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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신일고 시절 김현수 |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지만,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던 점, 하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스카우터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 하다. 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1]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에 지명된 신일고 선수들도 있고 김현수와 남윤희는 태어난 해만 다를 뿐 신일고 동기이다. 2차 지명 회의 다음날 국내/외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김현수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현수를 지명할 예정이라 했으나 김문호를 지명하면서 그만뒀다고도 한다.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에서 뛰고 싶어 고민하다, LG 트윈스에는 박병호와 정의윤이 이미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기에 두산에 신고선수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박동희의 기사 [2]
다만, 위에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건 체면치례용 아니면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문호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는데, 만약 정말로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 고민을 했다면 다른 팀들이 김현수를 안 뽑는 걸 보고 4라운드에 '이게 웬떡이냐~'며 김현수를 지명해야 하는게 정상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 뒤에 라운드라도... 그런데 김문호를 지명하고도 9라운드 6명을 더 뽑을 동안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애초부터 김현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롯데 만이 아니라 8개 구단 스카우트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야구팬들은 농담삼아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때문에 기피한거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8개 구단 프런트들이 전부 저런 저주를 철썩같이 믿고서 안 뽑았을리는 물론 없다.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데다가 장타툴이 없는 외야수라는 평으로 다들 기피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3]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현수는 스카우트들의 보는 눈이 틀렸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였다.
2. 프로경력
2.1. 두산 베어스 시절
간단 요약 : 만 20세였던 2007시즌 팀 내 타자 WAR 5위를 찍고, 그 뒤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단 한 번도 3위 밑으로 내려가본 적이 없다.2.1.1. 2008년 이전
신고선수로 입단한 만큼 절치부심하며 훈련했다. 김광림 타격코치의 지도 아래 매일 하루 1000번의 스윙을 했다고 한다. 입단 첫해 훈련 중 외야 수비를 하다 펜스에 제대로 부딪쳤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었다.2006년 시즌 후 교육리그에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고 2007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며 1군 무대에 첫 등장하였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김경문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점점 리그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이후 주로 2번타자로 출전해 99경기, 타율 0.273을 기록하며 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2.1.2. 2008 시즌
2008년에는 일거에 수위 타자로 떠오르며 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등극했다. 신인이나 마찬가지인데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호타를 보여주며 활약했지만[4] ,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쳐서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자였던 쿠바의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친 병살이랑 똑같다고 하여 김쿠바, 김구리엘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필이면 상대도... [5]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5차전 9회 1사 만루에서 또다시 1-2-3 병살을 치며 두산의 2년 연속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당시 병살타를 치고 1루에서 펑펑 울던 어린 김현수의 모습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안쓰럽게 다가가기 충분했다.결국 한국시리즈 최종 성적은 21타수 1안타
2008시즌은 타율 0.357 (리그 1위),안타 168(리그 1위),출루율 0.454(리그 1위),장타율 0.509(리그 4위),홈런 9,타점 89,OPS 0.963,WAR 7.14(리그 1위)라는 매우
여담으로 이 시절 김현수를 똑딱이 시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홈런 갯수가 적었다 뿐이지 잠실구장에서 장타율 5할[6]에 OPS 9할을 기록한걸 보면 똑딱이라고 하긴 무리가 있다.[7]
2.1.3. 2009 시즌
2009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8]는 개나 주라는 듯, 2008년의 놀라운 안타 생산능력에다가 부족했던 장타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가 되었다. 특히 6월 초반까지 4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괴물같은 스탯을 찍어주었다.2009 KBO 드림팀을 뽑는 투표에서 7개 구단 감독 만장일치로 3번타자로 낙찰되기도 하였다. 한참 선배인 홍성흔이 김현수를 가리켜 "타격의 신"이라고 하거나, 이승엽도 베이징 올림픽 때 김현수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치냐"라고 묻기까지 할 정도로 타격 능력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천재.
2009시즌은 타율 0.357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김거김을 만들어내는 등 펄펄 날았지만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진하였다. 그러다 10월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 SK와 경기에서 2회 선제 솔로홈런을 쳤는데, 직후 경기가 우천으로 중단되었다가 결국 취소되면서 그 홈런은 아예 무효 처리되었다. 홈런을 치고 포효하며 기뻐하다가 비가 많이 내릴수록 점점 근심에 싸이는 모습을 보며 두산 팬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홈런을 치는데 왜 경기를 못하니... 다음날 또 홈런을 치면 된다고 인터뷰했지만, 14일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 5차전에서는 두산이 참패하였다. 5차전에서 크게 지고 있던 상황 중 정말로 홈런을 치고 베이스 도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홈런을 보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습에 지못미.
