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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7-01-19 23:09:58

더미 몽레알

레 젝스포 드 몽레알 최후의 순간까지 썼던 팀 로고[1]
레 젝스포 드 몽레알
Les Expos de Montréal
영어식 이름 몬트리올 엑스포스(Montreal Expos)
창단 1969년
연고지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1969년~2004년, )
홈구장 스타드 자리(Stade Jarry, 1969~1976)
스타드 올랭피크(Stade Olympique de Montréal, 1977~2004)
(야구수용인원 45,757석)
월드 시리즈 우승(0회) -
내셔널리그 우승(0회) -
지구 우승(1회) 1981[2]
와일드카드 획득(0회) -

1. 개요2. 역사
2.1. 리그 참가와 전성기
2.1.1. 1994년 : 1994 시즌 최고의 팀
2.2. 엑스포스의 몰락
2.2.1. 워싱턴 연고이전, 그리고 난관
3. 홈구장 : 몬트리올 올림픽의 유산(...)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4. 영구결번5. 들어는 보셨나, 프랑스어 야구중계6. 부활의 가능성(?!)

1. 개요

Les Expos de Montréal(레 젝스포 드 몽레알) / Montreal Expos

캐나다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존재했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팀. 1969년부터 2004년까지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했으며 2005년부터는 워싱턴 D.C.로 프랜차이즈를 이동하여 워싱턴 내셔널스가 된다.

2. 역사


엑스포스의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3년 제작)

2.1. 리그 참가와 전성기

1969년 리그 확장의 일환으로 캔자스시티 로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밀워키 브루어스(창단 당시 시애틀 파일러츠)와 함께 몬트리올 엑스포스/레 젝스포 드 몽레알로 메이저리그에 참여했다. 팀 이름은 1967년에 열렸던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따 왔다. 창단 당시만 해도 몬트리올에 나름 인기 있었던 마이너리그 팀인 몬트리올 로열스[3]가 있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캐나다의 야구 전파에 선도적 역할을 할거라 기대했지만,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닥치고 아이스하키(...) 특히 몬트리올에는 NHL 스탠리컵 24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이자 NHL 전통의 명문팀인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Les Canadiens de Montréa/Montreal Canadiensl)의 홈인지라 흥행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창단 초창기에 캐나다에 첫 메이저리그 팀이 생겼다는 이유로 '엑스포스는 곧 캐나다 팀'이었고 이때문에 홈구장인 스타드 파르크 자리(Stade Parc Jarry)가 만원이 될 정도로 나름대로 주목을 받았다.

창단초기였던 1970년대에서는 구단에서 내세울 선수가 없었으나, 1980년대 초 명예의 전당 포수 게리 카터와 외야수 안드레 도슨, 당시 꼬꼬마 외야수였던 팀 레인스, 1루수 워런 크로마티[4], 3루수 래리 패리시[5], 에이스 스티브 로저스 등을 앞세워 1981년 팀 역사상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올라갔다. 참고로 1981년 포스트시즌은 그해 벌어졌던 선수노조 파업으로 시즌을 전후반기로 나눠 각 지구 전후반기 우승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자웅을 벌이는 식으로 운영됐다.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후기리그 우승[6]을 거뒀고, 별도로 치른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패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나름 잘나갔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시리즈 3승2패로 꺾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오른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LA 다저스와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7] 9회초에 엑스포스의 에이스 스티브 로저스가 다저스의 릭 먼데이[8] 에게 뜬금 솔로포를 얻어맞으며 장렬하게 탈락하고 만다.[9]

그렇게 1980년대에 몇해 잠시 부침은 있었지만 1982년에 몬트리올에서 올스타전을 유치할 정도로 나름 인기를 끌었었고, 시즌 5할 승률을 꾸준히 유지하는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팀의 주축선수였던 'the Kid' 게리 카터와 'Hawk' 안드레 도슨이 각각 트레이드와 FA로 팀을 떠나며 기둥선수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1 시즌에 팀은 설상가상의 위기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먼저, 1991 시즌에 71승 90패를 기록하여 16시즌만에 최악의 시즌을 보냈고, 홈구장인 스타드 올랭피크의 천장구조물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거기에다 구단 창단을 이끌었던 구단주 찰스 브론프먼(Charles Bronfman) 前 시그램[10] 사장이 당시 시그램의 부사장인 클로드 브로쉬(Claude Brochu)를 중심으로한 몬트리올 투자단에게 구단 소유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투자단이 애리조나로 연고이전을 하려는 그룹의 지분을 막는데 고군분투를 하기도 했다.

