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C. 토머스 Gerald C. Thomas |
|
|
|
본명 |
제럴드 카스리 토머스 Gerald Carthrae Thomas |
출생 | 1894년 10월 29일 |
미국 미주리주 슬레이터 | |
사망 | 1984년 4월 7일 (향년 89세) |
미국 워싱턴 D.C. | |
복무 | 미합중국 해병대 |
최종 계급 | 미국 해병 대장[1] |
복무 기간 | 1917~1956 |
학력 |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2]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미주리주 슬레이터에서 태어났고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에 진학 중 1917년 미국이 1차 대전에 참전하자 중퇴 후 해병대 사병으로 입대했다. 미국 원정군 제6해병연대 1대대 소속으로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백일 공세의 중요 전투인 벨로숲 전투, 수아송 전투, 뫼즈-아르곤 공세에 참가했다. 이 공으로 퍼플하트,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수아송 전투당시 중대가 많은 피해를 입어 뛰어난 리더십을 보인 토머스를 현지임관시켜 소위가 되었다.전후 독일에 진주했고 아이티 침공당시 제1해병임시여단 소속으로 포르투프랭스 전투 당시 기습을 성공시켜 공을 세웠다. 이후 군경력을 이어나가고 1938년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했다.
1941년 고문관신분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견되었다가 제1해병사단 작전참모로 부임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남태평양 전선으로 투입되었고 과달카날 전역의 전초전이였던 툴라기 전투에서 부사단장 윌리엄 H. 루퍼터스휘하에서 전투를 치렀다. 임무가 완료되고 본대가 있는 과달카날에 합류해 참모장이 되었다.
과달카날 전투 후 제1상륙군단 소속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부건빌 전역에서 전투를 치렀다. 부건빌 전역을 마지막으로 해병대사령부로 전출되어 작전감독관이 되었고 훈공장을 수여받았다. 전후 함대해병대 사령관이 되었고 1951년 제1해병사단장으로 1년간 6.25 전쟁에 참가해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해병대부사령관, 해병대교육단장을 지냈으며 1956년 퇴역했다. 이후 예비역 진급심사에서 대장이 되었다.
1984년 자택에서 사망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