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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4 15:37:33

봉남교

찬물교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
2.1. 역사2.2. 교리2.3. 봉남계 종교

[출처: 봉남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의 신흥종교] 17.물법계 신흥종교 - 가톨릭신문

1. 개요

봉남교(奉南敎)는 1937년 김봉남(金奉南)이 창시한 종교이며 물법교(勿法敎), 찬물교라고도 한다.

2. 상세

2.1. 역사

김봉남은 1898년 제주목 구좌면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봉남(奉南)은 아호이며, 이름은 영근(永根) 또는 재성(再星)이고, 자는 천근(天根)이다. 유년 시절 한학을 공부하다가 1912년 위장 계통의 괴질에 걸려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신병 치료를 목적으로 많은 종교 단체를 편력하다가 보천교(普天敎)에서 강신(降神), 개안(開眼), 이보(耳報) 등의 체험을 하고 도통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16년 집을 나온 김봉남은 동래군[1]에 있는 해녀들의 작업 배에서 사공일을 하였다. 1921년 제주도 출신의 출가 해녀인 문씨와 결혼하였다.

1928년 오대산에서 도인을 만나 주송수련을 한 결과, 칠성신의 계시와 권능에 의해 안찰(按擦)과 침구(鍼灸)의 비법을 전수받아 타인의 병을 치료해주는 경험을 쌓게 되었다. 이렇게 치료와 수도의 기초를 닦은 뒤 1936년 손치성(孫致成)의 무량교(無量敎)를 믿던 황보흠(皇甫欽)[2]을 만나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다.

황보흠의 영향을 받아 세 단계의 도각(道覺)을 이루고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초통은 1937년 1월이었다. 연화산에서 두 차례의 백일기도 후 천상으로부터 물법을 받으면서 핏덩이를 토하고는 괴질이 나았다고 한다. 그 뒤 전에 없던 지각(知覺)이 열려 많은 사람들로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 뒤 경상남도 양산군 연화산(蓮華山)의 죽도사(竹島寺)를 빌려 물법을 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봉남의 도력에 관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단이 형성되었다. 김봉남은 포교 활동의 방법으로 부처님 앞에 찬물을 올리고 신도들에게 ‘ 아미타불’, ‘ 미륵존불’을 큰소리로 반복시키고, 『무량주(無量呪)』, 『태을경(太乙經)』 등을 외우도록 하였다.

재통은 1943년 11월로 부인의 소상(小祥) 때 강신이 되면서 ·· 삼교의 원리를 관통하고 중생삼고(衆生三苦: 飢·寒·疾)를 해탈하는 심수법(心水法)의 원리를 깨달았기에 신도들은 김봉남을 수법선사(水法仙師)·태상상제(太上上帝)·생불(生佛)의 화신으로 믿게 되었다.

교세가 커지게 되자, 일제 당국은 김봉남을 사도난민(邪道亂民)의 혐의로 체포하여 고문을 가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교단은 한 때 크게 위축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일제 말 종교활동을 일시 중단하였다가 1945년 해방 후, 교단본부를 부산 영도로 옮기고 다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물 한 그릇으로 장님이 눈을 뜨고 정신병과 나병도 나았으며 죽은 사람까지 살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백 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김봉남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지를 순회하면서 많은 추종자를 모아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1946년 3월 부산 영도에서 천일수련 끝에 몇몇 제자에게 물법을 전수하였으며 이 날을 찬물교의 물법교화일이라고 한다.

삼통은 1948년으로 경상북도 상주군 성지산에서 백일 기도에 들어가 천지의 대행대덕(大行大德)을 통하고 심수법의 근원인 영해영국(靈海靈局)의 도안이 열려 물법의 원리가 유·불·선 삼교가 귀일되는 자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경상남도 김해군를 중심으로 수만의 신도를 확보하며 교세를 확장해 나간 김봉남은 1950년 4월 8일 53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때 김봉남은 교단을 형성하지 않았고, 자신을 교주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죽으면서 후계자를 지정하지도 않았다. 1953년 김봉남의 제자들이 용화사(龍華寺)라는 교단을 세웠으나 이념적 갈등, 교통 계승 문제 등으로 용화사는 3개월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 뒤 김봉남의 제자들은 흩어져서 각각 교단을 형성하였다.

