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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의 행정 구역과 군구 (1789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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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 조세 재판소 설치 지역, ■: 지방 삼부회 설치 지역, ■: 직접세 지역 | |||||
군구 지도 |
{{{#!folding [ 목록 펼치기 · 접기 ] | 숫자 | 행정구 | 군구 | 비고 | ||
1 | 보르도 | 귀옌 | ||||
2 | 프로방스 | 프로방스 백국 | ||||
3 | 아미앵 | 피카르디 | ||||
4 | 부르주 | 베리, 니베르네 | ||||
5 | 캉 | 노르망디 | ||||
6 | 샬롱 | 샹파뉴 | ||||
7 | 부르고뉴(디종) | 부르고뉴 공국 | ||||
8 | 그르노블 | 도피네 | ||||
9 | 리옹(Riom) | 오베르뉴 | ||||
10 | 리옹(Lyon) | 리오네, 보졸레, 포레 | ||||
11 | 몽펠리에 | 랑그도크 | ||||
12 | 파리 | 일드프랑스 | ||||
13 | 푸아티에 | 푸아투 | ||||
14 | 루앙 | 노르망디 | ||||
15 | 툴루즈 | 랑그도크 | ||||
16 | 투르 | 투렌, 멘, 앙주 | ||||
17 | 메스 | 로렌(삼주교구) | ||||
18 | 렌 | 브르타뉴 | ||||
19 | 리모주 |
리무쟁 마르슈 앙구무아 |
||||
20 | 오를레앙 |
오를레아네 쁘티페르슈 니베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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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물랭 | 부르보네, 니베르네 | ||||
22 | 수아송 | 일드프랑스 | ||||
23 | 몽토방 | 귀옌(오트귀옌) | ||||
24 | 알랑송 |
노르망디 그랑페르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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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페르피냥 | 루시용 | ||||
26 | 브장송 | 프랑슈콩테 | ||||
27 | 발랑시엔 | 플랑드르 | 에노 프랑세가 플랑드르에 포함 | |||
28 | 스트라스부르 | 알자스 | ||||
29 | 브르타뉴 | 브르타뉴 | ||||
30 | 릴 | 플랑드르, 아르투아 | ||||
31 | 라로셸 | 오니, 생통주 | ||||
32 | 낭시 | 로렌 | ||||
33 | 트레부 | 부르고뉴(동브) | ||||
34 | 코르스 | 코르스 | ||||
35 | 오슈 | 가스코뉴 | ||||
36 | 바욘 | 라부르 | 1784년~1787년 이후 오슈 편입 | |||
37 | 포 | 베아른, 술 | 1784년~1787년 이후 오슈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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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이후에 편입된 군구 혹은 지역(35~43) (병합 후 데파르트망으로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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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이름 | 비고 | |||
35 | 콩타 브네생 | 1791년 편입 | |||
36 | 뮐하우젠 공화국 | 1798년 편입 | |||
37 | 사부아 공국 | 1860년 최종 편입 | |||
38 | 니스 백국 | 1차 병합(1793~1814), 1860년 2차 병합. 현 알프마리팀 데파르트망. | |||
39 | 몽벨리야르 공령 | 1793년 편입 | |||
40 | 망통-로크브륀 자유시 | 1861년 편입 | |||
41 | 탕드 백국 | 2차 세계대전 이후 편입 | |||
42 | 자르베르덴 백국 | 1793년 편입. 현 바랭 | |||
43 | 살름살름 공령 | 1793년 편입 |
로렌 Lorra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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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4001a> 깃발 |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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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4001a> 18세기 로렌의 위치 | 구 로렌 레지옹 | |
<colbgcolor=#ffd700><colcolor=#c4001a> 행정단위 | 레지옹 | |
중심도시 | 메스 | |
데모님 | Lorrainer, Lorrainian | |
인구 | 2,349,816명(2012년) | |
면적 | 23,547㎢ | |
데파르트망 | 4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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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어, 영어: Lorraine독일어: Lotharingen
로렌어: Louréne
로렌 프랑크어: Lottringe
프랑스의 옛 지명이자 옛 레지옹.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지방이었다. 현재는 상파뉴, 알자스와 함께 그랑테스트 레지옹을 이루고 있다. 과거 로렌의 데파르트망들은 아래와 같다: 주도는 메스였으며 지역 인구는 2020년 기준 2,349,816명, 그리고 면적은 23,547 제곱킬로미터이다.
