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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27 12:24:52

코티스 1세(보스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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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4대 군주
Κότυς | 코티스 1세
파일:코티스 1세(보스포로스).jpg
제호 한국어 코티스 1세
그리스어 Κότυς
라틴어 Cotys I
별명 필로카이사르 필로로마이오스 에우세베스(Philocaesar Philoromaios Eusebes: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로마를 사랑하며 경건한 자)
생몰 년도 미상 ~ 미상
재위 기간 서기 44/45년 ~ 서기 6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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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4대 군주. 63년 네로에게 폐위되었다.

2. 생애

보스포로스 왕조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초대 군주 아스푸르고스 게파이피리스의 차남이다. 형으로 미트리다테스 3세가 있었다. 기원전 3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폰토스 왕국의 폴레몬 2세에게 보스포로스 왕위를 주려 했다. 그러나 보스포로스 인들은 단호히 거부하고 게파이피리스를 여왕으로 추대했다가 1년 후 게파이피리스가 사망하자 미트리다테스 3세를 왕위에 올렸다. 그 후 통치를 이어가던 미트리다테스 3세는 서기 44/45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폐위당했고, 그가 새 왕으로 옹립되었다.

율리우스 아퀼라가 이끄는 로마군이 보스포로스 해협을 장악하여 이를 기정사실로 삼자, 미트리다테스 3세는 내륙지대로 피신하여 사르마티아 부족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다가 아퀼라의 로마군이 철수하자, 미트리다테스 3세는 군대를 모아 그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미트리다테스 3세는 먼저 다르다네스 부족의 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뒤, 여세를 몰아 보스포로스 해협을 침공하려 했다. 이에 로마군의 방식으로 무장한 보스포로스군이 그의 지휘하에 출진하자, 미트리다테스 3세는 이에 맞서다 패배한 뒤 다르다네스 부족의 수도 소자로 후퇴했다. 그러나 곧 수비대를 남겨두고 우스파 족의 도시인 시라크스로 후퇴했다.

로마-보스포로스 연합군은 소자를 함락하고 시라크스로 진격해 그곳을 포위하고 주변 지역에서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결국 우스파 족 역시 항복했고, 미트리다테스 3세는 에우노네스 족에게 도주했다. 에우노네스 족은 미트리다테스 3세와 로마 사이를 중재했고, 결국 미트리다테스 3세는 로마군에 항복한 뒤 로마로 끌려갔다. 그리하여 왕위를 굳힌 그는 에우니케라는 그리스 귀족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자신의 외할아버지 코티스 3세의 삼촌인 레스쿠포리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레스쿠포리스로 지었다.

63년, 로마 황제 네로는 그를 폐위시키고 보스포로스 왕국을 모에시아 인페리오르 속주의 일부로 병합시켰다. 폐위된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네로는 자신에게 군사적 위업이 없는 걸 부담스럽게 여겼고, 언젠가 머나먼 이방인의 땅을 정복하여 명성을 날리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보스포로스 왕국을 속주로 삼은 것도 이러한 야심의 발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조만간 크림 반도로 원정가서 아직 로마에 복속되지 않은 내륙 지대의 야만족을 복속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64년 로마 대화재, 65년 피소 음모, 66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등 여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실행을 미루다가 68년 갈바의 반란으로 실각하자 자결했다. 그 후 갈바는 보스포로스 왕국을 부활시키고 그의 아들 레스쿠포리스를 새 군주로 선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