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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 Figh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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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7.04.The Colour and the Shape
2집
1997.05.20.There Is Nothing Left to Lose
3집
1999.11.02.One b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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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2.In Your H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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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st H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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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팻 스미어 Pat Sm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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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지 앨버트 루덴버그 Georg Albert Ruthenberg |
출생 | 1959년 8월 5일 ([age(1959-08-05)]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음악가 |
신체 | 184cm |
배우자 | 제나 카드웰 |
소속 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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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타리스트로, 과거 밴드 더 점스와 너바나에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푸 파이터스의 멤버로 활동중이다.2. 상세
1959년 8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출생. 출생년도와 활동 이력에서 드러나듯이, 푸 파이터스 멤버 중에서는 제일 베테랑이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열 살 남짓하던 1970년대 후반에 그는 이미 20대 초반이었고, 하드코어 펑크 밴드 '점스(The Germs)'를 결성하여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1] 허나 점스 내에서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나서 밴드가 해체되고 재결성 논의가 한창 오가던 도중, 보컬리스트 다비 크래시(Darby Crash)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점스 재결성은 없던 일이 되었다.이후 80년대에는 솔로 활동이나 데스 록 밴드 45 Grave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때 잠시 배우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이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당시 너바나(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던 커트 코베인의 연락을 받고 너바나에 가입하게 된다.[2][3] 허나 가입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커트 코베인이 사망하게 되고, 너바나도 해체된다.
이후 마음을 추스른 데이브 그롤이 푸 파이터스를 결성하자 1994년 10월 즈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하나 1집의 경우 데이브 그롤 본인의 연주만이 담겨 있어 팻의 연주는 2집에 가서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2집 발매 직후 스미어는 푸 파이터스를 탈퇴하여 여러 활동을 한다. 이후 2005년 푸 파이터스에 재가입 후 기타리스트의 자리를 유지 중.[4]
어찌보면 너바나라는 밴드 자체에 음악가로서 큰 신세를 진 사람이다. 당대 대스타였던 커트 코베인에게 발탁되어서 그만두었던 음악가로서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너바나 해산 후 너바나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에게 영입되어서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음악인이자 세계적인 락스타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데이브 그롤이 팻 스미어를 영입하고 꾸준히 옆에 두고있는 이유는 너바나 시절 때부터 팻 스미어가 가장 뛰어난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바나 시절 때도 팻 스미어가 멤버들 중에서 음악적으로 탑 레벨급의 실력과 소양을 가졌다고 생각했고 팻 스미어와 같이 밴드하면 좋은 곡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반면 팻 스미어는 단신으로 시작해 짧은 기간에 유명 락스타가 된 커트 코베인과 데이브 그롤이 더 대단한 뮤지션이라고 평가한다. 본인의 경우 혼자 솔로로 이런 저런 활동을 하였지만 이 두 사람처럼 아주 유명한 락스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여담
- 어머니가 아프리카계와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 미국인이고 아버지가 유대계 독일인이다.
- 솔로 앨범도 있었지만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너바나 및 푸 파이터스의 일원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뒤늦게 발굴되어서 재평가 받기도 하였다.
[1]
참고로, 현재는
The Go-Go's의 보컬리스트 출신의 솔로 가수로 유명한
벨린다 칼라일이 초창기 시절 '도티 데인저(Dottie Danger)'라는 가명으로 이 밴드의 드러머 생활을 했었다.
[2]
데이브 그롤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팻은 SST Superstore(미국의 펑크 록/헤비메탈 음반사인
SST 레코드의 머천다이즈를 팔던 가게로 추정된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커트가 가더니... 그대로 가입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편, 팻 본인은 커트의 아내인
코트니 러브와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코트니가 자신의 너바나 가입을 격려했다고 한다.
[3]
여담으로 커트가 너바나 멤버들에게 "기타리스트를 한 명 구했어!"라고 했을 때, 멤버들은 "누군데?"라고 반문했고 커트는 "팻 스미어. 점스 기타리스트 있잖아."라고 답했다. 이에 멤버들의 반응은 "
그 사람 아직도 살아 있었어???"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조롱의 뜻은 아니고, 너바나에게 있어 팻은 그야말로 대선배였던 데다가 점스는 상기하다시피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해체되고 너바나 멤버들이 청소년기였던 80년대에는 사실상 활동이 뜸했으니... 존경하던 선배 뮤지션이 음악 활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자신들에게 다시 나타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4]
그 과정에서 데이브가 팻을 재영입하고 싶다했을 때 같은 기타 세션을 맡고 있던 크리스는 당연히 동의하는 입장이었지만 보통의 밴드는 2인의 기타리스트로 구성을 한다는 고정관념과 자신이 밴드에 들어온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곧 잘릴거라고 생각해서 팻을 좋게 보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팻은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금방 친구가 됐다고 한다. 당연히 데이브는 크리스를 자를 생각이 없었고 3인 기타 체제로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