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셜록 홈즈 시리즈 단편집, 셜록 홈즈의 사건집의 수록작.2. 줄거리
1902년 9월 3일, 노섬벌랜드 애비뉴 터키탕의 휴게실에서 홈즈는 편지 한 통을 왓슨에게 보여준다. 전날 칼턴 클럽에서 발송된 그 편지에는 제임스 데이머리 경이 다음날 4시 30분 쯤 홈즈를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데이머리 경은 자신이 의뢰를 대신 하러 왔으며, 이름을 알릴 수 없는 거물급 의뢰인의 정체를 밝히려 하지 말아달라 한다. 이 의뢰인이 걱정하는 사람은 드 머빌 장군의 딸 바이올렛 드 머빌인데, 아델베르트 그루너 남작[1]을 사랑해 그와 결혼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남작은 전부인을 살해했다는 의혹 외에 여러 안 좋은 소문이 있고, 홈즈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콩깍지에 씐 바이올렛은 그 모든 이야기를 뜬소문으로 치부하는 게 문제였다.홈즈는 남작에게 파멸당한 전 애인 키티 윈터와 함께 바이올렛을 만나 설득하나, 바이올렛은 홈즈가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키티가 남작의 실체를 말해주자 "홈즈 씨, 용건 끝났으면 나가 주시죠, 이 분의 정신 나간 헛소리를 더 이상 들어 주기 힘드네요" 하는 식으로 일축했다. 이에 이성을 잃은 키티가 드잡이질을 하려는 걸 홈즈가 뜯어말리다 결국 둘 다 집사에게 쫓겨나고 만다.
키티는 남작이 자신이 파멸시킨 여자들을 기록한 수기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이에 홈즈는 정찰 겸 설득할 목적으로 남작을 보러 가는데 남작은 이미 홈즈의 목적을 다 파악한 뒤였고 홈즈에게 프랑스 탐정[2]을 언급하며 경고한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 홈즈가 남작이 보낸 괴한들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는다. 길거리에서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왓슨은 멘붕하여 허둥지둥 베이커 가로 달려간다.
중상 자체는 사실이었지만, 홈즈는 실제로는 빨리 회복되고 있음에도 남작이 방심하도록 '거의 사경을 헤맨다'는 식으로 세간에 알린다.[3] 1주일이 지나고 남작이 사업순회차 미국으로 뜬다고 하자 홈즈는 그 틈을 노리기 위해 왓슨에게 밑도끝도 없이 중국산 도자기를 벼락치기로 공부한 뒤 "누군가"에게서 받은[4] 고급 접시를 가지고 남작에게 가서 검증을 받아보라고 한다.
이에 왓슨은 홈즈가 시킨 대로 남작과 대면한다. 남작은 수많은 여자가 반할 만큼 정말 미남이었다.[5] 왓슨은 남작이 중국 도자기 전문가라는 걸 치켜세워주며 귀한 중국 도자기 접시를 얻었는데 감정을 받고 팔고 싶다고 하며 담소를 나누는데, 어찌저찌 왓슨이 재량껏 잘 속여넘기는듯 성공할 뻔 했지만 문제는 들고 간 물건이 귀해도 너무 귀한 귀중품이었다. 그런 물건의 유통 경로를 잘 모르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남작은 "이런 물건을 손에 넣었다면 나름대로 알아봤을 게 분명하다" 라는 논리로 기초 상식에 속하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하고, 벼락치기로 고급지식만 공부했던 왓슨이 되려 기초질문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못해 밑천이 드러나게 된다. 남작은 이에 분노하고 왓슨이 홈즈가 보낸 감시원임을 간파하여 총을 찾아서 왓슨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총을 찾던 남작은 왓슨이 방문한 틈을 타 남작 집에 들어온 홈즈와 맞닥뜨리게 되고, 홈즈를 쫓아가다가 숨어 있던 키티(해당 시점에선 '갑자기 나타난 손')가 뿌린 황산을 얼굴에 맞게 된다. 남작의 얼굴이 흉하게 망가지자 왓슨은 응급처치를 하고 뒤늦게 나타난 경찰이 상황을 수습한다. 한편 홈즈는 왓슨이 시간을 끄는 사이 성공적으로 수기를 입수했다. 이 수기를 제임스 경에게 주자 경은 '남작의 상처가 그토록 흉하다면 이 수기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하지만, 홈즈는 '바이올렛의 성격이라면 (이번 일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작을 얼굴에 흉이 간 순교자로 생각하고 더욱 사랑할 테니 그자의 실체를 똑똑히 알려줘야 할 것'이라면서 바이올렛이 수기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왓슨은 제임스 경을 배웅하다가, 경이 미처 숨기지 못한 마차의 문장을 보고 수수께끼의 의뢰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물론 홈즈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바이올렛과 남작의 결혼이 깨졌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고, 황산을 던진 키티는 가장 약한 형벌을 받고 홈즈 역시 의뢰인의 후광 덕에(...) 주택 침입 건으로 재판받지 않았다는 후일담으로 사건이 끝난다.
