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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레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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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우릴 내려다 보고 우리가 야만인들보다 나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가 야만인들이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걸, 만약 우리가 없었다면 북쪽의 부족들이 당신들의 집을 불태우고 당신 자식들의 살점을 포식하고 있었겠지. 우리 핏줄에 흐르는 그 용기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의 땅은 저들의 것이 되었을거야. 우리를 내려다 보시겠다고? 당신들이야 말로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매일 감사해도 모자라!"
"You look down on us and think we are little better than barbarians, but you should be glad we are, for without us here, the northern tribes would be dining on the flesh of your children in your burning homes. But for the courage that flows in our veins would your lands be theirs. Look down on us? You should get on your knees and thank us every day!"
윙드 랜서, 비탈리아 코바쉬 (Vitalia Kovash, Kislevite Winged Lancer)

1. 고스포다르족 도래 이전2. 고스포다르족의 도래3. 키슬레프의 건국4. Warhammer: The Old World5. 카오스와의 대전쟁6. 붉은 차르 아래 중흥7. 현재8. 연표

1. 고스포다르족 도래 이전

키슬레프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과 유혈극의 역사이다. 우르스코이(Urskoy) 강 북부에 사람이 산 이래로 지금까지 그 사실은 변한 바가 없다.
지그마 헬든해머 제국을 창립하던 시절, 현재 키슬레프의 땅에는 웅골족, 프리킹(Friking)[1], 롭스멘(Ropsmenn), 돌간(Dolgan)[2] 등 유목 민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지내고 있었다. 지그마의 영향력은 이 먼 땅까지 미치지 못했고 부족들은 농경이나 정착 생활을 할 겨를이 없이 매일매일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 된 상황 속에서 살았다.

노르시(Norsii) 부족들이 지그마의 통치를 거부하고 북쪽으로 올라갔을 때 키슬레프의 부족들은 당연히 이 침입자들에게 적대적으로 반응했다.
큰 전투가 있었고 노르시는 패배했으며 노르시 부족장 에킬 블러드하트(Ekil Bloodheart)는 적들이 자신을 죽이는 만족감을 주지 않고자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잘랐다.[3] 결국 노르시 부족들은 더 북쪽으로 내몰려 후대 노스카인이 된다. 노르시 부족들을 격퇴하고 나서 워보스 고르토크(Gortork) 아래 집결한 그린스킨들이 세상의 끝 산맥에서 나와 키슬레프 동부를 침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남부 역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 판단한 지그마는 전사들을 보내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웅골족을 지원하도록 했다.

현재 키슬레프 시의 기초가 들어설 자리에서 지그마와 웅골족 대족장 수보탄(Subotan)은 고르토크와 대규모 결전을 벌인다.
둘이 고르토크의 보디가드들을 베어넘긴 끝에 지그마가 갈 마라즈로 고르토크의 머리를 내리쳐 죽이면서 전쟁은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서 친해진 둘은 피의 맹세를 하고 서로 침공당하는 일이 있다면 지원을 하기로 한다. 이후로 지그마가 다시 북부 스텝에 직접 오는 일은 없었지만, 제국군은 웅골족을 여러 번 지원하게 된다. 또 지그마와 드워프 왕 쿠르간이 연합해서 싸운 전설적인 전투 블랙 파이어 패스 전투(Battle of Black Fire Pass)에 웅골족들의 족장들도 참전해줬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확실히 기반을 잡게 될 제국-키슬레프 간 동맹의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2. 고스포다르족의 도래

이후로도 웅골족들은 제국 북부 평원 지방에서 활동하였으나, 이는 제국력 1500년대에 스텝 평원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하면서 모두 달라지게 된다.

카오스 황무지가 확장되면서 원래 스텝 동부에 살고 있었던 고스포다르족들은 칸-여왕 미스카의 지도 아래 고향을 버리고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고스포다르족들은 강하고, 부유했으며, 기병 사용에 있어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기병전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던 웅골족들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또한, 미스카 자신은 강력한 여마법사이기도 했다. 웅골족의 가장 강력한 요새 프라그(Praag)의 벽을 마법으로 박살내서 함락시킬 정도였다.