2.2. 교리

신앙의 대상은 물법이다. 물법이란 단식을 하고 주문을 계속 외우며 찬물을 마심으로써 심신의 죄고(罪苦) 와 질병을 퇴치하고 도통에 이르게 된다는 수도법을 말한다. 그리고 을 신앙한다는 것은 수신(水神)을 믿는 것이며, 교리가 물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고, 신앙의 방편으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근원이며, 도덕의 원리로 여겨진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을 이행하게 하여 덕성을 기르는 양생(養生)과 명덕(明德)이며, 양생과 명덕은 진심(盡心)과 지성(至誠)에 있다고 한다.

수신에는 천계수신과 지계수신의 믿음이 있고, 교리상에서는 물을 창조의 원리, 생명의 원리, 물리적인 원리, 역리적인 원리로 본다. 신앙의 방편으로는 정신법(淨身法)·축마법(逐魔法)·제공법(祭供法)·치병법(治病法) 등이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심성은 본래 깨끗하고 맑은 것이며, 인간의 체력은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물의 기질을 가짐으로써 생기가 왕성하다. 그리고 인간이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은 깨끗하고 맑은 마음에 죄악과 번뇌가 생겨 심성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성이 더러워지면 자체에 오염이 생기고 생명에는 수기(水氣)가 결핍되며 생기(生氣)에 지장을 초래하여 질병이 생기게 된다. 즉 질병은 인간의 심(心)·기(氣)가 수기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법을 통해 심수(心水)의 법(法)을 육체에 불어 넣고 신체의 생명수를 충족시켜야만 질병은 치유된다고 한다. 이 종교에서는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으로서 마음을 밝히는 참회와 주문암송, 기를 깨끗이 하는 찬물마심과 안찰 및 단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체의 질병은 마음의 잘못에서 온다고 하여 물법치료를 받기 이전에 죄를 자백하라고 환자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요컨대, 물법의 원리야말로 유·불·선 3도가 모두 이 자리에 귀일되는 근원적 원리로 보는 것이다. 윤리 규범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적인 것이며, 참회와 심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교적인 것이고, 주문을 암송하고 물을 마심으로써 신비적인 체험을 하는 것은 도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찬물요법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유·불·선 삼교의 진리 통전(統全)한 대도진법의 시행이라고 주장한다. 물을 사용하는 치병이 중심을 이루고 교조 당대에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분파된 각 파에서는 상당히 다른 교리강령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물법 신앙이 봉남교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물법 신앙은 민간 신앙이나 원시종교, 그리고 현대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신앙이다.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비는 행위나, 신단 위에 청수를 바치는 행위, 그리고 성수· 세례· 침례 등의 종교의식은 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종교적 신행(信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을 생명이나 만물의 원동력으로 간주하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 탈레스를 비롯하여 동양사상에서도 이미 제시되었던 사상이다. 그러한 물의 이법(理法)이 이 종교에서는 음양조화의 이치, 역리(易理), 술수(術數) 등의 전통적인 사상과 결합하여 하나의 교리로 체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주문으로는 심전작정주(心田作井呪)가 있고, 이 밖에도 태화주·무량주·구령삼정주·황제음부경·삼필주·정경 등이 있다.

2.3. 봉남계 종교

봉남계 종교로는 성덕도(聖德道), 삼법수도교화원(三法修道敎化院), 천지대안교(天地大安敎), 적선도(積善道)[3],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 타불교(陀佛敎), 태화교(太和敎), 봉남사(奉南寺), 용화사(龍華寺), 대한도교(大韓道敎), 도교(道敎), 찬물교 등 십여 개의 교파가 있다.

