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0:05:06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1. 개요2. 관련 어록3. 논점4. 사례
4.1. 논란4.2. 해결
4.2.1. 반폭력 서사4.2.2. 폭력 서사
5. 참고 자료6. 관련 문서

1. 개요

서사 부조화 #
Ludonarrative dissonance[1]

게임 내에서 스토리를 통해 전달되는 내러티브와 게임플레이를 통해 전달되는 내러티브가 충돌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

2007년에 루카스아츠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해당 문제로 비판하며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2020년대에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출시 후 다시금 해당 논쟁이 일어났다.

2. 관련 어록

Thirteen years ago, critics and designers imagined games would no longer have ludonarrative dissonance, that the stories video games want to tell would align with the actions they demand we commit. But if this is the result, then you know what? I’m cool with dissonance. I’ll take violent games that strive for fun and don’t pitch any greater meaning, rather than violent games that seek to justify their violence. I don’t need more stories asking me why I love to kill things in video games, because the answer is simple: It’s what publishers sell me. What I want most, and what The Last of Us Part 2 attempts to be in brief moments, are games without violence. Do the creators truly believe their story captures how people would behave, that we’re all a catastrophe away from forming tribal murder squads? Or do we keep getting stories like this because it’s what the video games, as we understand them, allow? Until we have an abundance of AAA games that don’t hinge on violence, we can’t know for certain.

The Last of Us Part 2 suggests violence is inevitable. Sadly, that appears to be true in AAA video games.

13년 전 비평가들과 디자이너들은 게임이 더 이상 서사 부조화 문제를 겪지 않고, 비디오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비디오 게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동과 일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가 이런 거라면, 알겠는가? 나는 부조화를 인정한다. 폭력의 정당성을 찾는 폭력적인 게임보다는, 오로지 재미에 힘 쏟고 그 이외의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폭력적인 게임을 하겠다. 나는 어째서 내가 비디오 게임에서 여러 가지를 죽이는 걸 좋아하는지 되묻는 스토리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그거에 대한 답변은 매우 간단한데, 왜냐하면 그걸 게임사들이 내게 판매했으니까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자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잠시 동안 되고자 했던 게임은 폭력이 배제된 게임이다. 제작자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야기가 게이머들의 행동 방식을 통제한다고 믿는걸까? 우리 모두가 동족들의 살인마 집단을 꾸려서 기어코 파국을 맞도록? 아니면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이 이를 허용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런 이야기를 계속 접하게 되는 것일까?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AAA 게임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폭력의 불가피성을 시사한다. 슬프게도 AAA 비디오 게임에 한해서 이는 사실로 보인다.

- 게임 웹진 폴리곤[2]의 칼럼,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게임계에서 매우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문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중 발췌, 크리스 플란트. 출처, 한국어 번역[3]
하지만 그래도 말이죠, 이건 마치 웬 여자가 여러분이 자는 방에 몰래 숨어들어와 옷을 다 벗고 여러분 얼굴 위에 쭈그려 앉아있어 놓고는, 잠에서 깬 여러분이 자기 엉덩이를 보았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짓이에요. 난 네 엉덩이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고, 스펙 옵스! 계속 튀어나오는 미군 탈영병들을 학살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못하게 만든 건 너잖아!
- 게임 평론가 얏지, 제로 펑츄에이션의《 스펙 옵스: 더 라인》 리뷰

3. 논점

서사 부조화는 게임의 내러티브에 포함된 메시지가 정작 게임에서 요구하는 게임플레이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괴리이다. 게임은 설계된 시스템에 따라 정해진 게임플레이 방식을 유도하기 마련인데 이를 내러티브가 부정하면 게임 내부적으로 자가당착이 되고 만다.

대표적인 예시로 내러티브에서는 폭력의 부당성을 비판하는데 정작 게임플레이는 살상의 즐거움으로 점철된 경우가 있다.[4] 상단의 게임 웹진 폴리곤의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게이머들에게 애초에 학살을 통해서 재미를 느끼도록 설계한 게임을 판매해 놓고 그것을 구입한 플레이어에게 도리어 '왜 폭력을 중시하는 것이냐'라고 까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황당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여러가지 이유로 해당 게임을 사지 않은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까지는 않지만 언에듀케이티드처럼 선을 넘는 경우도 있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는 비단 이러한 상황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지만 체험(플레이)을 중시하는 게임에 가장 적합하면서 동시에 그 괴리감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주제가 '폭력'이기 때문에 관련된 사례도 폭력적인 게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대중들의 수요에 맞는 AAA 게임 예술성을 추구하며 심오한 주제의식을 마련하지만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인 폭력에 대한 게임 플레이도 거의 항상 설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임 제작사가 심오한 내러티브를 중시하면서도 폭력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플레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해결책이야 게임의 주요 컨텐츠에서 폭력을 배제하면 되겠지만 판매량 이전에 몰입감을 중시하는 AAA 게임 제작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를 실현한 몇 안 되는 AAA 게임으로는 데스 스트랜딩이 있다. 반대로 시나리오를 폭력과 살육을 예찬하는 방향으로 구성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윤리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AAA 게임은 아니지만 폭력과 살육을 예찬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어 논란이 된 게임으론 Hatred가 있는데 발매 이전부터 폭력성 논란으로 스팀 스토어에서 게임이 내려가는 등 수많은 이슈가 있었다. 정작 발매 후에는 게임이 워낙 구려서 묻혀버렸지만.

