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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4:31:52

고스플란

1. 개요2. 역사3. 역할4. 여담5. 같이보기

1. 개요

러시아어 :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 по планированию, Госпла́н (국가계획위원회, 고스플란)
고스플란은 소련에서 중앙 경제 계획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1921년에 설립되어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2. 역사

고스플란은 1921년 블라디미르 레닌 신경제정책에 따라 설립되었다. 스탈린 집권 시기인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소련의 계획경제가 점차 체계를 갖춰감에 따라 소련 경제에서 점점 주도적인 위치를 가지게 되었고, 소련 붕괴 전까지 소련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1년 2월 해체되었다.

3. 역할

소비재나 중공업 등의 각종 산업, 농업 생산, 주택, 운송, 교육, 의료 등 거의 대부분의 경제분야에 걸쳐 생산량을 조정하고 각 산업으로의 자원 배분,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책정 등 소련 계획경제에 대부분을 담당하였다. 고스플란의 역할은 크게 10~20년에 걸친 (장기적) 계획, 가장 유명한 5개년 계획 (중기적), 1년의 단기계획으로 나뉘었다.

5개년 계획을 통하여 전반적인 발전계획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각 소련 경제 내의 각 경제단위에 생산목표를 할당했다. 이는 1년을 주기로 각 기업 등 경제단위의 회계, 손익결산을 종합하고 그 다음 해 생산계획을 다시 각 기업에 할당하는 식으로 행해졌다. 소련의 경제규모가 방대해짐에 따라 매년 수십만 가지의 상품의 생산이나 운송, 공급 등을 담당하게 된 고스플란의 역할은 매우 방대해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련 내의 수리경제학을 동원한 경제계획이 발달하였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레오니트 칸토로비치의 선형계산법이 유명하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 사후 등극한 니키타 흐루쇼프는 탈중앙화 시도와 함께 고스플란의 역할을 점차 줄여나갔고, 끝내는 지역 계획기구인 소브나르호제들로 권력을 크게 분할하였다. 지역들 자체에 자기완결적인 경제구조를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도리어 스탈린 정권 동안 이뤄진 중앙화를 무리하게 분산시키면서 통일성이 약화되고 중앙공산당과 중앙위원회의 요구보다는 지역당들의 요구에 알맞는 형태로 경제가 개편되어 소련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었다.

4. 여담

공산주의 유머중 하나로 이 고스플란에 관한 유머가 있다. 장하준의 저서인 '경제학 강의'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소련의 경직된 사회를 비꼬는 유머이다.
1930년대, 고스플란에서 새로운 통계실장의 선발시험이 치러졌다. 마지막 면접까지는 최종적으로 네 명의 후보가 남았다.
최종 면접 시간.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첫 번째 후보에게 질문을 했다.

“동지, 2 더하기 2는 무엇이요?”
후보의 대답. “5입니다.”
면접관 중 가장 높은 간부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지, 혁명적 열성은 높이 사오만, 이 자리는 셈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오.”후보는 정중하게 문 밖으로 안내됐다.

두 번째 후보의 답은 ‘3’이었다. 면접관 중 가장 어린 간부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놈을 체포하라! 혁명의 성과를 깎아내리다니! 이런 식의 반혁명적 선전 공세는 좌시할 수 없다!”후보는 경비들에게 끌려 나갔다.

같은 질문을 접한 세 번째 후보의 답.“물론 4입니다.”
면접관 중 가장 학자티가 나는 간부가 후보에게 형식 논리에 집착하는 부르주아적 과학의 한계에 대해 따끔하게 연설을 했다. 후보는 수치감으로 고개를 떨군 채 걸어 나갔다. 그 자리는 결국 네 번째 후보에게 돌아갔다. 그의 답은 무엇이었냐고?

“몇이길 원하십니까?”

5. 같이보기

계획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