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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0D0C><colcolor=#E5B07C>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동이 (2010) Dong Y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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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로맨스, 사극 | |
방송 시간 | 월 · 화 / 오후 09:55 ~ 11:05 | |
방송 기간 | 2010년 3월 22일 ~ 2010년 10월 12일 | |
방송 횟수 | 60부작 | |
제작사 | 리더스콘텐츠컴패니 | |
채널 | MBC TV | |
제 작 진 |
<colbgcolor=#1E0D0C><colcolor=#E5B07C> 제작 | 이세중 |
연출 | 이병훈, 김상협 | |
극본 | 김이영 | |
출연 | 한효주, 지진희, 이소연, 배수빈, 정진영, 박하선 外 | |
시청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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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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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징
허준, 대장금, 상도, 이산 등으로 유명한 이병훈의 작품.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그린다. 어떤면에서는 전작인 이산의 프리퀄이다.[1][2]장희빈과 인현왕후에 비해 제대로 알려진 것이 적어 매체마다 조연으로만 오르내렸던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한 새로운 해석이 기대 되었다. 실제로 장희빈은 비슷한 소재의 타 사극들과는 차별성을 띤 인물로 그려졌다.
초반의 장희빈, 장옥정( 이소연 분)은 천한 신분에도 높은 뜻을 지닌 강하고 영리한 여성으로 그려졌으며 후에 그녀의 적이 되는 주인공 동이도 그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 숙종의 마음이 동이에게 가는 것을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3] 보게 되고 중전이 되기 위해 손을 더럽힌 후[4] 본격적으로 악역이 된다. 하지만 악역이 된 후에도 천박하고 패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도도한 포스를 뿜어내며 찬사를 받았다.[5]
다만 장희재는 악랄함과 얌체스러움을 극대화하여 해당 배우인 김유석이 사람들에게 쓰레기같은 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연출이 훌륭했다.[6] 하지만 다른 장희빈 시리즈의 장희재들[7]에 비해 박력은 떨어졌다는 평가였다.[8]
그 외에 장희빈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숙종이 아닌 능동적인 숙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상하고 선량하며 영리한, 그야말로 훌륭한 왕으로 그려지기에 숙종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미화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이 단순한 당쟁의 결과물이 아닌, 숙종의 의도된 숙청이었다는 주류학설에 맞춰 작중에서의 숙종도 중신들 머리위에서 당쟁을 이용해 환국을 일으키는 정치꾼다운 모습도 보인다.[9]
여담으로 같은 소속사 때문인지, 한효주와 배수빈이 찬란한 유산 이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10] 거기다 극중 관계나 포지션도 비슷하다? (고은성-동이, 박준세-차천수) 원래 배수빈이 맡은 차천수 역은 숙종과 연적이 되는 서브남주[11]였지만, 숙종과 동이의 멜로가 강조되면서 동이의 측근 1 정도로 전락했다. 이병훈 PD도 종영 후 검계 쪽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12] 깨방정 숙종 캐릭터가 대박을 치면서 차천수의 비중이 줄어든 것 때문에 배수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이병훈 PD 작품인데 이산에서는 노론이 악의 축이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노론이 동이의 지원군 역할을 하는 입장이라는 거다. 그 외에도 이산에서 노론 대신 중 하나로 나왔던 성우 겸 배우인 이우신이 이 작품에서는 동이와 숙종 등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의 역할로 나온다.[13] 물론 그다지 도움은 안 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14] 드라마 속 정치 구도는 실제 숙종 시대 정치 구도와 많이 다르게 묘사된다.
또한 스리슬쩍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대궐에서 애지중지하던 숙빈 최씨의 옥가락지를 실제 소품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승은상궁이 된 이후부터 옥가락지를 끼기 시작하며, 이는 같은 김이영 작가, 이병훈 PD의 작품인 이산[15]과 시간선이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치.
동이와 이산의 포지션이 바뀔 경우 한 쪽이 극대화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이보다 더 작아진다는 것도 흥미롭다. 게다가 동이에선 서인이 선역이었으나 이산에선 완전한 악역이다. 작품 내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이 시점에서 정의로운 집단이었던 서인이 이산 시점에서 타락한 거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10월 12일, 60회로 종영하였는데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특히 해외에선 대장금과 함께 가장 많은 글로벌 팬을 거느린 양대사극으로 통한다. 최고시청률은 29%, 꾸준히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물론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지만, 2010년 전후로 IPTV 등 다시보기 영역이 티비 시청률을 잠식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시기라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여담이지만, 동이에서 의금부 포졸의 옷은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호위무사의 옷을 그대로 입혔고 지방 관아 포졸의 옷 역시 선덕여왕에서 사량부 옷을 입혀 다른 사극의 복장과는 차별화를 뒀다. 적어도 다른 사극의 포졸복은 일명 국민 포졸복이라 하여 흰 한복 겉에 검은 조끼만 달랑 입고 신발도 짚신인 반면 MBC 사극의 포졸들은 이렇게 포졸인데도 비교적 화려한 옷을 입고 신발도 목화를 신었다. 이병훈 PD의 전작 이산에 나온 포졸복을 재활용하는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가 '외주제작사가 체불한 소속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MBC가 대신 지급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MBC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0년 9월 3일부터 한예조 소속 연기자들이 드라마 촬영거부에 들어갔다. 6일 오전 11시 30분 경 타결돼 촬영이 시작됐으나 당일 밤 10시에 방송까지는 약 10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용인 세트장에서 서울 방송국까지 테이프를 옮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방송에서나 쓰던 위성중계차(SNG)를 동원했다. 그리고 정규방송에 성공했다. 녹화방송인 드라마를 송출하기 위해 중계차를 동원한 것은 국내에서 최초였다.