봉남계 종교들은 과거 부산과 제주도에 밀집하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전국 각지로 폭 넓게 퍼져 나갔고, 신도의 수효는 2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상당한 교세를 확보하고 있는 곳으로는 삼법수도교화원, 천지대안교, 성덕도 세 교단뿐이다. 나머지 9개 교단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이른바 제도화 과정에서 실패한 교단들이다. 12개의 교단 중 삼법수도교화원, 태화교, 용화사, 봉남사, 용화삼덕도, 타불교는 김봉남을 교조로 받들며 김봉남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승하는 교단들이다. 나머지 천지대안도, 성덕도, 찬물교, 적선교, 도교, 대한도교는 독자적으로 교단을 만들어 김봉남의 영향을 부인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교단들이다.

'삼법수도교화원'은 1960년 배무생(裵戊生)이 창시한 종교이다. 배무생은 1898년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나 보천교를 믿었다. 그러다가 김봉남을 만나 사흘 만에 병을 치료하고 김봉남의 제자가 되었고, 김봉남 사망하자 김봉남의 사당 설립 운동과 봉남교 본부의 김해군 이전을 주장하다가 실패하였다.

이후 같은 김봉남의 제자였던 김옥재와 함께 김해군에 제각을 설립하여 향사 관리를 담당하였다. 그런데 김옥재가 사망하자 김옥재의 아우 김윤재(金允載)가 성덕도라는 종파를 세우고 제각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당시 제각의 관리를 맡고 있던 배무생의 아들 배태수(裵泰秀)가 반대하였지만 재판 결과 패소하고 말았다.

이후 제각에 모셨던 김봉남의 영정을 박봉규(朴鳳奎)의 집으로 이안하고 이 곳을 본거지로 포교활동을 시작하면서 교명을 유불선삼법대도(儒佛仙三法大道) 혹은 삼법원(三法院)이라 하였다. 교세가 점차 확장되던 중 1961년 배무생은 세상을 떠나자 배무생의 처인 오금순(吳今順)과 배태수가 교단 운영을 맡아 삼법수도교화원이라는 명칭으로 교명을 바꾸었고 경상남도 김해시 불암동에 교당을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현재 전국 24개 지부에 약 5천 명의 신도를 갖고 있으며, 현 대표는 양외환(梁外煥)이다. 신앙의 대상은 태상노군(太上老君)과 미륵불(彌勒佛) 그리고 김봉남이다. 사상은 삼법(儒·佛·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주로 주송수련(呪誦修鍊)으로 치병과 도통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수련방법은 자기의 성명을 정면 벽에 부착하고 그 앞에 정좌하여 눈을 감은 채 태상노군과 아미타불을 외운다. 독송을 계속하면서 때때로 찬물을 마신다. 연중 여섯 차례의 정례치성을 드리며, 매년 7주간의 단식수련과 7주간의 식반수련이 있다. ≪정경 正經≫·≪삼법수도진리 三法修道眞理≫ 등의 경전이 있다.

'천지대안교'는 1952년 부경순(夫敬順)이 창시한 종교이다. 해월선(海月仙) 부경순은 1900년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났다. 부경순은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살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던 도중 해적을 만나 남편과 자식들은 살해당하고 남은 자식과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생겼으며 아들은 중병에 걸렸다. 그러던 중 김봉남을 만나 병을 완치하고 제자가 되었다.

부경순은 열심히 봉남교를 포교하는 한편, 스스로 주문을 외는 수련을 계속하여 환각을 자주 보거나 무당과 같이 강신 상태에서 토설(吐說)을 하는 경우가 있어 김봉남의 주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신도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정과 추앙을 받게 되고, 또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김봉남이 사망하자 1952년 천지대안교를 창교하였다.

부경순은 김봉남의 도는 선천시대의 운도라 불로 다스려야하는 운세였는데 물법을 썼다고 비판하면서 봉남교와의 연을 끊었다. 그리고 물의 운도를 따르는 여성 중심의 후천세계(後天世界)를 주장한다. 이에 신자들은 거의 다 여성이다. 이후 부경순은 계룡산 신도안으로 옮겨가서 계룡산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이며 만대 후손에게 감로의 혜택을 받는 새 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1965년 부경순이 사망하자 김태순(金泰順)이 교를 이끌었다. 전국에 24개의 교당을 갖고 있으며, 일본 오사카에도 2개의 교당이 있다. 한 때는 신도가 3,000여 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약 500명 정도이다. 신도들은 대개 제주도에 많으며 충청 지역에 소수의 신도들이 있다.