제목이기도 한 거물급 의뢰인의 정체는 작중 시점인 1902년 당시의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임스 데이머리 경이 타고 간 마차에 붙어 있던 문장과 마부의 모자에 붙은 코케이드[6]를 본 왓슨이 대경실색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런 민감한 사건을 다루며 그렇게까지 정체를 숨겨야 할 가문은 왕가밖에 없기 때문이다.[7] 바이올렛을 어릴 때부터 친자식처럼 지켜봐왔고, 바이올렛의 아버지 드 머빌 장군은 이 일로 완전히 기운을 잃었기 때문에 상황을 좌시하기 힘들었던 것이 의뢰의 동기일 것이다.[8]
3. 여담
- '프란세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에서 홈즈는 터키탕을 '나른하고 값비싸다' 라며 깠는데 이 단편에서는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한다. 그 사이 왓슨의 영향으로 맛들인 것일지도.
- 왓슨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다 홈즈가 돌아온 이후 병원을 팔고 다시 베이커 가 하숙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단편에서는 베이커 가에서 사는 게 아니라 퀸 앤 가의 자기 집에서 산다고 나온다. 이에 대해 팬들은 사실 이때 베이커 가를 나와서 다시 병원을 차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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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그루너 남작을 응급처치할 의료기구를 언제 미리 챙겼던 걸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의사라서 상시 가지고 다닐 수 있었을 수도 있고, 남작의 집에 간단한 의료기구가 비치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작중에서 '응급처치를 했다'라는 대사 외엔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으니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
제대로 된 의료기기 없이 말 그대로 응급 처치만 했을 수도 있는데, 원문을 보면 '기름으로 얼굴을 씻어내고 솜뭉치를 드러난 피부에 올린 뒤 피하 주사기로 모르핀을 투여했다(I bathed his face in oil, put cotton wadding on the raw surfaces, and administered a hypodermic of morphia)'라는 말이 나오는 걸로 봐서 뭔가 도구를 쓴 건 맞다. 그라나다판 드라마에선 급하게 주변에 놓인 물로 씻어내는 걸로 연출했다.[9]
-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켰지만 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물급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홈즈가 범죄도 마다하지 않고, 그 상대가 결국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에게 복수를 당한는 플롯은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 편과 흡사하다.
