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미국 월드컵에선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 탈락을 걱정할 만큼 초반에 극히 부진했다. 사실 E조 조편성이
노르웨이,
멕시코,
아일랜드, 이탈리아로 어느 팀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조였는데,[2] 정말로 네 팀이 똑같이 1승 1무 1패 골득실 0을 기록해 버렸다. 당시 1986~1990 월드컵은 24강 조별 리그 제도로 현재 월드컵 32강~48강 조별리그보다 토너먼트 진출이 더 어려웠기 때문에, 각 조 3위를 차지한 여섯 팀 가운데 네 팀까지 16강에 올라가는 와일드카드 방식이었다. 이런 복잡한
경우의 수 놀이 끝에 가까스로 본선에 올라갔으니, 축구에 대한 열성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이탈리아 팬들에게는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3] 팀은 물론이고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바조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4]
16강
나이지리아전,
졸라가 퇴장당한 이탈리아는 후반 40분이 넘도록 스코어마저 1: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 할 것처럼 보였으나 바조의 발에서 후반 43분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고,[6] 연장전에서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세를 몰아쳐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경기를 끝낸다. 8강에서 전통의 강호
스페인과 1:1로 접전을 벌이던 후반 42분, 바조는 다시 한번 극적인 결승골을 작렬한다. 4강 상대는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이끄는
불가리아와의 시합에서 바조는 이 대회 최고의 활약상을 선보인다. 전반 20분, 25분에 연달아 골을 터뜨리고, 뒤늦게 스토이치코프가 한 골 만회한 불가리아를 2:1로 누르며 결승에 오른다.이러한 활약으로 바조는 이탈리아에선
구국의 영웅으로 불리며 온갖 찬사와 칭송을 받고 있었다.
운명의
결승전 이탈리아는
브라질과 맞서게 된다. 당시 차례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라리가를 호령하던
호마리우와
베베투, 위대한 주장
둥가 등 이탈리아 못잖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한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격돌 끝에 스코어는 0:0, 결국 승부차기로 우승국을 가리게 된다. 브라질은 키커 네명 가운데 세명이 성공하고, 이탈리아는 두명이 성공해서 승부차기 스코어는 3:2.
이 실축의 임팩트는 엄청난 것으로 실축 직후 이탈리아에서는 팬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바조의 인형을 불태우고 초상화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져서, 토너먼트나 경기에서 활약이 좋았던 선수가 승부차기는 실축하는 경우 자주 바조의 이름을 언급하곤 한다. 더구나 이것은 바조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었기에 그에게는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이유는, 1번 키커이자 주장인 프랑코 바레시도 골대 위로 날려 버렸고 바로 앞 키커인
다니엘레 마사로[8]도
클라우지우 타파레우에게 막히는 등 심적 부담이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애초에 아군이 이미 2번이나 실축한 뒤라서 바조가 넣었어도 이탈리아의 패배는 바뀌지 않았다.[9] 또한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회 내내 햄스트링 통증으로 고생했으며, 전반전에도 통증이 올라와 실려갔다가 들어오는 등 경기 내내 다리 부상을 안고 뛰었다. 그냥
아리고 사키의 아쉬운 판단이었다.
그리고
유로 1996에는 사키 감독과의 불화로 제외되었으며,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고 만다.
멘탈 공황 상태에서 간신히 벗어난 후 리그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뽑인 바조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짝을 이뤘다.
조별 리그 첫 경기 상대는
남미의 다크호스
칠레였고, 유럽에서 뛰는 살라스와
사모라노 등 걸출한 2명의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경기 초반 바조의 감각적인 패스가 비에리의 발 앞에 정확히 배달되며 가볍게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손쉽게 경기를 지배하나 했지만, 살라스에게 잇달아 두 골을 내주고 오히려 끌려다니는데...
여기서
판타지스타로서의 바조가 지닌 천재성이 발휘된다. 칠레의 밀집 수비에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페널티 에어리어 측면에서 공을 잡은 바조는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던 칠레 수비수의 손을 공으로 맞혀버린다.[10] 다분히
페널티킥을 일부러 얻으려 한 동작. 결국 얻어낸 페널티킥을 후반 40분 바조가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동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바조로 시작해서 바조로 끝난 경기였다. 이 시합에서 골로 바조는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골을 기록했다. 또한 팽팽하게 전개되던
오스트리아
전에서도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을 뽑아내며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다시 한 번 드러냈고, 이탈리아는 2승 1무 조 1위로 무난히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16강 상대
노르웨이를 꺾고, 마침내
8강에서 홈팀
프랑스를 만난다. 이 경기에서 바조는 후반 교체 멤버로 뛰었으나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고, 양팀은 0:0으로 비긴채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탈리아 첫번째 키커가 바조... 경악과 불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조는 침착하게 성공한다.