여담으로 2010년 초에 MBC가 총 파업에 들어갔을 당시 이쪽에도 파급이 약간 있었던 것인지 12화부터 본편이 끝나고 다음회 예고로 넘어가기 전 붉은 꽃잎이 휘날린 뒤 배경이 바뀌는 효과가 사라지고 그냥 해당 회차의 마지막 장면[16]을 정지시켜 점점 클로즈업되게만 해놓고 이 뒤로 주역들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그냥 잘라서 이어붙여놓아 상당히 어색한 상태로 한동안 방송이 되었었다. 직접 확인해보자. 이러한 문제는 총 파업이 끝난 뒤인 17화 방영분부터 원래의 연출로 돌아왔다. #
MBC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유튜브 채널에 전 편이 업로드 되어 있다.
3. 등장인물
- 최동이(훗날 숙빈 최씨) - 한효주 (아역: 김유정)
- 숙종 - 지진희
- 희빈 장씨 - 이소연
- 차천수 - 배수빈[17]
- 서용기 - 정진영
- 심운택 - 김동윤[18]
- 장희재 - 김유석[19]
- 인현왕후 - 박하선
- 인원왕후[20] - 오연서
- 명성대비 - 박정수
- 궁녀 - 최나경
- 세자 - 윤찬
- 이금 - 이형석 (성인 : 이선호)
- 정임 - 정유미
- 정상궁[21] - 김혜선
- 봉상궁[22] - 김소이
- 애종 - 강유미
- 영달 - 이광수
- 오태석 - 정동환[23][24]
- 오윤 - 최철호[25]
- 은금 - 한다민
- 오태풍 - 이계인[26]
- 오태풍의 처 - 이숙[27]
- 윤씨(장희빈의 어머니) - 최란[28]
- 오호양 - 여호민[29]
- 장무열[30] - 최종환
- 황주식 - 이희도
- 김환 - 정인기
- 김환제자 - 정기성
-
변 행수 -
정호근[31]
- 그밖에 배성우가 의금부의 군관으로 단역 출연을, 최우식이 궐을 빠져나온 경종을 납치(?)하는 단역으로 등장하였다. 또 이병훈 pd 사극에서 주로 비열한 악역이나 또는 악역 대신으로 나오는 나성균 배우가 조력자로 나오는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초반만 해도 동이가 장희빈 쪽에서 일했었다보니 대립 위치였으나 동이가 인현왕후 쪽으로 기울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편이 되었다.
3.1. 그 외 인물
4. 사실과 다른 점
이병훈 PD의 허준, 대장금, 서동요 등은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아 상상력이 동원되었지만 숙빈 최씨의 경우, 실록에 기록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사실과 다른 점이 상당하다. 또한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는 PD의 특성으로 숙종, 인현왕후와 서인, 노론을 선으로 설정하여 엄청난 미화를[32] 희빈 장씨와 남인을 악인으로 설정하여 매우 많은 가상인물과 가상범죄를 지어냈다.-
숙빈 최씨의 수동적인 캐릭터로의 설정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면 숙빈은 여태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 꽤 천연덕스럽고 중전 다음가는 현숙한 여자로 그려진다. 또한 숙빈이 숙종에게, 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고변한 사실은 무려 야사도 아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으나 이 부분은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인현왕후가 폐비가 된 것이 희빈 장씨의 일파의 짓이라는 것을 알고 숙종에게 알리려다가 희빈 장씨와 장희재에 의한 암살미수로 인한 철저한 피해자로 그려진다. 다만 숙빈 최씨는 장희빈의 인현왕후의 저주에 대한 사실을 고변했을 때 후궁의 신분이었고 인현왕후는 중전이었는데다 전근대 사회에서 저주를 한다는 것은 살인을 하는 것과 동일하게 처벌할 정도로 금기시했고 저주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숙빈 최씨가 장희빈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고변한 것은 인품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왕의 정실부인인 중전을 저주한 후궁을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이 웃전을 기만한 것이므로 고변을 한 것은 인현왕후에게 공을 세우면 세운 것이지 인품적으로 흠 잡을 일은 아니다. 또한 숙빈 최씨는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는데 기록에는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사가에 나가서 살던 시절 인현왕후의 생일에 인현왕후를 모셨던 적이 있는 그녀가 인현왕후를 위한 기원을 올리고 있던 모습을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숙종이 목격하는 바람에 눈에 띄게 되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다고 한다.(이문정의 수문록) 숙빈 최씨에 대한 실록의 기록과 이문정의 수문록의 기록을 시간적 순서로 종합하면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중전이던 시기에 인현왕후를 모셨으며, 인현왕후가 폐비가 된 뒤에 숙종의 승은을 입었으며, 인현왕후가 사망한 이후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실을 숙종에게 고변했으므로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를 위해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를 한 사실을 고변한 것이므로 윗전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지 그것이 수단이 악랄하다고 비판받을 사안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숙빈 최씨가 장희빈을 고변한 것에 대해서 아무도 희빈 장씨를 고변하지 못한 것을 숙빈 최씨가 인현왕후에 대해 의리를 지켜 인현왕후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었다고 기록되었지 장희빈을 고변한 것에 대해서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드라마 동이에서 이러한 내용이 삭제된 이유는 야사 및 다른 드라마들에서 숙빈 최씨의 행동을 두고 정치적으로 장희빈을 제거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 것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했기에 삭제된 것으로 보이며 가끔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면모가 아예 없지 않으나 그 모든 게 계략적이기보단 그저 주변 인물들이 꾸려주는 서사에 맞춰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특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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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의 궁 입궐 계기
