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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e667><colcolor=#005187>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마르셀리노
Marcelino
본명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Marcelino García Toral
출생 1965년 8월 14일 ([age(1965-08-14)]세)
스페인국 아스투리아스지방 비야비시오사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70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ffe667><colcolor=#005187> 선수 스포르팅 히혼 B (1984~1986)
스포르팅 히혼 (1985~1989)
라싱 산탄데르 (1989~1990)
레반테 UD (1990~1992)
엘체 CF (1992~1994)
감독 CD 레알타드 (1997~1998)
스포르팅 히혼 B (2001~2003)
스포르팅 히혼 (2003~2005)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 (2005~2007)
라싱 산탄데르 (2007~2008)
레알 사라고사 (2008~2009)
라싱 산탄데르 (2011)
세비야 FC (2011~2012)
비야레알 CF (2013~2016)
발렌시아 CF (2017~2019)
아틀레틱 클루브 (2021~202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23)
비야레알 CF (2023~ )
국가대표 없음[1]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전술 스타일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축구감독.

위기에 빠진 비야레알 CF 발렌시아 CF를 각각 챔피언스 리그에 올려놓은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레알 스포르팅 데 히혼의 유스팀을 거쳐 성인팀으로 승격되어 로테이션 멤버로 주로 출전했다. 4시즌간 활약한 후 세군다 디비시온에 있던 레알 라싱 클루브 데 산탄데르로 이적해 주전으로 뛰었으나 팀이 3부리그로 강등당해 한 시즌만에 레반테 UD로 이적했다. 그러나 레반테 역시 두 시즌만에 3부리그로 강등당하면서 엘체 CF로 이적했다. 엘체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주로 나왔으나 1994년 28세의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3.1. 초기 ~ 세비야 FC

은퇴 후 3년이 지나 4부리그에 해당하는 테르세라 디비시온 팀 CD 레알타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리그 우승을 거두며 팀을 세군다 디비시온 B로 승격시키는데 성공한 후 팀을 떠났고, 2001년 스포르팅 히혼의 B팀 감독을 맡았다. 히혼 B팀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2003년에는 1군 팀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며, 첫 시즌 5위, 두 번째 시즌 10위를 기록한 뒤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와 계약하면서 팀을 떠났다. 2005-06시즌 레크레아티보는 마르셀리노의 지휘 아래 세군다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해 라 리가 승격에 성공했으며[2], 2006-07시즌에는 8위를 기록하며 승격팀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다.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마르카가 선정하는 라 리가 감독상인 미겔 무뇨스 트로피의 공동 수상자[3]로 선정되기도 했다.

레크레아티보에서 성공을 거둔 마르셀리노는 2007년 여름, 라싱 데 산탄데르로 팀을 옮겼다. 라싱은 승격 이후 쭉 강등권에서 간신히 생존하기를 이어오다가 06-07시즌 10위를 기록하며 발전의 가능성을 보인 상황이었고, 이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마르셀리노를 영입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07-08시즌 라싱은 리그 6위를 기록해 UEFA 컵 예선 진출 티켓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마르셀리노는 4위를 기록했던 1935-36시즌 이후 72년만에 처음으로 라싱을 이끌고 리그에서 한 자릿수 순위를 기록한 감독이 되었다. 코파 델 레이에서도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리그 38경기에서 단 42골만 기록했을 정도로 득점력은 빈곤했으나 단 41실점만 기록하며 리그 최소 실점 3위를 기록한 단단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주전 골키퍼 토뇨는 사모라 상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렇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던 가운데 2008년 5월 29일 급작스러운 사임 소식이 떴고, 많은 사람들은 마르셀리노가 더 큰 구단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마르셀리노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세군다 디비시온 레알 사라고사였다. 마르셀리노는 사라고사를 2부리그 2위에 안착시키며 한 시즌만에 승격을 이루어냈으나, 다음 시즌 팀이 부진하며 리그 17위로 밀리자 결국 2009년 12월 12일 경질되었다. 이후 휴식을 취하던 마르셀리노는 2010-11시즌들어 라싱 데 산탄데르가 부진에 빠지며 결국 미겔 앙헬 포르투갈 감독을 경질했고, 그 후임으로 2011년 2월 9일 부임했다. 마르셀리노는 16위로 밀려있던 라싱을 12위까지 끌어올리며 시즌을 마쳐 소방수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6월 3일 세비야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세비야는 10-11시즌 중도에 안토니오 알바레스 감독을 해임하고 소방수로 영입한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 역시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감독 자리가 비어있던 상황. 그러나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하노버 96에게 패하며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은 11위까지 밀려났고 결국 2012년 2월 6일 경질되었다.

