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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so I.a Gartzeitz | ||
가문 | 세메노 왕조 | |
생몰년도 | 860년경 ~ 925년 12월 10일 | |
출생지 | 팜플로나 왕국 | |
사망지 | 팜플로나 왕국 레사 | |
재위 기간 |
팜플로나 왕국 국왕 | 905년 - 925년 |
아버지 | 가르치아 산치츠 | |
어머니 | 다딜디스 팔라스코아 | |
형제 | 시메나 가르체이츠, 세메노 가르체이츠 | |
배우자 | 토타 아자에리츠 | |
자녀 | 우라카 산치츠, 오네카 산치츠, 안차 산치츠, 가르치아 2세 산치츠, 벨라스키타 산치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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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4대 국왕이자 세메노이츠 왕조 초대 국왕.2. 생애
860년경 팜플로나 왕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귀족 가문인 세메노이츠 가문 출신의 가르치아 산치츠와 비고르 백작 로페의 딸 다딜디스 팔라스코아의 아들로 출생했다. 당대 문헌에서는 형제로 세메노 가르체이츠가 있었다고 명시하며, 20세기 스페인 성직자, 역사가, 정치인이었던 후스토 페레즈 산티아고는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3세의 왕비인 시메나 가르체이츠가 그의 누이였다고 주장했다.안초는 가르체아 에네코이츠 통치 말년에 팜플로나 왕국의 서쪽에 있는 온셀라 계곡을 다스렸고, 주변 아랍 토후들을 물리치며 영역을 점차 확장했다. 905년, 오르티 가르체이츠 왕이 팜플로나에 해악을 끼친 바누 카시 일족의 지도자 루브 이븐 무함마드와 동맹을 맺은 것에 반감을 품은 팜플로냐 귀족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수 3세와 리바고르차 백작의 지원에 힘입어 오르티 왕을 폐위시키고 권좌에 올랐다.
907년 팜플로나 왕국의 동맹자였던 루브 이븐 무함마드를 공격해 전투에서 처단했다. 911년 아라곤 백작 갈린도 2세 아스나레스와 바누 카시 일족의 무함마드 알타윌, 아브드 알라 이븐 루브 알 카사위의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에브로 강 계곡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바누 카시 일족은 쇠락했고, 팜플로나 일대에 머물던 왕국은 영역을 급격히 팽창했다. 917년 아라곤 백작 갈린도 2세 아스나레스가 죽자 곧바로 아라곤을 병합하고 백작의 딸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와 아들 가르체아 1세 산치츠를 결혼시켰다.
918년, 산초는 레온 국왕 오르도뉴 2세와 연합해 알안달루스의 북동부 행정구역인 알 타흐르 알 아일라(الثغر الأعلى, 상부 고지)를 공격했다. 그들은 나헤라 공략에 실패했지만, 바누 카시 일족에 영역에 속한 칼라호라, 아르네도, 비게라를 공략하고 발티에리 주변의 영지와 모스크를 파괴했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이븐 아브디 아브다 장군을 파견해 이들을 저지하려 했으나 세비야 북동부의 산 에스테반에서 격파되었다. 920년 리바고르자 백작 베르나르 1세, 무함마드 알 타윌의 아들 암루스 이븐 무함마드와 연합하여 바누 카시가 장악하고 있던 몬손을 공격해 또다시 큰 타격을 입혔다. 그는 이 일련의 승리로 왕국의 영역을 남쪽의 나헤라와 에가 강 계곡과 칼라호라 계곡까지 확장했다. 이후 팜플로나 왕국 역사상 처음으로 동전을 주조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924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군대를 모집해 팜플로나로 쳐들어갔다. 이후 벌어진 격전에서 팜플로나-레온 연합군이 격파되었고, 안초 1세는 팜플로나를 등지고 산지로 후퇴했다. 그러나 후방에서 반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한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점령지에 수비대를 배치하지 않은 채 철수했기 때문에, 안초 1세는 곧 돌아와서 잃어버렸던 영토를 도로 확보했다. 925년 12월 10일 에브로 강 인근의 레사에서 사망했다. 아들 가르치아 2세 산치츠는 아직 어렸기에, 형제 세메로 가르체이츠가 국왕에 등극했다.
3. 가족 관계
- 토타 아사에리츠(876 ~ 958): 오르티 가르체이츠의 딸 오네카 오르티츠와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의 사촌인 아스나르의 딸.
- 우라카 산치츠(? ~ 956): 레온 왕국의 국왕 라미루 2세와 결혼.
- 오네카 산치츠(? ~ 931):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수 4세와 결혼.
- 안차 산치츠(? ~ 959): 레온 왕국의 국왕 오르도뉴 2세와 초혼, 알바로 헤라멜리스와 2번째 결혼, 카스티야 초대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와 세번째 결혼.
- 가르치아 2세 산치츠(919 ~ 970): 팜플로나 왕국 6대 국왕.
- 벨라스키타 산치츠: 알라바 백작 무니오 벨라스와 초혼, 라바르고사의 갈린도와 2번째 결혼, 오르티 갈린데스와 세번째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