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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체는 문루 및 성곽이 대부분이 소실되어 터만 남은 읍성, 볼드체는 대부분이 보존, 복원된 읍성 행정구역은 현재 대한민국 기준 산성 틀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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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번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1]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 |
면적 | 110,991.5m² | |
지정연도 | 1972년 10월 14일 | |
제작시기 |
삼국시대 통일신라 말기( 후삼국시대) 추정[2] |
|
위치 |
[clearfix]
1. 개요
국가문화유산포털 유적 소개홍주성 동문인 조양문의 모습 |
조선시대 홍주목을 방어하던 읍성. 사적 제231호로,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위치한 성(城)이다. 원래는 홍주성(洪州城)으로 불렸으나 2011년 7월 고시로 홍주성(조양문,아문,산성)에서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만약 홍성군이 홍주시로 바뀌게 된다면 그냥 홍주읍성으로 다시 명칭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원래 총 길이 1,772m에 달하는 성벽과 4개의 성문이 존재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북서쪽의 조양문과 일부 체성만이 남아있었다. 이후 복원에서 현재는 약 800m 정도의 성벽과 남문(홍화문), 북문 일부가 복원되었다. 물론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에 성문의 형태는 정확한 고증이 불가능하다.
홍주성 북문 복원 관련기사
홍주성 복원 관련 토론회
2. 역사
처음 성이 축조된 시기는 기록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선 초기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홍주성의 둘레와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충청남도 서북부에 자리한 홍성군은 해안선을 연접한 서해의 관문일 뿐더러 도성의 인후(咽喉)였다. 예로부터 국방 요새일 뿐 아니라 충청도의 중요고을이였고 서산군 태안반도의 안흥항은 해로로 통하여 멀리 중국을 왕래하였던 요지이고 교통 중심지였다. 때문에 예전에 홍주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성들을 설치할 정도로 홍주성의 지위가 컸다.
조선 세종 때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곽 축조를 했고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성의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3. 복원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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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와 등성계단이 제외된 상태로 준공된 북문인 망화문 (2020년 3월) |
홍성군은 장기적으로 홍주읍성을 복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많은 부분 허물어진 후 성이 있던 자리는 대부분 민가와 기관들이 들어서 복원이 쉬운 편은 아니다. 특히 홍주읍성 유적 안에는 홍성군청(옛 관아 터)과 홍주초등학교, KT 홍성지사(조양문 뒤, 옛 전영 터)가 들어와 있기에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이에 주민 투표를 거쳐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홍성군청은 옥암택지개발지구로 이전 중이고[3] 홍주초등학교 또한 내포신도시로 이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16년부터 북문지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2008년경 복문지 일대를 문화재 조사했다 복토한 후 화단으로 놔두었으나 2016년 이후 본격적인 복원을 시작해서 주변의 건물들은 상당수 철거된 상태이고 체성발굴을 위해 도로도 우회로 신설하였다.
참고로 북문지는 1906년 일본에 항거해서 의병이 저항했으나 일본의 군사공격으로 성문은 파괴되고 문 밖은 의병들의 대량 학살 처형지로 쓰였다. 이에 따라 복문 복원과 더불어서 홍주성 의병공원도 계획 중에 있다.
그리고 2020년 3월, 문화재청의 조건부 현상변경 승인과 기술 자문을 거쳐 문루와 등성계단을 제외한 형태로 북문이 준공되었으며 홍성군은 향후 완전 복원을 위한 자료 확보를 위해 서문지를 발굴 조사할 예정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2023년 기준으로 홍성군청과 홍주초등학교 모두 주민 투표를 거쳐 2025년을 목표로 이전이 확정되어 홍성군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홍주읍성 복원과 그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상 KT 지사가 마지막 남은 걸림돌이 된 셈인데 KT 측에서는 여전히 비용 등을 문제로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KT 측에서 계속해서 버티기도 어려운 것이 홍성군에서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온갖 난관을 헤치고 수백억 혹은 그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추진해온 사업인데 이제와서 KT가 거부한다고 순순히 포기할 리도 없으며 내포신도시 등 여러 이유로 침체되어가고 있는 주변 상권의 유일한 희망으로 남은 홍주읍성 복원 및 관광지 조성사업을 KT가 혼자 떡하니 가로막고 있으면 지역 주민들의 비난까지 십자포화로 맞게될게 뻔하니 KT로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현재는 계획 단계이고 2025년에 군청과 초등학교의 이전이 완료된 후에야 본격적인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가닥이 잡혀있는 있는만큼 아직 협의를 위한 시간도 넉넉히 남아있어 그 안에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4. 기타사항
- 현재 문화재조사로 발굴되는 성곽의 성돌들은 주로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연봉금 3,000냥을 들여서 대대적으로 개축했을 때의 것이다.
- 을사의병의 홍주성 전투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1]
지번 주소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적힌 주소인데, 조양문 앞 도로의 일부이다. 후술하지만, 홍주읍성의 지번이 여러 곳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네비에 '
홍성군청'으로 검색해 찾아가면, 군청 주변이 다 홍주읍성이다.
[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삼국시대'라고 적어놓았지만, 확실하게 그 시대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상으로는 현재의 읍성은
1451년(조선
문종 1)에 고쳐지었다는 것이 처음 등장하고, 발굴 조사로는 통일신라 말인 후삼국시대의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그 때 당시부터 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