노해를 추적하던 안기부 요원들은 그의 시문이 상당한 수준인 것을 보고 분명히 고학력 엘리트라 여겼는데, 막상 체포하고 보니 야간 상고 출신에 별다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 놀랐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사가 서울대 출신도 아닌데 이렇게 수준 높은 시를 쓰다니 이 사람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다고 한 일화가 있다. [6] "세월을 넘어서도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토하며 다가오는 박노해 시인을 새기고, 인간으로서의 그를 바라보며 그 안의 정신을 위해 노래합니다." 신해철, 2004 [7] "가수를 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게 민중가요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신해철,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