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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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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ccccc,#323232> '''<1군> 21 요시이 마사토 [[감독#s-1.1| ★ ]] · 71
타테야마 요시노리 76 에무라 나오야 · 77 쿠리하라 켄타 80 오츠카 아키라 · 81 이시미네 쇼타 84 쿠로키 토모히로 · 87 네모토 슌이치 88 카네코 마코토 · 90 미츠야마 히데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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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72 미키 료 · 73 카나자와 타케시 · 75 호리 코이치 77 구리하라 켄타 · 78 오토나리 켄지 79 마츠나가 타카히로 · 82 호소야 케이 83 모로즈미 켄지 · 85 미나미 마사키 86 사부로 [[감독#s-1.1| ★ ]] · 89
오카 토모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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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네이터> 후쿠우라 카즈야 · 오타니 토모히사 · 코사카 마코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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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틀:치바 롯데 마린즈로 돌아가기 | ||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타테야마 요시노리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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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2006 |
2019 WBSC 프리미어 12 {{{#c7bc69 우승코치}}}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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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c7bc69 금메달(코치)}}}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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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No.71 | |
타테야마 요시노리 建山義紀 / Yoshinori Takey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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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5년 12월 26일 ([age(1975-12-26)]세) |
오사카부 다이토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도카이 대학 부속 요세이 고교 고가 종합 과학 전문학교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사우타 |
신체 | 178cm, 75kg |
프로입단 | 1998년 NPB 신인 드래프트 2위 (역지명) |
소속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999~2010) 텍사스 레인저스 (2011~2012) 스크랜턴/윌크스-배리 레일라이더스 (2013)[1] 한신 타이거즈 (2014) |
지도자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7~202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투수코치 (2023~2024)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투수코치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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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치바 롯데 마린즈의 코치.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일본 프로야구 선수였다.2. 선수 경력
2.1. 프로 이전
중학교시절과 고등학교시절 모두 에이스자리를 맡으며 활약을 하였으며 고등학교시절 동기로는 우에하라 코지가 있다.고등학교 졸업 후 고가 종합 과학 전문학교를 거쳐 사회인 야구팀인 마쓰시타 전기에 입사. 1998년에는 도시대항야구대회 오사카 가스의 보강 선수로 출전한다. 1라운드에서는 NTT 관동을 상대로 호투,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첫 경기 완투 승리로 베스트 4에 공헌. 같은 해 드래프트 2위로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한다.
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1999년, 신인이지만 6월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해, 평균자책점 2.89와 6승을 거두며 호투를 보였다.얀바르쿠이나 보호시설을 방문했을 때는 '내년 시즌 승리 수만큼 기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2000년, 개막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하는 등 전반은 로테이션에 들어가 6승을 거두었지만, 평균자책점은 5점대로 악화되었고, 후반에는 팀이 호조였던 것도 있고 중계 등판도 많았다. 이 해보다 전년도에 기부를 약속한 얀발쿠이나 보호시설에 1승마다 1만엔을 기부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해의 오프에는 시설에 연락 없이 모금함에 6만 엔을 투입했고, 갑자기 큰 돈이 들어간 모금함에 한때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소동도 났다. 나중에 타테야마의 선의에 의한 기부로 판명되어, 네오파크에서는 얀바루쿠이나회라는 사설 응원단도 결성되게 되었다.
2001년, 14이닝에서 5피홈런을 맞는 등 불안한 투구와, 부상등도 있어 불과 10경기의 등판에 그치고, 2군에서도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2002년, 중간계투로 45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29의 성적을 남긴다. 짧은 이닝에 전념함으로써 직구의 구위가 증가하고, 변화구의 날카로운 싱커와 슬라이더도 구위가 더 살게 되었다. 시즌 후반에는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
2003년, 전년 대비 두 자리 세이브를 올리고 있었다, 시즌 전부터 마무리로 등용이 예정되어 있었다. 초반 부상으로 늦게 나와, 다테 쇼지가 잠정적으로 마무리가되었지만, 6월에 복귀 후에는 안정적인 투구로 마무리에 정착. 자기 최고 평균자책점 2.17과, 15세이브를 올렸다. 9이닝당 1개 미만으로 4구를 급격히 줄여, 퍼시픽 리그에서는 도요타 키요시에 버금가는 안정감을 보였다.