2. 역사
로트링겐 혹은 로렌이라는 지명은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의 장손 로타리우스 1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영지에 붙여진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긴 역사 동안 로트링겐(로렌)이 지칭하는 범위는 점차 축소되었다.2.1. 로마 제국과 프랑크 왕국
로마 제국의 당도 이전 로렌도 서, 중부 유럽의 대다수와 같이 켈트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알자스와 비슷한 시기에 켈트족의 치하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이 당도한 것은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이후였고 로마 제국 치하에 오늘날 메스와 베르됭과 같은 도시들의 모태가 되는 정착지가 생겨났다.이후 훈족의 침공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자 프랑크족이 오늘날 로렌 지역을 차지하여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을 수립하였고 이후 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제국이 분할되자 로렌은 중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중프랑크 왕국은 이후 더욱 분할될때 로렌은 로타링기아 왕국의 일부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로타르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로타링기아'라는 명칭은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 된다. 참고로 이 '로타링기아 왕국'은 현대 로렌 뿐만이 아니라 저지대 국가에서 이탈리아 반도 북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 로타링기아는(그 안 로렌 공국과 함께) 이내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독일 왕국->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2.2. 신성 로마 제국의 로렌 공국 (959년 - 1766년)
로렌 공국 문서 참조.2.3. 근대
1737년, 프랑스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거래로 프랑스가 로렌 공국( 로트링겐 공국)공작 프랑수아 에티엔과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로렌 공국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으로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넘어갔다. 로렌 공국은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 사후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프란츠 1세는 공국을 내준 보상으로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이 되었다.로렌 공국의 프랑스 합병 이후 이 지역에서는 프랑스화가 진행[1]되었으며 1769년에는 낭시 대학교가 세워졌고 낭시와 생디에는 주교좌가 되어 프랑스에 일부가 되어 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지역들이 뫼즈, 모젤, 뫼르트, 보주 데파르트망들로 행정 개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시기 1790년에는 로렌의 대표들이 로렌에 독일계 자치 데파르트망들의 수립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이후 1871년까지 로렌의 역사는 프랑스 다른 지역들의 역사와 함께 흘러갔다.
독일로 넘어간 로렌 지역의 이 시기 역사에 대한 내용은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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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전후의 데파르트망 변화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 할양된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에서는 프랑스 국적을 유지하고자 한 프랑스인들이 추방되어 로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메스에서만 약 2만 명이 떠났으며 이 시기 낭시는 인구를 두배로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로렌은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서부전선의 참호선이 로렌을 가로질렀고 베르됭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투들도 로렌 위에서 일어나면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 이러한 피해의 기억 때문인지 전후 전간기에 수복된 로렌의 독일-프랑스 국경에는 마지노선이 로렌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구축되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가 순식간에 항복하면서 1940년에 로렌은 알자스와 함께 나치 독일에 병합되었다. 이 결과로 병합된 모젤 데파르트망의 주민들은 나치 독일에 의해 징집당했다. 그리고 로렌은 1944년, 1945년이 돼서야 해방되었다.