3.2. 비야레알 CF 1기

사라고사 이후 좋지 못한 커리어를 이어가던 마르셀리노는 2013년 1월 비야레알 CF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비야레알은 2011-12시즌 거듭된 부진 끝에 충격적인 강등을 맞이해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2012-13시즌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허나 팀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는데, 미겔 앙헬 로티나 감독의 후임으로 하부리그의 베테랑 감독이던 마누엘 프레시아도를 선임했으나, 선임 하루만에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일주일만에 훌리오 벨라스케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겨야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 체제 하 비야레알은 기대 이하의 행보를 이어가며 한 때 리그 10위까지 밀려났고 결국 2013년 1월 13일 비야레알 보드진은 벨라스케스를 경질하고 마르셀리노에게 지휘봉을 맡긴다. 그리고 이는 구단에게나 마르셀리노 본인에게나 신의 한 수가 된다.

7위로 밀려있던 비야레알의 지휘봉을 잡은 마르셀리노는 팀을 빠르게 수습했고, 후반기에 연승가도를 달리면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결국 비야레알은 2위로 시즌을 마치며 한 시즌만에 라 리가로 복귀했다. 승격 후 첫 시즌인 2013-14시즌에는 전반기에는 챔스권을 노릴 정도로 잘 나가다가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다소 처지며 순위가 밀렸으나, 그래도 6위를 기록하며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며 승격 후 첫 시즌을 준수하게 마무리했다. 이어진 2014-15시즌에는 빈공에 시달리며 챔스권은 노려보지도 못했고, 유로파리그에서도 16강에서 세비야 FC를 만나 탈락했지만, 38경기 37실점을 기록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아틀레틱 클루브의 추격을 따돌리고 2시즌 연속 6위를 기록해 다시 한번 유로파리그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5-16시즌, 비야레알은 로베르토 솔다도 세드릭 바캄부를 영입해 공격진을 개편하며 지난 시즌의 약점이던 빈공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시즌 끝나고보니 38경기 44골로 올 시즌도 공격력은 영 아니었다. 하지만 투 톱의 연계는 분명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며 결정적인 득점을 많이 만들어냈고, 무엇보다도 지난 시즌보다도 수비력이 업그레이드 되며 단 35실점만을 기록했다. 임대로 영입한 알퐁스 아레올라의 맹활약과 포백 수비진들의 고른 활약은 팀의 방어진을 단단히 했고, 라이트 백 마리오 가스파르, 원 클럽 맨 미드필더 브루노 소리아노 등 국대와는 인연이 깊지 않던 선수들이 이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대에서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 낸 리그 순위는 4위로, 충격의 강등 이후 4년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이 당시 라 리가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 팀이 TOP 3를 독식하던 상황이었으니, 사실상의 인간계 1위를 찍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동시에 유로파리그에서는 SSC 나폴리,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AC 스파르타 프라하를 연파하고 준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아쉽게도 리버풀 FC를 상대로 1차전을 잡고도 2차전에서 완패하며 탈락했다. 그래도 리그 4위-유로파리그 4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마르셀리노 감독은 2019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챔스에 복귀하며 야심차게 2016-17시즌을 준비한 비야레알이지만, 시즌을 앞두고 주포 로베르토 솔다도가 장기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덮쳐왔다. 여기에 보드진과의 갈등이 겹치면서 결국 마르셀리노는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되었다. 사임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현지 보도에서 'sacked'라는 표현을 쓰는걸 보면 보드진과의 마찰로 짤렸다고 봐야 할 듯 하다.