극중에서처럼 동이(숙빈)가 장악원의 노비 일을 하다가 감찰부의 궁인으로 승격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씨남정기(소설)에 의하면 숙빈이 어린 시절 인현왕후의 폐위를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밟혀 후궁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말 그대로 소설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흔히 궁중에서 무수리일을 하다가 숙종의 승은을 입은 것이 전부이며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나 실록에서도 숙빈 최씨의 신분에 대해서 기록된 것은 없다. 출신이 불분명하여 여러가지 설이 많은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궁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무수리였다가 국왕 숙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종은 영조가 말하기를 숙빈 최씨는 침방의 궁녀였다며 무수리 설을 부정했는데 영조의 컴플렉스 등을 생각해 보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침방 궁녀는 내명부에서 높은 편에 속하는데 지밀 궁녀 바로 다음이 침방 궁녀. 다만 실제로는 궁녀의 대부분이 천민 신분인 공 노비 출신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궁녀보다 낮은 무수리이거나 천민 출생에 심지어 혼인을 했다가 남편과 사별한 기혼녀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역사적 기록이 없어서 근거는 없다. 무수리는 궁녀와 달리 궁에만 머물지 않고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불확실한 출신 신분 때문에 영조 즉위 후 영조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형이 있다는 소문, 심지어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 전 남편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영조가 이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의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므로 후궁 첩지를 받은 후에 낳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영조의 친형은 요절했는데 그래서 영조가 숙빈 최씨의 차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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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 승하 시기와 사인
명성왕후는 1683년 12월 5일(이하 모두 음력)에 승하했고[34] 장희빈은 명성왕후 사후 3년상이 끝나고 나서 재입궁하며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원자(후일 경종)를 낳고 난 후 1689년 5월에 폐비된다. 헌데 드라마에서는 벌써 고인이 되신 대비가 멀쩡히 살아 있다.[35] 또한 명성왕후는 숙종의 두창을 고치기 위해 무당의 말을 듣고 치성드리고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한 후유증으로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장희재가 독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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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체문제
동이는 17~18세기 조선 숙종 시대가 배경인데 실제로는 첩지머리가 아닌 가체를 해야 맞다. 가체에서 첩지머리가 된것은 1756년(영조 32년)1월 16일이다[36].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여러 사극을 찍으면서 여성 출연진들이 가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겪어온 이병훈 PD가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첩지머리를 한 것. # 사실 가체가 굉장히 무거워서 그 옛날 조선에서도 무거운 가체로 인해 목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니 지금이라고 다르진 않을 거다.[37] 게다가 이후의 사극들은 동이처럼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선 전기 배경, 조선 후기 배경을 가리지 않고 가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선 동이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상황. 다만 최근 중국 사극에서는 속이 빈 가벼운 가체가 개발되어 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그런 빈 가체를 만들어 여성 출연진들도 배려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사실과 맞지 않은 점도 피할 필요가 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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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에 대한 문제
극중 연잉군을 나인들은 왕자마마, 숙빈 최씨는 왕자라 하거나 휘를 막 부르는데 정말 그랬다간 큰 문제가 생긴다. 후궁은 자기 소생이라 해도 왕손에게 휘를 부르거나 하대를 할 수 없다. 일단 왕족이든 뭐든 휘를 함부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큰 실례였던 사회다. 왕손들은 나자마자 품계를 초월한 신분이지만, 후궁은 높아봐야 정 1품이다. 또한 연잉군은 중전의 소생이 아니기 때문에 서자이다. 왕의 적자는 대군, 왕의 서자는 군이므로 숙빈 최씨도, 나인들도 왕자 아기씨라 불러야 하며 보통 시간이 흘러 연잉군에 봉해지면서 연잉군 자가라고 불러야 한다.[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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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의 죄목
