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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03

덕수궁 평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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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colbgcolor=#e3ba62> 덕수궁 평성문
德壽宮 平成門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정동 5-1)
건축시기 1896년 (창건) / 1911년 (철훼)
파일:평성문.png
<colbgcolor=#e3ba62> 평성문 지붕(분홍색 원 안). 현존하는 유일한 평성문의 사진이다.
1. 개요2. 이름3. 역사4. 여담

[clearfix]

1. 개요

덕수궁의 서쪽 궁문이다. 미국공사관과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2. 이름

'평성(平成)' 뜻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조화된다'이다. 《 서경(書經)》 - 〈대우모(大愚謨)〉 에 나오는 '지평천성(地平天成)', 즉, '땅(地)을 다스림(平)으로 하늘(天)의 일이 이루어진다(成).'에서 따왔다. #

3. 역사

원래 임진왜란 당시 임시 행궁이었던 경운궁(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인조 연간 이후 즉조당과 주변 별당 몇 채 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이었다. 그러다 1896년( 건양 원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향후 돌아갈 궁으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이 아닌, 근처의 경운궁을 선택했고,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면서 경운궁 중건 공사를 지시했다.[1]

이 때 평성문도 지은 듯 하다. 확실한 건립 연대는 모르나, 1896년( 건양 원년) 9월 13일[2] 박기양을 평성문 현판서사관으로 임명했다는 《 승정원일기 기사를 보아 그 무렵 완공한 듯 하다. #

평성문 안쪽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고 남쪽에는 경비병 초소와 탄약고가 있었다. 군사 관련 공간이었기에 고종은 평성문 안에서 평양대를 훈련시키고 # 관북에 주둔시킬 강화대의 교련을 참관했다. # #

평성문이 헐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11년 경인 듯 하다. 1911년 2월 28일 자 《 매일신보》 기사에는, 당시 (갓 준공한) 석조전 앞에 정원을 만들기 위해 평성문을 비롯한 주변 건물들을 철거할 예정이란 내용이 실려 있다.
덕수궁에서는 100만 원을 투입하여 광대한 양식 석전(석조전)을 건축했는데 이번에 석조전 앞에 큰 정원을 짓기 위해 전이사실(前理事室), 평성문(平成門), 전위병소(前衛兵所)를 훼철하기로 어제 낮 12시에 입찰을 끝냈는데 ...(후략)...
1911년 2월 28일 자 《매일신보》 기사
평성문이 헐린 후 이왕직[3]에서 석조전 정원을 완공시켰고, 또한 덕수궁 서쪽으로 궁장을 더 넓혀 돈덕전 권역을 덕수궁 본궁으로 편입시켰다.[4]

언제인지는 모르나, 새로 생긴 서쪽 궁장에 평성문을 대신할 덕수궁 서문이 생겼다. 그리고 그 문에 쌩뚱맞게 덕수궁 동북쪽에 있다 사라진 포덕문 현판이 걸렸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나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1965년 6월 이전에는 지은 듯하다. 포덕문 현판은 2010년 11월 이전에 떼어냈고[5]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파일:덕수궁 서문.png
<colbgcolor=#e3ba62> 새로 지은 덕수궁 서문

4. 여담


[1] 몇 백 년을 버려진 곳을 임금이 거처로 삼으려니 대공사가 필요했고, 명목상으로는 중건이라 했지만 사실상 새 궁궐 하나를 새로 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2] 음력 8월 7일. [3] 일제강점기에 구 대한제국 황실(이왕가)과 관련한 사무를 보던 곳. [4] 최상단 사진에서 보듯, 돈덕전은 평성문 안쪽에 있지 않았다. 즉, 원래는 덕수궁 본궁 영역에 속한 건물이 아니었다. [5] 2010년 11월에 카카오맵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현판이 안보인다. [6] 화재의 진원지인 함녕전은 경운궁의 동쪽 영역에 있었다. [7] 被服費. 옷이나 침구류, 세탁비, 바느질삯, 장신품 등에 쓰이는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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