그녀의 마법과 고스포다르족 기병대의 힘 앞에 크게 패배한 웅골족 세력은 그들의 이전 수도였던 항구도시 노르바르드(Norvard)를 중심으로 모였고, 이후 웅골족은 원래 롭스멘족이 점거하고 있던 서북부로 내몰려 롭스멘족과도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웅골족은 우위를 차지했고, 발톱해를 내려다보는 절벽에서 웅골족의 지도자 헤티스 차크(Hethis Chaq)가 롭스멘 왕 웨이란(Weiran)을 격퇴하면서 롭스멘족은 완전히 멸망해 웅골족에게 흡수된다.[4]

3. 키슬레프의 건국

고스포다르족들은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제국이 삼 황제 시대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제국 북부의 영토까지 진출했다.[5]
이로써 국가의 기틀이 갖춰지게 되지만 미스카는 이것이 완성되는 일을 보기 전에 마법검 피어프로스트(Fearfrost)를 남긴 후 키슬레프를 위협할 무언가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 뒤 카오스 황무지로 향하고 실종된다.[6]

이후 그녀의 딸 쇼이카(Shoika)의 지도 아래에 훗날 키슬레프 시로 불리게 될 도시가 지어졌고, 쇼이카가 최초의 차리나(Tzarina)로 즉위한다.
키슬레프력은 이때가 키슬레프가 건국된 시점으로 보고 이 시기를 기준으로 날짜를 표기한다. 그러나 쇼이카는 나머지 세계로 향하는 통로이자 거대 무역항인 노르바르드가 웅골족 치세 아래 있는 한 나라의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그녀의 대관식 이후 쇼이카가 처음 내린 칙령은 다름 아닌 웅골족을 치는 것이었다.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노르바르드는 쇼이카의 군대 앞에 함락되었고 에렌그라드(Erengrad)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살아남은 웅골족들은 북쪽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이들도 추적당해서 차리나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스포다르인들은 수도의 이름을 따서 키슬레프인들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통치 아래 프라그는 융성해 대도시가 되었고 에렌그라드는 어느 때보다 바쁜 거대 무역항이 되었다. 이후 키슬레프 인들은 무역을 하고 노스카인들과 싸우고(가끔씩 제국인들과도), 그들의 치세를 거부하는 일부 웅골족들을 처리하면서 지내게 된다. 무려 750년 동안, 그런 상황이 유지되면서 고스포다르족과 웅골족의 사회는 하나의 나라로 융합이 되었다.[7] 그러나 북쪽에선 아직도 웅골족의 영향이 상당하며 대도시 프라그 역시 과거 웅골 귀족들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4. Warhammer: The Old World

출처

제국력 2276년(키슬레프력 752년) 기준 키슬레프는 올드 월드 북부부터 동부 평원까지의 넓은 영역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한다.

키슬레프의 지도자는 칸-여왕들의 후손인 얼음여왕 미셴카 로마노프가 다스리고 있으며, 외아들 알렉시스 왕자는 마법은 뛰어나지 못한 대신 뛰어난 전사이자 외교관이라고 한다.

5. 카오스와의 대전쟁

키슬레프는 전부터 카오스 황무지 출신 야만인들의 습격을 자주 받았으며, 이런 약탈자 무리들을 키슬레프인들은 캬자크(Kyazak)라고 부른다.
이들의 침입은 일시적이었지만 캬자크들의 공격은 대도시까지 공격할 정도로 대담해져만 갔다. 그래서 키슬레프에는 각 지방에서 고스포다르족에게는 랜서, 웅골족에게는 궁기병을 징집, 부대(Rota)를 이루거나 하나의 거대한 군대(Pulk)를 이루어 대항하고는 했다.
그러나 북쪽에서 카오스 신들의 기운이 강해지며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고스포다르력 778년(제국력 2301년) 겨울, 에버초즌 아사바르 쿨이 북부인들을 규합해 키슬레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이때의 기억은 아직도 키슬레프인들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키슬레프군과 제국 원군은 그의 군세를 막아섰으나, 프라그 북쪽에서 밀려든 야만인들과 악마, 괴물들의 군세에 밀려 학살당했다. 린스크(Lysnk)강을 잇는 다리를 지키던 마지막 키슬레프 부대마저 격퇴되자 프라그는 아사바르 쿨의 군대에 완전히 포위당하게 되었다. 봄에서 여름까지 프라그의 방어자들은 용맹하게 버텼으나 겨울이 다가올 무렵에 결국 힘에 밀려 함락되고 말았다. 이후 카오스의 순수한 힘이 도시를 휩쓸면서 - 생존자들은 건물들과 융합하는, 지옥을 방불케하는 마경이 펼쳐졌다.[8]

