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규(조위) 문서 참고하십시오.
陳珪
생몰년도 미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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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명사이자 진등, 진응의 아버지로 자는 한유(漢瑜). 서주 하비국 회포현 사람.예주의 패상(沛相)이며 아들 진등과 마찬가지로 도겸, 유비, 여포, 조조 휘하에서 지냈다.
2. 정사 삼국지
어려서부터 명문이었던 관계로 원술과 친했다. 패국의 집정관으로 있을 때 같이 천하를 도모하자는 원술의 청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민심이 조조에게 쏠려 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원술은 그런 거 없이 친구의 충고를 넘겨짚고는 스스로 중나라 황제라 참칭했다.여포와 원술이 혼인으로 동맹을 맺으려고 할 때 진규는 이 일로 한실의 혼란이 더해질 것을 염려하였고 여포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조공(조조)이
천자를 봉영(奉迎)해 국정을 보좌하고 그 위령(威靈)을 세상에 드날리고 장차 사해를 정벌할 것이니,
장군께서는 의당 그와 함께 힘을 모아 계책을 세워 태산 같은 안녕을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원술과 혼인을 맺으면 천하에 불의(不義)의 이름을 덮어쓰게 되니 필시
누란지위가 있을 것입니다.
여포는 또한 원술이 예전에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에 원망을 품고 있었으므로
딸에게 돌아오게 하고선 혼인을 끊고, 원술군의 사자
한윤을 묶어 조조에게 보내니 한윤은
허도의 저자거리에서 효수되었다.진규는 아들인 진등을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고자 했으나 여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 사자가 당도해 여포를 좌장군에 임명하자, 기분이 좋아진 여포는 진등이 사자로 가는 것을 들어주었다. 사자로 간 진등에게 조조는 진규의 관질(官秩)을 2천 석으로 올리고 진등에게 광릉 태수의 벼슬을 내리고선 조조군에게 내응하도록 했다.
정략결혼이 파기당해서 화난 원술은 한섬, 양봉 등과 세력을 연결하고 대장 장훈을 보내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가 진규에게 당신 때문에 원술군이 쳐들어왔다고 계책을 묻자 진규가 말했다.
한섬, 양봉과 원술은 졸지에 합해진 군사일 뿐입니다. 책모(策謀)가 평소에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니 능히 서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인 진등이 이미 이를 헤아렸으니, 비유하자면 닭들이 서로 연결한 것으로 함께 둥지를 틀지 못하니 가히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여포가 이를 따라 한섬과 양봉에게 서신을 보내 그들을 회유하자 한섬과 양봉은 이에 응하고 장훈을 대파한다.이후 정사에서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3. 삼국지연의
여포의 딸과 원술의 아들이 혼인하여 두 세력이 동맹을 맺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유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병든 몸을 이끌고 여포를 방문했다. 여포가 진규를 맞이하자 그는 " 저승으로 가는 것을 축하드립니다."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여포가 그 이유를 묻자 진규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앞서 원술이 장군에게 재물을 보낸 것은
현덕을 죽이기 위함이나, 장군께서는 원문에서 극을 쏘아 무산시켰습니다. 지금 갑자기 혼인하려 하는 것은 따님을 인질로 삼고 현덕을 공격하여
소패를 얻으려 함입니다. 소패를 잃으면 서주도 위태롭게 됩니다. 또한 혹여 그쪽에서 군량이나 군사를 빌릴 때 장군께서 응낙하신다면 괜히 수고로움만 늘고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사는 것이요, 응낙하지 않으신다면 싸움을 걸어올 구실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원술은 황제를 참칭할 뜻이 있으니 이것은
역적의 행위요, 장군께서도 역적의 인척이 되어 천하가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여포는
장료를 보내서 딸을 돌아오게 하고
한윤을 압류하며, 원술 쪽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답장을 보낸다. 진규가 한윤을 허도로 압송하라고 진언하였지만 여포는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도중에 장비의 말도둑질(…)[2]이 발생하여 여포가 유비를 공격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조조가 장수를 공격할 때 후방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여포를 다독이면서 여포가 친 조조 노선으로 돌아서게 되고, 원술이 다시 사람을 보내 혼인을 재촉하자, 사신을 목자른 뒤 한윤을 허도로 압송한다.
이 일로 분노한 원술이 서주를 공격하자 진규 부자 때문에 원술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면서 처형당할뻔 하지만 진등이 한섬, 양봉을 회유하여 원술군을 격파했고, 이후 여포는 그 둘을 자신의 부하로 삼으려 하는데, 이때 진규가 나서서 "둘을 산동[3]으로 보내면 조만간 그 일대도 장군의 땅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여포는 그 말이 듣기도 좋고 한섬과 양봉을 설득했던 진등의 아비가 하는 말인지라 수긍했고, 둘을 산동으로 보낸다. 나중에 진등은 아버지 진규에게 "왜 그들을 여포의 부하로 두고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사람으로 쓰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진규는 "그들은 출신이 천하기 때문에 우리 편에 붙기보단 여포에게 아첨을 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여포의 앞잡이가 된다면 되려 손해가 아니겠느냐?"라고 대답했고 진등은 아버지의 헤아림에 탄복했다고 한다.
이후 조조, 유비, 손책, 여포의 동맹군이 원술을 격파하였고, 그 뒤에 조조는 유비를 다시 소패로 보내면서 "굴갱대호(堀坑待虎)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진규 부자와 의논해서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라며 언질을 준다. 이 대목을 자세히 생각하면, 원술은 이미 망했다고 확정이 된 셈이다.
여포가 죽은 후, 조조가 차주에게 밀명을 내려 유비를 죽이라고 시켰을 때 차주는 비책을 진등에게 묻는다. 진등은 대충 둘러댄 후 아버지 진규에게 물어온다. 진규는 예전부터 쭉 유비 편이었기에 아들더러 유비에게 사실을 알려주라고 시킨다.
그러나 차주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조가 침입해오고 유비 삼형제는 물론 유비의 세력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참사가 벌어진다. 진규와 진등은 서주성을 지키고 있다가 조조가 무혈입성하는 것을 돕는다. 조조는 유비를 도왔다가 자신을 돕는 진규 부자가 못마땅했지만, 민심 수습이 우선인지라 그들더러 서주성을 관리하라고 시킨다.[4]
이후 진규와 진등은 쭉 조조의 밑에서 벼슬을 하며 생활하게 되며,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4. 대중 매체에서의 진규
자세한 내용은 진규(삼국지)/기타 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다만 진규의 나이를 추측하자면 원술과 서로 젊었던 시절 친구였고
원소는 155년생으로 추정되며 원술은 원소보다 어리다는 것이다.
출처
출처2 이 가설에 따르면 진규가 서주에서 유비를 만났을 무렵은 40대쯤, 진등이 유비를 추대했을 때가 20대쯤이 된다.
[2]
연의의 서술일 뿐 진짜 말도둑질은
장패가 했다.
[3]
관동, 여기서는
북해국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청주로 조조의 세력권이었다.
[4]
이 과정에서 진등은 하비성을 지키는
관우에 대해 여러 가지 정세를 알려주지만, 하비성과 관우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지에 대해선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