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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5 12:48:32

찰루키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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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루키아
ಚಾಲುಕ್ಯ

Cāluky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37px-Badami-chalukya-empire-map.svg.png
존속기간 543년 ~ 753년
수도 바다미
국가원수 마하라자
주요 군주 풀라케신 2세(609~642)
비자야디티야(696~733)
언어 산스크리트어, 칸나다어
종교 힌두교, 자이나교
종족 칸나다인
성립 이전 바카타카 왕조, 카담바 왕조
멸망 이후 라슈트라쿠타 왕조

1. 개요2. 역사3. 역대 국왕

[clearfix]

1. 개요

6~13세기[1]에 걸쳐 중부 인도의 데칸 고원에서 세력을 떨친 남인도 왕조.
[clearfix]

2. 역사

카담바 왕조가 멸망한 이후, 543년 찰루키아의 초대 국왕 풀라케신 1세가 마이소르의 북부 바다미 지역에 나라를 세움으로써 왕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풀라케신 1세는 마사제를 거행하여 제왕으로서의 위엄을 강조했다. 이후 찰루키아 왕조의 남하정책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남쪽의 팔라바 왕조 칼라브라 왕조 등의 국가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손자 풀라케신 2세 때 데칸의 서 ·북부를 통합하고, 북인도의 패자인 바르다나 왕조의 왕 하르샤 바르다나의 남진을 저지했다. 610년에는 크리슈나 강과 고다바리 강 사이의 벵기 지역을 정복했다. 벵기 지역은 지리적 조건상 수많은 왕국들의 점령 대상이었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또한 풀라케신 2세는 동찰루키아 왕국의 원형을 세웠다.[2] 그러나 642년, 팔라바 왕조의 나라싱하 바르만 왕과 실론 왕국의 연합군에 패배해 풀라케신 2세가 전사하고, 수도 바다미가 함락되어 찰루키아 왕조는 분열되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양측 모두 커다란 손실을 입었으며 팔라바 왕조는 계속해서 실론과 연합하여 국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한편 찰루키아 왕조는 분열된 왕국을 통일시키려고 각 방면으로 노력했으며, 속국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풀라케신 2세의 아들 비크라마디트야 1세는 힘을 규합하는데 성공했고, 재차 팔라바 왕조에 대한 복수를 단행했다. 이 전쟁에서 팔라바의 수도 칸치를 점령했으며 그는 많은 훌륭한 건축가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이후에도 팔라바와의 전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740년 비크라마디트야 2세에 이르러 찰루키아 왕조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아랍 세력이 내분으로 철수하자 속국 중에 하나였던 단티 두르가(Danti Durga)가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753년, 찰루키아를 멸망시키고 라슈트라쿠타 왕조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근데 찰루키아에게 털린 라이벌 팔라바 왕국은 그래도 9세기 중반까지 살아남았다 벵기 지역에 남아있던 동찰루키아는 10세기까지 존속했다가 촐라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참고로 찰루키아인들도 고원 지대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타밀나두 지역처럼 땅이 기름지지 않았다. 그 대신 서부 해안을 따라 발달한 항구 도시를 통해서 서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역했다. 서아시아의 이슬람 상인들의 왕래가 잦았으며, 찰루키아 상인들은 동남아시아에 무역 근거지를 만들기도 했다. 찰루키아의 왕들도 농민과 상인들로부터 거둔 세금과 전쟁을 통한 이익으로 관료 조직과 군대를 유지했다. 또한 이들은 브라흐마와 마누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힌두 학문과 예술이 발달이 적극 지원함으로써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에 많은 사원이 더해졌다.[3]

3. 역대 국왕



[1] 이건 서찰루키아 왕조도 포함시킨 것이다. [2] 당시는 독자적인 왕국이라기보다는 다른 지파 정도의 수준이었다. [3] 엘로라 석굴은 굽타 왕조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이후 여러 왕조들에 의해 보완되었다. 찰루키아 왕조도 그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