인현왕후의 죄목은 칠거지악 중 자식이 없는 죄, 희빈 장씨를 투기한 것,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 투기로 내전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 원자(경종)가 태어났을 때 노여워한 것, 영빈 김씨가 퇴궁당할 때 위로하기는 커녕 재촉한 것 등이지, 희빈 장씨와 남인이 모함을 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남인 역시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였다.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는 간신에게 모함당한 것이 아니라 삼불거의 규범에 따른 것이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모친인 명성왕후와 증조모인 장렬왕후의 상을 같이 치른 조강지처이므로 폐위의 처분은 가혹하다는 것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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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의 죄목
장희빈은 각종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현왕후를 모함하지 않았으며 명성왕후를 독살하려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명성왕후는 희빈 장씨가 출궁되어 사가에 있던 시기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또한 왕세자의 고명을 받으려 '등록유초' 같은 접경지의 군사 기밀을 빼돌린 적도 없으며 숙빈 최씨나 연잉군을 죽이려고 든 적도 없었다. 이 드라마나 다른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장희빈의 대부분의 죄목은 허구이다. 또한 장희빈의 강등은 죄가 있어 폐위된 것이 아니라 삼불거의 규범에 따른 것이다. 삼불겨의 규범에서 쫓겨난 정실부인을 다시 들이면 새로 들인 정실부인은 친정으로 돌려보내거나 첩으로 강등시킨다. 즉, 인현왕후가 무죄라 복위된 것도 아니고, 희빈 장씨가 죄를 지어 강등된 것이 아니라, 국법을 따른 것이었다. 흔히 전왕비인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국모가 둘일 수 없으므로 국법의 우선순위에 따라 후궁으로 밀려난 것이라고 아는 이들이 있으나 삼불거의 규범은 조선의 모든 사대부들에게 적용되는 규범이었다. 또 희빈이 직접 나서 숙종에게 사약을 내려달라고 청한 적은 없으며 실제 죄목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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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의
안국동
사가에서의
의식주
드라마 내에서 인현왕후는 폐서인이 되고 안국동 사가로 내처지는데 이때 머무는 곳이 초가집으로 나온다. 인현왕후는 폐서인이 된 뒤 친정본가로 돌아갔으며 초가집에 머물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폐비된 후 초가집에 머물며 지낸 왕비는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 송씨로 엄밀하게는 왕대비일 때 당시 상왕이던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함께 폐위되었으며 단종이 사사된 뒤에도 출가하지 않았고 지금의 동대문 밖에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경혜공주의 아들로 그녀에게는 시조카가 되는 정미수가 수양아들로 들어오면서 정미수의 집에 거주하였고,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폐비된 왕비 대부분이 사가로 돌아갔기에 초가집에 머물지 않았으며 정순왕후 송씨가 유일하게 초가집에 머물었다. 그외로 초가집에 머문 폐비는 유일하게 광해군의 정비인 폐비 유씨로 자신의 남편인 광해군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가서 위리안치 되어 초가집에 머물었으며 폐위되어 유배된 지 7개월여 만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인현왕후가 폐비되어 사가로 내처진 뒤 초가집에서 머물었다는 것은 인현왕후가 어질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드라마의 허구. 또한 인현왕후가 소복을 입으며 식사도 채식 위주로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 역시 허구다. 조선왕조실록의 숙종실록에서도 궁에서 폐비에게 의복과 음식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그것도 자존심 있는 사대부가의 출신으로 중전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폐서인이 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죽느니만 못한 취급이었다. 이때문에 스트레스는 심했을 수는 있으나 의식주를 소박하게 초가집에서 머물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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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왕후와 영빈 김씨와 명빈 박씨의 부재
언제나 장옥정의 편이 되어준 숙종 대의 대왕대비 장렬왕후, 숙빈과 마찬가지로 인현왕후를 많이 돕던 영빈 김씨, 숙종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연령군의 어머니인 명빈 박씨 등 각종 주요 왕실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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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인물들의 변경
서인의 수장 송시열, 김수항, 남구만이나 남인의 수장 민암같은 인물들이 대다수 드라마상의 가상인물들로 변경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희빈 주연 사극에서 왕실 최고어른이자 중요한 조연 중 하나인 대왕대비 장렬왕후는 아예 등장과 언급이 없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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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아버지 최효원 사망시기