2.1.4. 2010 시즌
시즌 KIA와의 개막전 2연전에서 도합 8타수 7안타를 치면서 역시 김기계라는 평을 들었으나 최훈 카툰 이후 극도의 부진(?)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어느정도 기량을 되찾아 3할을 회복했으며 결국 20홈런 80타점도 무난하게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타율
이러한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다. 4번 타자에 배치된 게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거나, 베이징 올림픽과 WBC 이후 유명해지면서 펄모씨과 얽히면서 멘탈이 망가진 것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러한 김현수의 부진에 대해 "야구하면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부진이다. 계속 잘하기만 하면 얼마나 야구가 쉬워 보이겠는가." 라며 현재의 부진이 더 발전하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할 20홈런에 90타점 가까이 기록해놓고 부진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쩌면 김현수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일지도 몰랐다.[11]
식빵을 자주 입으로 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야갤에서 신나게 까였고, 또한 발전도 없는 새끼가 겉멋만 들었다며 까였다. 그러다보니 기레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0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10개의 홈런을 기록, 역대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2012년 김태균이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깨졌다. 그러나 2014년, 다시 김현수가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란 듯이 타이기록을 기록했다.
이 와중에 8월 5일 잠실 롯데와의 경기에서 사구를 맞자 성질을 내던 모습이 제대로 걸렸다. 네티즌들의 심한 비난에 직면해 있는 상태이다. #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팀이 뒤지던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2로 앞선 9회초 무사 1, 2루에서 희생번트를 대야 했을 정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김현수는 이날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9회초에만 8점을 뽑으며 스코어 11:4로 승리했다.
김현수는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2안타 4볼넷 2득점, 타율 .118, 장타율 .176, 출루율 .286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해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4차전 7회 대타로 나와 안지만의 높은 공을 때려 2타점 적시타를 만든 것 정도가 인상적인 활약. 김현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9타수 1안타 2볼넷 2타점 1득점, 타율&장타율 .111, 출루율 .27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현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6타수 3안타 6볼넷 2타점 3득점, 타율 .115, 장타율 .154, 출루율 .281를 기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1.5. 2011 시즌
6월까지의 김현수는 한마디로 삼못쓰=삼할도 못치는 쓰레기로 요약 가능했다.작년 6월에 비해 모든 스탯이 하락하였고 두산의 타선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타율이 3할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장타율로, 무려 1할 정도가 하락했다. 똑딱질도 안되고 2010시즌부터 선언해 왔던 거포 변신에도 완벽하게 실패한 모습이었다.
2011시즌의 두산의 믿기지 않는 부진에 한몫을 했으며 , 2009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차지한 적도 있는 그가 최형우, 박한이, 전준우에게 밀려서 올스타 출전도 불투명한 상태가 되면서 본인에게는 올해가 최악의 시즌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중심 타자였던 김현수까지 무너진 가운데, 김경문 감독은 사퇴를 선언하였다.
결국 감독 사퇴의 여파인지 다음 날인 6월 14일 경기에서 그간의 타격 부진을 만회하듯, 1회 말 이종욱과 오재원의 연속 출루로 무사 1, 3루인 상황에서 초구를 걷어 넘기는 홈런에 이은 연속 안타로 4타석 3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으로 경기 MVP 선정과 동시에 3할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뤘다. 프로 생활의 은인인 감독의 사퇴에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낀 듯 수훈선수 인터뷰 때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8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하필이면 심수창이 승리한 날이라서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두산팬들조차도 심수창 인터뷰를 보고 있다가 두산이 왜 이겼냐고 할 정도였다...
8월 23일까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어느새 타율도 10위권(.308로 9위)에, 타점 71점으로 5위, 4위 박석민과는 2점차에, 공동 2위인 이범호, 최형우와 6점차, 8월 중순까지 12점을 올려 50점대 후반에서 여기까지 페이스를 올렸다.
9월 들어 부진에 시달리며 2할 9푼대의 타율에 머물렀지만, 10월 2일과 3일 경기에서 안타 및 홈런을 몰아치며 귀신같이 3할에 복귀하였다.
2011시즌 타율 .301, 안타 143, 13홈런, 91타점, 출루율 .392, 장타율 .444, OPS .836을 기록했다. 타율은 겨우 3할을 맞췄지만, 홈런과 타율이 둘다 부쩍 떨어진데다 출루율마저 떨어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이 해엔 저 급락한 OPS로도 리그 8위를 찍고 리그 야수들중 WAR 11위를 달성하는 충분히 S급이라고 부를만 한 활약을 펼쳤다.
