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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0:00:35

코스토필

Kostopil
Костопіль
코스토필
파일:코스토필기.png 파일:코스토필상징.png
국가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리우네주
면적 63.73km²
인구 31,060명[1]
시간대 UTC+02:00( 서머타임 적용)
리우네 행정 사이트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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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 리우네주의 도시이다.

2. 역사

1648년, 브와디스와브 자스와우스키 왕자의 땅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원래는 철광산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이후, 1792년, 스타니스와프 2세 아우구스트로부터 레오나르드 보르첼이 땅의 권리를 얻은 다음 지금의 이름으로 마을명을 변경하였다. 폴란드 분할 당시에는 독일인들이 이 곳으로 많이 이주해왔다. 리우네 빌뉴스를 잇는 철도가 1890년대 후반에 건설된 이후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제분소, 제재소, 성냥공장 등이 지어지면서 여러 산업들이 발전했다.

폴란드 제2공화국 당시, 유대인들이 이 곳을 중심으로 정착했고, 1925년에는 도시 인구의 약 40%[2]가 유대인이었다. 코스토필은 코스토필군의 군청소재지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때, 독일 국방군 1941년 7월 1일부터 점령하게 되고 곧바로 포그롬이 시행되었다. 1941년 8월 16일, 코스토필 내 가장 영향력 있는 470명의 유대인들을 추방해 다른 지역에서 처형하였다. 10월 1일에는 처형당한 인물들과 관련있는 유대인 1,400명을 같은 방식으로 처형했다. 10월 5일, 게토가 형성되었다. 1942년 7월에는 리우네에서 보내진 약 7,000명의 유대인들이 이 지역 숲 주변에 있던 채석장에서 학살당했다. 8월 24일, 코스토필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700명의 유대인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도망을 갔으나, 대부분 잡히거나 사살당했다. 8월 25일에는 게토 부지가 팔리면서 이 곳에 지내던 유대인들은 독일 경찰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했다.

1944년 1월 31일, 소련군이 이 곳을 탈환하면서 해방되었다. 해방 당시, 약 270명의 유대인만 생존했다.


[1] 2021년 기준. [2] 약 40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