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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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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위상3. 특징4. 쇠락5. 후신?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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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1] 언더그라운드 사운드를 이끌었던 음반기획사.

2. 위상

김구라: 옛날에 음악잡지를 보면 레코드 신보들이 나오잖아요. (동아기획에서 나온) 쟁쟁한 음반들이 많았어요.
윤종신: 동아기획에서 나온 음반은 믿고 사는...
신정환: 이후에 전과를 만들었죠.[2]
전태관: 93년 이후로 변신을 못한거죠. 서태지가 나오고 세상이 으로 바뀌었는데 그걸 인정 안하고 이 길을 간다라는 고집이...(중략)
김국진: 근데 동아기획은 그 길을 가야 하는거 아닌가요?
김종진: 사장님이 동아기획을 계속 가져가셨다면 한국 음악계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거에요.
라디오스타 2009년 故 김현식 추모 특집 ' 봄여름가을겨울& 이승철'편 中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리스너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획사 중 하나로, 당시 소속되었던 가수만 해도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장필순, 빛과 소금, 이소라, 푸른하늘, 한동준, 박학기, 김장훈, 유영석, 그룹 피아노, 코나 등 엄청난 면면을 보여줬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 국내에서 특히 발라드, 포크, 블루스, 퓨전 재즈 계열에서 아티스트라고 분류되던 가수들 다수가 이 곳 소속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유재하, 조용필, 어떤날, 양희은, 김광석, 신승훈[3], 아예 언더그라운드&민중가요 쪽으로 방향을 튼 정태춘 정도. 근데 사실 유재하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출신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연이 없다고 볼 수는 없고, 동아기획 음반에 작곡가와 연주자로 가요계에 등장하긴 했다.[4] 어떤날은 소속만 달랐지 어떤날 1집 프로듀싱을 조동진이 맡거나 조동익이 동아기획 뮤지션에 세션과 프로듀싱으로 빈번히 참여하는 등 서로 간의 접점이 활발했다.

3. 특징

연습생을 뽑아 상당기간 트레이닝시켜 내놓는 다수의 연예 기획사와 달리[5], 당시 동아기획은 여러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모인 크루 집단에 좀 더 가까웠다.

김영 사장은 소속사 가수들의 음악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6]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지원자의 역할에만 충실해서 음악은 가수가 알아서 하고[7] 회사는 주로 음반 유통과 콘서트 같은 음악 이외의 활동에만 주력하는 형태였다. 아카이브 K에서 밝혀진 바로는 계약서 연필 A4 1장에 쓸 정도로 간단했고[8], 아티스트들의 음악에는 너희의 음악을 하라며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며 히트할 거 같은 곡을 냈을 땐 일종의 보너스 개념인지 돈봉투를 줬다고 한다.

동아기획 전성기 시절 특징 중 하나가 방송 출연을 잘 안했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국 사정은 그리 자유롭지 않았고[9], 음향 기술 역시 듣는 가수들에게 립싱크를 요구하는 일이 상당할 정도로 라이브 무대에 적합하지 못한 경우가 빈번한데다 쑥스러움 등의 이유로 굳이 대중 인지도를 높이고 싶지 않은 가수들도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발적으로 나가는 걸 꺼리게 됐다고 한다. TV보다 라디오 출연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방송 출연보단 라이브 공연 위주로 활동해 당시 국내에선 언더그라운드 가수라고 불렸으나, 앨범 판매량 등에선 엄연히 메인스트림 가수들도 많은 기획사였다.

4. 쇠락

1990년대 초반 이수만의 1호 작품 현진영과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대중의 취향이 변화하였다. 그리고 가요계는 김창환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신승훈, 김건모, 클론, 박미경, 노이즈, 채연, 콜라 등이 모인 라인음향 015B 윤종신, 신해철( N.EX.T), 전람회( 김동률) 등이 소속되어 있었던 대영AV가 주도하게 된다.[10] 이런 와중에 동아기획은 김현철 이후 새로운 신인이나 음반으로 가요계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했다. 기존 소속사 가수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수준이었고, 그들도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는 다른 회사로 속속 떠나버렸다. 김현철이 떠나고, ZAM 3집 앨범이 발매가 되는 1995년이 되면서부턴 이미 동아기획은 당시 가요계 주류에선 비껴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MP3의 범람으로 음반시장이 사실상 붕괴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라인음향과 대영AV마저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 밀려나고 1세대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가 출범하고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까지 가세하면서 가요계는 철저하게 기획형 틴아이돌-댄스뮤직 중심으로 재편된다.[11] 그리고 동아기획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1999년에 ' See U(씨유)'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을 내기도 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이 중 멤버 '지혜'는 동아기획 김영 사장의 이기도 했다. 김영 사장 입장에서도 나름 큰 애착을 가지고 만든 팀인 셈. 2000년에는 실력파 여성 듀오 ' 허쉬'와 '하니비(JS)', 힙합트리오 'LLK Camp'를 배출해기도 했으나 이들이 마지막 가수였다.

동아기획의 사실상 마지막 히트 가수는 바로 김장훈이었다. 두장의 정규앨범을 냈으나[12]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김장훈을 데려와 3, 4집을 제작하였고, 1998년 4집의 '나와 같다면'이 35만장이 팔리면서 제법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동아기획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김장훈은 '나와 같다면'의 성공 이후 계약금 9억을 받고 유니버설 뮤직으로 이적한다.

