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조선일보 "국보급 신라 금동관 파손"
1. 개요
5세기 경 신라에서 제작된 한국의 금동관. 원래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이관된 상태다.2. 내용
전체 높이 20.6㎝.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신라에서 제작된 한국의 금동관이다. 출(出)자형 입식 3개와 하트형 장식 두 개를 늘어뜨렸으며, 한국에서 그동안 발견된 금동관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 장식성이 빼어난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았다.
3. 파손 사건
1998년 국립중앙박물관(당시 관장 정양모)이 민관박물관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호암미술관으로부터 금동관을 대여받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실 개관 특별기념전에 이 유물을 내놓았다가 실수로 오른쪽 출자형 입식이 부러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 당시 금동관의 이송을 책임졌던 국립중앙박물관은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은폐하다가 걸리는 막장 상황이 벌어졌었다.훗날 2013년에 다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 국보 12점, 보물 14점을 포함하는 특별기획전 ‘황금의 나라, 신라’전을 열기로 계약을 맺자, 전국의 수많은 학자, 연구자, 전문가들이 이 때의 사건을 거론하며 전시회를 거세게 반대하는 등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는 크나큰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있다. 한겨레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83호’ 뉴욕 가나 못가나, 한겨레 : [논쟁] 국보 83호 뉴욕 나들이 괜찮나, 매일경제 : [世智園] 國寶 뉴욕 나들이, 명분 잃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미국행 - 문화재청, 반가사유상 반출 금지 왜 번복했나
최초 문화재청은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 알게된 후 학계 및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에 동의했었으나, 결국 문체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압박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국외 전시를 허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토기라서 이동시 파손의 위험이 있는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와 토우장식 장경호는 시민들의 반대로 끝내 전시회에 나가지 못했다. 이는 한국 역사인들에게 이 금동관 파손 사건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인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가에 유물을 빌려주었다가 호되게 데인 호암미술관은 이때 이후로 금동관을 철저히 외부에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오랫동안 이 금동관을 찍은 사진은 전시회 출발 당시 찍었던 저 위의 사진 1점 뿐이었다.
본 금동관이 호암미술관에서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이관된 후에는 다시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