2.1.1. 1994년 : 1994 시즌 최고의 팀

1994 시즌 최고의 야구팀[11]

한편, 같은 캐나다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1992년과 1993년 월드시리즈 우승이 자극이 됐고, 엑스포스 역시 또 한번의 리즈시절을 준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92~9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최후의 전성기. 이 시기 엑스포스는 구단대표 클로드 브로쉬와 단장 댄 두켓의 주도로 1994년 포스트시즌 진출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행이도 1992 시즌에 다시 5할 승률을 기록했고, 1993 시즌에 NL 동부지구 선두였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3경기 차로 뒤진 지구 2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엑스포스는 투수진에 데니스 마르티네즈, 켄 힐, 마무리 존 웨틀랜드가 있었고, 타선에는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타자인 래리 워커와 명감독 펠리페 알루의 아들인 모이세스 알루, 2루수 들라이노 드실즈 시니어[12], 꽃미남 마퀴스 그리솜 등의 선수가 포진한 상당히 젊은 팀이었다. 또한 없는 살림 속에서도 당시 단장이었던 댄 두켓의 화려한 돈질. 응? 능력 또한 돋보였는데, 1993-94 오프 시즌에 데니스 마르티네스의 부상으로 가용할 수 없게되자 LA 다저스의 유망주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들라이노 드실즈와 맞바꾸며 신의 한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엑스포스는 1994년 전반기를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기록하고 시즌 105승 페이스를 이어가며 아랫 동네 팀처럼 월드시리즈를 꿈꾸기에 이른다.

그러나 1994 올스타전 이후 일어난 선수노조의 파업은 엑스포스가 몰락하게 될 단초가 되버리고 말았다. 리그가 중단되고 플레이오프까지 열리지 않게 되자 엑스포스의 기세는 74승 40패(승률 .614)에서 그치고 말았고, 플레이오프 관중수익을 기대하던 팀은 2000만 달러라는 큰 손실을 입게 됐다. 결국 엑스포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고액 연봉자들을 감당 못하고 팔아야 했다. 이후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괴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외엔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팀으로 전락했다.

2.2. 엑스포스의 몰락

1994 시즌 이후 야구장을 찾는 관중수가 급감하자 클로드 브로쉬 구단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구장 신축을 계획하여 추진하기 시작했다.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Stade Olympique de Montréal)는 하술됐듯 애초에 야구장이 아닌 종합경기장을 개조한 경기장인데다가 지붕 구조물이 지속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등의 노후화 문제가 있었다. 브로쉬 구단대표는 루시앵 부샤르(Lucien Bouchard) 퀘벡 주지사에게 구장 신축을 건의했으나, 몬트리올 올림픽으로 인한 엄청난 재정난에 시달리던 퀘벡 주·몬트리올 시 정부는 징징대고 만다. 게다가 애초에 부샤르 주지사는 퀘벡 분리주의자인지라 야구에 대해서는 아주 시큰둥한 인사였다.

1994 시즌 파업과 이후의 파이어 세일이라는 안습의 기로에 선 엑스포스의 몰락에 불씨를 당긴 일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13]의 등장이 그것이다. 1999년 제프리 로리아는 몬트리올 투자단으로부터 엑스포스를 인수하게 된다.[14] 전 구단주의 아들인 스티븐 브론프먼과 몬트리올 투자자 그룹 등도 구단 지분에 참여했지만 그건 명목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엑스포스에게 악재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는데, 2000 시즌을 앞두고 영어방송 중계 체결을 하지 않는가 하면, 루시앵 부샤르 주지사가 구장 신축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에 딴죽을 걸면서 2002년 개장을 목표로 했던 구장 신축 계획이 나가리가 되고 만다.

설상가상 팀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제프리 로리아는 2002년 마침 플로리다 말린스의 구단주 존 헨리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매입하기로 맘먹고 말린스를 팔려하자 이때다 하고 계획대로 손을 탈탈 털고 참치로 갈아타면서 MLB 사무국에 팀을 맡겨버리고 만다. 그리고 엑스포스는 나머지 29개 구단의 공동출자로 운영비를 충당하게 된다. 뭐 일단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MLB사무국의 관리하에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근근히 버텨가면서 나름대로 중하위권 성적내며 생각외로 선전해왔다.

