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eotype threat
1. 설명
어떤 고정관념의 대상이 된 집단의 구성원이 그 고정관념을 상기했을 때 그에 관련된 객관적 수행능력이나 성취 수준에 영향을 받는 현상. 즉, 특정 구성원[1]에게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주입시켜 그들의 역량을 실제보다 떨어트리는 것들을 가리킨다.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기분이 나쁘다"거나 "제대로 공정하게 평가되지 못한다"는 정도를 떠나서, 실제로 시험점수나 업무성과 등에 지장을 받는 것이 관찰된다. 이 때문에 사회심리학 이외의 교육학(특히 수학교육학)이나 사회학, 사회복지학 등등에서도 이 현상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된 것은 클로드 스틸(C. M. Steele)과 조슈아 아론슨(J. Aronson)이 1995년에 저술한 논문이 그 시초다.[2] 첫 논문에서도 그렇지만, 이후로 많은 후속연구들은 주로 " 흑인은 IQ 검사 점수가 낮다"거나, " 여성은 수학 및 과학 점수가 낮다"는 등의 고정관념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왔다. 물론 그 외에도 " 노인들은 기억 능력이 뒤떨어진다" 는 고정관념이나,[3] " 게이들은 육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그 외에도 정신질환자나 저소득층 학생, 히스패닉 학생 등등에게서도 나타나는 고정관념들이 연구되어 왔다.[4]
1995년의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흑인 대학생들과 백인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GRE 문제를 풀게 시켰다. 연구자들은 "흑인들은 IQ가 낮다"는 고정관념이 상존해 있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부에게는 이 문제들이 GRE 문제가 아니라[5] IQ 검사의 일부라고 알려주고, 다른 일부에게는 개인의 IQ와 전혀 무관하게 괜히 물어보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실험집단의 흑인 대학생들은 그들 자신이 이미 명문대에 재학중일 정도의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확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어지는 다음 연구에서는 심지어 시험지 전면에 "당신의 인종은 무엇입니까?"의 질문이 배치되기만 했는데도 흑인들의 성적 저하가 나타났다! 여성들의 수학 성적을 주제로 한 후속연구에서도[6] "과거 통계로 미루어볼 때, 이 수학문제는 남성이 여성보다 잘 푸는 경향을 보였습니다"는 한 마디를 덧붙이자 여학생들의 점수가 확 떨어졌다.
고정관념 위협은 종류가 상당히 다양해서 연구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는데, 제네사 샤피로(J. Shapiro)의 분류법을 일부 거론하자면[7] 어떤 경우는 "내가 실제로 그렇다는 게 확인된다면 어쩌지?"의 불안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나 때문에 흑인이/여학생들이 싸잡아 무시당하면 어쩌지?"의 불안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편 다이애나 퀸(Diana M. Quinn)은 고정관념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경우 그 결과 해당 고정관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수행이 상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8] 예컨대 남학생들은 "균형잡기와 같은 체육 활동에 있어서 남학생들이 더 뛰어납니다"라는 고정관념적 설명을 듣고 나면 더욱 의욕이 충만해지고 실제로 수행도 좋아진다는 것(…).[9]
물론 항상 사회적 소수자들만 고정관념 위협의 희생양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10] 어떤 연구에 따르면[11] 언제나 주류 지배계층으로 여겨지는 유럽계 백인 남성들조차 "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수학 올림피아드를 휩쓸고 다닙니다"(…) 소리를 듣자 수학 점수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연구들에서는 연구자가 직접 엉뚱한 썰을 풀어도 그것에 영향을 받기까지 할 정도.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강의 중론은 고정관념을 상기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정신적인 처리를 하느라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특히 이는 인지심리학의 도움을 받았는데,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토니 슈메이더(T. Schmader)는[12]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부르는 단기적인 외부정보 처리 과정이 한계를 갖고 있음에 주목했다. 컴퓨터에 대충 비유하자면,[13] 주어진 "시험문제 풀기" 프로그램을 이미 열심히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또 다른 처리를 요하는 "고정관념 메시지"가 들어와서 그걸 처리하느라 CPU 용량이 꽉 차게 되고, 시험문제 푸는 처리속도가 감소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일각에서는 고정관념이 시험에서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일각에서는 불안한 심리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중인데, 위의 작업기억 모형만큼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중.
