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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3 15:38:36

표트르 베레스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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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제4대 제72근위소총사단장
표트르 필리포비치 베레스토프
Пётр Филиппович Берестов
Pyotr Filippovich Berestov
파일:표트르 베레스토프 소장.jpg
출생 1896년 12월 21일
러시아 제국 뱟카현 말미즈스키군 베레스토보
(現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베레스토보)
사망 1961년 11월 26일 (향년 64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자포로지예주 자포로지예
(現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자포리자)
재임기간 제4대 제72근위소총사단장
1945년 7월 16일 ~ 1947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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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복무 러시아 제국 육군
1917년 ~ 1918년
소비에트 지상군
1918년 ~ 1955년
최종 계급 소장 (소비에트 지상군)[1]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 소련-폴란드 전쟁)
겨울전쟁
독소전쟁
주요 서훈 소비에트 연방 영웅
레닌훈장 (2회)
적기훈장 (4회)
수보로프 훈장 2급
쿠투조프 훈장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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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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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장군.

2. 생애

2.1. 러시아 내전

2.1.1. 1차 징집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4세에 목수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 러시아 혁명 발발에 따라 1917년 2월에 징집됐다. 제165예비보병연대 하급 부사관으로 진급했으며, 심비르스크 페트로그라드에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 이후 1918년 2월 전역했다.

2.1.2. 2차 징집

명목상 제38소총연대에 속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뒤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했다. 1920년까지 지휘 과정을 이수했으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제4소총사단 제12소총연대 기관총 소대장이 됐다. 1920년 8월 중대장으로 진급했다.

2.2. 대숙청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내무인민위원부에게 체포됐다. 심문 과정에서 앞니를 잃고 발가락 갈비뼈에 골절을 당했다. 1939년 세묜 티모셴코 장군에 의해 석방됐다. 1939년 8월 제168소총사단의 보급 책임자가 됐다. 12월에 그는 사단 직할 제402소총연대장이 됐다. 1940년 2월 말 겨울전쟁 당시 고문으로 인한 부상을 무릅쓴 채 계속해서 지휘를 맡아 대령으로 진급했다.

2.3. 독소전쟁

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 베레스토프는 제1모스크바 인민 민병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제60소총사단 제1281소총연대장, 제601차량화소총연대장을 맡았다. 모스크바 공방전 근처 민스크 고속도로 방어를 위해 제82차량화소총사단장이 됐다. 얼마 후 제50소총사단장이 됐다.

1942년 3월, 그는 제50소총사단장으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제331소총사단장이 됐다. 제331소총사단은 제31군의 사단 중 최고라고 꼽히게 돼 1945년 6월, 베레스토프는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1945년 7월 제72근위기계화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어 1947년까지 역임했다.


[1] 대한민국 국군 기준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