검계의 수장이었던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드라마내에서 동이가 10살 무렵에 죽는데 실제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검계의 수장도 아닐 뿐더러 1672년 숙빈이 세 살 때 사망한다.[43] 그리고 검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검계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천민들을 돕는 의적이 아닌 살인, 강도, 약탈, 부녀자 겁간 등 형사사건을 일으키는 요즘의 조직 폭력배나 다름없는 단순 악질 범죄집단이었고 영조 때까지 출몰해 영조의 어그로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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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의 후궁 책봉 시기
드라마에서 숙원 첩지를 내리는 사람이 인현왕후로 나오는데 역시 사실과 다르다. 실제 숙빈이 숙원이 된 시기는 1693년 4월 26일로 당시 중전은 인현왕후가 아닌 장희빈이었다. 인현왕후는 당시 폐비였고 중전으로 복위된 때는 1694년 6월 1일이다. 드라마에서 동이는 연잉군과 입궁 후 숙의로 책봉되고 인현왕후 사후에 숙빈으로 책봉되나, 실제 숙빈은 인현왕후 복위 다음날인 1694년 6월 2일 숙의에 책봉되고 1695년 6월 8일 귀인에 진봉되고 1699년 10월 25일 단종대왕 복위를 축하하는 기념으로 정1품 빈으로 책봉. -
숙빈의 첫 아들 영수(永壽) 사망 시기
숙빈의 첫 아들이자 숙종의 셋째 아들인 영수(永壽) 왕자는 1693년 10월 6일 태어나 1693년 12월 13일 두 달만에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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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 탄생과 입궁시기
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는 1694년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에서 태어났다. 검계 문제로 쫓겨났던 동이가 사가에서 연잉군을 출산하는 장면이 오류로 지적받는 이유가 이것. 그리고 연잉군이 7~8살쯤 입궁하여 봉작받고 동이도 숙원에서 숙의로 책봉되는데 실제 영조는 보경당에서 태어나 1699년 12월 24일 연잉군으로 봉해지고 19살이던 1712년 2월 12일에야 출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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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의 중전 추대
드라마에서 숙종은 인현왕후 사후 숙빈을 중전 추대할 생각이 있었고 동이의 요청으로 후궁이 중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선포하는데 실제로는 장희빈 사사 전날인 1701년 10월 7일 선포하였다. 또한 숙종은 숙빈을 중전에 올릴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희빈 사후 숙빈에 대한 견제책으로 1702년 인원왕후와 가례를 올렸으며 내명부를 진봉하며 일신했고 숙빈은 궁이 아닌 숙빈방 이현궁에서 지내게 된다.[44] 다만 숙종이 숙빈을 중전으로 책봉하겠다고 하자 숙빈이 그 말이 너무 황송하고 두려워 한겨울에 뜰에 엎드려 사양했다는 야사도 전해지고 있으므로 드라마는 이 야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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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와
숙빈 최씨의 대립각
두 여인 둘 다 노론의 지지를 받는 쪽으로 같은 정치 성향을 기반으로 지지받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에 인원왕후와 숙빈 최씨가 대립하는 에피소드는 사실상 픽션 중에서도 배경조차 고려하지 않은 픽션에 가깝다. 실제로, 경종재위시 인원왕후 덕분에 연잉군이 왕세제가 될 수 있었다.
5. 수상 내역
<rowcolor=#E5B07C> 수상 날짜 | 시상식 | 수상 부문 | 수상자(작) |
2010년 | |||
10월 2일 |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여자 주연 연기상 | 한효주 |
남자 조연 연기상 | 정동환 | ||
12월 30일 | MBC 연기대상 |
조연 연기자 부문 남자 황금연기상 |
김유석 |
특별상 부문 아역상 | 이형석 | ||
김유정 | |||
여자 인기상 | 한효주 | ||
여자 신인상 | 박하선 | ||
여자 우수상 | 이소연 | ||
남자 최우수상 | 지진희 | ||
깨방정상 | |||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 | 동이 | ||
대상 | 한효주 | ||
2011년 | |||
5월 26일 |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한효주 |
6. 시청률
이 당시 월화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owcolor=#E5B07C> 회차 | 방영일 | 시청률 | 회차 | 방영일 | 시청률 |
1회 | 2010.03.22. | 11.6% | 31회 | 2010.07.05. | 26.1% |
2회 | 2010.03.23. | 11.6% | 32회 | 2010.07.06. | 27.5% |
3회 | 2010.03.29. | 12.7% | 33회 | 2010.07.12. | 26.3% |
4회 | 2010.03.30. | 13.6% | 34회 | 2010.07.13. | 27.4% |
5회 | 2010.04.05. | 14.7% | 35회 | 2010.07.19. | 24.3% |
6회 | 2010.04.06. | 15.8% | 36회 | 2010.07.20. | 25.3% |
7회 | 2010.04.12. | 17.9% | 37회 | 2010.07.26. | 24.4% |
8회 | 2010.04.13. | 18.8% | 38회 | 2010.07.27. | 25.7% |
9회 | 2010.04.19. | 19.2% | 39회 | 2010.08.02. | 21.5% |
10회 | 2010.04.20. | 18.2% | 40회 | 2010.08.03. | 21.9% |
11회 | 2010.04.26. | 21.0% | 41회 | 2010.08.09. | 22.7% |
12회 | 2010.04.27. | 21.6% | 42회 | 2010.08.10. | 21.3% |
13회 | 2010.05.03. | 20.0% | 43회 | 2010.08.16. | 22.7% |
14회 | 2010.05.04. | 19.9% | 44회 | 2010.08.17. | 21.6% |
15회 | 2010.05.10. | 25.1% | 45회 | 2010.08.23. | 24.3% |
16회 | 2010.05.11. | 26.2% | 46회 | 2010.08.24. | 25.1% |
17회 | 2010.05.17. | 25.0% | 47회 | 2010.08.30. | 27.3% |
18회 | 2010.05.18. | 23.2% | 48회 | 2010.08.31. | 27.4% |
19회 | 2010.05.24. | 24.6% | 49회 | 2010.09.06. | 27.7% |
