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기계화보병사단에 대한 내용은 제26기계화보병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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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진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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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공통의 직할부대( 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colbgcolor=#137f33><colcolor=white> 제26기계화보병여단 第二十六機械化步兵旅團 The 26th Mechanized Infantry Briga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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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진! 다시 압록강으로! | ||||||
창설일 | 1953년 (제26기계화보병여단) | |||||
상징명칭 | 혜산진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공격 부대, 전시 진격 | |||||
여단장 | 대령 조민기(육사 56기) | |||||
위치 | 경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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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수도기계화보병사단예하 제26기계화보병여단. 별칭은 혜산진부대.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하고 있다.2. 특징
한국 전쟁 당시 한반도 최북단 지역인 혜산진까지 진격한 부대여서 혜산진 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다만 여기에는 좀 긴 에피소드가 있는데, 원래는 제3보병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전후하여 빠진 17연대 대신 3사단에 들어간 게 전쟁사에 등장한 시초.북진 때 22연대, 23연대와 함께 38선을 최초로 넘은 부대이기도 했다. 이때 원산을 점령하고 장진호를 확보한 뒤 합류할 계획이었던 26연대는 어쩌다 장진호 인근에서 밍기적댔고, 11월 말이 되어서야 함흥에서 22연대가 있는 혜산진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미 10군단 전체 철수가 결정되며 26연대는 왕복 마라톤마냥 다시 함흥으로 후퇴를 했는데, 성진에서 배로 철수한 22, 23연대와 달리 기차로 철수한 26연대는 그 날 개시된 흥남 철수작전에 의해, 폭설로 인해 길이 막혀 배로 철수하던 도중 배를 바꿔타서 수도사단 18연대가 3사단과 함께 부산으로 철수하였고, 3사단 26연대는 수도사단과 함께 철수하였다 게다가 철수 위치도 수도사단은 강원도 해안, 3사단은 부산이었던 탓에 원대 복귀를 위해 다시 목적지를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연대를 맞교환하는 식으로 26연대는 3사단에서 수도사단으로 상급부대가 변경되어 배속되었다. 어쨌건 22연대와 26연대 모두 혜산진을 찍긴 찍었기 때문에, 3보병사단에선 22연대에게, 수도사단에서는 26연대에게 혜산진이라는 부대 명칭이 붙었다.
참고로 이 여단만 사단 내 다른 여단과 편제가 다른 탓에 이 여단 예하의 기보대대에 배치된다면 남들보다 좀 더 힘든 군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차대대 머리수는 기보대대의 절반도 안 되는 탓에 자기네 대대 관리하기도 손이 모자라는 데다가[1] 그나마 있는 전차대대는 조금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고로 경계근무도 두 배, 제설 등 각종 작업도 두 배, 대대까지 내려오는 불시검열도 두 배다. 훈련 시에도 보병이 부족하다보니 다른 여단 보병들이 한 걸음 뛰는 동안 두 걸음 뛰어야 한다.
원래 이 부대는 평범한 기보여단이었지만 수기사에서 차량화보병대대가 폐지되면서 다른 여단은 기보대대로 편제가 바뀌고 이 여단만 전차대대로 개편되어 3개 여단 중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즉, 26여단 예하였던 제203차량화보병대대가 다른 여단의 201/202 대대가 기보대대로 개편될 당시 (1987년) 유일하게 35전차대대로 해체 편성되어 26여단이 수기사에서 유일하게 2개 전차대대가 있는 막강 화력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는 사단내에서 26여단의 작전 임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K-1전차는 수기사 내에서 가장 먼저 1986년에 수령 및 전투배치하였으며 '87 T/S 훈련 시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실시하고 당시 대통령에게 87년 9월 승진훈련장에서 화력시범과 함께 88전차라는 별도의 애칭을 받게 되었다. K1전차의 수령에 대해 우선 순위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60여단에 32전차대대가 창설되고 이때 K1 전차를 일선 전투대대로는 처음 수령하여 26여단의 8전차대대는 사실상 두 번째 수령 대대라고 알려졌지만 8전차대대 후에 기갑수색대대가 수령하였으며 그 후에 17, 18전차대대가 수령하였으며 한참 후에 35전차대대가 수령하게 된다.
