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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2:42:09

최척전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기타

1. 개요



1621년에 한문으로 창작된 고전소설이며 조위한의 작품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하며, 해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작품은 일명 기우록(奇遇錄)이라고도 한다. '기이한 만남의 기록'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최척 일가의 상봉은 예기치않은 일의 연속이다. 당대의 현실은 작품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암담하고 비극적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당대 민중이 겪은 전쟁의 참상, 전쟁이 인간의 운명에 끼친 영향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 EBS 수능특강(2016) 15P 발췌인용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시대 사람 유몽인의 『 어우야담』에도 등장인물 이름만 다르고 줄거리가 똑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우야담』에는 최척은 '정생(鄭生)', 옥영은 '홍도(紅桃)'로 언급되고 있는데 전문(全文)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남원南原 땅에 정생鄭生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젊었을 때 퉁소를 잘 불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리고 성질이 호방하여 조그만 일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학문에만은 몹시 게을렀다. 같은 고을에 사는 어느 양가良家에 혼인을 청했다. 그 집 딸의 이름은 홍도紅桃인데, 두 집에서는 합의를 보아 혼인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홍도의 아버지는 사윗감 정생이 학문이 없다해서 난색을 보였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혼인을 파의罷意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홍도는 그 부모께 말했다.
"혼인이란 하늘이 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미 허락을 해 놓았으니 그 사람에게로 가야 합니다. 어떻게 학문이 없다고 해서 약속을 저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에 그 아버지도 감동해서 정생과의 혼인을 무사히 치렀다. 그 후 2년 만에 이들은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몽석夢錫이라고 했다.
임진년에 왜란이 나자 정생은 군인이 되어 왜병을 막았다. 이때 그는 양총병楊摠兵을 따라서 남원성南原城을 지키게 되었다. 군인들은 성안에서 왜적을 막고, 가족들은 모두 성 밖으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홍도만은 남복을 하고 남편을 따라 성안에 머물렀거만 아무도 이를 아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 몽석은 그 조부를 따라 지리산으로 가서 난을 피했다.
남원성이 함락되자 정생은 양총병과 함께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홍도는 따라 나오지 못하고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정생은, 홍도는 필경 중국 군사를 따라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정생은 홍도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면서 절강浙江 지방을 두루 찾아다녔다. 어느 날, 마침 천궁天宮 도주道主와 절강에서 배를 타고 딴 곳으로 가는 길인데, 달밤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있던 사람 하나가 말했다.
"이 소리는 전일에 조선에 갔을 때 듣던 퉁소 소리와 같다."
그 사람은 무심코 한 말이지만 정생은 마음속에 의심이 생겼다.
"이것은 분명히 홍도의 퉁소 소리다. 홍도가 아니고서야 이 곡조를 알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전에 자기 아내와 화답하던 노래를 한 곡조 크게 불렀다. 이 노랫소리를 듣고 저쪽 배에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이건 내 남편이다!"
정생은 깜짝 놀라 급히 작은 배를 타고 그 배로 쫓아가려 했다. 그러나 도주道主는 그를 말렸다.
"저 배는 남만南蠻 지방의 상선인데 거기에는 왜인들도 많이 섞여 있소. 만일 당신 부인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미 그들에게 팔린 몸이 되었을 테니 지금 맹목적으로 거기에 갔다가는 도리어 해를 입을 것이오. 그러니 잠자코 날이 새기를 기다리시오.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니⋯⋯."
정생은 하는 수 없이 뜬눈으로 그 밤을 새웠다. 도주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돈을 10여 냥 마련하여 심부름꾼 몇 명에게 주어, 그 배로 가서 그 여인을 데려오도록 했다. 이리하여 이들 내외는 만나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니 배 안에서 보는 사람들도 모두 이상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당시 홍도는 남원이 함락되자 왜병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병은 그가 남복한 것을 보고 여자인 줄 모르고 남만의 상선에 인부로 팔아넘겼다. 그러나 홍도는 남자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남만의 상선 주인은 마침 중국에 오는 길에 홍도를 데려다가 조선 땅 가까운 곳에 내려 주고자 했던 것인데 우연히 여기서 그 남편과 만나게 되었다.
정생은 홍도와 같이 만나 절강에서 살게 되었다. 이 사정을 본 절강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돈과 곡식을 저마다 보내 주어서 생계를 이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 아들 몽진夢眞을 낳았다. 몽진의 나이 17세가 되어 혼처를 구했지만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중국 처녀는 혼인을 허락지 않았다.
이때 어느 처녀 하나가 유독 몽진에게 청혼해 왔다.
"우리 아버지는 조선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으니 나는 이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렵니다. 이 사람을 따라서 조선 땅에 가서 아버지 시체를 찾아 제사라도 지내야겠소.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부녀가 서로 만나게 될 것이 아닙니까?"
이리하여 그녀는 몽진에게로 시집을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 뒤 무오년戊午年 북정北征 때 정생은 유정劉廷의 군대에 편입되어 출정했다. 그러나 오랑캐에게 패하여 유정은 전사하고 중국 군사는 거의 다 잡혀 죽게 되었다. 이때 정생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오!"
이렇게 해서 사지를 벗어나 도망하여 조선으로 건너온 그는 즉시 남원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먼 길을 오느라 시달려 다리에 종기가 나서 의원을 구하러 나섰다. 여기에서 만난 의원이 바로 중국 사람인데, 그는 임진란 뒤에 중국으로 돌아가다가 대오에서 떨어져 조선에 머무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상천외로 이 중국 사람은 바로 정생의 아들 몽진의 장인이었다. 이들은 그동안의 경과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붙들고 한바탕 통곡을 했다. 그 두 사람은 남원에 있던 정생의 옛 집을 찾아갔다. 거기에는 몽석이 아내를 얻어 아들을 낳고 옛집에서 살고 있었다. 정생은 아들을 다시 만나고 또 아들의 장인도 새로 만났으니 외로운 회포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다만 아내 홍도와 오랜만에 만났다가 헤어진 생각을 하니 자꾸만 가슴이 메는 것 같았다.
그럭저럭 1년이 지났다. 이때 홍도는 가산을 정리해서 조그만 배 한 척을 마련해서 아들 몽진과 며느리를 데리고 중국을 떠났다. 그는 중국 복색, 조선 복색 그리고 일본 복색을 각각 준비했다. 중도에서 중국 사람을 만나면 중국 사람이라고 속이고, 일본 사람을 만나면 일본 사람이라고 속였다.
한 달 25일 만에 제주도 추자도楸子島 앞 가가도佳可島에 닿았다. 이때 남은 양식은 겨우 7홉뿐이었다.
홍도가 몽진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배 안에서 굶어 죽으면 결국은 물고기 밥이 되고 말 것이니 차라리 섬으로 올라가 목을 매어 죽는 것이 낫겠다."
그러나 그 며느리가 반대했다.
"우리가 한 홉 쌀로 죽을 쑤어 먹으면 하루는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쌀을 가지면 이레 동안은 지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동쪽으로 어렴풋이 육지가 뵈는 듯하오니 좀 참고서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그동안에 다행히 지나가는 배를 만나서 육지로 건너갈 수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살 가망이 있는 게 아닙니까?"
홍도는 이 말을 좇았다. 그리고 대엿새를 지냈다. 이제는 하루 먹을 양식이 남았을 뿐이다. 이때 통제사統制使의 사수선斜水船이 그 부근에 와 닿았다. 홍도는 자기 남편과 남원에서 헤어진 내력과 그 뒤 절강에서 서로 만난 경과, 또 남편이 오랑캐에게 패해 죽었으리라는 이야기를 낱낱이 해 주었다.
뱃사람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불쌍히 여겨 조그만 배에 세 사람을 실어 사수선 뒤에 달아 가지고 와서 순천順天에 데려다주었다. 홍도는 아들과 며느리의 손을 잡고 남원 옛집을 찾아왔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그 남편과 아들 몽석과 몽진의 장인까지 한데 모여서 살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여 서로 다시 만난 이들의 즐거움이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나는 말한다. 정생은 조선 사람이다. 난리에 아내를 잃고 멀리 중국까지 가서 찾았으며, 홍도는 전쟁에 그 남편을 잃고 세 나라 복색으로 본색을 숨기면서 자기 몸을 온전히 보존했다. 또 몽진의 아내는 자기 스스로 다른 나라 남자에게 혼인을 구하여 죽었을지도 모르는 자기 아버지를 찾아서, 필경 모두 한곳, 한집에서 모든 사람이 기약 없이 만났으니 이는 비록 요행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하겠으나, 그들의 지성이 감천하게 한 것이 아니면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어찌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으랴."[1]
- 유몽인 저, 『어우야담』, 제1장「효열孝烈」에서.

