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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6:16:56

호왈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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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부르짖을 호 말할 왈 일백 백 일만 만

1. 개요2. 특징

1. 개요

백만을 부르짖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실상보다 수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허장성세, 뻥튀기, 블러핑.

뜻 그대로 직역하자면 자신들에게는 백만대군이 있다며 자랑하기만 할 뿐인 것이다.

2. 특징

이세환 기자: ( 별무반의 수가 17만이었는데,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20만이라고 이야기했었고요, 원정 끝난 기념비에는 30만이라고 적었습니다. 계속 수가 늘어나죠?
허준: 예전에 뭐 중국 원나라(의 병력)와 비교하면 ⅓에 육박하는 숫자가...
임용한 교수: 중국에 비하면 우리는 참 뻥이 작아. 중국이었으면 (17만을) 100만이라고 썼어.
이세환 기자: 제가 항상 말했죠. 중국 역사서에서 군사 수는 항상 0 하나는 더 들어간다고.
토크멘터리 전쟁사 고려 vs 여진 2부 中 5분 54초부터
상당수 역사서에 적힌 당시 군대의 숫자가 보급대 등 비전투 병력까지 포함시키거나 뻥튀기한 것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로 비꼬는 의미로 쓰인다. 다만 이렇게만 보면 부정적인 단어 같지만, 고대 전쟁에서 병력 수를 부풀려 말하는 것은[1] 단순히 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대병력이라는 위압감을 줘서 상대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전의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다.[2] 그리고 무조건 백만으로만 부풀리는 것도 아니고, 실제 병력이 좀 적어서 척 봐도 백만이 아니다 싶을 땐 수십만 정도로 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정말 백만대군을 동원해냈다면 2백만, 3백만으로 뻥튀기를 해서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 백만대군을 동원한 경우가 매우 흔치 않을 뿐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근현대 이전의 역사를 보면 백만 혹은 그에 준하는 거대한 군세를 동원하면 패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전근대의 국력으로 백만대군을 유지하기에는 부담이 심한 것도 있고, 통신수단도 발달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병력을 지휘하기 어려운 것도 있는 듯하다. 군담소설 같은 데서는 더더욱 사망 플래그에 가까운 취급이다. 아무래도 단순히 병력 우위를 앞세워 밀어버리기보단 뭔가 계략을 짜거나 장수가 활약해서 적의 대병력을 박살내는 게 전개상으로 더 재미있으니까 백만 혹은 그에 준하는 대군을 동원하는 쪽은 대개 승리보다는 패배하는 쪽이 되는 것이다. 백만대군으로 다구리해서 이겼습니다는 재미 없으니까

보통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병력의 수를 "호왈(병력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삼국지에서도 "실제로 적국을 격파한 후 장수들이 올리는 공식 장계(공문서)에는 1명을 10명으로 세서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적군을 쳐부순 공식 문서에는 하나를 열로 계산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국연은 싸움터에서 베어 노획한 적군의 목을 상주할 때, 그 실제적인 숫자와 똑같게 했다. 태조가 그 까닭을 묻자, 국연이 말했다.

"대체로 경계 밖의 도적을 정벌하고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은 숫자를 실제보다 많게 보고하는 것은 무공(武功)을 크게 하여 백성들의 귀에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하간은 봉토 구역 이내인데도 전은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우리가 크게 이겨 공을 세웠더라도 저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태조는 크게 기뻐하며, 국연을 위군태수(魏郡太守)로 옮겼다.
삼국지 권11 위서11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국연전.
이 밖에도 중국 초한전쟁이나 삼국시대의 경우에도 50만이니, 100만이니 하는 수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작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표적으로 100만 대군을 동원한 기록은 수양제 고구려 침공때와 비수대전 전진이 동원한 병력 정도가 언급된다.

흔히 중국이 이 분야에서 유명하지만, 서양에서도 0의 갯수가 바뀌는 식의 병력 과장이 종종 발견된다. 테르모필레 전투의 페르시아군 470만 명, 가우가멜라 전투의 페르시아군 100만 명, 헤이스팅스 전투의 잉글랜드군 120만 명 등이 대표적이다. 문서 상단에 언급된 고려 별무반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가장 압권인 건 미얀마의 유리궁 연대기인데, 코끼리만 3,600만 마리, 병력은 1의 뒤에 0이 42개 들어간 숫자라고...

당연히 역사서를 기술하는 편찬자들의 경우 정치적인 의도나, 의도적인 깎아내림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왜곡한 것이 아니라 당시 기록이 그렇게 남아 있기 때문에 작성한 것이다. 사기 홍문연과 관련된 기록 중 "항우는 40만의 병력을 100만이라 호하였고, 패공( 유방)은 10만의 병력을 20만이라 호하였다."라는 기록도 남아있는데 이 기록의 경우에도 40만의 병력이 실제 또는 거짓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다만, 그 시대의 기록들에 그렇게 남아 있으니 사마천도 그렇게 작성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상술한 것처럼 단순 과장 말고도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치중대, 취사병 등 비전투 병력까지 합산됐다는 점 역시 감안해야 한다. 묵자에는 "만일 군사를 일으킨다면 군자가 수백이요, 서민이 반드시 또 수천이며 인부가 십만의 곱절이 된 뒤에야 충분히 출병할 수 있으리라"는 구절이 있고, 사기에 따르면 장의 한선혜왕에게 "대왕의 군대는 모두 모아도 30만이 안 되며 그 중에는 잡부와 짐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방의 역참과 요새를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하면 20만 명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으며, 심괄의 몽계필담에는 군사 10만을 출정시킬 때 30만의 군량 수송자가 필요하다는 기록이 전한다. # #


[1] 비단 고대뿐만 아니라 근대에도 병력의 과장은 존재했는데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당시 병력을 충원받으며 이를 언론에 공표할 때는 두 배로 뻥튀기하였다는 사례가 있다. [2] 병력 조작으로 심리를 흔드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삼국지연의인데, 조조는 83만 대군을 100만으로 부풀렸고, 제갈량은 손권을 자극하기 위해 다시 이걸 150만까지 뻥튀기시켰으며, 주유는 손권을 안심시키기 위해 20만을 윗도는 수준이라고 줄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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