그래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파 크라이 시리즈는 4편부터 히든 엔딩을 넣어서 본편에 해당하는 살육을 저지르지 않아도 결말을 볼 수 있게 배려했으며 플레이어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굳이 그에 대해 비판하지는 않았다. 1983년작 스카페이스 게임판처럼 폭력배일지언정 민간인을 해치지는 않겠다는 토니 몬타나 본인의 신조를 지킨다는 의미로 민간인에 대한 사격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제약을 받아 게임의 재미를 해칠 수 있고, 반대로 GTA 시리즈처럼 자유가 지나치게 제공되어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폭력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5] 그래도 후자는 게임에서 제공되는 자유도를 활용했을 뿐이고 그에 대한 페널티(경찰의 추적)도 주어지기 때문에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라고 비판받지는 않는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문제로 비판받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폭력행위에 대해 비판하거나 훈계하려고 드는 발언이 게임 안팎으로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GTA 시리즈는 그 게임을 구입한 플레이어들에게 폭력적이라고 비판한 적은 없으므로 모순은 없는 셈이다.

4. 사례

4.1. 논란

4.2. 해결

4.2.1. 반폭력 서사

4.2.2. 폭력 서사

5. 참고 자료

처음으로 이 용어를 제안한 전 루카스아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린트 호킹의 블로그 글
영어 위키피디아의 Ludonarrative dissonance 문서
TV Tropes의 Gameplay and Story Segregation 문서

6. 관련 문서


[1] Ludonarrative는 Ludo(놀다)와 narrative(내러티브)의 합성어이다. [2] 폴리곤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저평가한 대표적인 게임 웹진이다. 사실 더 라스트 오브 파트 2 뿐만 아니라 더 라스트 오브 어스도 다른 웹진들에 비해 저평가했다. 1편을 비판하면서도 서사 부조화에 대한 지적을 한 바 있다. [3] 해당 칼럼 중 "그리고 2007년, 평론가들은 슈터 장르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해에 최다 GOTY를 수상한 게임은 '바이오쇼크'나 '포탈', '모던 워페어', '매스 이펙트'가 아니었다. 영광은 '슈퍼 마리오 갤럭시'에 돌아갔다." 라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지적받기도 하는데 원문이 'But by 2007, critics began to express something like shooter fatigue. A majority of gaming publications in that year awarded game of the year not to BioShock, Portal, Modern Warfare, or Mass Effect. They gave the honor to Super Mario Galaxy.', 즉 '최다 고티'에 대한 언급이 아닌 "주요 평론가들은 슈터 장르가 아닌 슈퍼 마리오 갤럭시에 GOTY를 줬다" 라고 언급하는 거라 틀린 내용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요 게임 시상식에선 슈터 장르가 상을 받긴 했으나 본문에서 "critics(평론가들)" 이라고 얘기했고 실제로 당시 메이저 웹진에선 슈퍼 마리오 갤럭시가 올해의 게임이라고 한 곳이 많았다. [4] 반례는 둠 시리즈처럼 살육의 쾌락을 찬미하지 않아도 내러티브와 게임플레이가 일치하는 게임들이다. [5] 심하면 손님을 편하게 재배치하는 데에 쓰라던 본래 의도와 달리, 사람을 수장시키는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6] "Dead Redemption II, is certainly an illustration of ludonarrative dissonance insofar as Hocking positions it" Kerner, Aaron, and Julian Hoxter. "The Stupid as Ludonarrative Dissonance." Theorizing Stupid Media. Palgrave Macmillan, Cham, 2019 [7] 다만 최근 들어 게임 스토리의 내러티브에 대해 심화된 연구가 진행되면서 전형적인 예시라고 하기에는 어려워졌다.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밝혀지지도 않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영화를 시청하는 관람객에 가깝다. 게임 속에서 보내는 의도적인 불쾌감과 비난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향한 것이 아닌, 주인공이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이 발매된 지 10년 가까이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그렇게 오해했을 정도로 난해한 내러티브 구조와 메시지를 삽입한 제작진의 탓이 큰 것은 사실이다. 이 작품의 장르가 제3자의 시점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나 소설이었다면 이러한 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이런 종류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굳이 게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 전부 제작진의 의도대로라면, 영화나 소설로는 느끼기 어려운 강렬한 경험(그것이 비록 오해로 인한 부정적인 감상이더라도)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하면서 폭력이라는 테마를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으로 삼는 게임 고유의 한계인 윤리적 모순을 우회하려고 시도한 특이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겠다. [8] 일단 해당 게임의 플레이는 주인공의 무분별한 환각과 망상이 섞인 주마등 내지 과거 회상을 따라가는 것에 가까우므로 이 경우 역시 내러티브의 부조화를 해결한 사례라고 볼 수 있기는 하다. 이 시점으로 생각하면 본작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반전주의 성향의 주제를 띄고 있는 것이 아닌,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전쟁이라는 본질적인 폭력에 철저히 굴복하고 파괴되는 모습들을 관찰하고 가감없이 묘사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