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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2:56:10

김창열(화가)

김창열
金昌烈 | Kim Tschang-Y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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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b591> 출생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군[1]
사망 2021년 1월 5일 (향년 91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직업 화가
학력 광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학과 (중퇴)
배우자 마르틴 질롱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생애3. 수상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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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김창열

대한민국의 화가. '물방울 화가'라고 불린다.

한국 예술사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술계의 거장이자 원로 화가이다.

2. 생애

주요 작품
파일:108070_62583_5056.jpg 파일:22H51AXJ7G_2.jpg
회귀 물방울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사사해서 서예를 익힌 그는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광성고보 시절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6세 때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 194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전쟁 후 서울대학교에 다시 등록하려고 했으나 월북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등록이 거부된다. 이후 군 복무를 대신 했던 경찰직에 눌러앉았고 부평 경찰전문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1955년 고등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한 후, 경찰에서 나와 서울 수도권의 고등학교에서 짧은 기간 동안 미술교사로 일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후에 박서보를 협회에 가입시켰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 동인전의 이름을 "현대전"이라고 약칭하고 제 2회부터 함께 해나갔다. "현대전"을 통해 한국의 앵포르멜[2] 운동을 이끌었으며 1961년 파리 비엔날레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 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백남준의 눈에 띄어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당시 박서보 추천으로 1971년 제7회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이우환과도 이 때 만난다.

김창열은 파리 남쪽 팔레조(Palaiseau)의 마굿간 공방으로 쓰던 독일의 한 젊은 조각가에게 작업실을 이어 받아, 여기서 부인 마르틴 질롱(Martine Jillon)을 만나 동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재료 살 돈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마침내 1972년 물방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3] 근처 골동품 가구점에서 연 첫 개인전이 우연히 길을 지나던 파리의 일간지 <콩바(Combat)>의 선임기자 알랭 보스케의 눈에 들어 기사화되고, 이후 다른 신문사에서도 앞다투어 취재를 해가면서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물방울들은 우리를 일종의 자기 변형으로 끌고 간다."
"그 물방울들은 보기 드문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Combat에 실린 알랭 보스케의 평문 중.
이를 계기로 1972년 파리의 권위있는 전위미술 전시회 '살롱 드 메(Salon de Mai)'전에 초대받아, 검은 바탕에 오롯한 물방울 하나와 그 그림자를 그린 〈Event of Night, 1972〉을 출품하며 유럽에서 데뷔했다. 1973년에는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은 첫 프랑스 개인전을 개최하여 '물방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재료 연구를 하던 중, 1975년 다락방에서 묵은 신문 더미를 발견하고 ‘르 피가로’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렸으며, 이 때 처음으로 문자와 물방울의 조합이 시작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친 표면이라는 마대 재질의 특징을 잘 살리는 한편, 이러한 표면에 맺힐 수 없는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마대 자체를 여백으로 남겼던 초기와 달리 한자 체나 색점, 색면 등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동양의 정서를 끌어들였다. 물방울 역시 70년대의 투명한 물방울과 달리 색채가 들어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1990년대에 선보인 ‘ 회귀’ 연작은 인쇄체로 또박또박 쓰인 천자문을 배경으로 투명한 물방울이 무리 지어 화면 전반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두고 동양 철학 정신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서양 평론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한자 위에 물방울이 그려진 그 구성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2021년 1월 5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족으로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3. 수상

년도 나라 수상 내역 부문 비고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

4. 여담


[1] 평안남도 맹산군 지덕면 송암리. [2]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3] 몇몇 신문에 이렇게 나오긴 하지만 그전부터 물방울 그림을 그리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