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禁 欲 / Asceticism본능적 욕구를 억제하는 행위. 사회와 종교의 여러 금기는 금욕을 중시하거나 요구한다.
이것이 사상으로 발전하면 금욕주의가 된다. 철학과 종교로서의 금욕은 금욕주의 문서 참고.
2. 성적 금욕
여러가지 성욕 및 유사 성욕을 억제하는 것.성 자체가 터부시되어 온 만큼 많은 종교의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기본 덕목이었다.
인도에는 정액과 뇌의 기능을 연동된 것으로 보았기에 사정을 하지 않아야 현명해진다는 설이 있었고 도가에도 정액을 아끼는 요소는 있었지만... 이건 섹스를 하면서 사정을 안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 참고로 이러면 주변 기관이 상하는데 사정을 막으면 정액이 방광으로 역류하기 때문이다.
굽시니스트의 모 만화의 웹 버전에 의하면 이걸 오래 하면 신선의 경지에 오른다.
참고로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이 없는 사람이다. 즉, 무성애자≠무성욕자이며 끌림만 없을 뿐이다.
2.1. 기독교
가톨릭의 성직자와 수도자는 평생 금욕하면서 살아야 하고 신자들에게 권장하는 2대 피임법이기도 하다.[1]2.2. 불교
난타야, 너는 꼭 알아야 하느니라. 두 가지 법이 있는데, 그것에 만족이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법을 익히면 끝내 만족할 줄 모를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법인가? 이른바
음욕(
淫
欲)과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만족할 줄 모르는 두 가지 법이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이 두 가지 법을 익히면 끝끝내 만족할 줄을 모르느니라. 따라서 그 행의 결과로 말미암아 또한 함이 없는 곳(
無
爲
處 :
涅
槃)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증일아함경
불교의
승려들도 평생을 금욕하며 살아간다.증일아함경
3. 음식에 대한 금욕
식욕을 억제한다.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금육( 채식) 등 음식에 제한을 두는 것도 금욕이다. 치킨 금지 100일이라거나.종교에서는 불교에서의 금식 수행, 이슬람에서의 라마단, 기독교의 금식 기도[2] 등이 있다. 유대교에서도 금식에 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비롯한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금식을 했다. 예수는 40일동안 광야에서 금식을 하였으며 구약 시대에는 회개의 의미로 금식을 하는 것이 허다했다. 일례로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통 사건 후 나탄 선지자를 통한 하느님의 혹독한 책망이 주어지고 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리자 아이가 죽을 때 까지 금식하며 회개를 하였던 기록이 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였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 가톨릭에서도 금요일 하루 금식하는 것을 신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른바 주상성자(柱上聖者)라고 하여 기둥 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가끔씩 갖다 주는 음식 이외에는 아무런 음식이나 물도 먹지 않고 몇 날에서 몇 달 동안이나 계속 기도만 하는 수도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주상성자들은 주로 시리아 같은 중동 지역에 많았다고 전해진다.
4. 그 외
옛날 남유럽에서는 자기 몸을 쇠사슬로 묶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참회의 행진을 하거나 무릎으로 기어서 성지순례를 하는 등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독실한 수도자들은 발기할 경우 음경이 가시에 찔리게 하는 장치를 속옷에 넣고 다녔다고도 하고,독실한 원리주의적, 근본주의적 교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 예컨대 과거 영국에서는 독실한 청교도 신자들이 남녀 구분 없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회색조의 옷으로 둘러싸는 것이 권장되었으며[4]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여성의 신체의 노출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인지라 억눌린 욕망은 어디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한 꺼풀 벗겨보면 오히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실 뒤로는 몰래 할 거 다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도 많다.[5]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맛집/ 뷔페에 절대로 가지 않겠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잠 12시간 이상 절대로 자지 않겠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성관계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 등의 목표를 세우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며 욕망을 꾹꾹 눌러가며 억지로 참아내는 이런 것도 어찌 보면 금욕주의의 일종이기도 하다. 물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공무원 시험 합격 후에 억눌렸던 욕망들(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대거 폭발해서 공직생활을 하던 중 성격이 비뚤어져 버려 온갖 범죄(주로 성범죄, 도둑질, 살인 등)를 저질러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6]
심리학에선 금욕을 다른 종류의 욕망을 위해 행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즉, 다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어느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특정 종교 내에서 독실한 성직자 혹은 신자가 되고싶은 욕망, 현세에서의 금욕과 정결한 삶을 통해 사후 내세에서의 신에게 인정받거나 영광을 누리고픈 목표를 위해서 현세에서의 식욕이나 성욕을 포기하는 것 등으로 볼 수 있다. 일종의 저금 같은 것.
심리상담 분야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비판적이다. 무작정 억압해 봐야 욕구는 사라지지도 않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비뚤어지기만 할 뿐이니 차라리 건전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그 욕구가 생리적인 수준에 관계된 것일 경우 욕구의 미충족으로 인해 발생한 추동(drive)은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일관되게 고양되면서 신체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성욕은 목숨에 결부되지 않은 예외 사례(...).
늑대와 향신료의 호로는 ' 식욕은 대부분의 것을 없애 주지만, 금욕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도 없다'면서 금욕을 부정하며[7] 크래프트 로렌스도 거기에 동의한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할 때 느끼는 일상의 행복감'을 잃게 된다면 금욕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그러나 이후 궤변이라며 정정한다. 물론 이는 철저히 현세적이고 현대의 세속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본 견해다.
거식증 환자들은 음식에 대한 지나친 금욕 및 절식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는데 지나치게 억눌린 식욕은 역설적이게도 폭식이라는 대형 참사로 터지기도 한다.
[1]
다른 하나는
배란 주기 관찰법.
[2]
가톨릭과
정교회의 금육재 포함
[3]
교부 오리게네스가 그랬다고도 한다.
[4]
여담이지만
존 돌턴은 적록
색맹이었는데 독실한 청교도였던 어머니에게 회색 양말을 사드린다는 것이 그만 빨간 양말을 사다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5]
할 거 다 하는 정도면 양반이고 오히려 평소의 표면적인 금욕에 대한
보상 심리로 더더욱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았다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6]
군대를 예로 들면 구
일본군이 그랬다. 평소에는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공포에 질릴 정도로 엄청난
똥군기를 시전하였지만 전시에는 간부들이 병사들의 똥군기를 풀어주면서부터 갑자기 병사들이 참아왔던 욕망이 대거 폭발해서 간부들을
프래깅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7]
참고로 이런 현랑의 딸 아니랠까봐
뮤리 또한 "그만 좀 드세요."라는
토트 콜의 지적에 "절제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