2004년, 마무리로 기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개막 2차전 시즌 첫 등판에서 끝내기 패배와 컨디션 불량도 있어 등록 말소. 대역으로 호투하고 있었던 다이토 쓰요시가 부상을 당했을 때 요코야마 미치야가 기용되어, 마무리에 정착했기 때문에, 6월에 복귀 후에는 요코야마로 이어지는 셋업맨으로 기용되었다. 41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33으로, 3년 연속 평균자책점 2점대 초반의 안정적인 내용으로,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리그 최다인 13홀드를 올리며, 자신의 첫 타이틀인 최우수 중계 투수를 획득. 최우수 구호 투수로 빛나는 요코야마 미치야와 함께 타테요코 콤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06년, 자신 최다인 46경기에 등판해 다케다 히사시 오카지마 히데키 마이클 나카무라 와 함께 강력한 구원진을 형성, 팀의 리그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2007년, 선발 복귀를 희망해 4월 1일에 6년 만에 선발 등판, 7년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그러나 5월 중순에 경기 중에 오른쪽 다리를 다치며 그대로 2군에서 떨어져, 자기 최소인 시즌 7경기의 등판으로 끝났다. 팀은 2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도 이겨내며 일본 시리즈 출전을 달성하고,일본 시리즈에서는 1군에 합류해 제3차전에 등판하였다.
2008년,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와 직구 최고 구속 148km/h를 기록했다 100km/h대의 슬로우 커브의 콤비네이션으로 자기 최다 58경기에 등판해, 23홀드 포인트를 기록. 8월경부터는 컨디션이 떨어지며 구호 실패가 눈에 띄기 시작한 다케다 히사시 대신 마이클 나카무라와 연결되는 셋업맨을 맡았다. 하지만, 정규 시즌 종료 후에 다친 오른쪽 내전근통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전날 등록 말소되었다.
2010년, 미야니시 나오오와 함께 셋업맨 역할을 맡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다케다 히사시를 대신해 마무리를 맡는 일도 있었다. 9월 12일에 자기 2번째 시즌 50경기 등판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다케다 히사시와 함께 팀 2위(리그 8위)의 58경기에 등판, 팀 1위(리그 6위)의 26홀드 포인트, 자기 최고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 시즌오프에는 대리인 계약을 맺고, 해외 FA권을 행사하여 메이저 리그 도전을 표명했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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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2011 시즌
2011년,스프링 캠프에서 4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7.71, WHIP2.57로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3월 15일에 산하 AAA 라운드록 익스프레스가 실시하는 캠프행을 통보받았다. AAA급 라운드 록에서는 14경기의 등판으로 1승 0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14, WHIP 1.00,탈삼진률 11.14, 사구율 1.71이라는 좋은 성적을 남기고, 5월 23일에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였다.5월 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 7회에 등판하며 메이저 리그 첫 등판을 성사, 5월 28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3회 2안타 1실점으로 메이저 리그 첫 세이브를 올렸다. 6월 2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메이저 리그첫 승을 기록. 8월 23일까지 32경기의 등판으로 평균자책점 2.60, WHIP 0.78, 피홈런 4개로 안정적인 투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8월 24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피홈런을 맞고 이후 5경기에서 4피홈런을 맞았으며, 특히 9월 3일 레드삭스전과 9월 10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는, 메이저 역사상 2번째가 되는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맞았다. 그 후 2경기의 등판은 무실점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을 종료.
포스트 시즌에서는 탬파베이레이즈와 디비전 시리즈의 로스터에서는 벗어났지만,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로스터에 들어가, 제3차전에서 첫 등판을 했다. 그러나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와의월드 시리즈 로스터에서 벗어나, 팀은 제7차전에서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10월 31일에는 구단이 연봉 100만 달러의 옵션을 행사하여 계약을 연장했다.