신앙의 대상은 해월선으로 해월선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이며 미륵세존(彌勒世尊)으로서 용왕신(龍王神)으로도 받들어진다. 여기서는 찬물만 먹고 단식하며, 축문, 기도문을 외우면 병도 낫고 정신수련도 된다고 가르친다. 주문을 계속 외우면 강신이 되어 몸이 흔들리고 귀신을 볼 수도 있게 되며 토설이 나오고 계시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경전으로는 김태순이 부경순과 자신의 토설을 정리하여 펴낸 『계운전(啓運典)』이 있다.

'자아도'는 1950년 안두승(安斗承)이 창시한 종교이다. 1912년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태어난 안두승은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차경석의 보천교에 입교하였으나 탈퇴하고 김봉남이 물법 치료를 하는 것을 보고 차경석처럼 사술일 것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접근하였는데, 김봉남의 물법시술에 감복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

안두승이 김봉남을 대신해 물법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자 김봉남은 안두승에게 포교를 맡기고 부산으로 떠났는데, 사람들은 이 단체를 가리켜 찬물교라 하였다. 그러다 김봉남이 죽자 안두승은 찬물교 교주가 되었고 이후 자아도로 교명을 바꾸었다. 초기에는 물법 시술만으로 치료하였으나 뒤에 한방요법을 곁들여 육신치료와 정신치료를 겸한 시술을 하였다. 1985년에 안두승은 죽고, 임만봉(任萬奉)이 뒤를 이었으나 그 역시 사망하고 이후로는 안두승의 아들 안범룡(安凡龍)이 맡았으나 종교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신앙의 대상은 물법이다. 물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근원이며, 도덕의 원리로 여겨진다. 사람의 병고는 허욕과 악심으로 인해 유발되므로 이를 없애기 위해 청정한 찬물을 쓰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악을 고치고 착한 일을 하며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것이라 한다. 연 4회 정기 의례행사가 있고, 『심인경(心印經)』·『태화경(太和經)』 등의 경전이 있다.

'용화삼덕도'는 1952년 강기춘(康基春)이 창시한 종교이다. 겅기춘은 1903년 제주도 남제주군에서 태어나 남편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살다가 광복 이후 귀국하였다. 이후 부경순의 소개로 김봉남을 찾아가 치병되면서 신도가 되었다. 그러다 김봉남이 죽자 김봉남의 제자들이 모여 제각을 마련하고 교단의 본부는 강기춘의 집에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강기춘의 집에 불교의 형식을 본따 미륵불상과 김봉남의 영상을 모신 뒤 용화사(龍華寺)라는 간판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김봉남의 가르침을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며 내분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후 강기춘은 1965년 용화삼덕도라는 간판을 걸고 정식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김봉남과 태상노군, 그리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수련은 단식요법과 냉수요법을 통하여 정신병과 위장병 등을 고치는 치병요법을 위주로 하고, 연 일곱 차례의 정례의례일이 있다. 『태화경(太和經)』·『음부경(陰符經)』·『용화삼덕도경집요(龍華三德道經集要)』 등의 경전이 있다.

'타불교'는 1945년 윤선유(尹善有)가 창시한 종교이다. 윤선유는 1899년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났고, 이후 김봉남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다 1945년 ‘제주가 피난할 곳이니 제주로 가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토설이 내려와 귀향하여 물법으로 치병활동을 통한 포교를 시작했다.

이후 염불당을 지어 아미타불을 모시고 용화사(龍華寺)라 했다. 그 뒤 염불에 열중하며 치병 활동을 하다가 1983년 사망했다. 이후 윤선유의 아들 권명환(權明煥)이 뒤를 이었다. 그는 대한불교태고종 승려가 되었으나 사상 경향이나 의례 등은 모친의 유업을 계승하려는 입장이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아미타불, 미륵존불(彌勒尊佛), 태상노군이다. 경전은 『아미타경』·『봉남선사와 유·불·선 삼법』이 있다.