고정관념 위협은 만10세 전후를 기준으로 갑자기 생겨나는데,[14] 이는 예컨대 남녀 간의 수학능력의 차이가 절대 선천적인 차이가 아니라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즉, 여성들은 적절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남성에 못지않은 수학 재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여자애들은 원래 수학을 못 해" 같은 사회구조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실제보다 수학성적이 낮아지게 된다는 것.[15]
다만 최초의 문헌인 Steele & Aronson(1995)에 대해서는 그 통계적 분석에 대해 (그리고 아마 명백히 " 정치적일 수 있는" 이슈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16] 즉 "흑인 학생에게서 고정관념 단서를 제거시켜 주면 그들의 수학 점수도 백인 학생과 같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사실 통계적으로 잘못된 해석이고, 제대로 해석할 경우 "고정관념 위협을 경험하면 흑인 학생들의 수학 점수가 실제로 낮아지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고정관념과 무관한 조건의 흑인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만큼 잘 했냐 하면 그것도 딱히 아니더라"(...)라는 충공깽스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인종 간 수학 성적의 격차에 다양한 변인들이 개입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고정관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종집단 간 차이의 분산(unexplained intergroup variance)이 존재한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법하지만, 이걸 지적했다간 자칫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인간 말종(...)으로 비칠 위험이 있었기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던 듯하다고... 이를 두고 흑인들은 태생적으로 IQ도 낮고 바보들이라서 무슨 수를 써도 우월한 백인들보다 수학을 못 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것도 큰일이다.
2. 완화 방법
그렇다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흔히 생각하기로는[17] "당신을 괴롭히는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세요! 여성이 수학을 못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부당한 폭력이고 억압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신의 힘으로 세상에 직접 보여주세요! 물러서면 안 됩니다!"와 같이 위협에 대응하여 물러서지 않게 교육시키고 계몽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하지만 인간 심리의 문제가 언제나 이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당사자가 그렇게 마음을 독하게 먹자 오히려 성적은 더 떨어졌다![18] 학자들이 고정관념 위협에 충공깽을 외친 이유이기도 하며, 사실상 심리학 말고는 이 개념을 연구하는 데 선뜻 손을 대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학자들은 몇몇 방향에서 개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당사자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한 것들이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애초에 그 고정관념 자체가 상기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면 된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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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고정관념 위협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구나"라고 스스로를 객관화한다.
마음챙김과도 유사한 기법인데, 이렇게 하자 연구 참가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한결 감소했다고 한다.[20] -
수학이건 뭐건, 사람의 수행능력은 자기 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캐롤 드웨크(C. Dweck)는 암묵 이론이라는 설명을 제시했는데,[21] 사람의 지능과 능력은 고정 불변이라고 믿는 사람보다 충분히 변동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고정관념 위협에 더 잘 저항할 수 있다.[22] -
지금 당면한 문제는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며, 나중에 더 멋진 다른 무언가에서 성취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법은 자신의 가치가 수학이나 IQ에만 완전히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음으로써 고정관념 위협이 주는 불안으로부터 개인을 방어한다.[23] -
성공한 여성 수학자[24], 성공한 흑인 교수와 같은 긍정적 역할 모델을 기억해두고 있다가 떠올려 본다.
고정관념 위협은 개인에게 "내가 반례가 되어 보여야 해!"라는 불안과 부담을 심어주게 되는데, 역할 모델의 존재는 개인에게 그런 부담을 지우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한다.[25] -
내 자신은 단지 '흑인 중 하나', '여학생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나만의 특성을 지닌 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범주로부터의 탈정체화 혹은 개인화로 불리는 방법인데, 개인의 정체성에 "나는 여자야, 나는 흑인이야" 같은 부분들이 강해질수록 고정관념 위협에 취약해진다는 발견을 역이용한 방법이다.[26] -
가능한 한, 내 자신과 유사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연구에 따르면 남학생과 섞여서 수학 문제를 푸는 여학생들은 여학생들끼리 수학 문제를 풀 때보다 성적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역이용한 방법이다.[27]
3. 여담
사실 고정관념 위협이라는 이슈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특유의 접근 및 분석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는 (똑같이 여성 관련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의 갈등론적인 접근방식과도 잘 대조되며,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이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가질 때 어떤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28]- 젠더 권력을 설명하는 데 특화된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는 고전적 페미니즘 사상과는 달리, 고정관념 위협은 흑인이나 성 소수자, 노인과 같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프레임워크로 적용될 수 있다.