엑스포스가 돈을 잘버는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MLB에서 돈을 받아서 운영해야 하는 관계로 예산은 항상 빡빡했으며 관중이 없어서[15] 홈경기의 1/3을 푸에르토 리코 에스타시오 이람 비손(Estadio Hiram Bithorn)에서 치르는 강행군을 강요받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16] 그 와중에서도 에이스 바톨로 콜론이 20승을 찍어주고[17], 신인 선수들의 폭풍성장과 절묘한 트레이드 전략으로 5할 승률 이상을 2번(2002, 2003)이나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을 했다. 이 때의 단장이 후에 뉴욕 메츠에서 무능한 단장에 라틴 아메리카 커넥션으로 팀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까이는 오마 미나야[18]이며, 미나야가 뉴욕 메츠의 단장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 보여준 수완이 한 몫 했다.

그리고 엑스포스는 2004년에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져버렸다. 비록 최후에는 비인기팀이었긴 했지만, 한때는 '엑스포스=캐나다팀'이라는 인식과 함께 스타드 올랭피크에 5만이나 되는 팬들이 들어찼던 적도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안타까운 연고지 이전이었다. 이에 대해 'Triumph & Tragedy - the 1994 Montreal Expos'라는 다큐에서 엑스포스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내용이 꽤 슬프다. 아래의 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담으로 엑스포스의 마지막 홈경기였던 2004년 9월 29일 경기의 선발투수가 김선우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김선우는 2이닝 5실점으로 강판당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2.2.1. 워싱턴 연고이전, 그리고 난관

결국 29구단 공동자금 지원도 한계에 봉착해서 그대로 가면 해체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도 엑스포스 유치에 워싱턴의 대안으로 올라온 후보들이 있었으며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버지니아 주 노포크는 꽤 적극적이 었으나 전자는 도박문제, 후자는 도시규모가 작아서 MLB로부터 거부 당했고 MLB가 마음에 두고 있던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텍사스 주의 샌앤토니오는 시측에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서 실패했다.[19] 이 때문에 MLB는 고심 끝에 워싱턴 세너터스[20]가 텍사스로 옮긴뒤 비어있던 워싱턴 D.C.에 연고이동을 결정[21], ' 워싱턴 내셔널스'로 개명하게 된다.[22]

워싱턴 이전도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는데 첫째는 다시는 몬트리올 같은 사태를 일어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재정적 뒷받침이 되는 구단주 그룹을 찾는 것이 문제였고, 두 번째는 워싱턴 DC 내에 야구 전용의 새 구장을 짓는 일이었다. 이 문제는 일단 프랜차이즈를 워싱턴으로 옮기고 나서 워싱턴 D.C.의 시장성을 내세워서 구단주 그룹을 찾고 구장은 새 구장을 2009년에 완공하는 조건으로 일단은 워싱턴 세네터스가 쓰던 미식축구 겸용구장인 RFK 스타디움을 쓰는 방법으로 어찌어찌 해결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인 피터 앤절로스가 "워싱턴은 세네터스 나간 1973년부터 우리 영역이었음. 왜 내 나와바리에 새 구단을 만들어서 영업권을 침해하셈?"이라면서 딴죽을 걸면서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이전 문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으나 MLB 측에서 "님, 나와바리도 좋지만 MLB 전체를 위해서 대국적 견지에서 좀 이해해주삼. 워싱턴지역도 인구가 700만[23]이나 되는 대도시 지역이니 팀이 한 개쯤 더 있다고 크게 손해보지 않을 거임. 대신 님 영역 침해한 건 우리가 인정하고 미안하니까 워싱턴 팀 경기 중계하는 방송권을 님 구단이 대주주로 있는 MASN에게 줄테니 그걸로 이해 좀 해주삼."하면서 사정사정 한 끝에 겨우겨우 워싱턴으로 이전을 확정지었다.

3. 홈구장 : 몬트리올 올림픽의 유산(...)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항목 참조.