3.3. 발렌시아 CF

비야레알을 떠난 후 1년간 휴식을 취한 마르셀리노는 2017년 5월 11일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현장에 복귀했다. 발렌시아는 누누 산투 체제에서 2014-15시즌 4위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었으나, 2015-16시즌 부진 끝에 누누 산투가 경질되고 로날드 쿠만에 비견되는 게리 네빌이 부임한 이래 2시즌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4명의 감독[4]이 부임하고 경질되는 최악의 암흑기에 빠져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르셀리노를 선임한 것이다. 그러면서 피터 림의 지원 아래 시즌을 착실하게 준비했는데, 나이가 많아 노쇠화에 직면한 고액 연봉자들( 엔소 페레스, 알바로 네그레도, 파블로 피아티, 지에구 아우베스 등)을 정리하는 한편 매튜 라이언을 이적시키며 적절하게 이적료도 벌고 그 자리에는 네투를 영입해 공백을 메웠다. 엘리아킴 망갈라가 임대 복귀로 이탈한 자리는 제이손 무리요를 임대영입하며 보강했고, 나니를 임대로 내보내면서 곤살루 게드스를 영입, 여기에 시모네 차차를 데려오고 조프리 콩도비아 안드레아스 페레이라를 임대 영입하는 등 착실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그렇게 돌입한 시즌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어차피 지난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어 유럽 대항전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라 리그에 올 인 할 수 있었고, 영입된 자원들이 시너지를 내고 로드리고 모레노의 포텐이 터지고 산티 미나까지 활약하는 등 상승세를 타면서 리그 13라운드까지 무패행진을 달렸다. 이 때만 해도 우승 경쟁까지 했으나 시즌 중반 들어 9경기에서 3연패를 포함 3승 6패를 기록하는 등 페이스가 급격히 처지고 동시에 FC 바르셀로나가 무패우승을 노리는 페이스로 달려나가면서 우승권에서는 멀어졌다. 여기에 주춤하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도 페이스를 어느정도 회복한 상황. 결국 중반에 말아먹은 페이스 때문에 4위로 밀려났고, 순위 역전에 실패하며 그대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3위와 3점차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직전 시즌까지 몰락해가던 팀을 되살려낸 것 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또한 비야레알을 이끌던 시절에는 부족한 공격력을 수비력으로 때우던 것과 다르게 이 시즌에는 65득점-38실점을 기록해 득점과 실점 모두 리그 3위를 기록할 정도로 공수 밸런스가 좋았다.

허나 이러한 활약이 무색하게 2018-19시즌은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전체적으로 이전에 맡았던 팀의 팬들의 '플랜B가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평이 왜 나왔는지 이해되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잘 풀릴때는 그나마 좀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안풀릴때는 걷잡을 수 없이 졸전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대표적으로 유벤투스와의 홈경기에선 상대가 1명이 퇴장당했음에도 11:10의 경기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졸전을 보여주었고 꼭 이겨야 하는 유로파컵 아스날과의 2차전에선 초반엔 훌륭한 패스웍을 보여주며 선제골까지 뽑아냈지만 그 뒤로 아스날의 투톱 단 두명에게 탈탈탈 털리며 4골이나 헌납하고 서 탈락했다. 그래놓고 리그 우승팀 바르셀로나에겐 한번도 안졌다. 이제 좀 잘 풀린다 싶으면 어이없이 지고, 수비만큼은 든든하다 싶으면 한 수 아래의 팀에게 골을 쉽게 헌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분명 전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수비력은 여전하지만 공격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전반기 17득점-17실점으로 4승 11무 4패라는 기괴한 성적을 기록중이다. 시모네 차차가 팀을 떠난 가운데 지난 시즌 잘 했던 로드리고 모레노는 한 시즌만에 롤백되었고 차차 대신 데려온 미키 바추아이 케빈 가메이로는 쌍으로 삽질중이다. 팀 내 최다득점자가 16경기 6골을 기록한 산티 미나인데 6골중 2골은 챔스에서 BSC 영 보이스를 상대로, 2골은 코파 델 레이에서 에브로를 상대로 양학해서 넣은 골이고, 리그에서는 12경기 2골로 마찬가지로 삽질중이다. 그리고 미나 다음으로 골을 많이 넣은 선수가 22경기 5골을 기록한 다니 파레호일 정도이니 공격수들의 부진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경질설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꾸역꾸역 승점을 쌓더니 결국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피터지게 순위 싸움을 했던 헤타페와 세비야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5위 헤타페와 승점은 동률이지만 상대 전적(1승 1무)까지 따져가며 겨우 달성한 시즌 첫 4위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라운드에서 바야돌리드에게 2-0 승리를 거두고 자력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거기다 리오넬 메시가 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선보여서 코파 델 레이도 우승했다! 발렌시아로서는 11년만에 차지한 메이저 대회 트로피다.