20회 | 2010.05.25. | 22.4% | 50회 | 2010.09.07. | 25.3% |
21회 | 2010.05.31. | 23.0% | 51회 | 2010.09.13. | 24.5% |
22회 | 2010.06.01. | 24.2% | 52회 | 2010.09.14. | 24.5% |
23회 | 2010.06.07. | 23.9% | 53회 | 2010.09.20. | 22.7% |
24회 | 2010.06.08. | 25.8% | 54회 | 2010.09.21. | 19.7% |
25회 | 2010.06.14. | 27.4% | 55회 | 2010.09.27. | 24.4% |
26회 | 2010.06.15. | 29.1% | 56회 | 2010.09.28. | 24.4% |
27회 | 2010.06.20. | 26.9% | 57회 | 2010.10.04. | 22.2% |
28회 | 2010.06.21. | 28.0% | 58회 | 2010.10.05. | 22.6% |
29회 | 2010.06.27. | 28.0% | 59회 | 2010.10.11. | 24.4% |
30회 | 2010.06.28. | 28.7% | 60회 | 2010.10.12. | 24.3% |
7. 평가
초중반부 까지 이어지는 정체를 숨긴 허당스러운 왕과 당돌한 천인 출신 여성의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이 드라마의 백미. 언제나 근엄 일변도로 묘사되던 기존 사극의 전형적 틀에 박힌 이미지의 왕들과는 달리, 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이며 따뜻한 모습으로 그려진 숙종의 캐릭터가 천방지축 동이와 잘 어우러져 그동안의 사극에선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묘미를 자아냈다.숙종 시대를 다룬 사극 중 희빈 장씨에 대한 재해석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낸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극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악하고 독하게만 묘사되던 희빈 장씨의 캐릭터를,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총명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며 커다란 야심을 가지고 악행에도 손을 대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자존심으로 비열하고 천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며, 연모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자신의 사람에게는 친절하며 연적에게 질투를 불태우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로 훌륭하게 재해석 했다.[45]
숙종과 동이의 로맨스가 강조되며 극이 다소 가볍게 흐르는 부분과 사실과 다른 갖가지 역사왜곡 관련 논란들이 아쉬운 건 사실이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 희생된 것이므로 감안할 필요는 있다. 다만 역사극을 내세운 이상 역사왜곡에 대해 지적받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로만 평가받고 싶다면, 한국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극이란 표현을 없애고, 가상역사 혹은 판타지라고 장르를 달리 표기해야 할 것이다. [46]
결론적으로는 로맨스 사극과 조연들의 다양한 캐릭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정통 사극이나 고증,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살짝 아쉬움도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8. 기타
- 의외로 외국에서 더 인기가 높은 편인데, 방송된 지 10년이 훨씬 지난 2020년대까지도 대장금과 더불어 외국인들에게 인생 K-드라마로 언급되며 각종 포털 사이트 드라마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 꾸준히 올라오고 일다. 2023년에는 애니메이션 약사의 혼잣말이 방영되자 일본 현지에서 대장금, 동이가 생각난다는 후기가 연이어 올라오기도 했다. 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능력 있는 여자 주인공의 성장물이자 생존물이라는 점이 비슷하게 다가온 듯.
- 소설판이 존재한다. 드라마와 차이점이 많은데 수위가 굉장히 높다. 동이는 성씨를 '천'으로 숨기지 않고 '최'를 그대로 유지하며, 가족이 검계라는 사실을 들켰을 때 사가로 쫓겨나지 않으며 숙빈은커녕 숙의로도 오르지 못하고 숙원에서 멈춘다. 후궁인데도 같은 후궁인 장희빈에게 납치를 당해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소설 막바지에는 경종시절이며 동이는 이미 숙종과 함께 고인이 되어있다. 장무열이 등장하지 않으며 최종보스도 오태석과 오윤이다. 오태석과 오윤은 연잉군에게 패하여 몰락한다.
[1]
동이 모델인 숙빈 최씨가 정조의 증조할머니이기 때문이다.
[2]
그리고 다음 이병훈 작품인 마의가 배경이 효종, 현종시대이다보니 이 작품은 동이의 프리퀄이 되었다.
[3]
한창 숙종의 마음이 장희빈을 떠나 동이에게 옮겨갈 무렵 숙종을 만나러 간 장희빈이 숙종이 동이와 둘이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본 게 무려 세 차례나 된다.
[4]
명성왕후의 죽음을 인현왕후의 짓이라고 누명을 씌워서 폐비로 만들고 동이와 연잉군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걸 제외하면 작중 장희빈은 뒤에서 지시하는 쪽이었고 대부분의 악행은 오빠인 장희재와 어머니인 윤씨가 더 많이 저질렀었다.
[5]
유일하게 패악을 부렸을 때가 자신이 어머니인 윤씨와 오빠인 장희재가 고신를 받을 때였고 추하게 매달렸을 때는 자신이 죽기 전에 동이에게 자신의 아들인 세자 경종만큼은 살려달라고 말했을 때였다.
[6]
배역을 맡은 김유석은 이 악랄함과 얌체같은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희재 연기를 할 때 간신배같은 톤으로 연기했었다.
[7]
김혜수표의 장희재는 다름아닌
선덕여왕에서
김서현을 연기했던
정성모가,
정선경표의 장희재는 다름아닌 중후한 연기에 특화된
길용우가, 또한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는 다름아닌 거물 전문 배우
이덕화가 배역했다. 또한 동이 촬영 이후로부터 3년 후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원래는
푸른거탑의 싸이코 상병 역을 맡은
김호창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거절해서
고영빈으로 대체했는데,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장희재는
문무겸비의 인물로 묘사되었으며 원래 장희재의 악행으로 묘사되었던 일들은
성동일이 맡았던 장옥정의 숙부인
장현이 한 것으로 나왔다.