4. 영구결번

몬트리올 시절에는 게리 카터의 8번, 러스티 스타우브(Rusty Staub)와 안드레 도슨의 10번, 팀 레인스의 30번이 영구결번이었지만, 연고 이전 이후 모두 없던 것으로 치부했다. 워싱턴의 팀으로 아예 새출발 하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6년 가량 몬트리올 시절의 결번을 무시했다가 2011시즌 개막과 함께 다시 몬트리올 시절의 결번을 부활시켰다. 그래서 현재는 MLB 구단 공통 결번인 42번을 제외하면, 위에서 말한 4개의 결번이 다시 생겼다.[24] 다만 공식적으로 홍보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고 비워두기만 하는거라 그런지 딱히 비워주고 싶어서 비워주는 건 아니라고!, 므르브 항목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공식으로 영구결번이 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내셔널스 홈페이지에는 언급이 되어있으니 공식으로 봐도 될 듯.

참고로 재키 로빈슨이 첫 마이너리그 생활을 한 팀이 몬트리올 로열스고, 마이너리그 우승을 이끌며 영웅이 된 곳이 바로 몬트리올이었다. 그래서 전구단 영구결번이 되기 전에 몬트리올은 그 인연을 들어 일찌감치 재키 로빈슨의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처리했다.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3087> 파일:몬트리올 엑스포스 엠블럼(1992~2004).svg 몬트리올 엑스포스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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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ccac00> No.8 No.10 No.30
<rowcolor=#ffffff> 게리 카터 안드레 도슨 러스티 스타우브 팀 레인스
팀의 후신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영구결번은 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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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게리 카터(Gary Carter): 1974년부터 1984년까지 몬트리올에서 뛰면서 맹활약한 명예의 전당 포수. 통산 11차례 올스타와 3번의 골드글러브, 5번의 실버슬러거를 자랑하는 한 시대를 풍미한 포수다.

10. 안드레 도슨(Andre Dawson): 1980년대를 주름잡은 강타자. 1977년 신인상, 1987년 내셔널리그 MVP의 주인공이다. 다만 가장 오래 뛴 것은 엑스포스가 맞지만, 최전성기는 시카고 컵스. 그래도 명예의 전당 모자를 오래 뛴 엑스포스 걸로 해 줘서 그렇게 가게 되었다.[25]

10. 러스티 스타우브(Rusty Staub) : 통산 2716안타를 기록한 1루수. 근데, 몬트리올에서는 단 3년만 뛰었다(1969~71, 79). 그런데도 영구결번 된 것은 루이지애나 출신이지만 몬트리올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워서였다고. 그리고 단지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엑스포스의 초기 시절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인기 스타였다. 즉, 엑스포스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30. 팀 레인스(Tim Raines) :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외야수. 전성기에 비해 말년의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최소한 몬트리올에서는 7년 연속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맹활약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이기는 한데, 몬트리올 시절에 이미 영구결번되었다. 그 이유는 재키 로빈슨이 처음 데뷔한 곳이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 팀이었던 몬트리올 로열스였기 때문. 여기서 맹활약하면서 백인 관중들이 흑인 선수를 연호하는 일이 벌어졌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엑스포스에서 보낸 블라디미르 게레로는 만약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된다면 엑스포스의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만약 몬트리올을 연고로 한 신생팀이 생길 경우, 게레로의 등번호 27번도 신생 몬트리올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5. 들어는 보셨나, 프랑스어 야구중계

프랑스어 야구 중계방송의 실례[26]

이 팀은 프랑스어권인 몬트리올을 연고로 한 덕분에 중계방송도 영어와 프랑스어 2개국어로 했다. 그 결과 이 팀은 프랑스 야구용어를 정립했다는 최대의 유산을 남겼다. 또한 이들이 프랑스어로 방송하면서 정립한 야구용어가 프랑스 야구용어의 표준이 되었다. 상기 언급했듯, 막장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 때문에 몬트리올 시절 막판에는 TV 중계는 영어 쪽 방송 없이 프랑스어로만 중계방송을 했다. 그래서 박찬호 다저스 시절에 몬트리올 원정 등판이 있을 때 현지 방송을 받아서 중계를 하는데 메이저리그 전문가라고 데려온[27] 해설자들이 프랑스어 자막과 프랑스어 중계를 해석을 하지 못해서 데꿀멍 한 적도 있다.

