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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도리다 | 폴레몬 2세 | }}}}}}}}}}}} |
폰토스 왕국 14대 군주 Πολέμων | 폴레몬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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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폴레몬 2세 |
그리스어 | Πολέμων | |
라틴어 | Polemon II | |
존호 | 바실레프스 | |
가족 |
폴레몬 1세(아버지) 피토도리다(어머니) 아르탁세스 3세(형)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누이) 베레니케(첫째 아내) 율리아 마마이아(둘째 아내) |
|
생몰 년도 | 기원전 12/11년 ~ 74년 | |
재위 기간 | 38년 ~ 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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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폰토스 왕국 제14대이자 마지막 군주.2. 생애
프리기아의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아들인 폴레몬 1세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외손녀이며 부유한 상인 피토도로스의 딸인 피토도리다의 차남이다. 형은 로마 제국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임된 아르탁세스 3세이며, 누이는 훗날 오드뤼사이 왕국의 여왕이 된 안토니아 트뤼파이나이다. 그는 안토니우스를 통해 칼리굴라, 네로 황제의 먼 친척이도 하다.기원전 8년 폰토스와 보스포로스 왕을 역임하고 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크림 반도 내륙 부족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원정을 단행했다가 아스푸르기아노이(Aspurgianoi) 족과의 전투에서 패해 사로잡힌 뒤 피살당했다. 이후 보스포로스 왕국은 폴레몬 1세의 전처 뒤나미스를 거쳐 뒤나미스의 아들 또는 남편인 아스푸르고스의 수중에 넘어갔고, 어머니 피토도리다가 폰토스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피토도리다는 카파도키아 왕 아르켈라오스와 재혼하여 카파도키아 왕비도 겸했고, 아이들과 함께 카파도키아 궁정에 정착했다. 17년 아르켈라오스가 죽자, 그녀는 다시 자녀들과 함께 폰토스로 돌아갔다.
38년 어머니가 죽자 폰토스의 왕이 되었고, 콜키스와 킬리키아도 동시에 다스렸다. 키지코스의 비문에 따르면, 그는 칼리굴라 황제의 누이 율리아 드루실라를 기리기 위해 개최된 경기를 주관했다고 한다. 47년에는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 4세와 함께 킬리키아에서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를 기리는 경기를 개최했다. 50년 헤로데 왕조의 공주 베레니케와 결혼하고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베레니케가 곧 폰토스를 떠나 예루살렘 궁전으로 돌아가자 유대교를 버렸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설득을 받아들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가 로마 제국의 압력에 직면하자 배교했다고 한다. 이후 에메사 왕 삼시게라모스 2세의 손녀 율리아 마마이아와 결혼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사항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62년, 네로 황제는 폰토스와 콜키스를 로마의 속주로 삼기로 했다. 이후 킬리키아를 죽을 때까지 다스렸다. 74년 사망 후 킬리키아 역시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