이때 제국에서 혜성처럼 영웅 경건한 마그누스가 등장해 카오스의 위협에 대항하여 제국과 키슬레프의 군세를 규합했다.
그 군대의 규모는 제국 역사상 최대였고 마그누스는 이를 둘로 나누어서 에버초즌의 군세를 대적하도록 했다. 복수심에 찬 키슬레프 랜서들과 제국 기사단으로 구성된 첫번째 부대는 프라그를 돕고자 최대한 빨리 달려갔으나 때는 늦었고 참담한 광경만 목격했을 뿐이다. 이에 분노한 랜서들은 카오스 군세를 추적해 남쪽으로 향했다.

마그누스 자신이 직접 이끄는 두번째 군세는 재보급을 받고자 키슬레프 시로 향했다. 그러나 마그누스가 키슬레프 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도시가 이미 아사바르 쿨의 공격을 받고 있고 키슬레프 인들과 카라즈-아-카락의 지원군만이 필사적인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마그누스는 즉각 돌격을 명령했고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힘입은 제국군이 우세한 듯 하였으나 아사바르 쿨의 지도 아래에 카오스 군단이 재집결하면서 제국군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때맞춰서 첫번째 부대의 랜서들과 기사들이 도착하여 카오스 군단의 후방에 돌격했고,[9] 키슬레프 시 내부의 군대와 드워프들도 이에 맞추어 돌격했다. 삼면으로 적을 만나게 된 카오스군은 주춤대기 시작했고 이 때를 노린 경건한 마그누스가 아사바르 쿨과의 대결 끝에 그를 죽이면서 카오스 군세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모국의 대지가 쑥대밭이 된 것을 본 키슬레프인들은 분노에 차서 카오스 잔당들을 추적해 학살했다.

6. 붉은 차르 아래 중흥

다음 두 세기 동안 키슬레프는 대전쟁에서 받은 상처에서 회복하느라 휘청거리게 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학살당했고 마을들은 파괴되거나 렐름 오브 카오스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프라그 시는 모조리 불태워지고 재건했으나 카오스의 오염은 여전했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비스트맨, 그린스킨, 스케이븐 등 온갖 적들이 키슬레프의 땅을 유린했다.
차르 블라디미르 보카(Vladimir Bokha)는 이런 사태를 바꾸고자 20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적인 군대 소집령을 내린다.
그는 초기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키슬레프 동부에서 벌어진 고블린들과의 전투에서 그만 전사하고 만다.

블라디미르의 아들 보리스 보카는 열정적이고 맹렬한 전사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블러드하트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강력한 전사의 탄생을 알렸고, 노파 마녀들은 그가 열심히 싸울 것이고 멋지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예언했다. 보리스는 아버지의 과업을 이어받아 국고를 비워 키슬레프군을 재편했고, 길, 다리, 마을 등 기본 인프라를 재건했으며, 제국으로부터 화약과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비록 그러느라고 차르와 여러 유력 가문들이 파산할 뻔했지만 그의 노력은 성공적이어서 온갖 잡것들이 날뛰던 국토는 안정을 되찾았다.

차르 보리스는 또한 우르순 교단이 중흥하는데도 큰 힘을 보탰다. 울릭, 타알 등 외래 신들로 인해서 토착 신앙이 시들해지는 상황에서 보리스는 키슬레프 고유 신앙을 부흥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보리스는 우르순으로서의 사제로서 임명받고자 숲속으로 홀로 들어가 곰을 길들이는 임무에 착수했다.[10] 그는 이후 18일 동안 실종되었다가 19일째야 의식불명인 상태로 발견이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20마리의 늑대 시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빼곡하게 있었고, 왠 거대한 곰이 그 주변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있었다. 다음날 그는 정신을 되찾았고 곰은 비로소 수색자들이 차르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가 실종된 간의 행적은 전설로 내려오는데 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5일째 되던 날 차르는 마침내 그가 봤던 것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칼날같은 이빨과 발톱을 지닌 곰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를 우르순의 계시라고 생각한 보리스는 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맨손으로 곰의 돌격을 막아냈지만 곰을 쓰러트릴 정도의 힘은 부족해서 무승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싸운 끝에 늑대들이 피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늑대들은 곰에게 달려들었지만 보리스는 곰을 도와서 늑대들을 등에서 떼어냈다. 보리스는 이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함께 늑대들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고 곰은 그가 깨어날 때까지 차르를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우르스킨(Urskin)[11]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곰은 이후에도 차르를 따라다녔으며 보리스가 전쟁에 나설때면 그를 등 뒤에 태우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는 우르순의 힘과 차르를 향한 우르순의 총애를 상징하며 전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자원으로 활약했다.