2.1.6. 2012 시즌
KBO에서의 신인시절을 제외한 커리어로우 시즌시즌 초 극심한 침체에 빠진 두산 타선을 거의 홀로 이끌며 기계의 귀환을 예고하나 싶었으나 3할도 못 치고 말았다.
4월은 좋았으나 5월 이후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남은 두산 타선의 마지막 자존심. 클린업 김동주와 최준석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삼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꼴찌경쟁 중인 두산 타선에서 활약하는 유일한 선수이다. 6월이 다 가는 시점에서 3할을 충분히 넘고 있는 상위권 타자이며, 팀내 타점 1위(31타점)이다.
7월 3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5:4로 앞서고 있던 9회말 2사 상황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나지완이 건 시비에 대응하며 언쟁이 있었다. 경기 종료 후 이종욱이 나지완을 다독이며 들어가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신일고 2년 선후배 사이인 탓에 나지완과 함께 논쟁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게다가 슬로모션으로 잡힌 영상에 입모양이 '뭐 x신아'로 보여 야구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나지완의 욕설에 대응한 '뭐가 x신이야'라는 설 등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다행히도 7월 17일 광주에서 다시 두산과 KIA가 만난 자리에서 서로가 당시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 좋게 화해. 두 사람간의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화해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첫 타석에서 2점 홈런을 때려내는 등 공격면에서는 크게 활약했으나 9회말 2아웃에서 경기를 끝낼 뜬공을 놓치면서 1점을 내주어 두산팬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8월 13일 기준 타율 0.315로 리그 전체 4위, 타점은 57타점으로 6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0.447로 1위. 매년 문제로 지적된 좌투수 상대 타율도 나아지는 등 상당히 좋아진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년에 비해 장타율이 0.425로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8월 1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회초 한현희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으나, 이날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면서 오랜만에 김첨지의 면모를 과시했다(…).
침묵하는 팀 타선에서 손가락 부상과[12]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을 견디며 분투하였으나 결국은 3할 타율을 넘기지 못하고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데뷔 시즌이었던 2007년을 제외하고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17타수 7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 타율, 장타율 .412, 출루율 .474로 예전의 '포스트시즌의 김현수'와는 다르게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팀은 1승 3패로 탈락하였다(…). 안습.[13]
2.1.7. 2013 시즌
최악의 커리어 로우에서 벗어난 해. 김현수/2013년 문서 참조.2.1.8. 2014 시즌
김현수/2014년 문서로.2.1.9. 2015 시즌
KBO 리그 역대 6번째 100타점-100득점-100볼넷 달성국제전에서도 멈추지 않은 타격 기계,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다!
김현수/2015년 문서로.
2.1.9.1. FA
2015시즌 전 우승을 한다면 두산에 잔류하겠다고우승 공약으로 두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그건 시즌 전 이야기였고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남는다면 다른 팀은 못갈 것 같다는 말을 해서 두산팬들을 안심시켰다. 팀을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내용이었기에 두산팬들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게 되면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현수,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 12월 1일 MLB에서 정식으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김현수 본인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단 관심이 있는 팀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12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비트 라이터 댄 코널리의 트윗에 따르면 오리올스가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고 한다. 같은날 미국 '볼티모어선'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협상을 벌이며 2년간 연평균 300만~400만 달러 수준을 제의했다'고 알렸다. 제의가 사실인 것으로 보여 오리올스와의 계약이 진행중으로 보인다. 그 외에 피츠버그 샌디에이고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가 FA 거취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떴다. #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M 노옵션 계약에 합의했다는 트윗이 떴다!! 국내의 리코스포츠가 김현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김현수의 이해관계와 딱 맞는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주말이 지났음에도 정식입단 발표가 나지 않아 고질적인 뼛조각 부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에 잠깐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데이비스 계약과 연동되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예전부터 저질러온 짓거리라 한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2월 24일 새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KBO리그 최초로 FA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이다. 배리 본즈의 번호라는 에이전시의 권유로 25번을 달았다고.[14]
2.2. MLB 시절
2.2.1. 2016 시즌
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국어의
도치
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 ## 그가 걸어온 길(연습생에서 메이저리그까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여준 메이저리그에서의 1년차. 그러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난 시즌.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 ## 그가 걸어온 길(연습생에서 메이저리그까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해당 문서로.