중국, 일본을 제외하고 외국과의 교류가 드물었던 조선의 창작물 중에서, 베트남 등의 외국이 주요 배경이 되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홍계월전같이 중국이 배경인 작품도 꽤 있지만, 이는 인간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소설들이라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경을 중국으로 한 것이다.[2] 이에 반해, 이 작품은 사회 비판의 요소가 없음에도 외국을, 그것도 다른 고전소설에서 잘 다루지 않던 일본이나 베트남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 특이한데, 동시대 작품에서 보기 어려운 코스모폴리탄적인 요소와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또,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매우 특이하다. 가령, 작중의 주요 인물들 중의 하나인 돈우는 모욕을 피하고자 남자로 위장하고 있던 옥영을 조선인 부상병으로 오해하고 불쌍히 여겨서, 그녀를 모국인 일본의 자택으로 데려가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자신의 생업인 장삿일을 거들게 해서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는 선인으로 묘사된다. 우연하게 옥영이 남자가 아닌 여자임을 알게 된 뒤에는, 자신의 부인에게 부탁해서 그녀를 돌봐주게 해서 생활에 부담이 없게 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쓰였던 임진록이 일본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 외국인 등장인물들은 최척과 옥영 부부를 도와주는 선역으로 많이 등장한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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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등장인물

4. 기타

마침내 최척이 금교(金橋) 옆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데, 문득 어떤 당(唐)나라 장수가 10여 명의 말 탄 병사를 거느리고 성안에서 나와 금교 아래에서 말을 씻기었다.

[1] 유몽인, 이희준 저, 이민수 역, 『어우야담·계서야담』, 서울, 사단법인 올재, 2022, p.20-25. [2] 동시에 당시 동북아시아의 최강대국이자 선진국 중국에 대한 동경이나, 신비주의적인 환상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설정한 것도 있다. 용쟁호투같이 서구권 영화시장을 겨냥해 만든 무협 영화들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적인 경향 때문에 대부분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