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친 작은형제회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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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42014,#542014><colcolor=#ffffff,#ffffff> 이명 | 카푸친회(Capuchins) | ||||
설립 | <colbgcolor=#542014,#542014><colcolor=#ffffff,#ffffff> 시초 | 1209년 2월 24일 ([age(1209-02-24)]주년) | |||
분파 | 1525년 ([age(1525-01-01)]주년) | ||||
설립자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 ||||
총봉사자 | 초대 |
실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O.F.M. 기록 조반니 파렌티 O.F.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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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로베르토 제누인 O.F.M. Cap. (Roberto Genu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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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 10,349명 (2020) | ||||
종교 | 가톨릭 | ||||
소속 | 프란치스코회 | ||||
소재지 |
이탈리아
로마 카푸친 작은형제회 총회 (Via Piemonte 70, 00187 Roma,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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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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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42014,#542014> 라틴어 | <colbgcolor=white,#1f2023>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 |||
영어 |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 ||||
이탈리아어 | Ordine dei frati minori cappuccini | ||||
프랑스어 | Frères mineurs capucins | ||||
스페인어 | Orden de los Hermanos Menores Capuchinos | ||||
포르투갈어 | Ordem dos Frades Menores Conventuais | ||||
독일어 | Orden der Minderen Brüder Kapuziner | ||||
폴란드어 | Zakon Braci Mniejszych Kapucynów | ||||
러시아어 | О́рден ме́ньших бра́тьев капуци́нов | ||||
중국어 | 嘉布遣小兄弟會 | ||||
일본어 | カプチン・フランシスコ修道会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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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42014,#542014><colcolor=#ffffff,#ffffff> 웹사이트 | <colbgcolor=white,#1f2023> 홈페이지(본원) | ||
홈페이지(한국 관구) | ||||
소셜 미디어 | 인스타그램 | |||
유튜브 | ||||
플리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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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톨릭의 수도회이자 프란치스코회 계열 수도회 중 1회에 해당한다.[1]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소속된 사람은 이름 뒤에 O.F.M. Cap.이 붙는다.2. 상세
라틴어 원문 그대로라면 '카푸친 더욱 작은(Minoritas) 형제들의 수도회'로 번역되어야 할 이 수도회는 기도와 형제애, 복음화, 가난, 더욱 작음의 영성으로 프란치스코가 살아간 삶을 닮으려 하는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수도사제와 평수사 구분 없이 서로 '형제'로 호칭하고 있다.카푸친 작은형제회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1223년에 인준 받은 회칙(수도규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려는 이상에서 비롯됐다. 성 프란치스코의 실제 모범과 이미 알려진 의도, 특히 성인의 유언에서 표현된 대로 회칙을 해석해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첫 번째 동료들을 엄격하게 닮고자 하는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것.
카푸친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가난하고 겸손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형제애와 관상, 복음화, 가난 및 더욱 작음, 정의평화 및 창조보전 증진을 핵심적 가치로 삼고 있다.
카푸친 개혁의 시초를 장식한 인물은 당시 작은형제회내 2개의 분파 중 하나였던 준수회(Observantes) 이탈리아 마르케 관구 마테오 다 바시오로, 1525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회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해도 된다는 구두 허락을 받는다.이어 클레멘스 7세는 1528년 칙서를 통해 카푸친 개혁을 '은둔 생활의 작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교회법적으로 인준했고, 이들은 성 프란치스코가 입었던 수도복이라고 생각한 길고 뾰족한 모자(Cappucio)가 달린 수도복을 선택했다.
1535년에 카푸친 작은형제회 총대리가 된 아스티의 베르나르디노는 수도회를 안팎으로 정비, 이후 카푸친들은 그를 진정한 카푸친 작은형제회 설립자로 여기게 됐다.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는 프란치스코회 세 가지 중 하나로 인가했다.
국내에는 1986년 7월 아일랜드 성 프란치스코와 성 파트리치오 관구 소속 수도자 4명이 입국, 서울대교구에 진출함으로써 시작됐다. 한국 카푸친은 모두 16명이며, 이 가운데 6명은 선교사로 종신서약을 한 사제와 평형제가 각각 3명이다. 한국인 종신서약자는 총 7명으로, 사제는 3명이고 평형제는 4명이다. 나머지 3명은 수련자다.
서울 지역 형제회 경당을 개방, 고해성사를 상설화하고 성체조배 경당으로 발전시켰으며, 수련소가 있는 가평 지역 형제회에선 소규모 피정을 지도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묘가 있는 카푸친 교회의 관리도 이 카푸친 수도회가 담당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인사의 장례식 때는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처음에는 황제 또는 황태자 등 공식 작위들을 열거하며 '황족'임을 나타내고 입장하려 하나 카푸친 수사들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며 거절한다. 2번째에는 직업과 각종 학위 및 수여받은 훈장을 통해 '공인'임을 나타내며 입장하려 하나 또다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성도 빼고 이름 단 한 단어만을 대며 "한 죄인이 입장한다."고 알리면 비로소 교회 문이 열리는 의식이다. 아무리 황족이라 해도 죽음과 하느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일개 죄인일 뿐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래 영상은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태자인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장례식 당시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서 촛불을 들고 기다리는 수사들이 카푸친 수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