- 그라나다 판에서는 키티 윈터의 존재감이 더 크다. 화가의 모델로 일하다가 그루너 남작의 눈에 띄어 정부가 됐는데, 이후 남작이 자기 정부들에 대해 수집해 둔 기록을 강제로 읽게 하고 키티가 이를 거부하자 황산을 던졌다고 한다. 목과 상반신에 끔찍한 흉터가 남은 키티는 다시는 모델 일을 하지 못하게 됐고, 그 흉터를 가리려고 항상 옷깃이 높아 목까지 감싸는 옷을 입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늘어뜨리고 다닌다. 키티가 남작에게 황산 테러를 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갚아준 것이었다. 이 때도 숨어서 던진 원작과 달리 대놓고 뛰쳐나와 남작의 얼굴에 황산을 끼얹으며 복수를 선언한다. 황산을 맞은 남작의 모습은 직접 보여주지 않고 초상화에 황산이 튀어 얼굴 부분이 타들어가는 간접적인 묘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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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드 머빌은 인과응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올 법한 짓을 한 사람도 아니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 내 피해자 중 비호감 캐릭터로 손꼽힌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그루너만을 광적으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심지어 친아버지의 만류마저도 자신의 사랑을 훼방놓는 잔소리로 취급했다고) 그루너의 또 다른 피해자인 키티 윈터가 그의 흉악한 실체를 아무리 말해줘도 정신 나간 여자의 헛소리 취급할 뿐. 의뢰자의 대리인인 제임스 경이 도대체 이 사람의 어딜 봐서 교양 있고 사랑스러운 귀공녀라 평하는지 알 수가 없다(...) 홈즈조차 바이올렛을 두고 '사람을 복장 터지게 만드는 귀족 아가씨'라며, 그 침착하고 무관심하고 지나치게 독선적인 면모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속을 긁는 데가 있다고 신랄한 평을 한다.
그라나다 판에서는 키티가 바이올렛을 설득하기 위해 그루너에게 당한 황산 테러의 흉터를 드러내 보이기까지 했지만 바이올렛이 조금 놀랄 뿐 별반 신경쓰지 않는 묘사가 있으며, 왓슨은 홈즈에게 이 일을 전해듣고 비인간적이라고 몸서리친다. 홈즈는 "영혼까지 아름다운 키티 윈터와 바이올렛이 너무 비교된다, 차마 못 할 말이지만 그냥 그루너랑 놀아나다가 크게 데이고 정신 차리도록 내버려 두고 싶을 지경"이라며 신랄하게 깐다.
[1]
홈즈가 이름을 듣자마자 '그 오스트리아의 살인자'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오스트리아 출신인 듯하다. 황금가지판 번역에서는 이름이 영어식 발음인 '애들버트'로 나온다.
[2]
프랑스 탐정 이름이 르 브룅이다 보니 아르센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르블랑은 자신의 작품에 셜록 홈즈를 무단으로 등장시켰다.
[3]
이 때 홈즈가 '내 부상을 치료하는 의사는 당분간 나쁜 면만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 역시
빈사의 탐정처럼 정말 의사를 속였다기보단 입단속을 시켰을 확률이 높다.
[4]
홈즈의 말로는 '의뢰인의 수집품'이라고 하고, 나중에 남작이 "이런 물건은 영국에 딱 하나 있는 걸로 아는데 그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라고도 한다. 나중에 암시되는 의뢰인의 정체를 생각해 보면 출처는
아무래도...
[5]
중동 풍의 기본적으로 잘생기면서 신비로운 느낌의 미형인데다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외모로, 모든 여성의 마음을 눈길 한 번이면 사로잡는다는 허황된 소문이 영국 전역에 나돌았는데 소문이 아니라 사실일 법 하다고. 게다가 동안이기까지 한지, 왓슨은 처음에 그가 갓 30대를 넘긴 줄 알았는데 사실은 43살이었다고 한다.
[6]
황금가지판에는 영국 왕실의 종복이 다는 모표라고 역자 주로 서술되어 있는데, 정확히는 코케이드 자체는 모자, 특히 군 정복 모자에 다는 장식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썼던 것이라(상징하는 나라마다 색깔과 패턴이 다르다) 영국 왕실만의 상징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작중 정황상 영국 왕실 외에 다른 나라를 상징하는 코케이드일 가능성은 희박한 편.
[7]
영상화된 그라나다 TV판에서는 마차에 영국 왕실 문양이 박혀있는 것으로 확인사살했다.
[8]
여담으로 에드워드 7세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즉위하기 전 왕세자 시절에도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가 죽었다는 결말이 나자 여기에 반발한 수많은 셜로키언들과 함께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 다만 본작이 연재된 1924년에는 이미 서거한 뒤였다.
[9]
사실 황산 위에다 바로 물을 부으면 발열하니 다른 걸로 닦아낸 후에 씻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