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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신위 毛新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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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문: 毛新宇 (
병음: Máo xīn yǔ) 한국 한자음: 모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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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중국 | ||
출생 |
1970년
1월 17일 ([age(1970-01-17)]세) 베이징시 하이뎬구 중국 인민해방군 총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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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1988년
중국인민대학 역사학과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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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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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 ||
주요 이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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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부모 |
아버지
마오안칭(毛岸青) 어머니 샤오화(邵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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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조모 |
할아버지:
마오쩌둥(毛泽东) 할머니: 양카이후이(杨开慧) |
||
배우자 |
리우빈(刘滨) |
||
자녀 |
장남:
마오둥둥(毛东东) ,(2003~ ), 장녀: 마오톈이(毛甜懿) ,(2008~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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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군인이자 정치인. 마오쩌둥의 둘째 아들인 마오안칭의 아들로서 마오쩌둥의 손자다.2. 생애
문화대혁명 와중이었던 1970년에 마오쩌둥의 2남 마오안칭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오안칭은 중국국민당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마오쩌둥이 집권한 후에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기 때문에 마오신위를 보살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을 부모와 떨어져 보모의 손에서 자랐다. 마오쩌둥은 6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 마오안잉은 결혼은 했지만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마오안칭을 제외한 나머지 마오의 네 아들들은 모두 요절했다. 이 때문에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의 유일한 부계 직계 손자다.1988년 중국인민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했고 1992년 졸업했다. 이어 중국공산당의 연수기관인 중앙당교에서 석사를 받았다. 2000년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에 입학했고 2003년에 여기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한 후 인민해방군 군사연구소에 재직하면서 대교(대령)계급을 받았고 계속 이 기관의 "전사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0년 소장으로 승진했다. 만 40살에 소장을 받은 셈인데 중국군 최연소 장성이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며 마오쩌둥 사상에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3. 여담
- 반마오주의자들에게는 홍색 귀족이라고 비아냥을 받는데 조상 잘 둬서 장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태자당급 건국 공신 자녀들이 입대하면 능력에 관계 없이 상징적으로 소장계급을 주고 실전부대와는 거리가 먼 자리[1]에 두는 것은 관례였으며 마오신위도 이런 케이스고 1970년대까지는 이런 개국공신급 자녀들은 명문대를 부모찬스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10년간 대학이 문을 닫았다가 77년 학번(1977년 입학)에는 10년간 누적된 수험생들과 새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모두 대학을 지원해서 대학 합격율이 5%에 불과했고[2] 문화대혁명 때 반동의 자녀로 찍혀 10년간 시골에서 삽질하다가 대학 갈 나이를 놓친 태자당 자녀들은 윗선의 배려로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후진타오, 주룽지, 리커창과 같이 집안에 상관없이 본인이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나왔고 이후에도 자신의 능력으로 계속 승진하여 주석이나 총리까지 오르게 된 이들도 있다.
- 본인도 기자들에게 자신이 장성의 반열에 오른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집안의 요소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인정했다. #
- 2010년 소장 진급 당시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에 의해 숙청당했다가 병사한 류사오치 국가주석의 아들인 류위안(劉源) 상장이 직접 계급장을 달아 줘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원수지간이었던 두 가문이 손자 시대에 화해했다며 중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류 상장은 당시 군사과학원 정치위원으로 마오신위의 직속상관이었으며 2016년 군에서 전역하고 정계에 입문하여 2022년 기준으로 전인대 의원으로 있다.
-
매우 후덕한 모습인데 키가 178cm에 몸무게가 110kg라는 설이 있다.[3] 대신 나이를 생각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최상단의 프로필 사진도 사실 만 42세 시점이었던
2012년에 찍은 사진인데 40대로 보이지 않는다.
