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2:24:42

챔피언스 데이

1. 개요2. 첫 번째 대회3. 이후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MBC GAME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이자 완불엠의 상징 중 하나.

참고로 두 대회 모두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2. 첫 번째 대회

당시 엠겜은 결승 개최비를 아끼고자[1] 프라임리그를 포함한 타 게임리그를 부흥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다가 MSL 결승과 같이 치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이 의견을 수렴한 엠겜은 2004년 초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의 개최를 발표했다. 당시 개최된 리그의 결승전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메인 리그인 MSL의 결승 이전의 마지막 승부인 패자결승이 이미 3월 초에 끝난 상황이었는데 챔피언스 데이의 개최는 4월 18~19일인지라 리그 자체가 거의 1달 반을 쉬어버려 흥행 연속성이 끊겨버렸고, 주 관객층인 중·고·대학생들의 시험기간이 겹치는 대악재가 발생했다. 또한 본 대회의 메인 캐스터인 김철민 캐스터가 대회 도중 위암으로 인하여 수술을 받게 되는 악재가 발생하면서 결승전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2][3]

프라임리그Ⅲ의 결승과 CTBⅢ의 결승 같은 경우는 박세룡 vs 장재호/손오공 프렌즈 vs SK Gaming[4]이라는 초대박매치가 나왔음에도 결승은 관중 300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MSL도 비슷한 결과. 그리고 중간 중간에 끼어있는 아마추어 리그나 기타 게임 리그 결승들은 관계자들 이외에는 관중이 없다시피한 결과가 나왔다.

파일:external/www.gamedonga.co.kr/mbcgame040825.jpg
MSL 결승의 위엄(...)

게다가 부대행사인 랜파티를 위해 설치한 컴퓨터들의 문제도 많았다.[5]

그래서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는 처참하게 망했고 차기 챔피언스 데이 개최가 불투명해 보였다.

3. 이후

MBC GAME은 규모를 줄여 다시 한 번 시도해 두 번째 챔피언스 데이를 개최했지만 첫 번째 챔피언스 데이의 이미지 때문에 관중들이 기피했다. 사실 MSL 대진도 그 재미없다는 T1 팀킬이었던지라... 또한 팀리그 결승 역시 하필 옆 동네 팀 대회 결승전이 ' 광안리 10만 관중'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초대박이라서... 그밖에 프라임리그Ⅳ도 이재박 vs. 강서우라는 실력자들의 매치였지만 당시 인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국 MBC GAME은 챔피언스 데이를 없앴고, 그 뒤로는 개최 리그를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참고로 두 번째 챔피언스 데이에 열린 결승전은 다음과 같다.

이 당시 2004년 6월 15일 개막했던 현대자동차 투싼배 팀리그가 이 일정에 맞추기 위해 3주간 주 2회(화, 목)을 진행했고, 5월 20일 개막했던 Spris MSL이 4주차(승자조 8강) 일정을 마치고 3주간 휴식기를 가지기도했다.

덧붙이자면 챔피언스 데이에 열린, Spris MSL을 제외한(…) 모든 결승은 아직까지도 명경기들로 손꼽히고 있다.[6] 그 Spris MSL도 결승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가 명경기인 리그로 유명하다. 이 결승전의 졸전은 우승자인 최연성과 준우승자인 박용욱의 평가절하로까지 이어졌으며, 이 2명에게 패해 3위를 차지한 강민이 오히려 가장 강렬하게 기억남는 아이러니를 남기게 된다.[7] 다시 말하자면 '흥행은 실패했지만 경기는 재미있었다' 정도. 또한 팀리그도 T1이 우승해서 한 달 전에 열린 프로리그 준우승 당시의 아쉬움을 달랬다.

4. 관련 문서



[1] 이건 농담이라고 볼 수 없는 게 결승을 야외에서 진행하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스폰서에게 후원을 받을 때 후원 금액 중 절반이 결승 개최 비용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오는 게 현실이다. MSL은 메인 리그이니 그렇다 쳐도 당시 위상이 MSL에 버금가던 프라임리그 결승도 박세룡 vs. 장재호라는 대박 매치가 잡히는 바람에 야외에서 해야 할 상황이었다. [2] 실제로 김철민 캐스터는 본 대회 중계를 승자 결승까지만 진행하고 패자 결승은 당시 팀리그, 마이너리그를 중계하였던 최상용 캐스터가 대신 중계하였다. [3] 이 때 MSL 측에서는 대회가 미뤄지는 기간 동안 유망주 프로게이머들이었던 박지호, 서경종, 안기효, 안석열, 한동욱의 5인을 초청하여 풀리그 방식으로 '센게임 MSL 루키특별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결승전이 미뤄진 기간 동안 대회 최종 결승에 진출해 있던 최연성의 소속팀 4Union이 결승 5일 전 2004년 4월 13일 SK텔레콤 T1으로 정식 창단되면서 이 대회 결승전이 SK텔레콤 T1의 첫 공식전이 되었다. [4] SKT가 아니라 독일의 팀인 슈렛 코만도(Schroet Kommando). CTB3 당시 세인트 예카스테이션(SAINT)으로 출전했다. [5] 네트워크 불량은 물론이고 워3와 스타는 하위버전이 깔려 있기도 했다. [6] 특히 하나포스 센게임 MSL 머머록 결승은 MSL의 최초이자 마지막 테테전 결승이자 역대 최고의 동족전 결승전 중 하나로 평가받고, 마찬가지로 투싼 팀리그 결승전도 팀리그 결승전 중에서 유일하게 7전제까지 가는 치열한 명승부로 평가받는다. [7] 그도 그럴것이, 이 시절 강민의 경기들은 스1판 역사에 남은 불후의 명경기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VS 이병민 in 패러렐 라인즈 3 패자 준결승전 2경기전으로 그 유명한 할루시네이션 리콜을 방송에서 최초로 보여준 경기이다. 그 외에 승자 8강전에서 조용호를 상대로 보여준 시즈 리버 등의 명경기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