향후 야구가 좀더 국제화가 될 경우를 생각하면 아주 귀중한 유산이며, 야구로서는 엑스포스의 이전이 프랑스어권의 야구의 보루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도 큰 타격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캐나다 유일의 메이저리그 팀이 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중계방송을 퀘벡 주의 스포츠 방송사에서도 하고 있고, 이 또한 프랑스어로도 중계가 되고 있다.

6. 부활의 가능성(?!)

그런데 2015년 들어와서 이 팀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엑스포스가 몬트리올을 떠나서 워싱턴 내셔널스가 된 지 10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롭 맨프레드 신임 커미셔너의 취임 이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다시 리그 확장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가운데 만약 리그가 확장되는 경우 확장 팀 중 하나를 몬트리올로 유치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움직임 자체는 아직 가능성만 타진하는 수준이지만 팀이 푸에르토리코에서 홈경기를 치르든 말든, 팀이 떠나든 말든 상관 없다는 듯 거의 무관심에 가까왔던 1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몬트리올 시민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은 듯 한데, 2014년, 2015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몬트리올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시범경기를 2경기씩 치렀는데 비록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인기는 꽤 있어서 2014년, 2015년에 열린 총 4경기 모두 만석에 가까운 총 96,000 여명의 관중을 유치했다.

특히 2015년에는 몬트리올에서 자랐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포수로서 이 시리즈에 출전한 러셀 마틴이 몬트리올에 신생팀이 생기길 바란다는 지지성명도 냈다. 거기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연고지의 구장 신축 계획이 틀어지면 몬트리올로 연고지를 이전할 가능성을 2014-15 오프시즌에 언급한 상태라 몬트리올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2013년에 몬트리올 시장으로 취임한 드니 코드르(Denis Coderre)도 전면에 나서서 메이저리그의 몬트리올 복귀 가능성을 틈만나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2015년 5월 28일에 드니 코드르 몬트리올 시장과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와의 만남이 있었다. 코드르 시장은 몬트리올의 메이저리그 팀 재유치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맨프레드 커미셔너에게 전했고, 맨프레드 커미셔너 역시 몬트리올에 메이저리그 팀이 다시 생기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직도 엑스포스를 그리워하는 현지 팬들은 엑스포스가 떠나게 된 이유가 신구장 건설을 극렬히 반대하던 퀘벡 주정부와 몬트리올 시정부의 비협조와 前 막장구단주 제프리 로리아의 막장운영 때문이지 결코 팬들의 지지와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기회를 놓칠세라 틈만 나면 몬트리올이 결코 시장성이 없는 마켓이 아님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예전에 엑스포스에서 몸담았던 몇몇 관계자들도 메이저리그 구단 재유치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인기스타였던 크로마티 고교 교장 워렌 크로마티가 2012년에 Montreal Baseball Project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물론 몬트리올에 신생팀 창단이든 메이저리그의 골칫거리 둘 중 하나를 연고이전 시키든 몬트리올에 메이저리그 구단이 다시 생기는 것 자체는 좋지만, 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연고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자 현재도 유효한 문제, 즉 스타드 올랭피크를 대체해야 하는 새 구장이 지어져야 하는 선결문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만약 몬트리올에 MLB 팀이 부활한다면 현재 워싱턴 내셔널스가 가지고 있는 엑스포스의 역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볼거리이다. 일각에서는 워싱턴 D.C.의 옆동네를 연고로 한 볼티모어 레이븐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의 관계나 최근 NBA 샬럿 호네츠-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사례[28]처럼, 내셔널스가 기존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팀 역사와 상징물, 영구결번 등 각종 권리 등은 다 몬트리올 측에 넘기고선 자신들은 2005년부터 창단된 신생 구단임을 아예 공개적으로 선언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야구의 관례상 워싱턴 내셔널스가 가지고 있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역사가 몬트리올에 생길 신생팀으로 이관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29]