2.4. 현대
전후 로렌은 빠른 속도로 재건되어 20년간의 전후 프랑스 경제의 황금기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의 과실을 톡톡히 누렸다. 과거 로렌을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로 만들었던 로렌의 지하자원은 로렌을 프랑스 경제 제3의 축을 구성하게 만들었고 프랑스의 다른 산업 강세 지역들과 같이 인구학적 변동을 겪게 된다. 특히 이 당시 폴란드와 이탈리아에서 이민자들이 와 정착하게 되면서 인구도 가파르게 성장했었고, 이 지역의 강한 경제를 대변하듯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의 두번째 연선이 놓은 곳도 로렌을 거쳐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또한 알자스와 로렌의 철강과 독일 라인란트의 석탄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와 후신인 유럽 공동체, 단일 시장을 통한 베네룩스와 독일과의 무역으로 로렌은 톡톡히 이득을 보았다.3. 경제
위의 지하자원에 대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로렌은 산업활동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다만 현재는 광업이 약세를 띄면서 전자제품 등의 생산으로 경제를 재구성해나가는 추세에 있다. 또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독일을 접하고 있는 위치에서 알 수 있듯 이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이득을 무리는 지역이다. 로렌의 RGDP는 440억 유로로 프랑스 GDP의 3.4%에 달하며 ( 201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을 기준으로) 26개 레지옹 중 8위에 올랐다.4. 지리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3개국[4]을 접하는 레지옹이었다. 지역 대부분이 파리 분지에 들어가며 뫼즈강과 보주 산맥이 지난다.4.1. 교통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이며 경제적으로 강세를 띄는 지역인 만큼 교통의 요지이다. 프랑스의 2번째 고속선인 LGV est (유럽고속선 동부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잇는다.)이 로렌을 지나며 A31과 같은 오토루트도 로렌을 지난다. 항공교통으로는 메츠 낭시 로렌 공항이 있다.5. 언어와 문화
로렌은 알자스와 다르게 상당히 프랑스화 되었지만 한때 독일에 재편입되었던 모젤 데파르트망에서는 독일어 계통의 언어인 로렌 프랑크어도 (알자스의 알자스어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수 쓰이고 로렌의 프랑스어 역시 독일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로렌어'라 불리는 지역의 사투리가 존재한다. 다만 프랑스의 다른 지역 언어들과 같이 대부분 표준 프랑스어로 대체되어 로렌 주민의 대다수는 표준 프랑스어를 유창히 구사한다.6. 주요 도시들
- 메스 - 주도였고 로렌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 낭시 - 역사적으로 로렌 지방의 중심지였으며[5] 메츠가 독일로 넘어간 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사이에는 주도로 기능했다.
- 에피날
- 베르됭
- 바르르뒤크
- 뤼네빌
7. 출신 인물
★표시는 모젤 데파르트망[6]이 출생지인 인물.- 성녀 잔 다르크 - 그녀가 전장에서 사용했던 십자 문양은 '로렌의 십자'로 알려져 자유 프랑스가 상징으로 쓰고 다녔다.
- 샤를 메시에
- 니콜라 빌렘 신부 - 안중근 토마스 의사 및 그의 집안과 친밀했던 프랑스인 신부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할 때 고해성사를 집전해 준 신부이다.(★)
- 앙리 푸앵카레
- 에밀 뒤르켐 - 사회학자. 성이 독일식인 이유로, 이 양반의 이름을 프랑스식인 뒤르켕으로 부를 것이냐 독일식인 뒤르카임으로 부를 것이냐를 가지고 한국 사회학계가 미친 듯이 싸운 적이 있었다.
- 에밀 베낭트 - 프랑스의 축구선수.(★)[7]
- 파트리샤 카스 - 샹송 가수(★)
- 스트로브-위예 중 장 마리 스트로브 - 스트로브는 메스 출신으로 국적은 프랑스지만, 독일에서 활동을 주로 했다. (★) 반대로 동반자였던 위예는 파리 출신이다.
8. 대중 매체에서
-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소재가 되었던 사건 자체는 로렌과 알자스가 둘 다 독일제국의 영토가 되었던 것에서 비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