[8]
다만
개그 캐릭터로 연출된 것의 경우는 다른 장희재들도 마찬가지였다.
[9]
근데 문제는 지진희가 맡은 숙종이 이런 정치꾼 다운 모습을 보여도 유해보이는 외모 때문에 가려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훗날 타 방송국에서 제일 숙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작품과 그 숙종 역을 맡은 배우가 나왔는데 바로 대박에서 숙종 역을 맡은 최민수였다.
[10]
여기에 두 연기자 모두
이소연과도 엮였다. 한효주는
봄의 왈츠에서, 배수빈은
결혼합시다와
천사의 유혹에서 각각 이소연과 함께 연기했다.
[11]
이산에서 이종수가 맡았던 박대수가 인기를 얻어서 배수빈에게도 박대수같은 캐릭터를 배역으로 준 거였었다.
[12]
동이의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검계 쪽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기에 초반에 하차했던 동이의 어릴 적 친구였던 게둬라가 검계의 수장되어서 돌아오기까지 했으나 결국 검계 쪽 이야기가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13]
때문에 이병훈 PD 작품에서 주로 악역으로 나오던 나성균 배우가 본작에서는 조력자이자 선역으로 나온다. 물론 초반에는 대립하는 위치였는데 이는 초반에 장희빈의 진실을 모르던 동이가 장희빈 쪽 사람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14]
그도 그럴게 이산에서 그렇게 고단수 정치력으로 초반 세손시절의 정조를 압박하던 노론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약이 없었다. 노론 인물 중에서도 제대로 나오는 인물이라고는 나성균 배우가 맡았던 정인국 하나뿐인데 그 마저도 특출난 활약이 없었다.
[15]
《이산》에서 영조(이순재)가 어머니 숙빈 최씨(한효주)의 옥가락지를 손자 정조(이서진)의 연인
의빈 성씨(한지민)에게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16]
이런 마지막 장면은 보통 동이가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놀라는 장면이 대다수이다.
[17]
초반에 어렸던 동이도 차천수하고 결혼할 거라는 말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이산의 박대수와 같은 포지션이지만 차천수하고 관련이 깊은 검계스토리가 실패하면서 동이의 경호원 1 내지 서용기의 부관으로 입지가 줄어들어버렸다.
[18]
작 중후반부부터 등장.
[19]
여타 장희재와는 달리 악랄한 인간쓰레기로 나온다. 또한 이 배역을 위해 목소리를 간신배처럼 바꿔서 연기했다.
[20]
히든보스 포지션.
[21]
본명은 '정상'이라고 언급된다.
[22]
본명은 '봉변'이라고 언급된다. 친구인 정상궁이 평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변이야'라고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
[23]
본래
이정길이 오태석 역으로 캐스팅 되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동환으로 배우가 교체되었다.
[24]
활약상만 보면 최종보스였으나 결국 자신을 뒤통수 쳤다 생각한 장무열에 의해 죽으면서 페이크 최종보스가 되었다.
[25]
원래 자이언트의 이성모 역할로 배정되었었으나 자이언트를 고사하고 동이를 골랐으며 초중반까지 동이를 괴롭히는 주요 악역 중 하나로 나오며 오태석을 숙부로 부르는 걸 보아 오태석의 일가임은 확실하다. 작중 오태석의 행동대장같은 위치역할을 맡아 극을 진행시켰었으나 최철호가 한창 동이 촬영도중에 후배 여성에게 음주폭행을 일으키면서 하차하게 되었고 오윤이라는 캐릭터도 모략이 들켜 장희재와 함께 체포되는 것으로 작품에서 나가게 된다. 오태석은 다시 나왔지만 오윤은 그저 그 동안 저지른 죄가 확실시 된다는 이유로 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최철호가 일으킨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래 최종보스 예상이었던 오태석이 페이크 최종보스가 되었다. 이후 오태석의 입에서 오윤도 곧 풀려날 거라는 걸 측근에게 들었지만 이후 장무열 일당에게 오태석이 죽었으니 오윤 역시도 소론 일당의 간계로 조용히 살해당했을거다.
[26]
오태석의 일가로 나오며 오태석을 형님으로 부르는 걸 보아 동생인 듯 싶다. 남인 소속의 대신이지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고 그저 악역 쪽 개그캐릭터이며 오태석을 도와야한다며 나서지만 대부분이 헛방인데다 나중에 가서 오태석의 죄가 밝혀지고 대부분의 남인 세력들이 관직삭탈 당하면서 오태풍 일가도 궁에서 쫒겨나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된다. 이후에는 뒤늦게 동이에게 꽂혀버린 아들 오호양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모습으로만 나온다..
[27]
이병훈 사단 골드회원 배우 중 하나. 이번 작에서 장희빈의 어머니인 윤씨 역을 맡은 최란과 포지션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쪽도 마냥 선역은 아니며 쫒겨난 후에는 역시 남편과 함께 오호양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28]
이병훈 사단 골드회원 배우 중 하나로 이전 작인 허준에서 맡았던 포지션이 이숙과 바뀌었으며 이번 작에서는 악역을 맡았다.