2.2.2. 2017 시즌
먹튀2017 시즌 메이저리그 외야수 뒤에서 2등.[15]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다가 시즌 중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결국 끝까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팬들에게 욕까지 먹은 최악의 먹튀 탄생.[16]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2.2.2.1. 두번째 FA
본인은 빅 리그에 남고싶어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지라 시즌 후반 이후 KBO 리턴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현지언론 역시 시즌중에도 계속 김현수가 2017년을 끝으로 귀국하리란 전망을 내놓았다. 17시즌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지난 계약 수준의 빅 리그 잔류 보장 가능성은 어느 팀에 가더라도 매우 적으며 백업과 AAA를 오가는 고된 생활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윈터 미팅에서 현실을 확인하고 리턴하리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미국으로 떠나면서 한 말들이 있었기에, FA 시장이 본격화되기 전에 야구 팬들은 김현수가 어느 국내구단과 계약할것이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음이 알려지고 민병헌에게 오퍼 한 번 넣지 않고 롯데와 계약하도록 그냥 두었음이 알려지면서 김현수의 거취가 2017 스토브리그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하게 된다.
객관적인 전력과 신인 육성이 강점인 팀 특성상 민병헌을 잃었다고 두산이 100억을 호가하는 외야수를 사야 할 이유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수는 베이징 뉴비 유입시기와 맞물리면서 두산 팬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였기에 놓칠 경우 구단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실제로 두산 팬들이 팬 페스티벌 등[17]에서 산발적인 실력행사에 나서는 등 김현수를 잃었을 때 팬들이 받을 심리적 타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후일 밝혀지기로 프런트 측에서도 모기업에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로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한편 성적을 불문하고 고참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며 팬들의 원성이 최고조에 이른 LG가 김현수 영입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구단으로 떠오른다. 삼성[18] 등 다른 후보구단이 루머 수준에서 정리되면서 김현수에게 오퍼를 낼 구단은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 두 팀으로 좁혀지게 된다. 하지만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 미련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접촉 소식은 없이 김현수의 복귀소식이 윈터 미팅 이후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윈터 미팅 결과 김현수가 보낸 에이전트는 구단 관계자들의 차가운 반응 속에[19] 만족할만한 오퍼를 받아오는 데 실패하고, 김현수의 리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12월 18일 두산과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났으나 #, 몇 분 후 사실 무근이라는 반박 기사가 나왔다. 두산 팬들은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다음 날 김현수가 LG와 계약했음이 발표되면서 2017 스토브리그 최대어 김현수의 소속은 LG로 확정되었다.
이후 엠바고가 풀렸는지, 두산과의 계약 성사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음에 힘을 싣는 기사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얄궂게도 지난 10년간 두산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였던 김현수의 행방이 걸린 해에 모기업이 야구단에 돈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프런트에서는 그럼에도 소요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사정상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한다. 온갖 루머와 달리 구단측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FA 시장은 조용히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거나, 김현수가 수차례 두산 구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무언의 항의를 했다거나, 그럼에도 두산이 전혀 오퍼하지 않아 이적이 확정되다시피 한 김현수가 에이전트와 함께 울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것으로 보아 선수 및 구단과 직접 연락이 가능한 많은 기자들도 어지간히 입이 근질근질했던 듯.
2.3. LG 트윈스 시절
2017년 12월 19일, LG 트윈스와 4년 총액 115억원(계약금 65억원, 연봉 12.5억)에 계약[20]을 하면서 KBO 복귀가 확정되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영입의사가 있는 구단은 있었지만 주전 보장을 원한 김현수의 의도를 맞춰줄 구단은 당연히 없기에 주전 보장이 있는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고 한다.
LG는 2000년대 중반부터~2010년대까지 지속적인 타자육성실패로 30대 초반의 타자 중에서 중심을 잡아줄 정도로 성장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김현수의 영입은 돈은 많이 들었어도 그나마 괜찮은 선택이었다.[21]
LG의 등번호 50번은 이미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가 선점하고 있어서 결번 중 22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선택했다.[22]
메이저리그 시절에 대한 질문에 훈련량은 KBO가 많지만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능력과 체계적인 훈련의 질과 몸관리가 남다르다는 대답을 하였다.
메이저 진출 전 실패자 발언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는 듯 하다. 겁이 없던 상태에서 했던 발언이었다고. 여담으로 아버지가 MBC 청룡 원년 팬 출신으로, 김현수가 두산에 지명받기 전까진 LG 골수팬이였다고 한다.
2.3.1. 2018 시즌
[1]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추신수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설이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유사한 소문. 당시 부산고 출신으로는 김백만이 한화에 2차 1라운드로 뽑혔고, 이후 (대졸이긴 하지만) 2명이나 더 지명받았다. 정근우의 미지명 사유는 작은 체구로 인한 낮은 발전 가능성.