각 팀의 역사와 관련하여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굉장히 깐깐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팀 홈페이지의 역사 소개 코너에서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를 다루고 있는 신시내티 레즈나, 이와는 반대로 워싱턴 세네터스를 거의 언급조차 안 하고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메이저리그의 팀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연고 도시 야구의 역사를 다루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으며, 실제 경기에서도 프랜차이즈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과거 자신들의 연고지에 소재했던 야구팀의 유니폼을 입곤 한다.[30] 그러나 30개팀 대표로서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내세우는 공인된 역사에서는 이 같은 팀들 저마다의 족보 주장에 대해 단호박으로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신시내티 레즈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를 자기네들의 전신 팀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경우나, 미네소타 트윈스가 자신들의 창단 연도를 1901년이 아닌 1961년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경우를 원천 봉쇄한다는 얘기...[31] 각자의 홈페이지에서는 뭐라고 주장하든 크게 터치하지 않지만, 이를 넘어 아예 공식화하는 것까지는 허용하지 않는 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이러한 사무국이 과연 내셔널스의 엑스포스 역사 이전을 허용해 줄까? 그간 사무국의 태도로 미루어 봤을 때 몬트리올에 새로운 팀이 생겨서 과거 엑스포스 시절을 추억하는 올드 유니폼 행사를 벌이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나아가 이 팀이 엑스포스의 역사까지 공식적으로 승계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공산이 매우 크다.[32]


