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6: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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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전선의 그라파산에서 벌어진 두번째 그라파산 전투. 1918년 6월 15일부터 23일까지 그라파산 일대에서 전개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공세에
이탈리아 왕국군이 방어에 성공하였다.
피아베강 전투의 일환으로, 오스트리아군은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원수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그라파산 공격을 재개하였다.
독일 제국의 지원은 없었으나, 마지막 결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피아베강 도하와 동시에 그라파산 점령을 통해 이탈리아군을 양면에서 포위한다는 계획이었다.
6월 15일,
빅토어 폰 쇼이헨슈투엘
제국상급대장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제11군이 대규모 포격 후 시에테 코무니 고원(Altopiano dei Sette Comuni)과 그라파산 일대로 총공세를 개시하였다. 에른스트 클레터(Ernst Kletter)
보병대장의 제6군단과 에른스트 호르제츠키(Ernst Horsetzky)
보병대장의 제26군단이 각각 남쪽과 동쪽에서 협공하였다. 이에 맞서 가에타노 자르디노(Gaetano Giardino)
중장의 이탈리아 제4군이 그라파산 정상 요새에서 강력히 저항하였다. 에밀리오 데 보노(Emilio De Bono) 장군 휘하의 제9군단 등이 격전을 벌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콜 모스킨 등 남쪽 고지 일부를 점령하는데 그쳤다. 한편
피아베강에서도 오스트리아군의 도하 시도가 이탈리아군에 의해 좌절되었다. 양 전선에서의 공세 실패로 사기가 떨어진 오스트리아군은 결국 6월 23일 그라파산에서도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였다. 남쪽 고지는 그대로 그들의 수중에 남았으나, 정상과 북쪽은 이탈리아군이 지켜냈다.
제2차 그라파산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정확한 피해상황은 불명이나, 오스트리아군은 공세 좌절로 전의를 상실하였다. 반면 이탈리아군은 전략적 방어에 성공함으로써 사기를 높였다. 이는 4개월 후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의 총반격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제2차 그라파 전투를 계기로 전세가 이탈리아군 우위로 기울면서, 종국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망을 초래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