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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1:38:27

다아시 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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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Gish
1991
Siamese Dream
1993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5
Adore
1998
Machina/The Machines of God
2000
Machina II/The Friends & Enemies of Modern Music
2000
Zeitgeist
2007
Oceani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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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아시 레츠키
D'arcy Wretzky
파일:Darcy-Wretzky-GettyImages-1319688521-HEADER.jpg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다아시 엘리자베스 레츠키-브라운
D'arcy Elizabeth Wretzky-Brown[1]
출생 1968년 5월 1일 ([age(1968-05-01)]세)
미국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이전 소속 스매싱 펌킨스, 캐서린
배우자 캐리 브라운 (1993년 결혼 ~ 1999년 이혼)
신체 173cm
활동 기간 1988년 - 1999년
사용 악기 베이스 기타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스매싱 펌킨스 활동2.3. 1999년, 마지막 활동2.4. 탈퇴 이후

[Clearfix]

1. 개요

다아시 레츠키는 락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전 베이시스트이며, 밴드 내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 캐서린이라는 밴드에서도 활동하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다아시는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에서 태어났으며, 다아시의 아버지인 제리 레츠키는 배관공이었고, 어머니인 비키 앤더슨은 음악가였다. 다아시의 어머니는 다아시와 자매들에게 음악 관련 활동들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다아시는 10살 무렵부터 바이올린, 오보에와 같은 악기들을 배웠고, 합창부에도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체조부도 했다고. 다아시 본인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의 자신은 전형적인 톰보이였다고 한다.

베이스 기타는 독학으로 익혔다고 하며 10살 때부터 음악 관련 장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는데, 어렸을 때에는 무대공포증이 심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아시는 포스트 펑크 밴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커버 밴드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한 밴드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프랑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밴드가 해체된 후였다. 결국 그녀는 미국으로 귀국했고 직후 시카고로 이사를 갔다. 시카고로 이사온 이후 다아시는 시카고 인디 씬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2.2. 스매싱 펌킨스 활동

시카고의 한 클럽에서 콘서트를 마친 다아시 레츠키는 빌리 코건 제임스 이하가 자신이 공연에 참여했던 밴드에 대해 뒷담화를 까고 있던 것을 우연히 듣게 되고 두 사람과 말다툼 및 논쟁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빌리 코건으로부터 자기 밴드에 가입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 스매싱 펌킨스에는 빌리 코건 제임스 이하만 있던 상태였는데 다아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빌리 코건도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빌리의 제안에 승낙하여 밴드에 가입했다. 다아시 레츠키가 가입한 후 몇 달 뒤에 드러머 지미 체임벌린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다아시 레츠키는 스매싱 펌킨스 활동 동안에 5개의 정규 앨범인 Gish, Siamese Dream,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Adore, 그리고 Machina/The Machines of God에 이름을 올렸는데, 정작 Siamese Dream, Adore, Machina/The Machines of God 앨범의 베이스 트랙은 빌리 코건이 연주했다. 다아시는 백킹 보컬도 가끔 맡았는데 대표적으로 1집의 Daydream, 2집의 대다수의 곡들, 3집에서는 1979, Cupid De Locke, Farewell and Goodnight, Beautiful, Where Boys Fear to Tread와 같은 곡들이 있다. Daughter이라는 곡에서는 빌리 코건과 함께 공동 작곡/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1995년에는 당시 자신의 남편이던 캐서린의 드러머 캐리 브라운, 밴드메이트 제임스 이하와 함께 Scratchie Records라는 독립 레이블사를 설립하였고, The Frog와 같은 밴드들을 양성했다.

2.3. 1999년, 마지막 활동

다아시는 이 시기를 행복과 불편함이 왔다갔다 하던 시기라고 언급했고 빌리 코건은 1995년, 3집의 성공 이후 다아시가 코카인 중독으로 인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9년 4월, 9일간의 짧은 The Arising 투어를 마치고 다아시는 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연기 경력을 쌓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스매싱 펌킨스는 Machina/The Machines of God와 Machina II/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의 녹음이 한창이었는데, 다아시의 탈퇴가 이미 확정되었기 때문에 해당 앨범들에서 그녀가 직접 녹음한 베이스 트랙은 거의 없다고 한다. 5집의 베이스 트랙들 대부분은 빌리 코건이 녹음했으며 2000년도에 진행되었던 5집 월드 투어에서 다아시의 빈자리는 의 전 베이시스트였던 멜리사 아우프 데 마우어로 대체되었다.

다아시 레츠키는 인터뷰에서 "나는 5집의 리허설 때 빌리 코건이 작곡한 베이스 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만든 베이스 라인을 앨범에 싣고 싶어했지만 빌리와 제임스는 내 의견을 묵살했고 내가 배우 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하자 바로 빌리 코건이 나를 밴드에서 해고했다,"고 밝혔고 후에 빌리 코건이 다아시의 발언을 인정하면서 "다아시가 도움 받길 거절하는 못돼먹은 마약 중독자처럼 굴어서 그녀를 해고시켰다."고 말했다…

2.4. 탈퇴 이후

밴드를 탈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아시 레츠키는 코카인 소지로 인해 체포되었다.

다아시 레츠키는 2009년 7월에는 시카고 라디오 지역 방송에서 전화를 걸어 근황을 전했다. 다시 밴드에 가입하여 투어를 돌기가 불가능할 만큼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고, 잠깐동안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살았다가 미시간 주의 농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2011년 2월 1일에는 밤에 다아시 소유의 농장에서 기르던 말이 탈출해서 돌아다니다 다른 농부의 농장에 침입해 창고에서 사유 재산과 야채를 훔쳐간 것 때문에 감옥에서 6일을 보냈고, 감옥에서 나온 다음날인 7일에는 감정 통제가 되지 못했는지 미시간 주 사우스 헤븐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돼서 다시 감옥에 갔다 왔다.

2018년에 빌리 코건이 스매싱 펌킨스의 원년 멤버들이 모여 밴드를 재결성한다고 발표했을 때 발리가 다아시 래츠키는 밴드 가입을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나, 빌리의 인터뷰를 접한 다아시 레츠키가 인터뷰를 통해서 빌리 코건의 독선적인 일처리 방식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인터뷰에서 다아시는 "나는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과 다시 대면하여 그간 있었던 앙금을 풀고 같이 리허설을 하기를 고대했으나 빌리 코건은 나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나를 밴드의 재결성에서 배재시켰다. 스매싱 펌킨스 활동 당시 나는 밴드의 프로페셔널한 베이시스트로서 라이브에서 늘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빌리 코건은 내 실력을 결코 인정해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터뷰에서 '베이스 연주보다 립스틱을 고르는데 신경을 더 쓰는 여자'라고 폄하하였다. 나는 2집 투어 때 부터 매 투어가 끝난 뒤에 항상 밴드를 탈퇴하고 싶었지만 그럴때마다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이 앨범 한 장만 더 참여한 후 그만 두라고 설득했기에 밴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밴드 생활 내내 빌리 코건은 자신의 기분이 안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기분이 안 좋은 시늉을 해야했을 정도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독재자로 군림했고 내기 스매싱 펌킨스 활동 시절에 빌리 코건과 그나마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험한 말을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낫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면서 빌리 코건을 극딜했다. 이후로도 다아시 레츠키가 스매싱 핌컨스에 참여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 하이픈 된 Brown이라는 성씨는 다아시가 캐리 브라운이라는 음악가와 결혼하면서 붙인 성씨이다. 이혼 후에도 변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