살을 찌워서 주름을 펴는건가
- 2018년 4월 북한을 여행하던 중 북한 유커 버스 교통사고로 사망한 30여 명의 중국 관광객들 가운데 그가 포함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며 심지어 이를 바탕으로 중국 내에서 손을 써서 사고로 위장해서 마오신위를 살해했다는 암살설까지 떠돌았지만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에서는 마오신위는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았다는 공식 성명을 내면서 이는 가짜 뉴스라고 비판하였다. 결정적으로 사고 이후 마오신위가 공식 석상에 참여하면서 마오신위 사망설은 루머로 확인되었다.
- 결혼을 2번 했다. 전처 하오밍리(郝明莉, 1972년생)와 결혼한 후[4] 두 번째이자 현재 아내인 류빈(劉滨, 1977년생)과 다시 결혼했다. 둘 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관 신분의 현역 군인이며 마오신위는 육군 소장, 류빈은 육군 소교로 나이는 고작 7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계급은 꽤 많이 차이가 난다. 리우핀과의 사이에서 아들 마오둥둥(毛东东), 2003~)과 딸 마오티안이(毛邯懿, 2008~)를 두었는데 마오둥둥은 아버지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키가 커서 키가 최소 185cm 이상이 되었다.
- 공개석상에서 여러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여서[5] 지적장애인이라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지만 멀쩡히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연설도 하는 걸 보면 바보는 아니다. 서예도 수준급이라서 창사시에 있는 마오쩌둥의 모교를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를 찬양하는 글씨를 썼고 이것을 비문으로 쓴 비가 제작되어 세워졌다고 한다.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면 ADHD 증세,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로 생각된다. 국가에서 건국시조의 예우 차원에서 장군 계급을 수여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별다른 정치적 야심을 보인 적이 없다. 실제로 이상한 행동으로 구설에 오른 것과 별개로 마오신위는 정치적 행동이나 야심을 보인적이 없기 때문에 웨이보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는 해도 딱히 당의 감시를 받거나 규제를 받은적은 없다. 할아버지가 왕조로 치면 태조이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능력이 없더라도 정치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거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사회 고위층 신분을 잃을 걱정이 없으며 중국공산당이 망하지 않는 이상은 현재의 지위나 생활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 마오쩌둥의 외손자이며 마오신위에게는 사촌이 되는 쿵지닝(孔繼寧/孔继宁)[6]도 군인이 되어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주 파키스탄 중국대사관과 주 영국 중국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1997년에 예편했다. 마오신위와는 다르게 상당히 미남이며 2007년 후난 TV에서 제작한 마오쩌둥 다큐멘터리의 진행자를 맡기도 했다.
[1]
주로 군의관이나 군의 행정직 또는 예술부대가 있다. 덩샤오핑의 두 딸이 바로 군의관으로 소장까지 오른 케이스다.
[2]
전문대까지 합한 합격율이 5%에 불과했다.
[3]
마오쩌둥의 키가 172cm(추정)~180cm(공식)이고 노년기에 80kg대의 체중을 가졌는데 현재로서는 조금 후덕한 체격이지만 마오쩌둥이 1893년생임을 감안하면 거구임은 틀림없으니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4]
이혼했다. 하오밍리는 1997년에 마오신위와 결혼했으나 2000년 이후부터 마오신위와 사이가 매우 나빠졌다. 일부 반중 운동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오밍리는 2003년에
베이징 친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고 하고 아예 사망설도 돌지만 마오쩌둥의 손자와 결혼할 정도라면 하오밍리의 집안도 중국에서는 상당히 좋은 집안일 것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이혼후 별다른 근황이 알려지지 않는 것은 맞다. 현재의 아내 리우핀과는 같은 해인 2003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마오신위와 리우핀은 2000년에 처음 만났지만 마오신위의 아들 마오둥둥이 2003년생인 걸 감안하면 마오신위는 리우핀과 2002년 이전에 사실혼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5]
군 정복을 이상하게 입는다든지, 카메라 앞에서 코를 후빈다던지, 아니면 군 고위층이 연설하는 중에 존다던지...
[6]
마오쩌둥과 허쯔전의 딸인 리민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