2002년 봄여름가을겨울 7집 <Bravo my life> 와 김현철 8집 <그리고 김현철> 을 발매하면서 회생하는 듯 했지만, 이듬 해인 2003년 경영에 큰 위기가 찾아오면서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본사도 국민일보 옆으로 옮겼다. # 김영 사장은 인터뷰에서 한국 음반산업이 완전히 몰락한 2003년부터 동아기획이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

정확한 폐업 일자는 알기 힘들지만, 위 아티스트들을 마지막으로 동아기획은 자연스레 소멸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김영 대표는 가요계 일선에서 물러난 채 동아기획 기념 행사를 틈틈이 개최하며 가요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남아있는 중이다. 2013년 김현식의 미공개 음원을 실은 '2013년 10월'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5. 후신?

2000년대 이후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의 크루 집단 성격 포지션은 조동진 조동익 형제가 이끈 음악공동체 구 하나음악, 현 푸른곰팡이가 이어받는다.

2010년 이후 가요계를 기준으로 본다면 윤종신이 이끌고 있는 미스틱스토리, 윤상이 이끌고 있는 오드아이앤씨와 유희열이 이끌고 있는 안테나 뮤직, 이적, 김동률, 존박, 곽진언 등이 속해있는 뮤직팜이 그나마 동아기획과 가장 비슷한 아티스트 중심 기획사라고 볼 수 있다.

6. 여담


[1] 정확히는 1984년인 김현식 2집 활동 때부터 1992년인 봄여름가을겨울 3집 활동 때까지가 전성기였다. 이후에도 90년대 후반까지 나름 명맥은 유지했지만 후술되어있듯 라인음향과 대영AV에 치여 이미 90년대 중반부턴 업계 위상이 추락했고, 2000년대 들어선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된다. [2] 이 드립에 전태관과 김종진이 잠시 할 말을 잊자 웃픈 이승철이 대신 사과를 한다. [3] 이쪽은 90년대 초중반 또 다른 주요 음반 레이블이던 라인음향 소속이었다. [4] 이는 윤상, 유희열도 마찬가지다. [5] 아이돌 시대 이전에도 라인음향 등은 연습생이란 말이 없었다 뿐이지 일종의 데뷔 준비조, 연습생 개념은 있었다. [6] 심지어 김영 사장의 음악 취향은 뽕짝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7] 사실 여기 방점이 찍혀있기도 한데, 연습생 개념도 없고 방송 출연조차 잘 안하는 모토다보니 회사에서 대외적으로 지출할 비용도 많이 줄어들면서 좀 더 가수 알아서 해라가 된 것도 있다. 반대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면 아무리 프리한 영혼의 소유자라도 본전을 뽑아야 되니 그만큼 간섭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은 구조적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8] 다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시 연예계는 주먹구구식의 가내수공업 수준이었기 때문에, 동아기획뿐 아니라 대부분 기획사들이 이런 식이었다. 형/동생, 의리 타령하면서 아예 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흔했는데, 이런 점을 악용해서 가수, 배우들을 등쳐먹는 악질 제작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1970~80년대 가요계의 대부였던 킹레코드의 박성배가 그런 케이스였으니 말 다했다. [9] 동아기획 전성기 초반만 해도 군사정권이 유지되던 시절이었다. 이후에도 상당기간 방송국내 권위주의 문화가 남아있었다. [10] 동아기획의 마지막 전성기와 라인음향, 대영AV의 등장이 겹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아기획은 1980년대를 대변하는 회사고, 라인음향과 대영AV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기획사였다. [11] 다만 당시에도 조성모로 대표되는 발라드 강세 흐름은 여전히 있긴 했다. 또 YG 엔터는 이때만 하더라도 아이돌보단 힙합 기획사 느낌이 강했다. [12] 참고로 김장훈의 1집은 빛과 소금의 박성식, 김현철 등 동아기획의 일원이 참여하였으나 정확히는 유재하 1집을 제작했던 서울음반의 문예부장인 조원익이 제작했다. 당시 김장훈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한 유희열도 1집의 제작이 서울음반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2집은 삼성뮤직에서 발매되었다. [13] 이 부분은 동아기획이 그렇게 승승장구했었는데 왜 지금은 망했냐는 의문에 가깝긴 하다. [14] 해당 부분 영상. [15] 사실 20세기 한국 대중음악계 크게 보면 엔터 산업 전체에서 이런 불투명한 정산 문제는 고질병적인 관행이긴 했다. 과장 좀 보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연예계는 주먹구구식의 가내수공업 수준이었기 때문에, 관리자 레벨 아닌 딴에는 실수익 체계를 제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기 때문. 그나마 윗선이 착하면 좀 덜 해 처먹는 정도. 당시 문화예술인의 절대 다수는 기획사도 없거나 기획사가 있어도 제대로 된 계약서 없이 활동했으며, 그 뒤에는 조폭이나 권력을 등에 업은 지역토호들도 수두룩했다. 로스쿨 시대 이전이라 변호사 숫자도 태부족이라서 그들의 법적인 도움을 받는다는건 진짜 초일류 연예인들이나 가능했다. 이런 환경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 산업에 대한 투자와 함께 연예기획사들도 대형화되면서 사회적 이슈몰이로 법적, 사회적 가이드라인 등이 정해지며 점차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투자와 수익금 회수를 위한 체계적인 공식문서들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바뀌게 된다. [16] 앨범 발매할 때마다 노래는 대박났는데 불투명한 정산 문제로 제작자와 싸우고 새로운 기획사와 계약을 하지만, 거기서 다시 통수를 맞고 또 싸우고 자기 돈으로 물어주고 손해보면서 계약해지하고 또 다른 회사와 계약하지만 거기서 또 통수를 맞는 일을 반복한 DJ DOC가 바로 당시 가요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17] 한 프로가 그 당시에 무려 '77만원(2020년대 기준 267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