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투러이 요제프 (Turay József) |
출생 | 1905년 3월 1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에게르 | |
사망 | 1963년 6월 24일 (향년 58세) |
국적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틀:국기| ]][[틀:국기| ]](1905~1918) 헝가리 제1공화국(1918~1919)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1919) 헝가리 제1공화국(1919~1920) 헝가리 왕국(1920~1946) 헝가리 제2공화국(1946~1949) 헝가리 인민 공화국(1949~1963)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센터 하프백 |
신체조건 | 178cm | 76kg |
소속팀 |
페렌츠바로시 TC (1926-1933) MTK 헝가리아 FC (1933-1940) |
국가대표 | 48경기 11골 (1928-1939) |
감독 | 라코슈렌데죄이 퇴레크베시 (1957) |
[clearfix]
1. 개요
헝가리의 전 축구 감독.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투러이는 1926년에 페렌츠바로시 TC에서 데뷔했지만 처음부터 페렌츠바로시의 주전 포워드를 차지한 건 아니었다. 투러이의 데뷔 시즌에 그는 퍼터키 미하이(Pataki Mihály)의 서브 공격수였다. 하지만 퍼터키는 투러이보다 12살이나 많았고 투러이의 데뷔 시즌에 팀의 더블을 만들고 은퇴했다.이후 팀의 주전 센터 포워드 자리는 자연스럽게 투러이의 차지가 되었고 팀은 2년 연속 더블에 미트로파 컵을 더해 더 나은 한 해를 보냈다.
1931-32 시즌의 페렌츠바로시는 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썼고 투러이는 당해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듬해 페렌츠바로시는 마자르 쿠파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투러이는 하필 라이벌 MTK 헝가리아 FC로 이적했다. 투러이가 이적하던 당시 헝가리아에는 체흐 라슬로가 주전 포워드로 뛰고 있었고 나이도 있어서 투러이는 센터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헝가리아에서 투러이는 두 번 더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40년까지 머물렀다.
2.1.2. 국가대표
투러이는 헝가리가 체코슬로바키아가 0대2로 패했던 1928년 4월 22일에 처음 대표팀 경기를 뛰었다.그리고 그의 3번째 경기인 같은 해 11월 1일 스위스전에서 3대1로 승리할 때 첫 득점을 기록했다.
대표팀에서 처음에는 센터 포워드와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자리에서 뛰었지만 헝가리아 이적 후 센터 하프백에서 뛰게 되었다. 이 포지션 변경으로 1934년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35년에서야 쉬츠 죄르지와 다시 주전 경쟁을 하게 되었다.
당시 헝가리는 하프백 라인을 놓고 계속된 실험을 하고 있었고 투러이와 쉬츠의 동시 기용과 경쟁도 계속되었다. 이 실험은 1938년 월드컵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4강 스웨덴전까지 헝가리의 센터 하프는 투러이였지만 결승전에서는 투러이를 포함한 여러 전술적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헝가리는 이탈리아에 2대4로 패했다.
월드컵 이후 투러이는 대표팀에서 4번의 경기를 더 뛰었지만 헝가리는 이 4경기를 모두 다 졌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에 능한 스트라이커. 골 결정력과 공중볼 경합에도 강점을 보였지만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 줄도 알았다.센터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후엔 다소 평범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동료들을 지원했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5회: 1926–27, 1927–28, 1931–32(이상 페렌츠바로시 TC), 1935–36, 1936–37(이상 MTK 헝가리아 FC)
- 미트로파 컵 우승 1회: 1928(페렌츠바로시 FC)
- 마자르 쿠파 우승 3회: 1926–27, 1927–28, 1932–33(페렌츠바로시 TC)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준우승 3회: 1928–29, 1929–30(이상 페렌츠바로시 TC), 1939–40(MTK 헝가리아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3회: 1930–31, 1931–32(이상 페렌츠바로시), 1934–35(MTK 헝가리아 FC)
4.1.2. 국가대표
4.1.3. 개인
- 헝가리 올해의 선수 1회: 1932( 페렌츠바로시 TC)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