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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이형록필 책가도 |
1. 개요
冊 架 圖책거리(책가)를 소재로 하는 민화. 책거리도 혹은 문방도.
2. 역사
책가도의 시작은 18세기, 조선 정조의 구상을 화원이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시작으로 추측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정확한 기원은 저멀리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야된다. 17세기 당시 서양의 귀족이나 학자들을 자신이 수집한 생물표본, 그림 컬렉션들을 경이의 방(Cabinet of curiosities)[1]으로 불리는 방에 전시하곤 했는데 선원근법이 등장함에 따라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내 자신의 방을 타인에게 자랑하듯이 보여주는 일이 흔했다. 이를 18세기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청나라의 진열장이었던 다보각경(多寶各景), 혹은 다보격경(多寶格景)을 동서양이 융합된 형태로 본떠서 그려내게 되는데 이것을 모방한 그림들이 알수 없는 경위로 조선에 흘러들어와[2] 걸맞은 형식을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정조가 1783년 규장각 각 자비대령화원이라는 궁중화원 제도를 창설하고 녹취재의 8개 화문 가운데 ‘문방’ 화문을 창시한게 책가도의 최초의 기록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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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책만 그려진 책가도 병풍 |
이후 궁중출신 화원을 통해 책가도가 민화로서 성행하게되는데 이규상(李奎象)의 일몽고(一夢稿)에 따르면 책가도가 서양의 원근법을 모방하기 시작한 그림이며 이것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당시 귀인 중에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문방이 위주였던 그림은 점차 자신의 소유욕을 충족하고자하는 물건들로 채워졌고 나중에는 시계와 같은 서양 물건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경향은 1900년대초까지 이어지다가 일제강점기부터는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후 한국화 연구가 진행되고 특수성이 주목받아 여러 방면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3. 특징 및 의의
책가도는 당시 조선내에 1점 투시도법과 명암기법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이며 문치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려던 정조의 정신이 드러나는 표상과도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위에 언급한 서양식 다보각경 그림과도 여러면에서 차이를 보여 독특한 그림으로 연구되곤 하는데, 우선 우키요에 처럼 명암기법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녹색, 청색, 진한 적색 등 강렬한 바탕색을 써서 입체감 높여 당시 조선화와 서양화가 결합된 특징을 보여준다.책가도의 구성은 이름 그대로 책가 안에 학문과 배움을 상징하는 책과 문방구 등이 주가 되는 그림으로, 이외에 도자기, 수석, 난초, 등이 소비품이 추가된다. 외래 문물의 유입으로 인해 근대적인 양식이 보이기도 하는데, 서양에서 들여온 자명종, 시계 따위가 그려지기도 했다. 이것은 계층간에도 차이를 보여 수박, 비녀, 모란, 어류, 은장도등 여성을 상징하는 물건들로만 채워진 그림도 존재한다.
이외 책가나 책이 없는 책가도와 같은 구성도 종종 보인다. 이경우 트롱프뢰유 형태로 물건을 모아놓은것이 특징으로 동시기 유행하던 문자도와 결합된 그림도 여럿 존재한다.
마치 몬드리안의 더 스테일 처럼 모더니즘 스러우면서 동양화 특유의 모습이 두드러지는 그림이며 민화이기에 짧은 유행에도 많은 수가 국내외로 남아있다. 21세기에는 작호도에 이어서 한국적인 배경을 홍보하고 싶을 때 주로 활용되며 한국식 정물화로 소개되곤한다. 2017년에는 미국내 최초의 책거리 학술회가 열렸다. 현재는 해외를 박물관에 특별관람 주제로 전시되기도 하며 국내에서도 인테리어 장식부터 명절날 홍보용 그림으로 꼭 빠지지 않는다.
Apple 명동은 책가도를 묘사한 가림막으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서초구 서리풀 수장고 국제설계공모 당시 노먼 포스터(4:02:00부터)는 책거리에 영감을 받은 개방형 수장고를 제시하였다. 다만 당선은 헤르초크 & 드 뫼롱이 되었다.
4. 관련 문서
[1]
후에 박물관의 모태가된다.
[2]
영정조대 관료인 조종현(趙宗鉉, 1731-1800)이 입수한 것으로 추정하곤 한다. 자신이 쓴 제소병(題小屛)에서 언급하는 서가도(書架圖)가 다보각경 그림의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
[3]
영조대 후반 책가도(冊架圖) 수용의 세 가지 풍경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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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때는 다른 물건 없이 책만 그려져 있었을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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