전반기에 챔스권과 승점차가 10점 이상 벌어졌지만 최종적으로 챔스 진출권을 따낸 팀은 라리가 역사상 발렌시아가 처음이라고 한다. 돌아 돌아 와도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어쨌든 4위로 시즌을 마감했으니 마르셀리노의 지도력은 결과적으로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얼마 뒤 07/08 시즌 이후 11년 만에 다시 한 번 코파 델 레이를 들어올리며 성공한 시즌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런데 19-20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9월 11일 경질되었다. 구단주 피터 림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는 듯.[5] 축구 팬들은 드디어 이강인을 잘 써주는 감독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반응과 위기의 팀을 2 시즌 동안 챔스까지 올려놓고 코파 델레이 우승까지 이뤄낸 훌륭한 감독을 구단주의 고집으로 내친 것은 아니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6]

후임 감독은 훌렌 로페테기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 수석 코치를 맡던 알베르트 셀라데스가 임명되었다. 발렌시아 팬들은 잘하던 마르셀리노를 자르고[7] 성인 팀 감독 경력이 없는 셀라데스를 후임으로 임명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8] 그리고 그가 로페테기와 있던 당시 레알의 성적은 아주 좋지 않았다.

이후, 마르셀리노는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피터 림과 관계가 끊어진 것은 지난 시즌 코파 대회 때문이었다. 마르셀리노는 피터 림에게서 시즌 도중에 코파 델 레이를 포기하고 챔스 순위권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셀리노는 선수들이 강력히 단합되어 코파 우승컵을 원했기 때문에 코파에도 집중했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를 꺾고 코파 우승을 차지했으며, 지시목표였던 챔스 진출권까지 획득했지만 피터 림에게서 챔스 진출에 대한 축하만 받았을 뿐 코파의 성과에 대해 아무 얘기도 듣지 못 했다고 한다. 마르셀리노 본인의 말에 따르면 한국팬들이 걱정하던 이강인 등 유망주 기용 때문이 아닌 구단주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경질이라고 한다.

이후 휴식기를 보내던 중, 가이즈카 가리타노를 경질하려는 아틀레틱 클루브와 연결되고 있다.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도 공식 접촉을 하였으나, 마르셀리노 본인이 러시아 무대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3.4. 아틀레틱 클루브

아틀레틱 클루브가 2021년 1월 가이즈카 가리타노와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하고 마르셀리노를 아틀레틱 클루브의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계약 기간은 2022년 6월까지다.

부임시 성적은 리그 9위.

부임 후 첫 경기였던 리그 2라운드 순연경기 FC 바르셀로나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2:3으로 패하였다. 그러나, 이어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4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2:1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하였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2:3으로 꺾고 부임 후 3경기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코로나로 연기된 19-20시즌 코파델레이 결승전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에게 1: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했다.

20-21시즌 코파델레이에서는 16강 알코야노 , 8강 레알 베티스 , 4강 레반테를 이기고 결승에 올랐지만 FC 바르셀로나에게 4:0으로 완패하며 또 준우승했다 2주만에 두번의 국왕컵에서 모두 준우승하며 37년만의 코파델레이를 우승할수있는 두번의 기회를 모두 날려먹었다.

코파델레이 준우승 시점에서 리그경기는 12전 3승 7무 2패이며 순위는 리그 11위 , 1:1 무승부나 0:0 무승부를 많이 만드는 등 리그에서는 별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32R에서 선두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이겼고 34R에서 4위 세비야를 잡아내는 트릭술사같은 면모도 보이고 있다. 21-22 시즌 종료 후 아틀레틱 클루브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후임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설이 돌고 있었으나 U-21 대표팀 감독이던 루이스 데 라 푸엔테가 선임되며 무산되었다.

2023년 6월 21일, 로마노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3.5.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23년 6월 23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마르세유의 감독이 되면서 자신의 커리어 사상 첫 타국 클럽을 감독하게 되었다.
마르세유에는 파블로 롱고리아가 단장으로 있었는데, 롱고리아는 마르셀리노가 직접 축구행정가의 길을 추천해준 은사와 제자와도 같은 관계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레전드인 파예를 내쫓고, 대대적인 선수단 물갈이와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탈락하고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며 팬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결국 롱고리아 단장과 함께 참여한 울트라스와의 대담회에서 격렬한 항의에 충격을 받게되고, 9월 20일, 갑작스럽게 마르세유의 감독직에서 사임을 하였다. # [9]

이후 마르세유의 팬들에게는 금지어급 취급을 받고있다.