[1] 몬트리올을 의미하는 M자로고를 뜯어보면 e,l,b의 세 글자가 숨어있다. 이는 "Expos Le Beisbol(엑스포스 야구단)"의 머릿글자이다. 문법적으로는 말이 안되기는 하지만. [2]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유일한 우승 기록. 해당 시즌은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으로 각 지구별 전후기리그 우승팀이 별도의 디비전 시리즈를 치렀다. [3]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에 뛰었던 팀이었다. [4]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4번타자이자 돌격 크로마티 고교의 모티브였던 바로 그 크로마티 맞다. [5] 이쪽도 말년에 일본의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었다. [6] 당시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전기리그 30승25패(.545) 동부지구 3위, 후기리그 30승23패(.566) 동부지구 1위. [7] 당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5전3선승제였다. [8] 마침 NLCS 5차전이 열린 요일이 월요일이었다. 다저스의 올드팬들은 이 날의 승리를 'Blue Monday'이라 부르며 회자하곤 한다. 몬트리얼 팬들 역시 Blue Monday라고 기억한다. (Blue는 영어로 파란색을 뜻하지만 '슬픔' 을 뜻하기도 한다). 덕분에 릭 먼데이는 몇년동안 카나다 야구팬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9] 한편, 이 해 LA 다저스는 멕시칸 특급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앞세워 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다. [10] 퀘벡을 기반으로 한 음료회사. 현재는 코카콜라의 하부 브랜드로 있다. 국내에서는 모 방송 때문에 탄산수 브랜드로만 알려졌지만(...) [11] 엑스포스의 마지막 시즌인 2004 시즌 말미 외야 펜스에 부착한 페넌트다. [12]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의 팀 동료 들라이노 드실즈 주니어의 아버지이다. [13] 현재 마이애미 말린스의 그 유명한 막장 구단주. [14] 처음에 구단 지분의 24%를 확보한 뒤 2년 후 구단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5] 2001 시즌엔 평균관중이 7,647명에 불과했다. KBO 팀보다 못한 수치. [16] 이는 MLB 사무국이 푸에르토 리코의 시장성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7] 이 트레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훗날 사이 영 상 수상자, 5-tool 유리몸 외야수 내야수를 보내는 용자짓을 벌였다. 물론 당시 엑스포스가 오랜만에 플옵을 노렸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트레이드였으나, 이 트레이드는 연고지 이전 후 워싱턴 내셔널스가 한동안 바닥에서 헤매는 데 매우 크게 일조하게 된다. 알짜 유망주들이 싸그리 털렸으니... [18] 한마디로 돈도 쪼들리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저정도 성적을 냈으니 돈만 충분히 쥐어주면 월드시리즈 우승도...라는 기대로 데려왔으나 한정된 예산에서 쥐어 짜는 능력은 있지만 넉넉한 살림을 효과적으로 쓰는 능력은 없었던 듯. 질러서 데려오는 선수들마다 먹튀에 전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들로 메츠의 백인 팬들로부터도 시선이 곱지 않았다. [19] 포틀랜드의 경우 신축구장 계획도 있었지만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샌앤토니오는 앨러모 돔을 개조해서 쓰면 되겠지만 이 동네는 미식축구와 농구가 인기있는 동네다. [20]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이다. 워싱턴 세너터스는 역사적으로 2번 존재했는데 두팀 모두 워싱턴을 떠났다. 전신은 1961년에 옮긴 現 미네소타 트윈스, 후신으로 1972년에 옮긴 現 텍사스 레인저스. [21] 워싱턴도 후보로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볼티모어의 존재 때문에 일단 후순위로 미루어 놓은 상태였다. [22] 따라서 SK 와이번스나 넥센 히어로즈와는 달리 워싱턴 내셔널스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역사와 통산기록을 계승한다. 내셔널스가 팀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23] 워싱턴 D.C.는 자체인구는 50만으로 적은 편이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 경계에 위치해있고 행정중심도시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아 같은 생활권으로 본다. 볼티모어는 메릴랜드주의 핵심 도시. [24] 엑스포스가 몬트리올을 떠나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름을 바꿨던 2005년에는 NHL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의 홈구장 상트흐 벨에 이 네 영구결번 배너가 걸리기도 했다. [25]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선수가 한명도 없게 될 판이었다. 참고로 명예의 전당에 새기는 동판에는 입성할 때 쓰고 온 모자를 기준으로 선수의 상을 만드는데, MLB 역사에 몬트리올 엑스포스라는 팀이 있었다는 걸 남기기 위한 조치로 위의 게리 카터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카터의 경우는 뉴욕 메츠의 모자를 원했으나 MLB 사무국 측의 강력한 요청과 베테랑 위원회의 권고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모자가 새겨졌다. [26]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2002 시즌 마지막 타석으로, 40-40에 홈런 하나가 모자란 채 마지막 타석을 맞이했다. [27] 그래 놓고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중계를 듣고 해석해 주는 것으로 때우는 [28] 1988년에 창단한 원조 샬럿 호네츠가 2002년에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뉴올리언스 호네츠'로 프랜차이즈가 이어졌다. 이후 2003년 NBA에서 제30구단인 샬럿 밥캐츠를 창단하여 호네츠와 밥캣츠가 별도의 역사를 가진 구단으로 10년간 보냈으나 2014년에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과거 샬럿 호네츠의 권리를 샬럿 밥캐츠로 이관했다. 그리고 샬럿 밥캐츠는 다시 샬럿 호네츠의 이름을 채택했고, 과거 이 지역 농구팀의 역사도 잇게됐다. [29] 쉽게 생각하면,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의 역사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역사가 아닌 것, 시애틀 파일러츠의 역사가 시애틀 매리너스의 역사가 아닌 것과 같은 문제이다. [30] 2004년 밀워키 브루어스는 과거 밀워키의 연고팀이었던 밀워키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뛴 적이 있는데, 재밌는 사실은 당시 상대팀이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후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는 거... 심지어 모자 로고가 한쪽은 'M', 다른 한쪽은 'A'라는 것만 빼고는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유니폼과 오늘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은 사실상 똑같은지라, 이날 관중들은 브레이브스 선수들이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을 즐겁게 관전하였다. [31] 가장 최근의 사례로 메이저리그 30개팀마다 각자의 레전드 선수들 네 명을 선정하는 '프랜차이즈 4'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는 네 명 모두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레전드들이었다. 물론 엑스포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이전한 지 10년 겨우 넘었기 때문에 선정에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셔널스 선수'는 단 한 명도 못 뽑힌 점에 대해 워싱턴 D.C.의 시민들은 당연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사무국 역시 이러한 반응에 대해 꿈쩍도 안 했고... [32] 만약 몬트리올의 새 야구팀이 연고지를 이전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라면?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아메리칸 리그를 많이 제패한 팀이자 월드 시리즈 9회 우승 역사에 빛나는 이 팀이 단지 몬트리올로의 연고지 이전만을 이유로 그간의 업적들은 죄다 포기한 채 별 볼 일 없는 과거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역사를 승계하는 행위를 사무국이 인정해 줄지 의문이다. 굳이 가정법을 동원할 필요 없이 과거 워싱턴 세네터스가 미네소타로 떠난 뒤 지금의 텍사스 레인저스가 된 팀이 워싱턴 세네터스의 이름을 이었지만 그 이전의 세네터스의 역사에 대한 권리는 미네소타 트윈스가 가지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