3. 편제
- 여단 본부 및 본부 중대, 직할 중대
- 제8전차대대 기드온
- 제35전차대대 승호
- 제103기계화보병대대 노도
- 군수지원대대
3.1. 여단본부
- 본부중대
- 통신중대
3.2. 제26기계화여단 군수지원대대
3.3. 제8전차대대 기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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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대대 |
최초 K1전차 배치부대[2]
3.4. 제35전차대대 승호
3.5. 제103기계화보병대대 노도
K-21 보병전투차량 운용 부대.103대대는 26여단과 부대를 공유하며 같은 도로, 같은 훈련장, 같은 부대시설을 사용한다. PX도 같이 사용한다. 가끔 사이버지식정보방에 서버가 끊겨 사용불가 상태가 되면 103대대 병사들이 26여단까지 찾아가 건의,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예하대대인 103대대는 이라크 전쟁 때 파병한 자이툰부대의 모체 부대이다.(자이툰 부대의 장갑차 기동타격대 부대가 여기 부대에서 파병된 부대이다.)
여담으로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관진 실장이 여기에서 여단장(기계화보병여단이어서 타부대 보병 연대 위치 정도 보면 된다.)을 했다. 중대장직도 이쪽에서 수행했다. 103대대 3중대.
2015년 4월 20일, 103기계화보병대대의 K-21 장갑차 기동훈련 도중, 1중대 소속이었던 장모(21) 이병이 K-21 장갑차에 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 안타깝게도 이 병사는 전입온지 일주일도 안된 신병이었다. 부대원들과 추억을 다지기도 전에 순직한 안타까운 사례, 103대대의 연못가 근처 소나무 앞에 장모 병사의 비석이 세워져있다. 사고 직후 부대원들은 일주일동안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이후 장갑차 이동통제 교육을 더 엄격하게 받았다.
4. 과거 부대
5. 출신 인물
5.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
역대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예) 대령 | 前 여단장 | |||
00대 | 김관진 | 대장 | 육사 28기 | 前 합동참모의장,前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 |
00대 | 대령 | 現 여단장 |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가 2013년에 방문한 여단이다. 예하의 제8전차대대인 기드온 대대에서 촬영했다.6.1. 근무환경
6.2. 훈련
7. 사건 사고
- 1983년 8월, 승진훈련장에서 주요 인사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예하의 1개 대대가 최초의 '야간기동제병협동훈련'을 선보였다. (야간전술에 주력하는 북한군에 대응하기 위한 것.) 제병협동이라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온갖 병과가 동원되고 실제 사격까지 하는데 앞에 '기동'이 붙으면 수십 대의 장갑차량이 동원되므로 그만큼 더 위험하다. 전차 1개 중대의 지원을 받는 1개 기계화보병대대(약 60대)가 투입된다. 거기에 '야간'까지 들어가면? 이는 훈련 교리를 세우기 위한 최초의 훈련이었고,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전차(M48A3K)가 장갑차(M113)에 M2 Cal.50 기관총을 오인 사격한 것이다. 야간 훈련이므로 진로 양옆의 산자락에 불빛을 표적으로 설치해 놓았는데 장갑차의 후미등을 그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워낙 기복이 많은 지형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는 차량의 불빛과 표적을 혼동했을 것이다. 사상자 3명이 발생했고 사망자 2명은 "준 전시 상황"에 의거 '전사'로 처리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사망자 중 소대장은 서울 동작동, 전령이었던 상병은 대전에 안장되었다.
- 부상자인 중대장은 오른팔 어깨 가까운 부위를 맞아 불구가 되어 사실상 군인으로 남을 수 없었지만 공훈을 인정받아 후방 근무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전방 근무를 청해서 결국 되돌아'왔'는데, 하필 바로 옆 중대의 중대장을 맡게 되었다. 오른팔이 불구가 되었지만 정말 정신력, 의지력은 대단했던 양반. 또한 당시의 중대장치고는 권위적이지 않고 무척 소탈했다.
[1]
덕분에 보병 쪽에서 복무하던 장교가 기갑으로 바꿔서 오면 두 배로 힘들어진다. 손 많은 보병부대에 익숙하다보니 일손은 생각 않고 일단 시키고 보는 습관 때문이다.
[2]
대대 1호전차에 전두환이 쓴 '88전차'라는 동판이 박혀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