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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05:44:46

전라우수영

파일:조선군 좌독기_White.svg 조선 수군 수영
삼도수군통제영 휘하 수영 삼도수군통어영 휘하 수영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 경기수영 황해수영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
全羅右道水軍節度使營
파일:전라우도수영수역.jpg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의 관할 수역.
<colcolor=#fff> 위치 <colbgcolor=#fff,#191919> 전라도
지휘 수군절도사

1. 개요2. 역사3. 관할지역 및 예하관포
3.1. 관할지역3.2. 예하 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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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全羅右道水軍節度使營), 줄여서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은 조선 시대 전라도의 서쪽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인 수군절도사이다.

2. 역사

임진왜란기 삼도 수군의 네 수영[1]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원래 경상 우수영이 제일 규모가 컸으나, 원균의 임진왜란 초반 실책으로 병력 손실이 극심해 규모가 대폭 줄어 들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서야 경상 우수영은 원래의 규모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전라 좌수영은 처음부터 법제상 그 규모가 전라 우수영보다 작았고, 그나마 좌수사인 이순신이 전쟁 발발 전부터 꾸준히 전선을 확충한 뒤에야 전라 우수영과 비슷한 규모를 갖출 수 있었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이억기가 전라 우수사로 총괄했다가 그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자 김억추가 잠시 후임 우수사로 보임된다. 명량 해전 이후 김억추의 육상 전근으로 명량 해전에서 활약했던 안위가 이순신의 천거로 전라 우수사로 임명된다.

우수영 본영은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었다. 현대에도 문내면에는 우수영을 지명으로 하는 장소들이 여럿 있다. 본영은 명량 해전 직후 조선 수군이 서해로 일시 후퇴하면서 일본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 파괴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복구되었다.

3. 관할지역 및 예하관포

3.1. 관할지역

전라우수영의 관할지역은 동쪽으로는 전라좌수영과의 경계구역인 해남, 장흥 지역부터 북쪽으로 충청도와의 경계지역인 군산지역까지였으며, 현재의 전라북도 ~ 전라남도 서측의 해안지역을 방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전라우수영은 조선 창업 시기에는 전라수영이라는 이름으로 군산지역에 위치해 있었다가, 태종 시기에 이르러 무안군 대굴포로 이동하였으며, 총 19개의 수군진을 관리하였다. 세종 조에 이르러서는 총 13개의 진으로 개편되었으며, 세조 시기 진관체제의 정립과 함께 성종 조에 이르러서 전라좌수영이 분리 개편되면서, 전라우수영은 관할지역 내 총 9개의 진(임치진, 어란진, 금갑도, 남도포, 목포, 다경포, 법성포, 검모포, 군산포)을 관리하게 되었다.

중종 시기에 이르러서 개편이 다시 이뤄지면서 총 13개의 진(임치진, 목포, 다경포, 법성포, 겸모포, 군산, 가리포, 회령포, 마도, 이진, 어란포, 금갑도, 남도포)을 관리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 즈음하여 전라좌수영에서 장흥, 해남 지역을 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기존의 수군 진지가 섬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편성되면서 개편이 이뤄지는데, 숙종 시기에 이르러서는 18개의 진(위도진, 임치진, 목포, 다경포, 지도, 법성포, 검모포, 고군산진, 군산, 가리포, 회령포, 마도, 이진, 어란포, 금갑도, 남도포, 고금도, 신지도)으로 개편되었다.

3.2. 예하 관포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16c초 개편 기준>

[1] 충청수영, 전라 좌수영 / 우수영, 경상 우수영. 경상 좌수영은 전쟁 초기 본영인 부산이 함락되면서 개전 직후 전멸했다.