'태화교'는 1952년 문필송(文弼松)과 고남규(高南圭)가 창시한 종교이다. 문필송은 1926년 제주도 남제주군에서 태어나 김봉남의 소문을 듣고 풍수지리를 배우려고 입신하였다. 고남규도 문필송과 동향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가 약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전북 정읍에서 한의원을 경영하다가 물법 치료의 신비에 이끌려 김봉남의 제자가 되었다.

김봉남이 사망하자 문필송과 고남규는 1952년 강기춘의 용화삼덕도에 출입하면서 별도로 태화교라 칭하였다. 교명은 김봉남이 청화산(靑華山)에서 수련할 때 고남규에게 내린 태화주(太和呪)라는 주문에서 연유한 것이다.

1965년 고남규가 죽자, 고남규의 아들 고석균(高碩均)과 문필송은 문필송의 집에서 본격적으로 태화교라는 이름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교조 김봉남이며 김봉남을 태상노군과 미륵불의 화현(化現)이라고 믿었다. 구도 수련은 태을주(太乙呪)를 주송(呪誦)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여타 물법계의 신앙들이 대개 주송(呪誦)을 통한 치병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의타적(依他的)인 성격이 강한 반면, 태화교는 상급의 단계에 이르면 주송수련(呪誦修鍊)보다는 도통(道通)을 목적으로 하는 법방수련(法榜修鍊)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자적(依自的)인 측면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봉남사'는 1950년 김완진(金完珍)이 창시한 종교이다. 김완진은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나 숙부인 김봉남이 가르치는 물법 수도를 하면서도 불교에 뜻을 두어 승려 박보륜(朴寶輪)의 도움을 받아 범어사에서 백일수련을 마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김봉남의 물법도 불교적인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가 정치에도 가담해 보고 경찰 직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숙부 곁으로 돌아와 수련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김봉남이 김해에서 죽자 김해군에 집을 마련하여 김봉남의 영위(靈位)를 보관하였고, 부산에 용화사라는 절을 설치, 불교적인 색채를 가하여 포교를 시작하였다. 이후 본부를 김해로 옮기려 하였으나 강기춘 등의 반대로 실패하자 교인을 모아 김해의 자택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한 때는 수백 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으나 그가 안보살(安菩薩)이라는 여인에게 관리를 맡기고 제주도로 건너가 조계종 승려가 된 뒤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기본교리는 봉남교와 같으나 김봉남의 영상과 나란히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숭배하였으며 김봉남을 기념하는 5대 치성이 주요 제의였다. 봉남의 기본신념이 아미타불의 공덕을 염송하면서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대한도교'는 1957년 신백일(辛白一)이 창시한 종교이다. 신백일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나 경찰 직에 종사하다가, 병으로 10여 년간 고생 끝에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

이후 합천군 가야산에서 수도 생활을 하다가 하산하여, 1957년 도교수련원(道敎修練園)이라는 간판을 걸고 신도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그러다 교명을 대한도교로 고쳤다. 이후 신백일의 부인파와 제자 강길룡파(姜吉龍派)로 분열되고 대한도교는 해산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태상노군과 단군(檀君)이다. 법단에는 노자상(老子像)과 단군영정을 모시고 그 뒤에 원형의 거울 3개를 삼각형으로 연결하여 걸어놓고 있는데, 이는 도교의 만물생성원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수련심수기(修練心修氣)의 방법으로 모든 병을 다스리고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경지에 들어가 인간 자신의 진실을 찾으며 도덕을 실천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치병과 수련의 방법은 태상노군 법단 앞에 정좌하여 천고문(天告文)과 심고문(心告文), 『청정경(淸淨經)』과 『도덕경(道德經)』을 외고 법단에 놓인 찬물을 마시며 타골(打骨)·안찰(按擦)·단식요법을 행한다. 『청정경』·『대한도교경전』 등의 경전이 있다.
[1] 그 중 現 기장군 지역 [2] 아호는 백남(白南) [3] 지금의 자아도(自我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