3.6. 비야레알 CF 2기

한국 시간 2023년 11월 14일, 7년 만에 비야레알 CF의 감독으로 재부임했다. 계약 기간은 2026년까지. #

4. 전술 스타일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한 수비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사이를 빡빡하게 만들어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거나 공격을 차단한다. 전방 압박은 매우 높은 위치에서 시작하고 윙과 미드필더들은 수비시에 상대를 측면으로 몬다.

공격시에는 4-2-2-2 포메이션이 되며 빠른 역습을 진행한다. 이때는 풀백이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고 최소 2명을 파이널 서드에 넣어서 롱패스를 뿌리거나 측면 미드필더가 상대 선수를 압박하면서 중앙으로 몰고 풀백을 전진시켜서 크로스를 만들어낸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6. 여담



[1] U-18 6경기, U-19 1경기 , U-20 6경기 , U-21 7경기 [2] 3년만의 승격 [3] 다른 한 명은 세비야 FC를 이끌고 리그 3위를 달성한 후안데 라모스였다. [4] 게리 네빌, 파코 아예스타란, 체사레 프란델리, 보로 곤잘레스. 다만 이 중에서 보로는 단장 역할을 맡아 중간중간 감독 대행을 여러차례 맡았고(특히 쿠만의 사임 이후 에메리가 오기 전까지 발렌시아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큰 활약을 보였다.), 아예스타란은 게리 네빌 경질 이후 감독 대행으로서 역시 위기의 발렌시아를 살려냈다. [5] 피터 림 VS 마르셀리노, 알레마니의 갈등은 발렌시아 광팬으로 유명한 칼카나마 만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양 측의 갈등은 흔히 알려진 이강인 이적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참고로 이 만화는 두 사람의 경질이 있기 직전에 올라왔다. [6] 그러나 이는 이강인에게도 썩 좋은 상황이 아니다. 셀라데스는 마르셀리노보다 더 경력이 부족한 감독이고 마르셀리노보다 성적이 잘 나올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 상황에서 유망주에 불과한 이강인을 셀라데스가 잘 쓸 지도 확신할 수 없다. 팀과 그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은 마르셀리노의 주장처럼 이강인이 중하위권 팀으로 임대를 가는 것이지만 구단주의 고집으로 끝내 꺾여버렸다. 일단은 이 예상과 달리 이강인은 데뷔골을 넣고 순항 중인듯 했으나 셀라데스 역시 결국 마르셀리노의 전술인 442를 쓰면서 이 포메이션에서 자리가 애매한 이강인의 입지는 다시 줄어들었다. [7] 경기력이 워낙 좋지 않았으니 경질되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각은 이적 시장이 다 끝나 팀 재편할 틈도 없이 분명히 성과를 잘 거두고 있던 마르셀리노를 갑자기 경질한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8] 참고로 2000년대 이후부터 발렌시아는 어떤 이유든 무난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을 갑자기 경질시키고 그 후임 감독이 전임 감독만큼 잘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유명한 키케 플로레스를 경질하고 임명한 로날드 쿠만 게리 네빌은 둘 다 프리시즌부터 발렌시아를 맡은 게 아니라 시즌 도중에 전임 감독이 경질되고 그 후임으로 임명된 감독들인데 이 둘의 성과는 알다시피 역대 최악이었다. 그나마 시즌 도중 감독으로 임명되어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인데 발베르데는 5위로 그쳐 챔스 진출에 실패하자 그 시즌에 바로 사임했고 쿠만이나 네빌보단 나은 편이던 체사레 프란델리는 선수 영입을 제대로 못 하여 구단주와 마찰 끝에 부임한지 3달 만에 사임했다. 이렇듯 네빌은 차지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감독이라도 전임 감독의 성적을 제대로 이어받은 경우가 별로 없는 발렌시아인데 그런 상황에서 감독 경력이 없다시피한 셀라데스의 부임에 대해 발렌시아 팬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우려를 벗어나지 못 하고 셀라데스도 전반기와 달리 점점 성적이 떨어지면서 결국 한 시즌도 버티지 못 하고 경질당했다. [9] 속설에는 대담회에서 울트라스들에게 살해협박을 받았고 이에 충격을 받아서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