[29]
주몽의 오이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며 동이와 황주식, 영달을 갈구는 한 편 악역이라고 하기도 뭐한 게 어떨 때 보면 황주식과 영달에게 속아서 놀아나는 경우가 많다. 또 한편으로는 동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한 모습도 보이며 동이가 귀양을 간 후 연잉군을 돌보는 동이를 보고 주상전하는 널 버렸지만 나는 널 안 버린다라면서 자루까지 챙겨서 동이를 납치하려는 미친 짓을 하려 했다가 아버지인 오태풍에게 얻어맞기까지하는 등 궁에서 쫒겨난 후에는 아버지 오태풍과 어머니 뒷목을 조이는 일만 하고 있다. 최종화에서도 동이를 못 잊었는지 자신의 아내는 동이같은 여자가 아니면 안된다면서 아버지에게 떼를 썼다. 나중에 기어이 닮은 듯한 사람을 아내로 맞았으나 닮은 건 뒷모습 뿐이다.
[30]
사실상 본 드라마의 진
최종 보스
[31]
초반에는 길거리에 쓰러져있던 동이를 구해주면서 간만에 정호근이 선역을 맡은 건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배우 연기가 어디 안 간다고 결국 악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동이를 잘 데리고 있다가 고위급 관리에게 팔아넘기려고까지 했었다. 문제는 이 고위급 관료가 장희제였다.... 이 캐릭터에게 의의가 있다면 동이 자신이 훗날 승은상궁이 되면서 도움이 될 든든한 조력자인 심운택은 만나게 해준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32]
다만 서인과 노론은 범죄를 딱히 저지르지 않는다 뿐이지 그럭저럭 평범한 편이고 인현왕후는 거의 부처급으로 묘사된다.
[33]
여러 사극에서 숙빈 최씨가
무수리였다가
승은을 입고
영조(연잉군)를 낳아 빈으로 승급됐다고 묘사되나 사실
장남을 낳고 차남인
영조를 낳은 뒤 3남까지 낳았다. 그러나
영조의 위아래의 동복형제들이 모두
요절했다. 그나마
MBC 드라마
동이에서는 장남
영수를 낳았다가 영수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이에 비통해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34]
#
[35]
이러한 고증 오류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도 그대로 답습되었다.
[36]
#
[37]
조선왕조실록의 영조실록에 가체를 한 여성이 가체가 무거워서 넘어졌는데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영조가 가체는 비싸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데다 사대부의 여인들이 가체로 인해 쉽게 다치고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첩지머리로 바꾼다.
[38]
한편으로는 첩지머리가 가체보다 여배우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것도 크다. 실제로 가체를 쓰는것이 첩지머리보다 더 이쁘고 잘 어울리는 배우는
양미경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별로 없는 편이다. KBS 사극인 공주의 남자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의도적으로 모든 출연 여배우들이 가체를 쓰지 않았고, 가체가 어울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김영애나
김혜수처럼 첩지머리 역시도 잘 어울리는 경우도 역시 있다.
[39]
마마는 극존칭 표현으로, 왕이나 왕비, 왕세자에게만 부를 수 있는 호칭이다. 물론 왕비를 거쳐간 왕대비나 대왕대비정도나 가능하며 자가(自家)는 조선시대 왕의 가까운 자손, 즉 왕자(대군, 군), 왕녀(공주, 옹주), 왕세자의 아들(군), 왕세자의 딸(군주, 현주), 혹은 후궁 무품빈 및 정1품 빈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40]
일례로 조선 17대 국왕
효종(조선)의 후궁
안빈 이씨가 자녀인
숙녕옹주(효종)에게 "너"라고 칭했다가 죽이네 살리네 하는 걸 중전인
인선왕후의 중재로 넘어간 일이 있다. 그래서 안빈 이씨는 조선시대 후궁들은 자기 자식한테도 반말을 할 수 없다는 예시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41]
오히려 드라마에서는 이런 저주가 사람을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관련된 증거를 희빈에게 돌려주는 장면이 있다.
[42]
극중에서는 고증오류로 1688년에 명성왕후가 사망하는데 이는 1688년 사망한 장렬왕후의 포지션을
명성왕후가 같이 맡은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중요 인물이자 조연인
장렬왕후를 생략하는 것은 이야기와 개연성에 있어서 영향력이 워낙 큰데다[47] 자체가 심각한 고증오류이기 때문에 동이 이외의 장희빈 주연 사극에선 무조건 등장하였고 실제로 동이 이후에 나온 장희빈 주연 사극인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어찌보면 동이보다도 고증오류가 산더미지만 그래도 장렬왕후는 등장한다.
[43]
#
[44]
1704년(숙종 30년) 4월 1일 ,1711년(숙종 3년) 6월 22일 조선왕조실록 기록
[45]
실제로 작중에서 희빈 장씨는 매력적인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희빈 장씨의 퇴장 이후 새롭게 대두된 악역들은 장희빈 같은 복합적인 매력이 없이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46]
실제로 동이 이후의 사극들은 대부분 고증을 최소화하고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잔뜩 들어갔다.
[47]
그도 그럴게 장희빈은 처음에 장렬왕후의 궁녀였었던데다 숙종과 장희빈의 만남을 주선해준 게 장렬왕후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