차르 보리스 보카는 결국 고스포다르력 994년(제국력 2517년) 린스크 북쪽 트롤 지방에서 쿠르간의 군대를 이끌던 헷자르 페이다즈(Hetzar Feydaj)와 싸우다가 전사하게 된다. 적진 사이로 너무 깊이 돌격했다가 적군에게 포위된 차르는 우르순의 힘으로 싸우며 수많은 쿠르간 전사들을 죽였지만 중과부적이었고 우르스킨이 차르를 등에 태우고 대피해 나왔을 무렵에는 이미 10개가 넘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서야 차르는 우르스킨의 등에서 내려와 죽음을 맞이했고, 우르스킨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부짖은 뒤 북쪽의 땅으로 사라졌다. 전설에 따르면 우르스킨은 아직도 그의 주인을 죽인 카오스의 세력들을 찾아 사냥하고 있다고 한다.[12]

7. 현재

차르 보리스가 죽으면서 그의 딸 카타린 보카가 황위를 물려받아 차리나로 즉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즉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대미문의 이변과 대면해야 했으니...

8. 연표

설정 상 고스포다르력 1년은 제국력 1524년과 같다.


[1] 오스타고스(후일 오스터마르크의 조상)와 인접한 지역에 살았던 부족. 키슬레프 남부 쪽에 살았던 점을 빼면 별다른 정보는 없고, 통합을 거부한 라이크 부족과 함께 지그마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2] 추후 카오스 신을 숭배하다가 쇠락해 사라진다. [3] 이 모습에 감탄한 웅골족들은 그를 위해서 큰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웅골족의 전설에 따르면 에킬의 영혼이 전투에 참가하는 전사들 중 누가 사후세계로 갈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심판한다고 한다. [4] 그러나 아직도 트롤 지방 깊숙한 곳에 롭스멘족의 후예를 칭하는 부족들이 몇몇 남아있기는 하다. [5] 다만 대부분은 제국이 후에 되찾는다. [6] 이 점은 악마들과 싸우며 카오스 황무지로 향한 후 실종된 그림니르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7] 물론 차르/차리나와 대부분 귀족( 보야르)들은 모두 고스포다르족 출신이었지만 말이다. [8] 이로 인해서 남은 상처는 아직까지 건재해 프라그는 재건 중이지만 여전히 저주받은 도시로 남아있다. [9] 이들이 이때 돌진한 언덕은 아직도 영웅들의 언덕, 고라 게로예프(Gora Geroyev)로 불리운다. 다른 이름으로는 크레믈(Kreml)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10] 이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갓난아기였던 카타린의 제위식을 미리 올려두었다. [11] 곰-형제라는 뜻이라고 한다. [12] 이 헷자르 페이다즈는 엔드 타임에서 휘하에 4개의 뿔 운그롤을 두고, 비스트맨 군대를 이끄는 것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때까지도 복수를 포기 하지 않았던 우르스킨에게 쫓겨다니고 있었다. 이후 카타린의 최후의 결전에서 그녀와 맞붙고, 함께 눈폭풍 속으로 사라진 후 등장하지 않는다. [13] 다만 당시 제국은 삼 황제 시기로 갈라져있었으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키슬레프/제국이 정식 군사동맹을 맺는건 이후 카오스와의 대전쟁 때다. [14] 눌룬의 안스프라흐트(Anspracht)라는 제국 학자가 붙인 이름으로 키슬레프인들에겐 그 참극을 겪어보지도 않은 놈이나 붙일 법한 이름이라면서 까인다. [15] 원래는 스톰 오브 카오스가 발생했던 시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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