- 기존 페미니즘의 갈등론적 세계관에서는 사회적 지배집단 내지 강자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날 리 없지만,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여건만 된다면" 저 유럽계 백인 남성들조차도 고정관념 위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 개인을 계몽시키고 부당한 압제에 맞서 싸우게 하여 사회적 변화를 요청하는 많은 페미니즘 문헌들과는 달리, 고정관념 위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그럴 경우 오히려 개인이 경험하는 웰빙과 삶의 질의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학문 간의 관계는 매우 미묘한 것이고 양측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므로, 학제간 연구가 잦은 현대에는 섣불리 어느 한 쪽의 설명이 무조건 그르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요지는, 서로 다른 조망을 비교함으로써 얻는 통찰은 서로에게 좋은 지적 자극이 될 수 있고, 특히 페미니즘과 같은 뜨거운 이슈일수록 그런 진지한 지적 노력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학을 비롯한 여타 사회과학 분야들에서 인간 심리에 대해 접근할 때,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여성 인권 관련하여 사회학자들과 협업을 할 때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다.
4. 같이 보기
[1]
일반적으로 피부색이나 성별이 다른 구성원
[2]
Steele, C. M., & Aronson, J. (1995). Stereotype threat and the intellectual test performance of African America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9(5), 797.
[3]
Levy, 1996; Hess et al., 2003. 단, 노인들의 기억의 경우 회상(recall)능력은 뒤떨어지는 게 맞지만, 재인(recognition)능력은 젊은이들과 거의 동일하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더욱 저해가 심해진다는 의미다.
[4]
Croizet & Claire, 1998; Bosson et al., 2004; Aronson & Salinas, 1997.
[5]
GRE는 현지 대학생들도 쉽게 풀기 어려워하는 시험으로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
TOEIC이나
TEPS에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영어시험 중 난이도만으로는 최정상급에 속하는 시험이다.
[6]
Spencer, Steele, & Quinn, 1999.
[7]
Shapiro & Neuberg, 2007.
[8]
Walton & Cohen(2003)의 메타분석에서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9]
Chalabaev et al., 2008.
[10]
e.g., Kalokerinos et al., 2017.
[11]
Aronson et al., 1999.
[12]
Schmader, Johns, & Forbes, 2008. see also Beilock et al., 2007.
[13]
재미있게도 인지심리학의 여러 개념들은 컴퓨터에 사람의 마음을 비유했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로봇공학이나 인공지능 연구도 그 기원을 따지다 보면 인지심리학과 닿아 있다.
[14]
국내 기준으로 초등학교 4~6학년 정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보면 될 듯하다.
[15]
Ruble & Martin, 1998; Hyde et al., 1990; Ambady et al., 2001; Neuville & Croizet, 2007; Alter et al., 2010.
[16]
Sackett, Hardison, & Cullen, 2004; Jussim, Crawford, Stevens, Anglin, & Duarte, 2015.
[17]
인간의 심층심리에 큰 관심이 없는 다른 인접 사회과학 분야들에서도 이와 같은 오해에 종종 빠지는 경향이 있다.
[18]
e.g. Blascovich et al., 2001.
[19]
Yeager & Walton, 2011.
[20]
Johns et al., 2005.
[21]
Dweck, 1999.
[22]
Aronson, 1999; Thoman et al., 2008.
[23]
Sherman et al., 2013; Sherman & Cohen, 2006.
[24]
인류 최초의 프로그래머라 불리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현대대수학의 근간을 정립한 에미 뇌터 등.
[25]
Marx & Roman, 2002; McIntyre et al., 2003; Stout et al., 2010.
[26]
Ambady et al., 2004; Rosenthal & Crisp, 2006; Martens et al., 2006.
[27]
Inzlicht & Ben-Zeev, 2000; Huguet & Regner, 2007.
[28]
이와 관련하여 여성 이슈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더 궁금하다면 로이 바우마이스터(R. Baumeister)의 《
소모되는 남자》 와 같은 문헌들을 추가로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