2.3.2. 2012, 2013 시즌
2012년, 스프링 트레이닝 막판에허리에 부상이 발병하고, 4월 4일에 부상 리스트에 들어가 14일에 AAA급 라운드 록으로 강등. 5월 21일에 메이저 리그로 승격했지만, 6월 16일에 AAA급으로 재강등되었다.4월 29일에 같은팀 마크 로우가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면서 메이저로 재승격했지만, 7월 14일에 재강등. 라운드록에서는 경기 32등판으로 4승 0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1.13, WHIP 0.91의 성적을 남기고, 9월 1일에 재승격. 9월 9일 레이즈전에서는 불과 2구로 3아웃을 기록하며, '내 야구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기념이 되겠네요'라고 말을 남겼다. 재승격 후에는 3경기 등판으로 1안타 1실점을 기록.
포스트 시즌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와일드 카드 게임에서 로스터에 들어갔지만 등판 기회는 없고, 팀은 탈락하였다 10월 30일에 구단이 이듬해 계약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발표하고FA가 되어, 12월 20일에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으로 재계약했다.
2013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지만, 허리 부상을 호소하고 4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4.50, WHIP1.25를 기록했다. 3월 21일에 자유 계약이 되어, 3월 23일에 마이너 계약으로 재계약한다.
라운드록에서는 23경기의 등판으로 0승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24, WHIP 1.38의 성적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승격은 없었다.
2.4.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
2013년 6월 21일에 트레이드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게 되었다.AAA급스크랜턴 윌크스바리 레일 라이더스에서 21게임 2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70, WHIP0.96의 성적을 남겼지만, 메이저 리그 승격은 없었다. 오프인 11월 5일에 FA가 되었다.
2014년 1월 8일에 마이너 계약으로 양키스와 재계약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구원투수로 7경기에 등판해 1세이브, 평균자책점 1.13, WHIP 0.88이었다. 4월 3일에 AAA급 스크랜턴 윌크스베리로 이동해, 9경기에 등판. 0승 1패, 평균자책점 6.08, WHIP1.42를 기록했지만, 5월 9일에 계약이 해지되며 메이저 리그 생활을 접게 되었다.
2.5. 한신 타이거즈 시절
2014년 6월 25일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등번호는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2009년 현역 은퇴까지 착용한 이후, 공석이었던 53번을 사용하게 되었다.7월 29일에 1군 등록되어, 일본 야구계 복귀 후 첫 등판을 이루었지만 2실점을 기록. 빈약한 중계 후보로 기대되지만 8경기의 등판에 그쳤다. 11월 5일에는 현역을 은퇴하는 것을 표명하고, 12월 2일에 자유 계약 공시되며 은퇴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활동하였다.2023년부터 2024년까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투수코치로 활동하다 2025년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튕기는 듯한 폼의 사이드 슬로에서 가장 빠른 구속90mph 약 145km/h, 일본에서 가장 빠른 구속은 148km/h 의속구(투심, 포심)을 꺼내 슬라이더 와 싱커를 결정구로 가지고 있으며 메이저 리그에서의 통산 탈삼진률 9.00으로 탈삼진이 많다. 특히 슬라이더는 110km/h대 초반부터 130km/h 가까이까지 완급을 붙일 수도 있고, 2010년의 투구 비율은 전체 투구의 51퍼센트에 이르고, 게다가 탈삼진 시 결정구로서의 투구 비율은 6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5. 여담
- 가족으로는 2002년에 결혼한 4살 연상의 아내와 1녀가있다.
- 와인을 좋아한다고 하며, 집에 와인 셀러가 있다고 자주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선배인 카타오카 아츠시가, 은퇴할 때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시게 해줘'라고 부탁하여, 그 시점에서 이미 술을 많이 마시고 있던 카타오카는, 타케야마가 와인 뚜껑을 열자마자 갑자기 '돌아갈게~'라고 말하며 와인을 마시지 않고 돌아가서 결국, 울면서 열어버린 와인을 아침 식사 준비에 사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