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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9:52:40

카탈리나(나바라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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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a121a><colcolor=#f2cc0c> 나바라 왕국 제32대 국왕
카탈리나
Katalina I.a Nafarroakoa
파일:나바라카탈리나.jpg
가문 푸아 왕조
출생 1468년
푸아 백국 베른
사망 1517년 2월 12일
몽드마르상
재위 나바라 왕국의 국왕
1483년 ~ 1517년
배우자 호아네스 3세
자녀 아나, 마걀렌, 카탈리나, 호아나, 퀴테리아, 안드레스 페부스, 헨리케 2세, 부에나벤투라, 마르틴, 프란치스코, 카를로스, 이사벨
아버지 비아나 공 가스통
어머니 발루아의 마들렌
형제 프란치스코 페부스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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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 왕국 32대 여왕.

2. 생애

1468년경 푸아 백국 베른에서 비아나 공 가스통과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딸 마들렌의 딸로 출생했다. 오빠로 프란치스코 페부스가 있었다. 아버지 가스통은 푸아 백작 가스통 4세와 아라곤 국왕 추안 2세의 딸이자 나바라 왕국 왕위 계승자인 레오노르 1세의 아들로, 레오노르의 뒤를 이어 나바라 왕이 될 것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1470년 11월 23일 보르도 인근의 리부르에서 열린 마상창시합에 참여했다가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사망했고, 이로 인해 당시 3살이던 오빠가 차기 국왕으로 지명되었다.

1472년, 프란치스코 페부스는 할아버지 가스통 4세가 사망한 뒤 할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았고, 1479년 2월 12일 할머니 레오노르가 재위 15일만에 사망하면서 나바라 왕위에 선임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나바라 왕국, 베른의 독립 자작국, 푸아 백국, 비고라 백국, 마르잔 주, 카스텔보 자작국, 안도라 공국을 소유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기에 어머니 마들렌의 섭정을 받았고, 가스통의 형제이자 베른 주교, 아를의 대주교였던 푸아의 피에르가 조카를 도왔다. 그러나 1483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페부스가 16세의 나이에 베른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에 그녀가 나바라 여왕이자 푸아 백작, 안도라 여공으로 등극했고, 어머니 마들렌이 섭정을 계속 맡았다.

1484년, 모후 마들렌은 나바라 왕국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아라곤 왕국의 페란도 2세에 맞서기 위해 딸을 가스코뉴 서부의 귀족 가문인 알브레 가문의 장과 결혼시키기로 했다. 결혼식은 1484년 6월 오르테즈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당시 나바라 왕국은 아라곤 왕국을 등에 업은 보몽 가문과 반 아라곤 성향을 띄던 아그라몽 가문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바라 여왕 대관식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1494년 아그라몽 가문과 보몽 가문이 평화 협약을 맺고 페르난도 2세가 조인한 후에야 대관식을 겨우 치를 수 있었다. 이때 남편 장 역시 호아네스 3세로서 공동 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러나 아라곤 국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이자 페르난도 2세의 아내인 이사벨 1세는 호아네스 3세를 몰아내고 그들의 아들인 아스투리아스 공 후안과 카탈리나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1495년 모후 마들렌이 사망했고, 카탈리나와 호아네스 3세가 공동으로 통치를 이끌었다. 1504년, 그녀는 아들 헨리케 2세가 나바라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며 자신이 죽으면 팜플로나 대성당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또한 1512년 헨리케 2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의 딸 사이의 혼약을 논의해, 장차 있을 지도 모를 아라곤-카스티야 왕국의 침략에 대비해 프랑스 왕국의 보호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아라곤 국왕이자 이사벨 1세 사후(1504년) 카스티야 왕국의 섭정을 맡던 페르난도 2세는 나바라 왕국이 프랑스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는 것을 좌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1512년 7월 25일, 페르난도는 알바 공 파드리케 알바레스 데 톨레도에게 군대를 맡겨 나바라 왕국을 침공하게 했다. 아라곤군은 순식간에 나바라 왕국의 수도 팜플로나를 함락하고 피레네 산맥 이남의 상(上) 나바라를 휩쓸고 아라곤 왕국의 영토로 삼았다. 카탈리나와 호아네스 3세는 적의 공세에 압도되어 피레네 산맥 너머로 도주한 뒤 파우, 오르테즈, 타르베 등 피레네 산맥 이북의 하(下) 나바라만 겨우 건졌다. 페르난도 2세는 한동안 나바라 왕을 자칭하다가 1513년 3월 23일 팜플로나에서 회의를 소집해 모든 귀족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아낸 후 1515년 나바라 왕국 자체를 없애고 아라곤 왕국의 직할지로 삼았다.

1516년 1월 23일 페르난도 2세가 사망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정세가 어수선해지자, 호아네스 3세는 이 기회를 틈타 나바라 출신의 페드로 장군과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어 빼앗겼던 영토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현지에 주둔한 적군에게 격퇴된 뒤 모네인에 있는 에스구아라바케 성으로 후퇴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 후 카탈리나는 1517년 2월 12일 몽드마르상에서 사망했고, 아들 헨리케 2세가 나바라 왕위를 물려받았다.

3.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