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프랑수아즈 아르디 Françoise Har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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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랑수아즈 마들렌 아르디 Françoise Madeleine Hardy |
출생 | 1944년 1월 17일 |
일드프랑스 파리 | |
사망 | 2024년 6월 11일 (향년 80세) |
일드프랑스 파리 | |
신체 | 172cm |
장르 | 프렌치 팝, 샹송, 예예, 바로크 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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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태생의 지성파 싱어송라이터, 모델, 배우, 작가. 현대 프렌치팝의 뿌리 중 하나인 예-예(Yé-yé) 장르를 샹송과 결합해서 대중에게 각인시킨 장본인이다.20세기 프랑스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2021년 건강 문제로 은퇴할 때 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2. 생애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젊은 시절 |
이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봤고, 1961년부터 아르디의 재능에 일찌감치 주목한 사운드 엔지니어 앙드레 베르노(André Bernot)에 의해 발굴되어 여러 곡들을 녹음했다. 1962년 발매한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는 아르디를 본격적으로 프랑스 내에서 인기 스타로 만들어준 곡이었으며, 발매 직후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으며 브릿팝과 로큰롤의 영향을 받은 예 예(Yé-yé) 음악뿐만 아니라 샹송 장르에서도 주목받는 뮤지션으로써 부상했다.
가수로서 60년대 초에 이미 최고의 인기를 얻은 프랑수아즈 아르디였지만, 다른 샹송 뮤지션들, 특히 여성 아이돌적인 면이 강했던 다른 예-예 여성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녀의 초기 음악들은 샤를 트르네, 자크 브렐, 바르바라 등의 샹송 뮤지션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아직 나의 예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으며, 실제로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에벌리 브라더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취향의 소유자이다. 이후에는 172cm의 훤칠한 키와 지적이며 세련된 외모가 자아내는 특유의 중성적인 매력을 살려 모델로도 활동하면서 "L'amour s'en va", "Je veux qu'il revienne", "La maison où j'ai grandi" 등의 곡을 히트시켰고, 단순한 아이돌 가수를 넘어서 프랑스 문화계를 상징하는 뮤즈이자 아이콘으로 각광을 받는다.
1968년 발매된 Comment te dire adieu 앨범에 실린 동명곡 Comment te dire adieu는 영국 가수 마거릿 화이팅이 부른 1950년대풍의 발라드곡 <It Hurts To Say Goodbye>의 연주 버전을 기반으로 세르주 갱스부르가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준 것으로 유명하며, 현재까지도 아르디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발매 직후 프랑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디오르의 TV 광고에 채용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크게 히트했다.
1971년 발매한 음반인 La question은 아르디의 음악 스타일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이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음악이 아닌, 보사노바, 챔버 포크 적인 면을 더하며 더욱 작품적인 면에서 접근하려 했던 작품이며, 이러한 시도는 당시 발매 직후에도 상업적인 성과는 크게 거두지 못했으나 비평계에서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더욱 성숙해졌음을 알리는 앨범"이라 평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르디 본인에게도 이 음반을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앨범"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자신의 음악 커리어에 있어 각별한 작품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음반은 현재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현재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동안 그녀는 동료 뮤지션이자 배우인 자크 뒤트롱과 오랜 연애를 했으며, 1973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토마 뒤트롱 역시 프랑스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녀는 자크 뒤트롱과 오랫동안 동거 관계를 유지하다가 1981년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으나[1], 1988년 자크 뒤트롱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불륜 문제로 인해 헤어졌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법적으로는 결혼한 상태라고 하며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2010년대 인터뷰에서도 "자크 뒤트롱은 새로운 여자가 있으나, 그와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인터뷰하며 법적 결혼 상태를 유지할 것임을 다시 한번 말한 바 있다.
이후 21세기까지도 꾸준한 앨범 발매를 하며 음악 생활을 이어갔던 아르디지만, 후두암의 여파로 2012년 발매한 27집 정규 앨범 L'Amour fou 이후로 뮤지션에서 은퇴할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은퇴를 번복하며 2018년 28집 Personne d'autre을 발매했다.
2021년, 그녀는 암 치료 후유증으로 인해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정말 은퇴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전에도 건강상 문제로 은퇴를 했다가 다시 복귀한 바 있기 때문에 그녀의 재복귀를 기다리는 의견도 많으나, 그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녀가 다시 복귀할지는 미지수이다.
2024년 6월 11일, 자국의 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보지 못한 채 결국 후두암으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향년 80세.
3. 여담
- 1960년~70년대 초반까지 발매한 앨범들의 대부분을 무제로 냈다.[2] 그래서 그녀의 제목이 없는 앨범들을 명칭할 때 Untitled 혹은 Françoise Hardy라고도 명칭하기도 하나, 보통은 그 앨범 내에서 가장 히트친 곡을 앨범명 삼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녀의 대표적인 앨범인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1962), Comment te dire adieu(1968), La question(1971)도 공식적으로는 모두 제목이 없는 앨범들이며 앨범 내 가장 유명한 곡 제목으로 앨범 명을 대체해서 부르고 있다. 그러나 1973년 Message personnel 이후로는 모든 음반들에 공식적인 제목을 붙여 발매하고 있다.
- 프랑스의 한 방송에 출연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프렌치 아이콘,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