승부차기에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는 바조
이때 킥을 성공시키고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를 본 국내 해설진은 "자기
옛날 월드컵
이야기 하지 말라는 걸까요?"하며 웃음을 지었다.[11]
하지만 마지막 키커
루이지 디 비아조가 실축하면서 끝내 이탈리아는 4:3으로 패한다. 이 실축은 4년 전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바조의 킥과는 달리 골대 윗부분을 맞고 튀어나왔다. 망연자실해 그라운드에 누워버린 디 비아조에게 바조가 다가가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2]
2001년 10월 당한 부상에서 기어코 복귀해내며 의욕을 불태웠던
2002 한일 월드컵 참가는 트라파토니 당시 감독이 끝내 바조를 외면하며 이뤄지지 못했다. 비에리-토티-델 피에로 3각 편대를 너무 과신한 나머지 바조를 외면했으나, 큰 대회에서는 스스로 격이 달라지는 바조를 과소평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탈리아는 2002년 대회 내내 불만족스러운 경기력 끝에
크로아티아에 패하고
멕시코와도 극적인 동점골 끝에 겨우 비겼다.
에콰도르가 크로아티아를 잡아주는 이변으로 조 2위로 겨우 16강에 진출했고 무엇보다
한국과의 16강전에서 골가뭄 끝에 1:2 역전패까지 당하게 된다. 엔트리 제외에 실망하여 두문불출하던 바조가 2003년 은퇴를 표명하자 그에게 존경을 표하는 뜻으로 2004년 4월 28일
스페인과 친선 경기에 발탁했다. 이 시합이 바조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결과는 1:1 무승부. 시합 후 인터뷰에서 은퇴나 지금까지의 대표팀 생활을 거론하지 않고 당장 오늘 치른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게 아쉽다고 발언하며 골잡이로서의 자존심을 드러냈다.
바조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
[1]
바조는 연장 종료 직전에 공을 받자마자 휘슬이 울려서 아쉬웠는지 공을 뻥 찼고, 우연히 골망에 들어갔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고이코체아는 막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사실 킥의 파워나 각도를 봤을 때
고이코체아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슛이었다.
[2]
오늘날 쓰이는 '죽음의 조'라는 말도 당시의 충격적인 조 편성을 보고 탄식한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의 발언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3]
당시 이탈리아는 2위인 아일랜드와 득점과 실점이 같았으나, 아일랜드에게 진 탓에 승자승에 뒤쳐져 3위로 밀렸다. 심지어 조 3위 간 경쟁에서도 4팀 중 꼴지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당시 C조에 속한
대한민국이
볼리비아를 잡았다면 이탈리아는 다득점에 밀리면서 각조 3위에게 주어지는 티켓 4팀안에 들지 못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할 뻔 했다.
[4]
특히 노르웨이 전에서
잔루카 팔리우카가 퇴장당하자
아리고 사키는 골키퍼를 교체하면서 바조를 뺐는데 훗날 사키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죠. 나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나쁜 쪽으로 받아들였죠. 다음날 나에게 오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자기가
마라도나였다면 뺐을거냐고요. 난 팀의 감독이지, 개인의 감독이 아니라고 했죠. 팀을 위해서 잘한 결정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5]
특히 토너먼트에서 6골 중 5골은 본인이 기록했다. 본인이 골이 나오지 않은 결승전을 제외한 각 경기마다 기록한 두번째 골들이 모두 결승골이였다.
[6]
참고로 이로부터
8년 뒤
월드컵 16강전에서,
설기현도 이 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간 바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서서히 다 포기하고 고배를 마실 각오를 하던 해설진, 응원단들이 환희와 더불어 재긴장감으로 분위기가 뒤집혔던걸 떠올리면 바조가 동점골을 만들던 당시의 이탈리아 분위기도 충분히 우리에게 와닿을 만 할것이다.
[7]
이 때
아주리 군단에서 첫번째 키커로 나와 실축한 선수가 바로
파올로 말디니 이전 아주리와
AC 밀란의 위대한 주장인
프랑코 바레시다. 그러니까 공수의 중심이자 주장, 정신적 지주가 모두 실축했다는 것. 우리나라로 치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승부차기에서
홍명보와
황선홍이 실축한 것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프랑코 바레시가 찼던 슛 역시 바조와 똑같이 크로스바를 넘겼다.
[8]
당시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하고 온 33세의 노장 공격수로 대회 내내 1골 밖에 넣지 못하는 등 제 역을 못하며 부진했다. 애초에 승부차기에 넣을 선수가 아니었다는 의미.
[9]
바조가 넣은 뒤 브라질 선수가 실축해야 다시 기회가 생기는 극악의 확률이었고, 바조가 넣었다고 해도 브라질 선수가 넣으면 그대로 끝인데 바조가 거기서 홈런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현재까지 회자되게 되었다.
[10]
비슷한 상황이 토트넘과 리버풀의 2018-19 UCL 결승전에서 재현되었는데, 전반 1분도 되지 않아
사디오 마네가 박스 안에서 공을 잡은 후 상황이 여의치 않자 손을 들어 지시를 하던
무사 시소코의 손을 공으로 맞혀서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며,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다.
[11]
사실 선수에게 이렇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게 맞다. 예를 들어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의 경우,
안정환은
페널티킥을 실패하며 팀의 위기를 불렀으나 결국
골든골 득점으로 한을 풀었다. 만약 그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졌다면 안정환은 바조처럼 은퇴하고 나서도 그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바조의 경우는 그 무대가 결승전이라 한을 제대로 풀지는 못한 듯 하다.
[12]
이후
유로 2000에서 디 비아조가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에서 1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켜 바조의 데자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