[2]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같이 두산에서 신고선수 성공 사례가 많다 보니, 이후 서울 팜 중 두산에 입단하고 싶어한 고교 선수도 많았다고 한다. 허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대신 베테랑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3]
사실 고등학교 투수와 프로 투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고교 때 타격으로 날렸어도 프로에서는 전혀 못 때리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위에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라는것도 사실 전혀 저주가 아닌게, 고등학교때 잘했다고 프로에서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의 고교 성적보다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신인지명에 있어서 타격이나 선구안을 과거보다는 더 중시여기는 편이지만, 이 때는 지금보다 더욱 툴을 중시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고교 야구 대회 몇개 성적으로 타격을 평가하기에는 샘플이 너무 적기도 하고. 그리고 김현수가 뛰던 당시는 알루미늄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2004년 봉황대기부터 나무배트 적용)
[4]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좌투수 이와세의 공을 툭 건드려 적시타로 연결하는 장면이 좋은 예
[5]
심지어, 김현수의 병살타 장면에
허구연 의 아앍! 따불푸레이더블플레이! 더블플레이!" 하는 샤우팅을 합성한 플짤마저 돌았다. 완벽한 싱크로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문제의 영상(...)
[6]
ISO 0.152
[7]
잠실구장이 넓다는걸 생각하자.
[8]
사실 김현수의 첫 1군 풀타임 시즌은 2007년으로 2008년이 소포모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시즌 수위타자를 먹었다.
[9]
2010시즌 출루율 5걸 중에서 유일하게 BB/K 비율이 1.2를 넘어간다.(BB/K 1.31)
[10]
이로써 3년 연속으로 150안타 이상을 쳤다. 이는 1999~2001년의
이병규, 2001~2003년의
장성호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11]
5월 2할대 후반 타율을 기록할 때는 확실히 부진하다 할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9월에 맹타를 치며 준수한 평균 성적을 기록.
[12]
당시 손가락 통증 탓에 네 손가락만으로 타격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13]
미디어데이에서는 3전 전승에 세 경기 모두 완봉승(…)이 될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게 다
홍삼작가와
커피고자 때문이다
[14]
참고로 이 당시 25번을 달고 활약했던 거포로는
배리 본즈뿐만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셋 다... 다만 이 번호를 단 선수 중에는
짐 토미나
마크 테세이라와
앤드류 존스도 있었던 만큼 완전히 약물로 더럽혀진 번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번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
[15]
뒤에서 1등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아담 앤젤. 그러나 아담 앤젤의 경우, 1991년생으로 김현수보다 3살이나 어리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백업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수비만 보고 쓰는 외야 백업 자원이다. 수비에 비해 타격 실력이 정말 늘지를 않았지만, 홈런포를 친 적이 많아서 6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담은 땅볼 아웃보다 플라이 아웃이 더 많다
[16]
사실 비난을 받아도 반론할 수가 없는 게, 타격도 안 되고 출루도 안 되고, 장타율도 출루율보다 딸리고, 여기다가 마이너리그 거부권 때문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지도 않는다. 아무리 리빌딩을 하고 있는 필리스라지만 팬 입장에서는 그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뿐인 건 당연지사. 김현수보다 잘 하는 선수는 마이너리그에 흔하다. 심지어 필리스는 내년 시즌을 기대하며 리빌딩 중이었으니, 이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재계약이야 당연히 불발 확정이었지만. 거기다 마이너리그 거부권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엔트리 낭비. KBO 리그로 따지면,
박종윤보다 못했고,
김주형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17]
대표이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김현수를 잡아달라는 어필을 했고,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두산베어스 해시태그에 FA 관련 문구를 도배하려 하기도 했다.
[18]
자금은 충분했지만 내야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내고 또다른 대어인 강민호를 낚아가며 사실상 철수.
[19]
메이저리그의 트렌드가 홈런대잔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교타자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 하물며 김현수는 잘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윈터 미팅에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
역대 FA계약중에서는 이대호(4년 150억)다음으로 큰 계약이다. 바로 다음이 최형우(4년 100억), 아직까지 100억을 넘긴 사람은 이 셋밖에 없다. 차우찬:??? 손아섭:2억만 더... 우연히 또 엘롯기다
[21]
몇몇 기레기들은 정성훈 내치고 김현수 데려온 것이 리빌딩이냐는 제목과 내용의 글로 어그로를 끌었다가 비웃음만 들었다.
[22]
공교롭게도 22번은
신일고 선배인
김광삼이 은퇴 직전에 달던 번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