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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1:07:24

그렉 보웬

1. 개요2. 전곡리 주먹도끼 발견3. 여담

1. 개요

Greg L. Bowen

파일:attachment/전곡리 선사유적지/fist_stone_axe.jpg

1977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양면 가공 석기[1]를 발견했다. 그리하여 인도를 기준으로 서쪽 지역(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은 아슐리안 문화권, 동쪽지역(동아시아, 아메리카)은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한다는 모비우스의 학설을 완전히 갈아엎어 버린 인물이다.

그의 발견 덕분에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4,000여 개가 넘는 석기 유물이 추가로 발굴되어 한반도 고고학에 큰 업적을 남겼다.

2. 전곡리 주먹도끼 발견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람이 아슐리안형 양면 가공 석기를 한국인 연인[2] 데이트하던 중 지나가다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주한 미공군 기상관측병으로 활동했다.

한국 주둔 중 만난 연인 이상미와 함께 1977년 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 변 유원지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코펠 커피를 끓이기 위해 주변의 돌을 줍기 시작했는데, 마침 애리조나 대학교 고고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심상치 않은 모양의 돌을 여러 점을 찾았다. 이것을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소포로 부쳐서 알렸고 이후 프랑스의 교수가 서울대 고고학과 김원용 교수에게 유물을 보내어 조사를 요청했다. 이렇게 밝혀진 것이 바로 "전곡리 주먹도끼"로 30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이다. 서울대 박물관은 이 일을 계기로 전곡리 일대 4500여 점의 유물을 발견했다.

이 사건은 당시 고고학의 가설을 완전히 뒤집었는데 당시 아시아에는 아슐리안형 구석기의 유적과 문화가 없다는 설이 정론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전곡리에서 아슐리안식의 석기가 발견되며 모비우스의 학설은 바로 폐기되었다. 보통 사람은 전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것인데 운 좋게도 그렉 보웬이 고고학 전공자였던 점이 컸다. 군대에 갔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졸업하고 입대한 것이었다. 그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져 제대 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3. 여담

그는 1950년에 태어났으며 1978년에 제대한 후 한국인 애인이었던 이상미와 함께 미국 애리조나로 가서 결혼해 딸을 하나 두었고 미국에서는 나바호 인디언 역사보존부에서 근무하였다.

2005년에는 1977년 이후 27년 만에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기사1 기사2 방한 당시 이선복 교수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도 잠들어 있을 것"이라며 유적 이름을 보웬 유적지로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전곡리 선사유적지/1331269467.jpg
중앙에 있는 사람이 그렉 보웬이다. 오른쪽 중년 여성은 부인인 상미 보웬(이상미). 이후에도 매년 전곡리 유적지에서 구석기 행사가 열리면 아내와 함께 참석했으나 2009년 2월 11일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그의 부고(영문)

이 부분은 2022년 10월 23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1] 예를 들어 주먹도끼. [2] 이상미(1954년생). 후에 그렉 보웬과 같이 미국 애리조나로 건너가 결혼하고 상미 보웬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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